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고령 지역 역사. 통일신라시대 고령군은 야로현과 신복현을 영현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나 후삼국 시기 고령 지역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뚜렷한 호족이 없는 반면 인근의 성주 지역에서는 이총언(李悤言) 등이 고려 태조 왕건에 귀부하여 후삼국 통일에 기여하였다. 그 결과 성주 지역은 940년(태조 23) 주부군현의 명호 개정 때...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는 고령박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고려 후기인 1350년(충정왕 2)경 박경(朴景)이 입향한 이후 고령박씨의 본향을 이루었다. 이후 도진리의 고령박씨 문중은 지금까지 650년간 이곳에서 세거해 오고 있는데, 이 때문에 도진리 박씨들은 다른 문파와 구분하여 자신들을 특별히 ‘도진박씨’라고도 부른다. “고령 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으로는 도진박...
고려시대 고령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 관청.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고려시대에 고령 지역을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상도지리지』 고령현 조에 고령을 “전해 오는 이야기로서 고려 때에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고, 또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在高麗時稱高陽大都護府又稱靈州牧官此則諺傳也]”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 등의...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가 있던 터. 도요지(陶窯址)는 토기나 도자기를 구워 내던 가마 유적으로, 우리말로는 가마터라고 한다. 토기 및 도자기를 원활하게 생산하기 위해서는 땔감이 되는 산림이 울창하고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제품을 옮기기 편리한 운송로, 양질의 점토와 도토(陶土)가 생산되어야 하는 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고령 지역은 백두...
고려시대 고령 지역의 지명.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고령 지역을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상도지리지』 고령현조에 고령을 “전해 오는 이야기로서 고려 때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고, 또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在高麗時稱高陽大都護府又稱靈州牧官此則諺傳也]”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 등의 다른 자료에는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세거하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집성촌. 집성촌은 동성동본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집성촌의 형성은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전기부터다. 특히 조선 후기인 17세기 이후 집중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적장자 중심으로 상속 제도가 변화하고,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보급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