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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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희석(姜凞碩)[1881~1939]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던 중, 38세의 나이로 안평면 석탑리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의성군 안평면 석탑동 교회 교인이었던 강희석은 송내동 교회 권수백(權秀伯) 조사(助事)의 권유로 같은 교회 교인 김복식(金福植)·정금동(丁今同) 등과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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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부문(金富文)[1887~1952]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된 점곡면 만세 시위는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이 시위를 확산시켜 나갔다. 여기에 윤암동의 영양 남씨, 송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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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위창(金渭昌)[1900~1941]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출신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는 처음 송내동 교회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이 시위를 확산시켜 나갔다. 교회의 권수백 조사는 사촌동의 김태호 등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같은 동네 김위창을 비롯 김점득·김유경·김수석·김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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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호문(金好文)[1887~1942]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송내동 교회 교인이자 김해 김씨 일족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부친 김수배와 함께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었는데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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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희문(金喜文)[1889~1970]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었다.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이 시위를 확산시켰으며, 윤암동의 영양 남씨,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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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규우(南圭佑)[1889~1967]는 남오대(南梧大)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전개된 점곡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만세 시위는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었는데,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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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 이계(伊溪) 남몽뢰(南夢賚)의 후예이다. 남승순(南勝淳)[1857~1925]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서 출신으로, 1919년 3월 19일 점곡면 사촌동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점곡면 사촌동(沙村洞) 만세 시위의 소식을 듣고 장남 남규우(南圭佑)·황금종(黃金鍾)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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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박곡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박곡 교회는 의성군 안평면 금곡리에 사는 권수백의 전도를 받은 박곡리의 김학배, 이만기, 손용진, 최달모 등이 1904년 10월 16일 설립하였다. 일제의 탄압에 의해 1943년 교회가 폐쇄되었고, 다음 해인 1944년에는 친일파에 의해 교회당이 매각되어 해방 후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1959년 9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