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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우순 신도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397
한자 洪祐順神道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산 680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성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비석
양식 신도비
관련인물 홍우순
재질 석비
크기 전체 290㎝|비신 196㎝, 105㎝, 33㎝
이전 시기/일시 1991년 이후 - 홍우순 신도비가 제2 경인 고속 도로 공사 과정에서 유실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791년연표보기 - 홍우순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862년연표보기 - 홍우순 사망
건립 시기/일시 1879년 5월연표보기 - 홍우순 신도비 건립
현 소재지 홍우순 신도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산 6802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었던 조선 시대에 판의금부사를 지냈던 홍우순의 신도비.

[개설]

홍우순(洪祐順)[1791~186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호는 성산(城山)이다. 성산이라는 호는 문학산의 별칭인 성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1816년(순조 16) 진사과에 급제한 이후 관직에 나아가 강원도 관찰사, 의정부 좌참찬(議政府左參贊)을 거쳐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에 올랐다.

[건립 경위]

홍우순 신도비는 1879년 아들인 홍승조(洪承祖)가 비문을 짓고 손자인 홍원식(洪遠植)이 썼으며, 심동신(沈東臣)이 두전(頭篆)[비석 몸체의 머리 부분에 돌려 가며 쓴 전자(篆字)]하여 세운 것이다.

[위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백학 초등학교에서 연경산 북쪽 산기슭으로 올라가다 보면 제운정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정자가 자리한 곳에서 조금 위로 홍우순의 신도비가 있었고, 여기서 서남쪽 능선을 타고 90m 오른 지점에 홍우순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비문에 따르면 무덤이 자리한 곳은 인천부 부내면 제운리로 흔히 ‘기우니’로 부르던 연경산 부평 이씨 집성촌의 동남쪽 구릉 지대였다.

[형태]

신도비는 기단 위에 오석의 비신과 화강석의 옥개석을 얹었다.

[현황]

홍우순의 신도비는 1991년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1992년 6월경 서해안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경기도 일산동구 성석동 산56-1번지로 옮겨졌다. 1949년 인천시립 박물관에서 비문을 필사해 놓은 것이 전하고 있고, 탁본 1점도 인천광역시립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1.08 신도비 현위치에 대한 서술 추가 이후 제2 경인 고속 도로 건설과 연경산 공원화 사업 당시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후손에 의해 이전된 것인지 공사 도중 그대로 파괴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1992년 6월경 서해안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경기도 일산동구 성석동 산56-1번지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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