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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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岩面獨立有功者追慕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for men of Independence Movement merit in Cheongam-myeon |
이칭/별칭 | 항일 독립 유공자 추모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885-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추경화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995년 8월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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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
성격 | 추모비 |
양식 | 화강암 좌대 |
관련 인물 | 김기범|정재옥|정남시(鄭南時) |
크기(높이, 길이, 둘레) | 6.1m[높이] |
면적 | 661.16㎡[200평] |
소유자 | 청암정우회 |
관리자 | 청암정우회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에 있는 3·1 운동 유공자를 추모하는 비.
[건립 경위]
하동군 청암면민들은 나라와 민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독립 만세 시위의 주동 인물인 김기범, 정재옥, 정남시(鄭南時), 하형수(河炯壽)[1887-1969], 권대형(權大衡)·이수부(李壽溥)·이현주(李鉉周) 등은 1919년 4월 5일 태극기를 제작하여 그해 4월 7일 하동군 청암면 일대에서 시위를 전개한 후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6개월에서 1년의 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수부, 이현주, 하형수 등은 1919년 4월 8일 태형을 언도 받았고, 화진선은 6개월형이 언도되었다.
이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하동군 청암면 친목 단체인 청암정우회가 앞장서서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였다. 김기범의 장남 김창운과 4남인 김창덕 교장 등이 찬조금을 내고, 하동군에서 1,000만 원을 지원하여 1995년 8월 15일 청암면 독립 유공자 추모비(靑岩面獨立有功者追慕碑)의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제막식에는 국회 의원 박희태의 격려사와 하동군수 정구용의 축사, 하동군의회 의장 강상호의 추도사, 도의원 양일석의 추도사, 하동군의회 의원 김상용의 추도사가 있었으며, 하동문화원장 김철수의 축사, 청암정우회장 김용기의 인사말이 있었다.
청암면 독립 유공자 추모비는 처음에는 하동군 청암면 중이리 청암호숫가 못 둑이 가까운 곳에 세워졌으나, 이후 청암호숫가 북서편 즉 묵계리 방향으로 이동해 다시 세웠다.
[형태]
화강암으로 좌대를 하였으며, 탑 모양이면서 비석을 세운 형태이다. 높이는 약 6.1m, 면적은 약 661.16㎡[200평]이다. 비문에는 ‘항일 독립 유공자 추모비’라고 새겨져 있다. 청암정우회에서 지은 축시가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제의 침략으로 조국이 암울할 때 뼈를 깎는 아픔을 함께하신 님들이여!/ 스스로 조국의 의병 되어/ 총검으로 적과 맞서 일어섰고/ 기미년의 3·1 독립운동/ 민중의 입장에서 만세 외침 드높았네/ 모진 고문에 육신이 다 부서져도/ 님들의 장한 애국 혼은 향토의 청석보다 더 단단했네/ 님들은 가셨어도/ 님들이 남기신 충절의 큰 뜻은/ 조국과 더불어 여기 청암 터에 별처럼 영원하리라/ 조국이여 님들을 잊지 마소서.
[현황]
2011년 현재 항일 독립 유공자 추모비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청암정우회이다. 처음 건립할 당시에는 3·1 운동 유공자 김기범과 정재옥, 정남시 등 3명의 성명이 새겨졌으나, 그 후 화진선, 권대형 등에게도 정부 포상이 추서되었으므로 유족들이 추가로 새겨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보훈처의 현충 시설물로 등록되었다.
[의의와 평가]
하동군 청암면 출신인 항일 독립 유공자 김기범, 정재옥, 정남시 등 3명의 항일 운동 내용을 정리하여 비에 새김으로써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하동군 청암 출신 독립 유공자들의 애국 애족심을 함축하여 시(詩)로 잘 표현하고 있으며, 추모의 엄숙함도 함께 갖춘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