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
조선 후기 울릉도에서 일어난 불법 어복 채취에 연루되어 파직당한 무신. 1787년(정조 11) 원춘도관찰사 김재찬(金載瓚)이 장계(狀啓)하기를, “울산(蔚山)에 사는 해척(海尺) 등 14명이 몰래 울릉도에 들어가 어복(魚鰒)·향죽(香竹)을 채취하였는데, 삼척(三陟)의 포구에서 잡혔다. 그 섬은 방금(防禁)이 지극히 엄한데도 울산 백성이 번번이 병영(兵營)의 채복공문(採鰒公文)을 가...
-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속하는 독도는 대한민국 최동단에 있는 섬이다. 삼봉도(三峰島)·우산도(于山島)·가지도(可支島)·요도(蓼島)등으로 불리다가 1881년(고종 18)부터 독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독도가 주목받는 것은 한국 동해의 가장 동쪽에 있는 섬이라는 지리적 요인이 작용한 점도 있지만, 특히 한·일 양국간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도가...
-
울릉도 어민들이 조업시 작업 구역, 어종, 작업 기간에 따라 구분하여 부르는 작업 명칭. 작업 구역에 따라서 독도발이, 작업 기간에 의해서는 당일발이, 하루발이, 잡는 어종에 따라서는 오징어발이, 명태발이 등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독도발이’는 독도 근해 어업을 지칭하는 것으로, 잡는 어종은 주로 오징어이다. 여름철에는 오징어가 독도 부근에서 가장 많이 잡히며, 가을에는 5~6시간...
-
조선 전기 울릉도에 사람이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해금정책의 기초를 마련한 문신. 1400년(정종 2) 좌간의(左諫議)를 거쳐 1409년(태종 9) 우간의(右諫議)를 지냈다. 1411~1413년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이듬해 인녕부윤(仁寧府尹) 재직 당시에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호조판서로 재직하고 있던 1416년(태종 16) 박습은 태종에게 자신이 강원도관찰사로...
-
조선 후기 울릉도의 불법 어복 채취에 연루되어 파직당한 무신. 1787년(정조 11) 원춘도관찰사 김재찬(金載瓚)이 “울산(蔚山)에 사는 해척(海尺) 등 14명이 몰래 울릉도(鬱陵島)에 들어가 어복(魚鰒)·향죽(香竹)을 채취하였는데, 삼척(三陟)의 포구에서 잡혔다. 그 섬은 방금(防禁)이 지극히 엄한데도 울산 백성이 번번이 병영(兵營)의 채복공문(採鰒公文)을 가지고 해마다 방금을...
-
1900년(고종 37) 6월 우용정이 저술한 울릉도 조사 보고서. 우용정(禹用鼎)이 울릉도 시찰위원으로 임명된 후, 1900년 5월 25일 인천항을 향해 출발하여, 5월 27일에 일본 경부 1명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 부산항에 도착해서 5월 30일 감리서주사 김면수와 부산해관 세무사 라포트(E. Raporte, 羅保得) 및 봉판 김성원(金聲遠)과 일본 부영사보 아카쓰카 쇼스케[赤塚...
-
조선 후기 울릉도의 산삼 채취시기를 앞당길 것을 건의한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백상(伯常), 호는 방한(方閒). 예조판서 윤세기(尹世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식(尹湜)이고, 아버지는 윤득민(尹得民), 어머니는 조정빈(趙鼎彬)의 딸이다. 1756년 지평(持平) 때 당론(黨論)을 논한 것으로 방귀전리(放歸田里)되었다. 풀려난 뒤 제주목사로 나갔으며, 1768년 대사간...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울릉도 역사. 울릉도는 고려 말 왜구 때문에 무인도가 되었으나, 조선 초 이래 육지의 백성들이 계속 건너가 살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울진현(蔚珍縣)에 소속되었지만, 이곳이 왜구의 거점이 된다고 하여 조선 전기에는 쇄환정책(刷還政策), 조선 후기에는 수토정책(搜討政策)을 시행하였다. 그리하여 본토로부터 울릉도에 들어간...
-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의회는 1905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 오키군[隱岐郡] 오키노시마[隱岐の島]에 편입한 지 백 주년이 되는 2005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 제정을 강행하여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그후 “독도를 돌려 달라”는 내용의 텔레비전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지금으로부터 3백여 년 전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
“어른들은 농사짓고 어업하고 했지만, 나는 안 그랬어요. 나는 학교 졸업이후 열일곱 살 먹어가 3월25일 천부초등학교 나왔는기라. 열일곱 살 묵은 넘이 3월 졸업해가 4월에 도망갔지. 왜놈시대에 일제초등학교 나와가 그길로 아버지 지갑에 돈 5원을 훔치가 저마 도망을 갔부맀다. 이북으로 갔지. 삼척 저 내려가. 그때는 모르는 기라. 학교 댕길 적에 지도책이 있거든. 5학년에 지리를...
-
경상북도 울릉군에서 개척 시기에 사용된 풍력을 이용한 배. 풍선은 선체 위에 세운 돛에 바람을 받게 해서 진행하는 배이다. 경상북도 울릉 지역에서는 개척 시기에 이주민들이 타고 온 나선[전라도 어선]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헌에 따르면 풍선의 유래는 개척 시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82년 울릉도를 검찰한 이규원의 검찰일기를 보면 전라도와 강원도 사람들이 울릉도에...
-
신라시대 경상북도 울릉군을 관할한 지방행정구역. 삼국시대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의 하나인 주(州)는 505년(지증왕 6) 삼척 지역에 실직주(悉直州)를 둔 것이 처음이다. 주는 통일 이전과 이후의 성격이 크게 달라진다. 통일 이전의 주는 실직주·사벌주(沙伐州)[현 상주]·비자벌주(比子伐州)[현 창녕]·남천주(南川州)[현 이천] 등 지명을 붙인 경우와 상주(上州)·하주(下州)·신주(新...
-
삼척의 어느 사또가 관기를 데리고 뱃놀이를 나갔다가 급작스러운 돌풍을 만나 표류하던 중 이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이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식량이 있을 리 없는 이곳에서 모두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리저리 먹을 것을 구하려 헤매었으나 먹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허기에 지쳐 있었는데, 그 중 누가 황토를 발견하고 ‘이 흙이라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