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880 |
---|---|
한자 | 蔣處勇 |
이칭/별칭 | 이의(而義),심지(心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조선 전기 의성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이의(而義), 호는 심지(心智). 증조할아버지는 중문 지후(中門 祗侯)를 지낸 장을유(蔣乙濡)이고, 할아버지는 삼화 현령(三和 縣令)을 지낸 장흥계(蔣興繼)이고, 아버지는 사정(司正)을 지낸 장연(蔣延)이고, 어머니는 사직(司直)을 지낸 장비(張斐)의 딸 순천 장씨(順天 張氏)이다. 부인은 찰방(察訪)을 지낸 김자강(金自江)의 딸 숙부인(淑夫人)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활동 사항]
장처용(蔣處用)[1447~1521]은 1447년(세종 29) 경상도 의성현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백형인 장처지, 중형 장처인과 함께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 되었으며, 그 인연으로 김종직의 송죽계(松竹契)에 들었다. 1480년(성종 11)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도정(訓鍊院 都正)이 제수되었고, 1483년 의흥 현감(義興 縣監)이 제수되었고, 1486년 안동 판관(安東 判官)에 제수되었다. 1492년(성종 23)에는 경기도 병마절도사(京畿道 兵馬節度使)로 부임하였으며, 중추부사(中樞副使)에 올랐다. 연산군 재위 때 사화(士禍)가 발생하자 두 형과 함께 관직을 버리고 귀향한 후 은둔하였다. 1509년(중종 4) 다시 온성 부사에 제수되었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소재 오토산(五土山) 기룡동(騎龍洞)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