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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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김기선(金基先)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효성스러워 어머니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여든 살이 된 어머니가 실명하여 거동이 불편해지자 수레를 만들어 매일처럼 태우고 다니며 운동을 시켜 드렸다. 또한 날마다 천신께 어머니의 건강을 빌어 어머니가 아흔까지 장수하도록 하였다. 어머니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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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按廉使) 김사렴(金士廉)의 13세손이다. 김상환(金相煥)은 부모님이 병들자 변을 맛보며 병의 경중을 살폈고, 병세가 위중하면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하였다. 이에 주위의 선비들이 영읍(営邑)에 김상환의 효행을 알리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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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우천(牛川). 안찰사(按察使) 김사렴(金士廉)의 7대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철(金轍)이고, 할아버지는 김석명(金碩鳴)이며, 아버지는 김효건(金孝騫)이다. 외조부는 이박(李璞)이며, 장인은 우희보(禹熙輔)이다. 김적(金適)[1564~?]은 1610년(광해군 2) 치러진 별시 을과에 1등으로 급제한 뒤 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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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후손이다. 김정길(金廷佶)[1581~?]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12세의 나이로 왜병에게 사로잡혔다. 포로가 된 그가 사흘 밤낮을 울자, 왜병의 장수가 사유를 물었다. 이에 김정길은 고향에 살고 계신 부모님 때문이라고 답변하였는데, 왜병 장수가 글을 아느냐고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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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안동(安東). 김사렴(金士廉)의 10세손이며, 형은 김천주(金天柱)이다. 아들로 김성옥을 두었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가 주동이 되어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 탄(坦)을 추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무신란이 일어났다. 이인좌가 이끄는 반군은 청주성을 함락하고 신천영을 충청병사로 삼은 뒤 북진하여 진천에 이르렀다. 당시 진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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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안렴사 김사렴(金士廉)의 6세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지휘하는 왜적은 빠르게 북상하면서 여주와 양근을 거쳐 남한강을 따라 서울로 진격하였다. 한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왜군은 죽산과 용인을 거쳐 서울로 올라왔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5월 2일 동대문에 주둔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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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에 세거해 온 유력 성씨. 진천군의 성씨 내력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자료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이다. 진천현의 토성(土姓)으로 한(韓)·임(林)·송(宋)·심(沈)·유(庾)·미(彌)·고(高)·양(梁)·하(河)·장(張) 등 10개 성씨가 있다. 진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성씨조에도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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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승을 시조로 하고, 김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 성씨. 안동김씨(安東金氏)는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김숙승(金叔承)을 시조로 하는 구 안동김씨와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신 안동김씨로 구분된다. 그중 신 안동김씨의 시조 김선평은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930년(태조 13)에 왕건을 도와 후백제 견훤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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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진천군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본과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음력 4월 13일 일본군의 제1번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산포 침략을 시작으로 1598년(선조 31) 11월 노량해전(露粱海戰)을 끝으로 사실상 종결될 때까지 무려 7년간 한반도를 전화(戰禍)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한 중세 동북아시아 세계의 국제전적 교전이었다. 전쟁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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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진천군에 세거하고 있는 유력 성씨들의 촌락.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조선 초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었다. 17세기 이후 적장자 중심으로의 상속제도 변화,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 예학(禮學)의 발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