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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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蕃妻節婦閭 |
영어의미역 | Mounument of Yi Beon's Wife |
이칭/별칭 | 동몽교관 금부도사 행계수방 재령이번처 절부려(童蒙敎官禁府都事行契樹訪載寧李蕃妻節婦閭)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주포중앙길 30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연가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주포중앙길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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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정려각 |
양식 | 겹처마 맞배 기와지붕 |
정면 칸수 | 단칸 |
측면 칸수 | 단칸 |
소유자 | 재령 이씨 문중 |
관리자 | 이춘호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에 있는 개항기 때 정려각.
[개설]
이번 처 절부려(李蕃妻節婦閭)는 이번(李蕃)의 처 장수 황씨(長水黃氏)의 절의를 기리는 정려각이다. 1593년(선조 26) 7월, 진주성(晉州城)을 함락한 왜군이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쪽으로 쳐들어왔는데, 이때 왜적을 피해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장수 황씨는 왜적에게 잡히고 말았다. 왜적이 칼을 목에 대고 위협하자 장수 황씨는 “어서 죽여라”라며 항거하다가 결국 왜적의 칼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변천]
고종 때 후손들이 동몽교관 금부도사 행오수찰방 재령 이번의 처 장수 황씨의 절의를 기려 이번 처 절부려를 세웠다.
[형태]
정려는 단칸 규모로 기단석 위에 초석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윗부분을 이익공(二翼工)으로 꾸몄다. 상부는 겹처마를 올린 맞배 기와지붕이고, 박공(牔栱) 양 측면에는 풍판을 붙이고 내·외부를 단청하였다. 비석은 가로 50㎝, 두께 20㎝, 높이 145㎝이다. 정려 입구에 걸린 현판에는 가로로 ‘절부 찰방 이번 처 숙인 장수 황씨지려(節婦察訪李蕃妻淑人長水黃氏之閭)’라 되어 있고, 정려 안에 세워진 비석의 전면에는 ‘동몽교관 금부도사 행 오수찰방 재령 이번 처 절부 숙인 장수 황씨지려(童蒙敎官禁府都事行獒樹察訪載寧李蕃妻節婦淑人長水黃氏之閭)’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2011년 현재 이번 처 절부려는 재령 이씨(載寧李氏) 문중 소유로 이춘호가 관리하고 있다. 벽돌 담장을 둘러 비교적 온전하게 보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번 처 절부려 내에 있는 비석의 비문은 경상도사 하수일(河受一)이 지었는데, “명색이 사족의 부녀로서 다 왜적을 만나서 다 사로잡히어 욕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는데, 절부만은 흰 칼날을 무릅쓰고 청절을 세웠으니, 참으로 옛날 열녀에 부끄러움이 없도다”라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목숨을 걸고 정절을 지킨 장수 황씨의 열행은 후세에 뚜렷한 귀감이 되는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한자로 새겨진 비문을 읽어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고, 시대의 변천과 함께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