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4년부터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당한 시기까지 경기도 남양주 지역의 역사. 서세동점의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치던 대원군 집권기는 1873년 고종의 친정으로 인해 막을 내렸다. 고종이 집권하고, 메이지 유신 이후 급격한 근대화 팽창 정책을 펴던 일본의 포함 외교가 맞물리면서 1876년 2월에 조선과 일본은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한다....
-
1907~1908년 경기도 남양주 일대에서 일본에 대한 국가적 채무를 상환하기 위해 전개된 사회 운동.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은 일본에 대한 국가적 채무를 한국민의 모금으로 상환할 것을 주장하며 전개된 운동이다.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의 국권이 점차 상실되어 가는 상황에서 한국민들은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적 종속에서 벗어나고자 국권 수호 운동의 일환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다. 19...
-
1909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에 설립되었던 사립 학교. 1894년부터 1910년까지 많은 사립 학교들이 전국에 설립되었다. 경기도 지역만 하더라도 1899년부터 1910년까지 211개의 사립 학교가 설립되었다.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가 속해 있었던 경기도 양주군도 예외가 아니었다. 경기도 양주군에는 1906년부터 1910년까지 20개의 사립 학교가 설립되었는데 1909년...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봉선사에 있는 20세기 초반 제작된 독성도. 「남양주 봉선사 독성도(南楊州奉先寺獨聖圖)」는 20세기 초반 만들어진 독성도(獨聖圖)이다. 독성도는 대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노인이 폭포수가 흐르는 깊은 산 고목 아래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남양주 봉선사 독성도」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봉선사 북두각에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와 함께...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봉선사에 있는 개항기 탱화. 「남양주 봉선사 칠성도(南楊州 奉先寺 七星圖)」는 1903년 조선 후기의 화승(畵僧)인 예예상규(禮藝尙奎)가 편수(邊手)를 맡고, 범선원하(梵船元荷)가 출초(出草)를 맡아 제작된 탱화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던 원흥사에서 보관하다가 1926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봉선사 북두각에 봉안되었다. 원흥사는 현...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봉영사에 있는 개항기 탱화. 「남양주 봉영사 산신도(南楊州 奉永寺 山神圖)」는 1903년 제작되었는데, 조선 후기의 화승(畵僧) 예예상규(禮藝尙奎)가 출초(出草)에 참여하였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원흥사에서 보관하다가 봉영사로 옮겨졌다. 「봉영사 산신탱」이라고도 한다. 2011년 5월 2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불암사에 있는 개항기 탱화. 「남양주 불암사 괘불도(南楊 州佛巖寺 掛佛圖)」는 1895년(고종 32) 수화승(首畵僧) 영환(永煥)과 화승(畵僧)인 응석(應釋), 창엽(瑲曄) 등이 참여하여 제작되었다. 당시 왕인 고종과 왕세자 등 주요 왕실 구성원의 왕생을 빌고 나라와 백성이 평안하며, 불법이 널리 퍼지기를 기원하는 내용 등이 적혀 있다. 2017년 6월 14...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불암사에 있는 개항기 탱화. 「남양주 불암사 석가삼존십육나한도(南陽州佛巖寺釋迦三尊十六羅漢圖)」는 1897년(광무 1)에 제작되었는데, 응석(應釋)·환감(幻鑑)이 출초(出草)하고, 긍법(肯法)·윤익(潤益)·재오(在悟)·운조(雲祚)·봉안(奉安)이 편수(邊首)에 참여하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불암사에 소장되어 있다. 2018년 9월 10일 경기도 유형...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내원암에 있는 개항기 탱화. 「남양주내원암괘불도(南楊州內院庵掛佛圖)」는 1885년(고종 22)에 제작되었는데, 화승(畵僧) 정탁(定濯), 진철(震徹), 석운(石雲), 두열 등이 작업에 참여하였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내원암에 봉안되어 있다. 2004년 11월 29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11월 19일 「문화...
-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개항기 의병장. 1907년 7월 일제는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순종 황제에게 군대 해산 조칙을 내리도록 압박하여 대한제국군을 해산시켰다. 이러한 해산 조치에 반발한 서울 시위대(侍衛隊)가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이고, 지방의 여러 진위대(鎭衛隊)도 집단으로 일본군에 항쟁하였다. 시위대와 진위대의 해산 완료 이후에도 일부 병력이 의병으...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모란공원에 묘가 있는 개항기 관료. 박영효(朴泳孝)[1861~1939]의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오창공(梧窓公)파 11세손이다. 초명은 박무량(朴無量), 자는 자순(子純), 호는 춘고(春皐), 필명은 현현거사(玄玄居士)이다. 일본 망명 때 야마자키 에이하루[山崎永春]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흥덕현감, 공조참의, 도총부도총관, 공조판서를 지낸...
-
개항기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여 결성되었던 13도 창의군과 경기도 남양주에서의 의병 활동. 13도 창의군은 일본의 침탈에 저항하는 전국적인 저항 세력이었다. 서울로 진격하여 을사조약과 정미조약의 파기를 시도하였으나 좌절되고 말았다. 오늘날의 경기도 남양주 지역은 13도 창의군의 주 무대 가운데 한 곳이었고, 서울로의 진공 작전이 실패한 뒤에도 여러 부대들이 활동하면서 저항하였던 곳이...
-
개항기 지금의 남양주 지역을 관할하였던 양주군에서 편찬한 읍지. 『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는 1895년 5월 이후에 편찬하여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주군의 읍지이다.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이 포함된 양주군의 대략적인 역사, 지리, 경제 상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
1871년 경기감영에서 지금의 남양주 지역을 포함하는 양주목의 지형과 토산물 등을 기록한 지리지.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는 1871년 현재의 경기도 남양주 지역을 포함한 양주의 지역 사정을 상세히 기록한 지리지이다. 사회·경제 부문뿐 아니라 자연·교통·군사·인물·제영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
1899년 10월 지금의 남양주 지역을 관할하였던 경기도 양주군에서 편찬한 읍지. 『양주읍지(楊州邑誌)』는 1899년 10월에 편찬된 지금의 남양주 지역을 포함하는 경기도 양주군의 읍지이다. 19세기 후반 경기도 양주군의 역사·지리·경제 상황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
개항기 재정 개혁의 일환으로 경기도 남양주 지역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시행된 대규모의 국유지 조사. 역둔토조사(驛屯土調査)는 각 지역에 분산된 국유지를 정확히 파악하여 중앙집권적 재정 제도의 토대를 마련하고 세입을 확충하기 위하여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되었다. 먼저 1895년 을미사판(乙未査辦) 당시 경기도 남양주 지역이 속한 옛 경기도 양주군에서는 연말부터 실지 조사가 시작되어, 1...
-
개항기 경기도 남양주를 비롯한 경기 북부 일대에서 활동하였던 의병 부대. 이은찬 연합부대는 1908년 6월경 의병장 이은찬(李殷瓚)이 조직한 의병 부대로 창의원수부(倡義元帥部)라고도 불렸다....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에 있는 이인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개항기 효자정문. 이인교 효자정문(李仁敎 孝子旌門)은 진사 이인교(李仁敎)[1835~189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효자정문이다. 이인교는 천성이 어질고 효심이 지극하여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아버지의 병이 위독하자 대변을 맛보며 4년 동안 밥을 손수 떠 먹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임종하려 하자 하늘에 기...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에 묘가 있는 개항기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재완(李載完)[1855~1922]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순칠(舜七), 호는 석호(石湖)이다. 아버지는 이신응(李愼應)이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형인 흥완군(興完君) 이정응(李晸應)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개항기 의병장. 이재윤(李載允)[1849~1911]의 본관은 전주이고 자(字)는 성집(聖執), 호(號)는 미석(渼石)이다. 1849년 경기도 양주목 미음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수석동]에서 태어났다. 우승지(右承旨)를 역임한 관료 출신으로, 스승인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가르침을 따라 위정척사론을 바탕으로 반일 의식을 키워 나갔다....
-
개항기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설립되었던 사립 학교. 일성학교(一成學校)는 1906년 경기도 양주군 하도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에 설립되었던 사립 학교 동흥학교(東興學校)의 일부 운영진이 다시 설립한 사립 학교이다. 예전 청도군수였다가 사직하고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정인호(鄭寅琥)가 1906년 동흥학교를 설립하고 정인호가 교장, 이철용이 평의장(評議長)을 맡았다....
-
개항기 남양주 일대에서 활동하였던 의병. 1905년 11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일본에 의해 강제 체결되었다. 고종은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 평화 회의에 3명의 특사를 파견하였는데, 일제는 이를 빌미 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순종을 압박해 대한제국군의 해산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주권을 사실상 박탈하였다. 이에 서울...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에 묘소가 있는 개항기 문신. 조정구(趙鼎九)[1860~1926]의 본관은 풍양(豐壤)이며, 초명은 조재구(趙載九)·조인구(趙寅九)·조석구(趙晳九)이다. 자는 미경(米卿)이고, 호는 월파거사(月坡居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과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한 조병현(趙秉鉉)이고, 할아버지는 이조판서를 지낸 조봉하(趙鳳夏)이다. 아버지...
-
1909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설립되었던 사립 학교. 1900년대 초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을 통하여 민중을 각성시키고 인재를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사립 학교의 설립이 급증하였다. 한국인이 설립하는 사립 학교가 크게 늘어나자 이를 규제하기 위하여 일제는 1908년 8월 26일 「사립학교령(私立學校令)」을 공포하였으나 사립 학교의 설립은 계속되었다....
-
1909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설립되었던 사립 학교. 1900년대 초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을 통하여 민중을 각성시키고 인재를 양성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사립 학교의 설립이 급증하였다. 한국인이 설립하는 사립 학교가 크게 늘어나자 이를 규제하기 위하여 일제는 1908년 8월 26일 「사립학교령(私立學校令)」을 공포하였으나 사립 학교의 설립은 계속되었다....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에 묘소가 있는 개항기 문신. 홍순형(洪淳馨)[1858~1934]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여문(汝聞)이다. 할아버지는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이며, 아버지는 예조판서(禮曹判書) 홍종석(洪鍾奭)이고, 어머니는 광산 김씨(光山 金氏)이다. 아내는 대구 서씨(大丘 徐氏)·청주 한씨(淸州 韓氏)이다....
-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재설(洪在卨)[1873~1939]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인 양주군 건천면 독정 출신이며, 홍재설의 아들 홍종욱(洪鍾煜), 홍종엽(洪鍾熀)은 1919년 3월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
경기도 남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홍재칠(洪在七)은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해당하는 양주군 건천면 독정 출신으로 독립운동 단체인 동우회에서 활동하였고, 1907년 7월 고종 양위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에 있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묘. 흥원(흥선대원왕)[興園(興宣大院王)]은 흥선대원왕 이하응(李昰應)[1820~1898]의 묘소이다. 이하응은 자(字)가 시백(時伯), 호(號)는 석파(石坡)이며, 조선 제26대 고종(高宗)의 사친(私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