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호계리에 살았던 긍구당 김중정의 묘갈명. 「긍구당 김중정 묘갈명(肯構堂 金重鼎 墓碣銘)」에는 “긍구당 김공 중정 묘갈명(肯構堂金公重鼎墓碣銘)”이라고 적혀 있으며 박성양(朴性陽)이 1889년에 지었다. 현재 비석은 남아 있지 않으며 묘갈명의 내용은 1925년에 편찬한 『진안지(鎭安誌)』와 2004년에 편찬한 『진안군 향토 문화 백과사전』...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은거했던 조선 후기 학자 긍구당(肯構堂) 김중정(金重鼎)이 저술한 문집. 『긍구당유고(肯構堂遺稿)』는 긍구(肯構) 김중정(金重鼎)이 저술한 문집이다. 그의 9세손 김태현(金泰鉉)과 김상현(金尙鉉) 등이 모아 1899년에 간행하였다. 책은 권의 구분이 없는 1책으로 된 목활자본이다. 서(序)와 목록(目錄)의 뒤에 상량문(上樑文)과...
일제 강점기 진안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원재, 호는 주교(朱嶠). 공안공(恭安公) 김겸광(金謙光)의 후손으로 긍구당 김중정의 9세손이고 아버지는 김재헌이고 어머니 김해 김씨이다. 부인 하양 허씨와의 사이에 4남을 두었다. 김대현(金大鉉)[1866~1942]은 1927년부터 1931년까지 용담 향교 직원으로 재임하였다. 『진안 군사』에 의하면 김대현은...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고 사망한 의인.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김두현이고 어머니는 현풍 곽씨이다. 김영덕(金永悳)[1927~1965]은 평소에 마음씨가 곱기로 소문이 났으며 어린이를 몹시 좋아하여 항상 그들의 벗이 되었고, 자기의 아들·딸처럼 귀여워 해주어 어린이들도 ‘혹 아저씨’라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그러던 1965년 12...
진안 출신의 체육인. 김영조는 195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포수 출신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1960년대 한국 야구계를 풍미하였다. 본관은 광산(光山). 아버지는 김길현이고 어머니는 박성녀이다. 자식으로는 1남 2녀가 있는데 외아들인 김승수는 야구 대표 선수를 지냈다. 김영조(金永祚)[1923~1981]는 진안군 주천면에서 태어났다. 1930년 8세...
조선 후기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 병자호란 이후 관직에서 은퇴하고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에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자삼(子三), 호는 긍구당(肯構堂). 양간공파에 공안공(恭安公) 김겸광(金謙光)의 후손으로 감찰공파 2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매곡(梅谷) 김충립(金忠立)이다. 김중정(金重鼎)[1602~1700]의 서울 황화방(皇華坊)...
근대 진안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옥(景玉), 호는 서하(西荷). 김태현(金泰鉉)[1847~1919]은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하여 학문을 닦은 후에는 와룡암에서 후학 육성에 헌신하였다. 후세 인물을 양성하기 위하여 용담과 주천 관내에서 뜻있는 인재들을 모아 글을 가르쳤다. 300여 명의 문하생 중에서 많은 인물이 과거에 합격하였으며, 1908년에는...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 지역에서 향민들이 자치적으로 만든 향약 관련 전적. 전라북도에서는 정읍 고현 내 향약과 남원 원동 향약이 가장 오래 되어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주천 향약의 경우 『주천 향약서』에 1700년대 광산 김상원이 창립하고 김기열이 글을 지은 것으로 기록되었다. 주천 지역 「사립 화동 학교 설립 청원서」[이병항 찬]의 내용 중에 있는 “금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