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서 개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바위」는 전의이씨 시조인 이도(李棹)의 묘 근처에 있는 개 형상의 바위에 전해지는 암석유래담이다. 개바위는 묏자리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풍수적인 기능을 하는 지형지물임을 알 수 있게 하는 풍수담으로 전해진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행한 『전의향토지』에 실려...
-
세종 지역에서 마을을 지켜 온 거목에 대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거목설화’는 숭배와 신앙의 대상이 되는 나무와 관련한 거목전설이다. 마을의 입구나 유서 깊은 곳에는 둥구나무[크고 오래된 정자나무]가 있고, 거목신앙(巨木信仰)에 따라 목신(木神)으로 섬기기도 한다. 세종특별자치시 마을은 입구마다 마을의 상징이 되는 둥구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
-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산등성이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있는 낮은 통로. 고개는 대체로 산등성이를 넘는 곳을 말하며, 재[岾]·영(嶺)·마루·현(峴)·치(峙)·안부(鞍部)·티·항(項)이라고도 한다.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 산으로 막힌 이웃 지역을 오가는 데 고개를 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리하였다. 세종특별자치시는 차령산맥의 주맥과 지맥이 통과하는 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관정리(觀亭里)의 자연마을로는 군량골·느릿골·취촌·사관청·찬샘골마을 등이 있다. 군량골마을은 옛날에 태우향(大部鄕)이 있었을 때 시루성을 쌓고 군량을 두었다 하여 지금까지 불리게 된 이름이다. 느릿골마을은 느릅나무가 많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취촌마을은 술이 많아 오는 사람마다 술에 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여...
-
세종 지역에서 구술을 통하여 전승되어 온 이야기나 노래 등 지식의 총칭. 구비 전승은 인간의 음성 언어를 활용하여 전승되어 온 지식을 총칭한다. 구비 전승 대상은 생활에 필요한 지식부터 예술 형식을 띠는 노래, 서사 구조로 되어 있는 이야기까지 두루 포함된다. 구비 전승 과정은 기억과 관습에 의존하기 때문에 세대를 거치면서 해당 집단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남게...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금사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어물리,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금사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어물리,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 등 3개 시의 경계 선상에 있는 산이다. 국사봉(國士峰)[402.7m] 누리길 안내에 의하면 고려 후기에 어지러운 국운을 바로잡기 위하여 3정...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금사리(金沙里)는 위사기소와 아래사기소를 병합하여 이루어졌으며, 상사기소리(上沙器所里)와 하사기소리(下沙器所里)를 합쳐 금사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사기소·위사기소·아래사기소·주막뜸마을 등이 있다. 사기소마을은 금사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고려 전기부터 조선 때까지 사기소(沙器所)를 두고 사기를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마을...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와 전의면 달전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 금성산(金城山)[424.1m]은 전동면 송성리와 전의면 달전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거의 남북으로 뻗어 있는 차령산맥의 지맥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성산에 산성이 있어 금이성이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운주성 남성(南城)이라고 하고, 속칭 금성산성이라고도...
-
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김사준(金師俊)[1439~1520]의 본관은 안동,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사암(思庵)이다. 예조참의 김구년(金龜年)의 둘째 아들이다. 김사준의 아버지 김구년은 1455년 단종 폐위, 사육신 처형, 집현전 폐지 사건을 보고 난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전의면 양곡리로 돌아와 은거(隱居)[세상을 피해 숨어서 삶]하였다. 어머...
-
조선 전기 세종 지역 강릉김씨 송오공파의 파조이자 입향조. 김승로(金承露)[1359~1438]의 자는 천뢰(天賚), 호는 송오(松塢)이다. 전의면 관정리 강릉김씨 입향조이다. 고려가 멸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느리골에 정착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건국 이후 태종조에 여러 번 관직을 내려 조정으로 불렀으나 끝내...
-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김제정(金濟鼎)[1578~1627]은 조선시대 무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첨중(僉中)이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605년(선조 38)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당시 강홍립(姜弘立)[1560~1627]과 김경서(金景瑞)[1564~1624]가 싸우지 않고 적에게 투항하자 김제정이...
-
조선 전기 세종 지역으로 낙향하여 은거한 고려 후기 문신. 김휴(金休)[1350~?]의 자는 연부(鍊夫), 호는 학당(學堂)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김방경(金方慶)[1212~1300]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고려시대에 공조전서를 지낸 김성목(金成牧)이다. 김휴는 정몽주의 문하생이며, 공민왕 때 검교근시(檢校近侍)를 지냈다. 이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노곡리는 상노곡, 중노곡, 하노곡을 병합한 명칭이다. 운주산 중턱의 할미바위가 내려다 보고 있는 계곡이라 하여 노곡(老谷)이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거리실·가운데거리실·아랫거리실·위거리실마을 등이 있다. 전의면에는 6실이라고 하는 골짜기를 일컫는 말이 있다. 거리실은 신정리의 갈우물[가나물] 위쪽 골짜기로 갈실 또는 가리실이...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노곡리 주민들이 산신에게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노곡리 산신제는 주민들이 운주산 산신에게 마을안녕, 주민발복, 농사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제의이다. 주민들은 음력 10월 중 길일을 택하여 산신제를 지내었다. 노곡리 마을 주민들은 산신제의 제관 선정 방식이나 제물 제조 방식, 금기 수행 등 전통을 지키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다방리(多方里)는 다락동, 신리, 사방동을 병합하여 다락과 사방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자연적으로 나타난 지명으로 비암골은 비암사가 밑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고, 아냉이고개는 수랑골에서 덕학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수직봉은 마을 북쪽에 있으며 비암사를 싸고 있는 산의 뒤쪽에 수직으로 서 있어 지칭한 말이다. 뱀골고개는...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달전리 부거실 주민들이 금성산 산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달전리 부거실 사람들은 마을 안녕과 주민 발복을 기원하며 금성산 산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매년 음력 10월 1일 시행되는 달전리 부거실 산신제는 마을 주민들이 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공동체의례이다. 산신제의 연원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현재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달전리(達田里)는 용두미고룡골 또는 구능골이라고도 하며 능성구씨의 묘가 많다. 자연마을로는 암곡마을·사거리마을·용두미마을·상달전마을·하달전마을 등이 있다. 암곡마을은 바위가 많은 곳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사거리마을은 마을에 네 갈래 길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용두미마을은 용의 머리처럼 생긴 산 앞에 자리를 잡...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읍내리와 유천리를 연결하는 고개. 덕고개는 돛고개 또는 덕현이라 한다. 높고 험한 차령산맥이 지나가면서 중부 충청남도 천안시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을 연결하는, 우마차가 다닐 수 있는 낮은 고개이다. 남한에서 추풍령 다음 가는 분수령이다. 덕고개나 덕현(德峴)이라는 지명은 보통 크고 중요한 곳 또는 으뜸인 곳에 ‘덕(德)’자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동교리는 구교동·동촌·모산리 등을 병합하고 동촌과 구교동의 이름을 따서 동교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동촌·도램말·산직말 등이 있다. 동촌은 전의면 읍내리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도램말은 동촌의 동남쪽 산 모롱이를 돌아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산직말마을은 산직집이 있었다고 하여...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효부 이야기. 「며느리의 효성을 알아준 명판결」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지역에서 구비 전승된 이야기를 문자로 채록해서 책으로 엮은 사건설화이다. 나라에서 금한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시아버지에게 효도를 한 며느리의 이야기를 담은 효부설화이기도 하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행한 『전의향토지』와 2002...
-
세종 지역에서 무덤과 관련해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무덤설화’는 무덤이 성황당(城隍堂)으로 민속화하거나 명당 자리에 묘를 쓰면 나라와 자손이 번성한다고 믿는 풍수지리 사상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전설이다. 세종특별자치시의 무덤설화는 역사 인물과 관련되는 「말봉산의 말무덤」, 「권봉장군과 말무덤」 등이 있다. 「용호리의 아기무덤」처럼 무덤이 성황당으로 민...
-
조선 전기 세종 지역의 순천박씨 입향조. 박안생(朴安生)[?~1439]은 전의면 관정리에 세거하는 순천박씨의 입향조이다. 사육신의 한 명인 박팽년의 조부로, 호는 한석정(寒石亭)이다. 박안생은 순천박씨 1대조 박숙정(朴淑貞)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고려에서 공조전서를 지낸 박원상(朴元象)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로 남양군 언유(彦猷)의 딸이다. 전의 지...
-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이자 효자. 박이명(朴履命)[1823~1890]은 본관이 고령(高靈)이고, 자는 성지(性之)이다. 1857년(철종 8) 무과에 급제한 뒤 남포현감을 지냈다. 박이명은 영성군 박문수(朴文秀)[1691~1756]의 증손이자 박승규의 아들이며, 처는 전의이씨(全義李氏) 이대장의 딸이다. 박이명은 어려서부터 먹을 것이 있으면...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에서 벼락 맞은 형상의 바위 유래에 관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벼락바위」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에 벼락을 맞은 형상의 바위에 관한 암석 유래담이다. 벼락바위에는 계모가 착한 딸을 죽이고 천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기실록』에 있던 내용을 1988년 연기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연기군지』에 수록하였다. 이...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정리에서 북문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북문고개의 피」는 승려가 북문고개 근처로 시주하러 왔다가 주민들이 시주하지 않자 뜬소문을 내었고, 이로 인하여 마을이 망하였다는 지명설화이다. 현재 북문고개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집터 흔적이 발견되는 이유에 대한 유래담이기도 하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사관정(四觀亭)은 조선시대 숙종 때 대사헌을 지낸 타우(打寓) 이상(李翔)[1620~1690]이 건립한 정자로, 근방에 있던 뇌암서원(雷岩書院) 원생들의 휴식처였다고 전해진다. 1872년에 작성된 「전의현지도」에는 뇌암서당(雷岩書堂) 남쪽에 사관정이 있는데 이상이 거처하면서 동쪽으로는 운주산(雲注山), 남쪽...
-
최천로를 시조로 하고 최종적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종적(崔宗迪)을 입향조로 하는 삭녕최씨 사직공파(司直公派) 후손이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 입향한 이래 지금까지 살고 있다. 시조 최천로는 고려 때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다. 후손 최유가(崔瑜價)는 벼슬이 추밀원 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
세종특별자치시에 분포하는 주변 평지보다 사면을 이루며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세종 지역은 북부지방을 지나는 차령산맥의 주맥이나 지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차령산맥은 강원도 오대산 부근에서 태백산맥으로부터 갈라져서 남남서 방향으로 달리며 충청북도와 경기도의 도계를 이루다가 세종특별자치시의 북부 지역인 소정면, 전의면, 전동면에 이르러 산맥의 폭...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서정리(西亭里)는 천서리·산음리·관정리를 병합하고 천서와 관정의 이름을 따서 서정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감실·관정골·내서·평전·산양마을 등이 있다. 감실마을은 감나무가 무성한 지역이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관정골마을은 서정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마을에 늙은 느티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어 강정골 또는 과정골이라 하였다고...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읍내리에서 선돌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석곡의 선돌」은 청주에 살던 장사가 좋아하던 여자를 잃은 슬픔에 울며 석장(錫杖)[지팡이]을 꽂은 전설을 담은 암석설화이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행한 『전의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청주에 살던 한 장사가 전의면으로 공부를 하러 다녔다고 한다. 하루는 나무를 해서...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 수랑골에 느티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수랑골의 느티나무」는 수랑골의 부자인 이장자의 집에 머슴으로 들어온 양반 자손인 경만이와 외동딸인 인향이라는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거목 전설이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전의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전의면 다방리 수랑골에는 한 장자[큰...
-
이사고를 시조로 하고 이희와 이용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이사고(李師古)를 시조로 하고 이양소(李陽昭)를 파조로 하는 순천이씨는 1600년대 전반 세종 지역인 전의면 관정리에 입향한 이래 전의면 신흥리와 원성리에 일가를 이루며 살아오고 있다. 순천이씨 시조는 이사고이다. 고려 때 문하시중으로 승평백(昇平伯)에 봉하여져 순천을 관향(...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신방리(辛芳里)는 신암리·마산리·양방이동·음방이동 등을 병합하여 ‘신암’과 ‘방이’의 이름을 따서 ‘신방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돈지마을·방잇골마을·양달말마을·음달말마을 등이 있다. 돈지마을은 돈대 위에 있어 돈대 또는 돈디라고 부르던 것이 변하여 돈지가 되었다. 방잇골마을은 마을 지형이 방처럼 아늑하다 하여 붙은 이름...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신정리(新井里)는 갈정리·한정리·신대리를 병합하고 신대와 갈정의 이름을 따서 신정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나물마을·양달말마을·한우물마을 등이 있다. 가나물마을은 신정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앞에 큰 우물이 있어 옛날 가을정처가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양달말마을은 볕이 잘 드는 양지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정리 가나물주민들이 운주산 산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정리 가나물 산신제는 주민들이 예부터 운주산 산신에게 마을 평안, 농사 풍년, 짐승피해 예방을 기원하는 제의이다. 산신제는 3인의 제관을 선정하여 매년 10월 2일 엄숙하게 지낸다. 마을의 길운이 산신제에 달려 있다고 할 정도로 주민들의 산신제에 대한 관심이...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흥리 생송 마을 진입로에 있는, 제사를 모시던 사람 형태의 자연석.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흥리 생송 마을 길가에 세워져 있는, ‘부처바위’라 불리는 사람 형상의 자연석 바윗돌이다. 예전에는 생송 마을에서 매년 음력 10월과 정월 14일에 제사를 모시는 대상이었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흥리 생송 마을 진입로에 있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신흥리는 사사리[사시리]와 생송리를 병합하여 송사리라 칭하였다가 ‘송사’라는 이름이 좋지 않다 하여 새로 일어나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신흥리로 개칭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물방앗골·사사마을·이성산마을 등이 있다. 물방앗골마을은 전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스리라고도 하는 사사마을은 신흥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읍내리에서 바가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쌀나오는 바가지」 이야기는 유씨가 구해 준 개구리가 쌀이 나오는 바가지를 선물하여 보은하였다는 동물 보은담, 나온 쌀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었다는 미덕담, 바가지를 물려받은 자손들이 서로 싸우다 훼손하였다는 과욕담의 세 가지 교훈이 있는 교훈설화이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
-
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을 중시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고 김방경(金方慶)[1212~1300]을 중시조로 하는 안동김씨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 소정면 운당리, 연동면 내판리에 정착하여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현재 전서공파(典書公派), 안렴사공파(按廉使公派), 익원군파(翼元公派) 후손들이 세종특별자치시 전 지역에...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양곡리(陽谷里)는 압곡리·상세곡리·하세곡리·양지리를 병합하여 ‘양지’와 ‘압곡’의 이름을 따서 ‘양곡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느실마을·봉두미마을·아래가느실마을·주막뜸마을 등이 있다. 가느실마을은 가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세곡이라고도 불린다. 봉두미마을은 봉의 머리와 같이 생긴 산인 봉두산 앞에...
-
이수광을 시조로 하고 이희년을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이수광(李秀匡)을 시조로 하고 이인부(李仁富)를 파조로 하는 양성이씨는 1400년대 후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 정착한 이래 전의면 서정리와 읍내리 등에 옮겨 살면서 양성이씨 이시중파를 형성하였다. 양성이씨 시조 이수광은 송나라 사람으로 고려에 귀화하여 문종 때 삼중대광보국...
-
조잠을 시조로 하고 조존외, 조계원, 조원희를 각각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시조 조잠(趙岑)은 고려 때 양주호장(楊州戶長)을 지내고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추증(追贈)[종2품 이상 벼슬아치의 죽은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 벼슬을 주던 일]되었다. 조잠의 증손대에 이르러 조계생(趙啓生)을 파조로 하는 정평공파(靖平公派), 조유중(趙惟...
-
1895년 충청남도 연기를 중심으로 편성되어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로 통합된 옛 행정 구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충청도를 폐지할 때연기와 전의의 행정 지위가 군으로 승격되었다.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따라 부제를 다시 개정하고 각 부와 군을 5등급으로 차등하여 연기군·전의군이 충청남도에 속하게 되었다. 2010년 12월 ‘세종특별자치...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영당리(靈堂里)는 영성리·당리·상만곡리·하만곡리를 병합하고 ‘영성’과 ‘당리’의 이름을 따서 ‘영당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당마루마을·말미마을·마상곡마을·하만곡마을 등이 있다. 당마루마을은 마을에 산제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말미마을은 말처럼 생긴 산이 마을 앞에 있다 하여 불리는 이름이며, 마상곡마을은 말미의...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에서 요술병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요술병」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영당리에 전해 오는 사건설화이다. 성실하고 남을 도와주던 부부가 요술병을 얻게 되어 부자가 된다는 발복(發福)[운이 틔어서 복이 닥치거나 운이 틔어서 닥친 복] 이야기이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전의향토지』에 「요술병」이라는 제...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과 전의면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운주산(雲住山)[459.7m]은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미곡리·청송리·봉대리와 전의면 동교리·노곡리에 있는 산으로,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전의면과 전동면 일대는 백제·신라 경계 지역으로, 다수의 산성이 세종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된 곳이다. 운주산성은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원성리(元省里)는 장항리·고서리·삼성당리·원당리를 병합하고 ‘원당’과 ‘삼성당’의 이름을 따서 원성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노루목마을·고성마을·대뿌리마을 등이 있다. 노루목마을은 마을 뒷산의 모양이 노루의 목과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고성(古城)마을은 노루목 옆에 있는 마을로 뒷산이 성(城)을 둘러싼 것과 같다 하여...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원성리 주민들이 비보 목적으로 조성한 마을숲. 느티나무숲 또는 대허리숲으로 불리는 전의면 원성리 마을숲은 마을 진입로 인근에 조성되어 있다. 조천과 덕현천의 합류 지점에 위치한 숲은 고목과 느티나무 10여 그루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들은 숲이 마을의 지기(地氣)를 가둘 목적으로 조성된 수구막이라고 한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원성리 느티나...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유천리(柳川里)는 오류동·다운천리·어천리 등을 병합하면서 오류동과 다운천리의 이름을 따서 유천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오릿골·안오릿골·느내·다우내마을 등이 있다. 오릿골마을은 오류동이라고도 하며 전의읍에서 5리가 된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안오릿골마을은 오릿골 안쪽에 있어 안오릿골이라 하였고 내오류동이라고도 불린다. 느...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에 속한 법정리. 장터·북동네·서동네·남동네·덕현을 병합하여 읍내리라 부른다. 자연마을로는 남부·동부·향교마을 등이 있다. 남부마을은 읍내리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동부마을은 동쪽에 자리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향교마을은 전의향교가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읍내리는 전의면의 중심마을로 1...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과 전의면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이성산(李城山)[230m]은 전동면 송성리와 신방리 사이에 있는 산으로, 고려산성-운주산성-작성-금이성 등으로 연결되는 차령산맥 산줄기에 있다. 전의이씨 시조이자 고려 태사를 지낸 이도(李棹)가 산성을 쌓고 살던 곳이라서 이성산이라 한다고 전한다. 이도는 전의이씨의 시조(始祖)로, 고려 개국공신이...
-
조선 전기 세종 지역 출신으로 세조 즉위를 도운 좌익공신 3등 문신. 이예장(李禮長)[1406~1456]의 본관(本貫)은 전의(全義), 자는 자문(子文)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구직(李丘直), 할아버지는 이정간(李貞幹), 아버지는 부윤 이사관(李士寬)이다. 이예장은 1432년(세종 14) 식년문과 생원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1438년(세종 20)에는 사간원...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방리에서 명당 묏자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장하고 망한 변씨네」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방리 살던 부자 변씨가 흉년이 든 해에 하인들을 죽였는데 살아남은 하인의 자손이 복수를 위하여 묏자리를 옮기길 권하자 묏자리를 옮겼다가 변씨 집안이 망하였다는 명당전설이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전의향토지』에...
-
세종특별자치시의 옛 지명으로, 조선 태종 때 전의현과 연기현을 합쳐 신설한 현. 전기현(全岐縣)은 조선 시대에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인 전의현(全義縣)과 연기현(燕岐縣)을 병합한 현(縣)의 명칭이다. 1414년(태종 14) 전의현과 연기현을 병합하였으나 병합된 군현의 원성과 반발로 1416년(태종 16)에 전의현과 연기현으로 다시 분리되었다. 조...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정리에 있는 조선 전기 박안생의 묘소. 박안생은 사육신 중 한 명인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할아버지이자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 순천박씨 입향조이다. 박안생은 전의의 명족인 선안동김씨(先安東金氏) 한성좌윤 학당(學堂) 김휴(金休)의 둘째 딸에게 장가들었으며, 처가 근처로 이사하면서 전의 지역 순천박씨 입향조가...
-
1895년 충청남도 전의를 중심으로 편성된 옛 행정 구역.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전의면, 전동면의 옛 행정구역이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도제(道制)를 폐지하였다. 전국을 23부(府)로 시행하고 충청도를 폐지한 것이다. 신설된 공주부(公州府)가 27개 군을 관할하면서 연기와 전의의 행정 지위가 군으로 승격되었다. 원래 면에는 존위(尊...
-
세종특별자치시에 속한 법정면. 전의면(全義面)은 백제 때 구지현(九知縣)이라고 불렀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에 금지현(金池縣)이라 고쳐 부르다가 고려 때부터 전의(全義)라고 불렀다. 전의라 불리게 된 것은 백제시대 때 마을에 전씨(全氏)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방리 비암사에서 발견된 석불비상에 새겨진 전씨라는 명문(銘文)과 일대의 지명을 전의·전동(全...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읍내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공주지구 소속 성당. 조치원 본당 소속의 전의공소는 1957년 전의면 동교리에서 발족되었다. 당시 공소 신자들은 별도의 공소 건물을 갖지 못하고 신자들의 가정집을 임시 공소로 삼아 신앙생활을 하였다. 동교리 이수필의 집을 비롯하여 1958년 읍내리 최인혁의 집, 1969년 읍내리 황태희의 집, 19...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립 교육기관. 전의향교는 1416년에 현유(賢儒)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학덕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문묘나 사당, 서원 등에 모시는 일]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읍내리에 있다. 전의향교는 처음 현의 동쪽에 건립되었으나 장소가 협소하였다고 한다....
-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정대권(鄭大權)[1850~1902]의 본관은 진주이다. 충장공 정분(鄭苯)[?~1454]의 15세손이며, 아버지는 정원룡(鄭元龍)이다. 정대권의 아들 정헌세(鄭憲世)와 정헌채(鄭憲采)는 중추원의관을 지냈고, 정헌빈(鄭憲斌)은 전의 문묘 직원을 지냈다. 정대권은 9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무덤 가까이에 지어 놓고 상제...
-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효자. 정원룡(鄭元龍)[1812~?]의 본관은 진주이며, 충장공 정분(鄭苯)의 14세손이다. 부인은 윤제규(尹濟奎)의 딸 파평윤씨(坡平尹氏)[1811~?]이며, 아들은 정대권(鄭大權)[1850~1902]이다. 정원룡의 부친은 외출하면 항상 저녁 무렵에 돌아왔다. 사는 곳이 산골인 까닭에 아버지께서 귀가할 때가 되면 정원룡이 마중을...
-
고을나를 시조로 하고 고여우를 입향조로 하는 세종 지역의 세거 성씨. 고을나(高乙那)를 시조(始祖)로 하고 고여우(高汝雨)를 입향조로 하는 제주고씨 문충공파(文忠公派)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 정착한 이래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제주고씨는 탐라(耽羅) 개국 설화에 나오는 고을나를 시조로 한다. 시조의 46세손 고말로(高末老)는 고려에 입...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읍내리에서 괴물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조마구」는 어머니를 해친 조마구라는 괴물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아들 형제가 꾀를 내어 죽이고 보물을 차지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괴물 퇴치 전설이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전의향토지』에 「조마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전의면 읍내리에서 채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
-
조선 후기 세종 지역 출신의 형제 효자. 조수빈(趙秀彬)[1745~1824]과 조명빈(趙命彬)[1749~1832]은 조말생의 12세손으로, 아버지는 조태연(趙泰衍)이다. 조수빈과 조명빈은 형제로 둘 다 효성이 지극하였다. 조수빈이 7세 때 어머니가 병이 들자 치료에 필요한 약을 백방으로 구해서 치료하였고, 형제가 손가락을 잘라 피를 어머니께 드렸다....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에 중샘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중샘」은 전의면 관정리에 있는 우물에 처녀와 젊은 승려가 빠져 죽은 비극을 담은 우물유래담이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행한『전의향토지』에 실려 있다. 제보자는 전의면 관정리 김남희로 되어 있으나 다른 정보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옛날 전의면 관정리에는 큰 우물이 있었는데...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해학 이야기. 「쥐가 꼬리를 물고 물고」는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다방리에서 전해져 오는 사건설화이다. 지혜로운 젊은이가 꾀로 부잣집 사위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전의향토지』에 수록되어 있으며, 전의면 다방리에서 채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2002년 조치원문화원에...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서정리와 관정리 일대에 걸쳐 있는 산.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서정리와 관정리 사이의 산으로, 전의면의 진산(鎭山)[도읍지나 각 고을에서 해당 도읍 또는 고을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으로 정하여 제사하던 산]이다. 증산(甑山)[186.2m]은 산의 형상이 마치 시루를 엎어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정상에는 증산...
-
세종 지역에서 지명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서사 구조를 가진 이야기. 세종특별자치시에서는 고인돌이 발견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논농사 흔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흔적을 통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지역 곳곳에는 사람들이 살았고, 전쟁이 있을 때는 외진 곳을 찾아 숨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한 다양한 지명과 지...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와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대정리를 연결하는 고개.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관정리와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대정리를 이어 주는 691번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전의면 쪽에 있는 고개를 태우고개,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쪽에 있는 고개를 태호고개라 한다. 태우마을의 이름은 사육신의 하나인 박팽년의 부친 박중림(朴仲林), 백...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서 김사준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호랑이와 동거한 김사준」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양곡리에 있는 쌍효자문 정려비와 관련한 효자설화이다.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전의향토지』에 「호랑이와 동거한 김사준」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전의면 양곡리에 있는 정려문과 관련되어 있으며, 『대동신...
-
조선 후기 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적이 있는 세종 지역 출신의 무신. 홍직(洪稙)[1571~1637]은 조선시대 무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치경(稚卿)이다. 무예에 출중하여 1602년(선조 35)에 별시 갑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청백리(淸白吏)로 이름난 인물이다. 홍직은 이괄의 난을 진압하였다. 정묘호란 때는 적을 사로잡는 공(功)을 세웠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