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
-
신동의 장씨들이 문중 성원으로서 참여하는 문중행사는 다채롭다. 신동에 위치한 양양재에서 모시는 석채에서부터 시조제의 참여에 이르기까지 문중의 현조를 모시는 향사가 연중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인동장씨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랑스러운 조상의 후예라는 긍지를 갖게 된다. 특히 석채라는 형식의 조상 모시기가 눈길을 끈다. 통상 불천위로 모셔진...
-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삼고 석가모니가 설한 교법을 종지(宗旨)로 활동하는 종교. 구미 지역은 조선시대 영남학파의 연원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신라시대에는 불교의 초전지로, 고려시대에는 종단 불교의 번성지로 한국 불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불교가 고구려에서 신라에 처음 전파될 때 모례(毛禮)의 후견으로 처음 전래한 지역이 되었고, 처음으로 전파...
-
승지공[휘 熙]은 중종 8년(1513) 서울 남문 밖에서 나서 20세경에 부친[휘 繼曾]을 따라 성주로 귀향하였다. 부친은 다시 형 열(烈)을 데리고 인동으로 환향하였으므로 암포에 남아 옛집을 지키게 되었다. 여기서 아들 현도(顯道)가 나고 손자 5형제가 났다. 승지공은 경사(經史)를 두루 익히고 박학다식하여 널리 회자되었다. 자가 언여(彦汝)이고, 호는 전하...
-
집성마을 사람들은 타성들과 위세 경쟁을 하지만 같은 성씨 내에서도 파문중 그리고 마을 간에 위세 경쟁을 한다. 신동 사람들은 인동 일대에 자리 잡은 인동장씨 집성마을의 위세 순위에 다음과 같이 자랑한다. ‘일 신동, 이 남산, 삼 오태, 사 각산, 오 대실’이라고 한다. 인근의 인동장씨 집성마을 가운데 신동이 가장 명성이 높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그 연유를 물어보면 ‘신동에서 과환...
-
고려 후기의 승려. 혜각비를 지은 안진(安震)은 1313년 과거에 급제하고 1318년 원의 제과에 급제한 인물이므로 혜각비를 찬한 시기는 적어도 1313년 이후이며, 선산의 주륵사에 비문이 새겨진 것 역시 그 이후일 것이다. 체원(體元)이 뽑아 정리한 『화엄경관음지식품(華嚴經觀音知識品)』 후지에 따르면 혜각은 화엄종 승려이다. 그의 제자 보응대사(普應大師) 인원(忍源)이 체원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