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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582
한자 趙顯期
이칭/별칭 양경(楊卿)│일봉(一峰)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경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관
성별
본관 임천(林川)
대표관직 인천 부사
출생 시기/일시 1634년연표보기 - 조현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57년 - 조현기 식년시 식년생원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67년연표보기 - 조현기 빙고 별검 제수받았으나 사퇴
활동 시기/일시 1674년 - 조현기 갑인 봉사를 올림
활동 시기/일시 1678년연표보기 - 조현기 상의원 주부 제수 받았으나 사퇴
활동 시기/일시 1680년연표보기 - 조현기 온양 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82년연표보기 - 조현기 서산 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85년 5월 25일연표보기 - 조현기 인천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85년 10월 23일 - 조현기 인천 부사 사임
몰년 시기/일시 1685년연표보기 - 조현기 사망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묘소|단소 조현기 묘소 -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왕림리 도리개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이 임천(林川)이며, 자 양경(楊卿), 호 일봉(一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를 역임한 조원(趙瑗)이며, 할아버지는 조희진(趙希進)이다. 마전 군수(麻田郡守)를 지낸 조시형(趙時馨)과 심정양(沈廷揚)의 딸인 청송 심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제로는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한 형 조원기(趙遠期)와 동생으로는 도학(道學)에 명성이 높은 조성기(趙聖期),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한 조창기(趙昌期), 호조 참판을 역임한 조형기(趙亨期) 등이 있다. 병조 판서 김좌명(金佐明)의 딸인 청송 김씨와 혼인하였으며, 처남은 김석주(金錫冑)이다.

슬하에 6남 7녀의 자식을 두었는데, 조정위(趙正緯), 조정신(趙正紳), 조정서(趙正緖), 조정강(趙正綱), 조정경(趙正經), 조정순(趙正純) 등이다.

[활동 사항]

조현기(趙顯期)[1634~1685]는 1657년 식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얼음을 넣어 두는 일과 그에 관련된 일을 맡아보는 관아인 빙고 별검(氷庫別檢)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학업에만 정진하였다. 1674년 청의 오삼계(吴三桂)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소식을 듣고, 이 기회를 틈타 병자호란의 복수를 할 것을 상소하는 이른바 「갑인 봉사(甲寅封事)」를 현종에게 올린다. 앞서 1654년에도 효종에게 국정에 대한 조언을 담은 「갑오 봉사(甲午封事)」, 「갑오 만언소(甲午萬言疏)」를 올리려 하였으나, 그 표현이 너무 강직하다는 이유로 형 조원기가 만류하여 그만둔 바 있다.

하지만 조현기는 이 두 차례의 상소문을 통해 조정 신료들에게 인정을 받고 인재로 천거되면서, 1678년 상의원 주부(尙衣院主簿)를 시작으로 같은 해 천안 현감(天安縣監)에 제수되고, 1679년에는 진보 현감(眞寶 縣監)에, 1680년에는 한성부 판관(漢城府判官)에 제수된다. 하지만 그는 관직에 모두 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학문에만 전념하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 형제들이 잇달아 죽음으로써 노모를 부양할 수 없게 되었고, 조현기는 1680년 마침내 온양 군수(溫陽郡守)로 부임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서인 복선군(福善君) 이남(李楠)의 역모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사직하려 하였으나, 숙종의 만류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1682년 서산 군수(瑞山郡守)에 부임하였으며, 1685년에는 장악원 검정(掌樂院僉正)에 제수되었다.

조원기는 1685년 5월 25일 인천 부사에 제수되어 6월 11일 부임하였다. 하지만 임지(任地)에서 병을 얻게 되면서, 같은 해 10월 23일 사직하였다.

[학문과 저술]

조현기의 저서로는 총 9권으로 편차된 『일봉집(一峰集)』이 전해져 오고 있다. 본래 동애(東涯) 김진표(金震標)에게서 받은 서문과 자신의 서문을 더해 시고(詩稿)의 형태로 만들어 놓았던 것을 1717년경 아들 조정강조현기의 유문을 보태고, 김창흡(金昌翕)의 서문을 받아 현존하는 형태로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묘소]

조현기의 묘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왕림리 도리개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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