-
전라북도 완주군 상관면 남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남관진의 창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남관리 남관진 창건비는 남관진의 창건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1873년(고종 10)에 세워졌다. 남관리 남관진 창건비는 전주-남원 간 도로변 완주군 상관면 남관초등학교의 교차로에서 남관성결교회로 우회전하는 곳에 있다. 남관리 남관진 창건비는 개석[뚜껑돌...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부인 광산김씨의 묘비. 정부인 광산김씨의 사망 후, 1833년(순조 33) 묘 앞에 건립된 비석이다. 정부인 광산김씨의 가계와 부군 전주최씨 문충공의 후손 창익의 행적과 차자인 성전이 정려를 받아 효자의 모친이란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상운리 정부인 광산김씨 묘비는 완주 나들목 입구에서 오른...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서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우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서봉리 홍우전 신도비는 조선 후기 공조·예조·병조·형조 참판과 춘추관사를 지낸 문인 홍우전[1663~1728]의 신도비로서 1766년(영조 42)에 세워졌다. 비문은 무려 3,700자에 이르는 장문으로 글씨는 당나라 후기 서예가인 안진경의 다보탑비 서체로서 안심사 사적비와...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에 있는 송광사를 창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종남산 송광사는 보조국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물맛을 보고 이 주변에 절을 세우면 반드시 번창하리라 했다고 한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1622년(광해군 14)에 이 지방에 거주하던 승려 응호, 승명, 운정, 덕림, 득순, 홍신 등이 보조국사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 사찰을...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에 있는 안심사의 연혁을 기록하기 위해 세운 비. 안심사는 638년(백제 무왕 39)에 자장법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그 뒤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고, 신라 말 고려 초에 조구(祖求)화상에 의해 재중창되었다. 그 뒤 고려를 거쳐 1601년(선조 34) 수천화상(守天和尙)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1710년(숙종...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일임리에 무덤이 있는 관인. 오몽을(吳蒙乙)[?~1398]의 본관은 보성(寶城)이다. 보성오씨는 윤관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해서 동북9성을 개척하는 데 공을 세운 오연총(吳延寵)을 시조로 한다. 오몽을은 중시조 오현필(吳賢弼)의 11대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오예충(吳禮忠)이며 예부상서를 지냈고, 증조할아버지는 오윤정(吳允貞)으로 문하찬성사...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영구의 신도비. 완주 송영구 신도비는 좌대[기물을 받쳐서 얹어 놓는 대]와 이수[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가 잘 갖추어져 있고 조각 수법도 정교하고 뛰어나며, 특히 당대의 명필인 송준길의 서체로서 수작(秀作)으로 평가된다. 송영구[1556~1620]의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인수(仁叟), 호는...
-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은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양성의 묘비. 김양성의 자는 백승이요, 1754년(영조 30)에 출생했으며, 관직은 증 가선대부 공조참판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위봉진별장, 남관진별장을 거쳐 승지 가선대부 중추부사 행경희궁위장을 역임하다가 1832년(순조 32) 사망했다. 아들은 김항율, 김광율이 있고 김항율은 가선대부 용양위부호군으로 남고진별...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가구(可久), 호는 연촌(烟村)·존양(存養)의다. 고조할아버지는 최아(崔阿), 증조할아버지는 최용봉(崔龍鳳), 할아버지는 최을인(崔乙仁)이고, 아버지는 참의 최담(崔霮)이다. 어머니는 박인부(朴仁夫)의 딸이고, 외할아버지는 경덕재(經德齋) 박종수(朴從壽)이다. 첫째...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최득지(崔得之)[1379~1455]의 고조할아버지는 최아(崔阿), 증조할아버지는 최용봉(崔龍鳳), 할아버지는 최을인(崔乙仁)이고, 아버지는 참의 최담(崔霮)이다. 어머니는 박인부(朴仁夫)의 딸이고, 외할아버지는 경덕재(經德齋) 박종수(朴從壽)이다. 첫째 형은 최광지, 둘째 형은 최직지로 둘 다 문과에 급제해서 집현전직제학을 지냈다...
-
조선 중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문인화가. 최명룡(崔命龍)[1567~1621]은 조선 중기의 한학자로 어려서부터 비범해서 12세에 아버지 상을 당했는데 집례를 어른처럼 의젓하게 하므로 모두 탄복했다고 한다. 이정기의 문하에 있을 때 이정기가 말하기를 “최씨의 자제가 나를 가르치러 왔다”고 하며 탄복했다고 한다. 그 후 신중경의 문하에서 수업한 뒤 변산의 절...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무인. 최분손(崔芬孫)[1542~1626]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할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오위장(五衛將)[종2품관] 최건신(崔建臣)이며, 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종4품] 최영서(崔令瑞)이다. 최분손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정3품관],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등의 벼슬을 역임했다....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문인. 최상성(崔尙聖)[1584~?]의 자는 이화(而化)이고,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완주백(完州伯) 문열공(文烈公) 최순작(崔純爵)의 후손으로 진사(進士)를 지낸 최봉(崔奉)의 아들이다. 부인은 통천김씨(通川金氏)로 생원(生員) 김황(金況)의 딸이고, 할아버지는 참봉 최익한(崔翼漢)이고 외할아버지는 진주소씨(晋州蘇氏) 소순신(蘇舜...
-
고려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신. 최아(崔阿)는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이다. 전주최씨는 크게 4계파가 있다. 『전주최씨 상고사』에 의하면 최아의 상계에 대한 논란이 많으나, 여러 고증 자료에 의해 최입평의 아들로 확인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이론은 있다. 최아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형지(衡之)이다.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은 최용생으로 문과...
-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최여관(崔汝寬)은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손자로 전주최씨 문충공 자손 현감공파(縣監公派)의 파시조이다. 최여관의 증조할아버지는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최지(崔贄), 할아버지는 대제학(大提學) 만육(晩六) 최양(崔瀁)이며, 아버지는 이조정랑(吏曹正郞) 최진명(崔進明)이고, 형은 최여정(崔汝貞)이다. 최여관은 두 아들을...
-
고려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관인. 최용각(崔龍角)은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 최아의 둘째 아들로 대호군공파 중시조이다. 최용각의 아버지는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인 최아이다. 최아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최용각은 둘째이다. 최용각의 아들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최철(崔哲)이고 부인 정경부인 허씨(許氏)는 중호군(中護軍) 허선(許瑄)의 딸이자 지...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최일관(崔日觀)[1625~1670]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태지(泰之)이다. 완산백(完山伯) 문열공(文烈公) 최순작(崔純爵)의 후손이다.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낸 최잠(崔岑)의 손자이고, 최상제(崔尙悌)의 계자(繼子)로 생부(生父)는 최상성(崔尙聖)이다. 부인은 연안이씨(延安李氏)로 아버지는 이돈중(李惇中)이고 할아버지는...
-
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명나라 출신 무장. 추수경(秋水鏡)[1530~1600]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황제의 명을 받고 총병아장(摠兵亞將)으로 1592년(선조 25) 12월에 조선에 파견되어 1593년 평양성전투를 비롯해 주요 전장터에서 활약했다. 1597년 남원성전투에 참여하였고, 전주를 사수하다가 중상을 입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조선에 남아 전주에 거...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화암사 중창에 관한 내용이 새겨진 비. 화암사 중창비는 1441년(세종 23)에 쓰였으나 비의 건립은 비문을 써놓은 지 131년이 지난 1572년(선조 5)에 세워졌다. 비문의 내용을 보면, 조선 전기의 관료인 성달생(成達生)이 1417년(태종 17)에 전라감사로 부임해 전주에 내려왔는데 세종 7년인 1425년 자신의 원찰을 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