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725 |
---|---|
한자 | 月南洞鹿洞-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혜정 |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에서 마을 신앙의 대상물이었던 선돌.
[개설]
녹동마을은 광주광역시에서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는 도로 우측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분적산(粉積山)[높이 414.6m]의 동쪽 기슭에 있었던 마을이다. 월남동 녹동마을 선돌은 마을 은행나무 바로 옆에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와 선돌을 함께 할머니 당산으로 모셨다. 녹동마을에서는 마을의 안녕과 마을 사람들의 건강을 빌며 당산제를 올렸는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정성껏 모신 덕으로 6.25전쟁 때 군대에 간 마을 사람의 인명 피해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한 번은 마을에 도둑이 들어 소를 훔쳐 할머니 당산을 지나갈 때에 자신도 모르게 당산 주위를 밤새도록 돌고 소의 고삐는 선돌에 매여 있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위치]
월남동 녹동마을 선돌은 광주광역시 지하철 녹동역에서 내리면 마을 입구 오른편 은행나무 옆에 있다. 원래 마을 길옆에 있던 것을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형태]
선돌은 현재 자연석과 시멘트로 사방 3m의 단을 만들어 그 위에 은행나무와 함께 서 있다. 크기는 높이 126㎝, 둘레 98㎝로 울퉁불퉁한 자연석 그대로의 형태이다.
[의례]
녹동마을 사람들은 정월대보름에 할머니 당산에서 당산제를 올리며 치성을 하였다. 1970년대 당산제를 지낼 때에는 선돌에 음식을 차리고 마을 사람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 등을 기원하였다. 당산제가 끝나면 선돌 주위의 마당은 마을 사람들의 놀이마당이 되어 줄다리기를 한 뒤에는 선돌에 줄을 감아 두기도 하였다.
[현황]
녹동마을에 새마을 운동이 한창 진행되면서 당산제는 중단되었고, 오늘날에는 자연스럽게 선돌에 대한 의례도 지내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월남동 녹동마을 선돌은 오랫동안 마을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며 의례를 모셨던 마을 신앙의 대상물로 오늘날에도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