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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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경휘(河鏡輝) : 자는 공곽(公廓)이요, 호는 매헌(梅軒)이며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아들이다. 만력(萬曆) 기축년(선조 22년, 1589)에 사마시에 올랐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어버이를 섬김에 뜻을 어기지 않았다. 임진란 때 환성공(喚醒公)이 상주성(尙州城)으로 달려가는데 겨우 북문에 이르러 적병이 갑자기 닥쳤다. “여기가 나의 죽을 곳이다. 너는 빨리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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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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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천서원(臨川書院) : 관방마을 중앙에 있는 서원으로, 조선조 숙종 28년(1702)에 신암(新庵) 이준민(李俊民), 성재(誠齋) 강웅태(姜應台),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 창주(滄州) 하증(河憎),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었으나,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혁파로 훼철되었다가 1937년에 복원되었다. 임천서원에 배향된 이준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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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의병장.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성오(聖五)·경오(景五), 호는 신암(愼菴). 아버지는 노이선(盧以善)이며, 어머니는 팔계정씨이다. 1861년(철종 12) 거창에서 노이선의 차남으로 태어나 안의에서 성장하였다. 기호(畿湖) 유림의 거장 성재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송병선(宋秉璿)·최익현(崔益鉉)·송근수(宋近洙) 등을 사사하였다. 1895년(고종 32)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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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수(子修), 호는 신암(新菴). 참봉을 지낸 이공량(李公亮)의 아들이며, 영남의 대학자인 조식(曺植)은 그의 외숙이다. 1524년(중종 19)에 태어나 1549년(명종 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에 제수되었다. 1554년 사간원 정언이 되었고, 이후 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 등 청요직에 있으면서 당시의 권신 윤원형(尹元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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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에 있었던 서원. 조선 숙종 28년(1702) 신암(新菴) 이준민(李俊民), 성재(誠齋) 강응태(姜應台),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 창주(滄州) 하증(河憕),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 등 다섯 분의 학문과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의 의견을 모아 창건하였다. 그 가운데 하증은 어머니 진주강씨 부인이 왜놈에게 항절하다 죽음을 당하였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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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유학자 한몽삼의 사승관계(師承關係) 및 교우관계를 기록한 고문헌. 한몽삼(韓夢參)[1589~1662]은 자(字)는 자변(子變), 호는 조은(釣隱)으로 1589년 경상남도 진주시 정수(현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 정수)에서 태어났다. 20세 되던 1608년 황암(篁巖) 박제인(朴齊仁)의 문하에서 배우다가 24세에 문과 초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생원시(生員試)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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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지역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동되었던 건축물인 누각과 정자. 일반적으로‘누정’은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樓閣)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 자연 속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누정은 경관이 좋은 산이나 대(臺),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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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에 있는 조선 전기 재실. 진주 오방재는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하륜(河崙)[1347~1416]과 아버지 진양 부원군(晉陽府院君) 하윤린(河允潾), 할아버지 진강 부원군(晉康府院君) 하시원(河恃源)을 모신 재실(祭室)이다. 진양 하씨 대종회에서 관리하며, 2008년 2월 5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435호로 지정되었다. 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