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조선 후기 및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교 학파의 하나. 강화학파(江華學派)는 정제두(鄭齊斗) 이후 가학(家學)으로 양명학을 전수해간 일련의 관료 유학자들이며 하곡학파(霞谷學派)라고도 한다. ‘강화학(江華學)’이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양명학의 정립자인 하곡(霞谷) 정제두가 강화에서 가학으로 학문을 전수했던 것에 착안하여, 후대의 연구자들이 붙인 용어이다. 강화학파는...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이자 독립운동가. 개항기 소론 양명학 계열의 문신으로 일제의 강점 이후에는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참여한 우국지사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문일(文一), 호는 문원(文源). 정조 때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의 5세 종손으로, 고조할아버지 홍낙원(洪樂源)과 증조할아버지 홍경모(洪敬謨)가 모두 이조판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