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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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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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아버지가 병들자 손가락을 끊어 병을 고치고자 하였다. 여덟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70살에 추상(追喪)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그 행적이 기록되었다. 효종 때에 정려(旌閭)를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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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양(英陽). 자(字)는 중준(仲遵), 호는 이계(伊溪). 아버지는 신촌(新村) 남해준(南海準)[1598~1667]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군자감직장(軍資監直長) 권지(權誌)의 딸이다. 처는 아주신씨(鵝州申氏)로 신지의(申之義)의 딸이다. 효종과 숙종 연간에 활동한 문신이다. 1620년(광해군 12)에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동 월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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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태승(泰升), 호는 하곡(霞谷).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윤휘(尹暉)이고, 아버지는 첨정 윤면지(尹勉之)이다. 어머니는 참판 경섬(慶暹)의 딸이다.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承文院)에 들어갔다. 1665년 전적·감찰·예조좌랑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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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휴(汝休), 호는 용암(龍巖). 승지 이유번(李有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이석명(李碩明)이다. 아버지는 현령 이민선(李敏善)이며, 어머니는 김봉(金崶)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18년(광해군 10)에 아버지를 따라 경상도 선산으로 낙향하였다. 인조반정 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0년(인조 8) 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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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한씨(韓氏)는 기자조선에 연원을 두고 있다. 위만에게 밀려 마한으로 온 준왕(準王)[기자(箕子)의 40대 후손]의 8세손인 원왕(元王)은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우량(友諒)이 신라의 상당(上黨)[청주의 옛 지명]으로 옮겨 한씨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사적에 의하면 한씨의 시조는 기자의 후예 우량의 32세손 한란(韓蘭)[?~?]이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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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 자는 진백(晉伯), 호는 태계(台溪). 대사간 하결(河潔)의 후손이다. 1624년(인조 2) 진사에 급제하였고, 163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제수되었으나 부모봉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았다. 1636년 병자호란이 터지자 의병장에 추대되어 상주지방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성태동의 집으로 되돌아왔다. 효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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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계도(啓圖), 호는 쌍부헌(雙負軒)이다.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잠시도 어버이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그 재능과 도량이 넓고 깊으며,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을 들었다. 사람들이 그를 참봉으로 특별히 천거하여 무과에 올라 선전관(宣傳官)으로 제수되어 명망(名望)을 얻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을 따라 북벌계획을 밀의하고 재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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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성종 때의 문신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공조참의를 지낸 하경호(河慶灝)이며, 어머니는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진주 운문에 살았다. 효종 때 훈련원주부를 지냈고 현량과(賢良科)를 통해 특별히 선전관이 되어 왕의 북벌 논의에 참여하였다. 효종이 승하하자 피를 토하며 곡을 하였다. 이후 나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두문불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