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61 |
---|---|
한자 | 湖南倡義會盟所 |
영어공식명칭 | Honam changuihoemaengso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손영님 |
[정의]
1907년 10월 30일 광주광역시에서 기삼연의 주도로 결성된 의병 부대.
[설립 목적]
1907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의해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7조약 체결, 군대가 해산하는 등 혼란한 정국이 이어졌다. 전라남도 장성에서 기삼연(奇參衍)은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여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변천]
1907년 10월 30일 기삼연은 지역 의병을 연합하여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였다. 사전에 기삼연과 영광의 김용구(金容球)는 자주 만나 의병봉기를 모색하면서 일심계(一心契)를 만들어 의병을 확보하였다. 호남창의회맹소의 맹주에는 기삼연이, 통령에 김용구, 선봉장에 김태원(金泰元)이 직책을 맡았다. 주로 호남의 장성·영광·함평·고창 등 출신지를 기반으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고, 점차 광주까지 투쟁영역을 확장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호남창의회맹소는 순사주재소, 우편취급소, 일본인 이민자 등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등 지역민과 연대하며 일제 침탈에 맞서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호남창의회맹소의 일원으로 광주 지역에서 크게 활약한 의병장들은 김태원·김율(金聿) 형제, 전해산(全海山), 심남일(沈南一)등이 있다.
호남창의회맹소의 선봉장 김태원은 유격전을 펼치면서 광주를 중심으로 장성·함평·담양 등지에서 활동했는데,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어등산에서 광주토벌대와 장성기병대의 합동 공격으로 전사, 순국하였다. 그리고 김태원의 동생 김율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근처에서 체포되어 총살, 순국하였다. 기삼연과 김태원의 뒤를 이어 호남창의회맹소를 규합한 의병장은 임실 출신의 전해산이다. 전해산은 광주·장성을 중심으로 함평·영광 등지에서 의병을 이끌면서 가짜 의병들을 처단하여 민생안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호남창의회맹소의 부장으로 활동한 심남일은 광주를 중심으로 나주·함평·화순 등지에서 활약하면서 일본침략자들과 그 동조자를 응징한 의병장이었다.
[의의와 평가]
호남창의회맹소는 일제 침략에 끝까지 저항했던 호남 후기의병의 기폭제가 되었다. 즉 광주 지역을 위주로 하는 호남은 1909년 일본이 ‘남한대토벌작전(南韓大討伐作戰)'을 펼쳐야 할 만큼 의병활동의 주요 지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