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충사 보존계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5521
한자 褒忠祠保存契案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황민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934년 - 『포충사 보존계안』 편찬
간행 시기/일시 1934년연표보기 - 『포충사 보존계안』 간행
문화재 지정 일시 1977년 5월 22일 - 포충사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7호 지정
성격 필사본

[정의]

전라남도 광주 지역에 있는 포충사를 보존하기 위해 결성된 포충사 보존계의 운영 기록을 남기기 위해 1934년에 제작된 서책.

[개설]

포충사(褒忠祠)는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고경명(高敬命)고경명의 아들 고종후(高從厚), 고인후(高因厚), 그리고 함께 전사한 고경명 휘하의 유팽로(柳彭老), 안영(安瑛) 등 5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고경명은 임진왜란 때 호남 지방에서 최초로 의병 7000명을 모집하여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포충사임진왜란이 끝난 뒤 1601년(선조 34) 호남 지방 유생들에 의해 지어졌다가 1603년 사액(祠額)되어 '포충(褒忠)'이라는 이름과 편액을 받았다. 1865년(고종 2) 대원군 서원 철폐 시에도 필암서원(筆巖書院)과 함께 호남 지방에서 폐지되지 않았던 2대 서원이다. 소장 자료로 「포충사우가(褒忠祠宇歌)」를 비롯한 현판문 3매, 고경명의 문과 급제 교지(敎旨)를 비롯한 고문서 6매, 고경명의 문집인 『제봉집(霽峯集)』고경명 친필 목판을 비롯한 목판 493매 등의 유물이 있다. 포충사는 1974년 5월 22일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포충사 보존계(保存契)는 포충사를 보존하기 위해 '보존계'라는 명칭을 사용하였고, 계장·유사·평의원으로 임원진을 구성하였다. 임원진은 추천받은 인물을 대상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하였으며, 임기는 1년이었다. 계원들은 계에 납입한 액수에 따라 30전에서 2원을 냈는데 통상 2원부터 10원은 동정, 10원 이상은 특별로 구분하였다.

『포충사 보존계안(褒忠祠保存契案)』은 포충사 보존계의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자이다.

[편찬/간행 경위]

『포충사 보존계안』은 1934년에 포충사 운영 기록을 보존하고자 간행되었다.

[서지적 상황]

『포충사보존계안』은 단권 1책의 필사본으로 1934년에 제작되었다.

[구성/내용]

『포충사보존계안』의 구성은 서, 규례, 본문 순으로 되어 있다.

서는 이범세(李範世)가 작성하였고, 발문은 없다. 서문에는 포충사 건립 과정과 보존계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규례에는 보존계 운영 방침이 기록되어 있다. 본문은 포충사 보존계 운영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름 아래 출생년도, 자, 본관, 거주지 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포충사 보존계안』포충사의 건립 과정과 운영에 관계된 제반 사항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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