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3년 고령객사 중수 사실을 전하는 두루마기형 고문서. 객사는 정청에 전패(殿牌)를 모셔 두고 대궐을 향해 망궐례(望闕禮)를 올리는 장소이자 지방 군현에 파견된 사신이나 외국 사신이 오갈 때 머무는 숙박 기관이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전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의 접대가 중시된 반면, 후기에는 전패를 봉안하고 망궐례를 행하는 장소로서의 의미가 중요시되었다. 고령객사는 1493년(...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에서 곽재우 장군과 왜양못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곽재우 장군과 왜양못」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 곽재우(郭再祐)[1552~1617] 장군이 전공을 세웠다는 전쟁무용담이자 후퇴하던 왜군이 많이 빠져 죽었다는 연못에 대한 지명유래담이기도 하다. 곽재우 장군은 조선시대의 의병장으로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본관은 현풍(玄風)이...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백마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도진마을의 절벽 백마덤 이야기」는 청룡산 끝자락에 있는 절벽이 햇빛을 받아 반사될 때 희게 보이는데 말의 형상을 띤다하여 백마덤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자 임진왜란 당시 참전으로 이별을 한 부부 사이의 증표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법리에서 독점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독점재와 오성」은 독점재가 장군이 태어날 지세인 것을 알고 이곳을 빼앗기 위해 이여송이 선조에게 바둑 내기를 청하였는데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1556~1618]의 도움으로 내기에서 이겨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를 지켰다는 지략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뒤남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뒤남골 이야기」는 고령군 개진면에 전승되는 노비 설두남에 대한 인물담과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뒤남골이라 하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2년 11월 13일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반운리 주민 유병규[남,...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에서 법암과 걸실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법암 걸실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범암마을의 사람들이 피난을 가지 않고 집에 남아 있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에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0년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화암1리 주민 시병모에게서 채록한 것이다. 지명의 유래에...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여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사람 속이는 여우」는 개진면 양전리에서 사람을 속이는 교활한 여우를 잡아서 마을을 편하게 하였다는 여우 퇴치담이자, 동물에게 인간적 속성을 부여하여 의인화시킨 동물담이다. 옛날부터 여우가 사람을 속인다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형화되어 있다. 이는 여우의 식생활 때문이다. 여우는 자기가 잡은 동물의...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에서 송암 선생 부인과 박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송암선생 부인과 박」은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 대장이었던 송암(松庵) 김면(金沔)[1541~1593] 선생 부인의 선견지명과 뛰어난 기지로 왜적을 물리쳤다는 인물전설이다. 부인은 전주이씨로서 부호군(副護軍) 황(煌)의 따님이며, 회원군(會原君) 쟁(崢)의 증손녀요, 병판 경숙공(景肅公) 창녕 성운의...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서 개실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쌍림면 합가1리 개실마을 유래」는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개화실에서 개실로, 가야곡에서 개실로 음운이 변화하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0년에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1리 개실마을 주민 김...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노리에서 오로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오로성 이야기」는 왜적들의 침입을 대비하여 성을 쌓고 임진왜란 때 여러 차례에 걸친 왜군의 침입을 마을 주민이 일심동체가 되어 막아냈다는 지략담이자 당시에 구축한 성이 오로동 뒷산에 있다고 하여 오로성(吾老城)이라고 한다는 지명유래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서 효열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진주하씨 효열각에 얽힌 이야기」는 정성껏 간호하던 남편이 사망하자 3년 상을 치르고 자결하여 정절을 지킨 조정필 부인에 대한 열녀담이다. 2006년 김광순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박이정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편에 실려 있다. 이는 2000년 11월 18일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 주민 조...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서 하로다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하로다의 유래」는 노인들이 많다는 뜻과 노론의 무리가 많은 곳이란 뜻을 지닌 지명유래담이다. 다산면 송곡리의 하로다(下老多)마을은 금곡(金谷) 혹은 송곡(松谷)이라 일컫기도 한다. 금곡은 가을에 단풍이 들면 골짜기가 비단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생긴 것이고, 송곡은 소나무가 울창하여 생긴 것이다. 마을의 서남...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에서 쌍효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효심 많은 부부 이야기」는 시아버지의 등에 난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등창을 치료 했고[親腫吮之], 지극 정성이면 하늘이 돕는다는 말처럼 한겨울에 제비 알을 구해 병든 시아버지를 구완했다는 김상능 부부의 효행담이자 구인담이다. 덕곡면 후암리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인상 깊게 서 있는 곳에 쌍효각이라 부르는...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사적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흠집 나지 않는 사적석」은 정을 사용해도 흠집이 나지 않는 돌을 표적으로 삼아 활쏘기 연습을 많이 해서 임진왜란 때 쳐들어 온 왜적을 물리쳤다는 역사담이다. 2006년 박찬익이 집필하고 박이정에서 펴낸 『새로 발굴한 한국구비문학』-경북 고령군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2002년에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
-
조선 후기 고령향교에서 고령 지역 사족들의 명부를 적은 문서. 조선시대 지방 자치 기구인 유향소(留鄕所)를 운영하던 지방 사족들의 명부를 향안이라 한다. 조선시대에는 향안에 이름이 등재되어 있어야만 그 지방의 양반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있으며 좌수(座首)·별감(別監)의 향임에도 선출될 수 있었다. 향안에 등재되기 위한 자격으로 친족은 물론, 처족과 외족까지 포함된 족계가 분명해야...
-
1785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무신 김면(金沔)의 시문집 『송암실기(松庵實記)』 편찬은 1772년 한방윤 등이 도암서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가장(家藏)의 상자에서 송암(松庵) 김면이 저술했던 시문(詩文)과 일기(日記), 문모계(文矛溪)의 수서일기(手書日記)를 얻어 채록하고, 당시 여러 문인들의 문집 등에서 관련 내용을 발췌하여 최재억과 이희근에게 편집을 부탁한 데서 시작되었다. 그...
-
1884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무신 김면(金沔)의 문집. 『송암유고(松庵遺稿)』는 송암(松庵) 김면[1541~1593]의 후손들이 『송암실기(松庵實記)』를 간행한 후 김면의 의병 활동 관련 내용과 그의 시문집을 정리하여 발간한 것이다. 발간될 당시 『송암실기』에 실려 있던 「창의사적(倡義事蹟)」과 가장(家將)·시장(諡狀) 부분이 상당 부분 축소되어 들어갔으며, 「임진창의시동고록(壬...
-
1795년에 간행된 조선 전기 고령 출신 학자 박은(朴誾)의 시문집. 고령 출신의 학자 박은[1479~1504]은 1496년(연산 2) 관직에 나아갔다. 1501년(연산 7) 유자광(柳子光)과 성준(成俊)의 간사함에 대해 상소를 올렸다가 무고죄로 몰려 파직되었고, 이후 갑자사화(연산 10) 때 동래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의금부에 투옥되어 사형을 당했다. 박은은 중국 강서파의 시풍을...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양(晉陽). 아버지는 강하수(姜河壽)이다. 강대청(姜大淸)은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키고 공을 세웠으며 충의위장군에 임명되었다....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매림서원에 있는 판목. 매림서원은 쌍림면 송림리에 있는 서원으로, 지방 유림에서 1707년(숙종 33) 곽수강과 오선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후 매림재(梅林齋)로 이어오다 1984년에 다시 중수되면서 서원으로...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용리 반룡사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삼존불 좌상. 고령 반룡사 목조 비로자나 삼존불 좌상은 본존인 비로자나 불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에 협시 보살상의 3구로 구성되는데, 그 크기로 보건대 원래부터 반룡사의 중심 불전에 봉안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2009년 좌협시 보살상에서는 조성원문 등의 복장물이 발견되었다. 조성원문에는 고령 반룡사 목조비로자...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랑채. 장육당은 조선 후기의 학자 이윤(李玧)이 거처하던 사랑채이다. 이윤의 자는 여온(汝溫), 호(號)는 장육당(藏六堂)이다. 문음으로 통덕랑(通德郞)을 받았다. 참의 이지화(李之華)의 아들이고 손처눌(孫處訥)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외가의 일로 벼슬에 나가지 못하였으나 후학 교육에 힘써 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부윤 윤리(尹理)·김...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적. 문연서원은 1695년(숙종 21) 박윤과 윤규를 비롯하여 박택(朴澤), 박정번, 최여설(崔汝楔) 등 5인을 향사하였다. 우곡면 월보동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며, 이후 복설하여 문연재(文淵齋)라 명하였다. 문연서원 소장 문적은 서원 훼철 때 소실되었으며, 남아 있던 자료들 중 일부는 ‘고령박씨 소윤공파...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연조리 고령향교에 있는 조선 후기 전적. 고령향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과 서적은 향교의 인적 구성과 교육 및 재정운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고령향교에는 현재 필사본 16건, 책판 1종 266장, 그리고 서적이 28종이 남아 있다. 고문서와 필사본으로는 『유안(儒案)』, 『향안(鄕案)』, 『고령향약안(高靈鄕約案)』, 『고령향약임원록(高靈鄕約任員錄)』,...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진옹(鎭翁), 호는 매헌(梅軒). 아버지는 홍점(鴻漸), 어머니는 이천서씨(利川徐氏) 진사(進士) 적(迪)의 딸이다. 곽수강(郭壽岡)[1619~1660]은 효종 때 생원을 지냈다. 16세 때에 성리(性理)와 천리(天理) 및 오행(五行) 등에 대한 「천인감응( 天人感應)」이란 설(說)을 지었다. 1654년(효종 5)에 사마시...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숙도(叔道), 호는 월계(月溪). 아버지는 진사(進士) 곽수강(郭壽岡)이다. 곽유(郭逌)[1655~?]는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서 학문을 하였으며, 1690년(숙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평소 부모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고, 부모가 병이 들어 위급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먹여 소생하게 하였다. 부모...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원보(遠甫)이다. 할아버지는 사성(司成) 지번(之藩),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 초(超)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이름난 곽재겸(郭再謙)의 동생이고, 곽재우(郭再祐)와는 사촌지간이다. 곽재명(郭再鳴)[1552~?]은 임진왜란 때 형 곽재겸(郭再謙)[자 익보(益輔), 호 괴헌(槐軒)] 및 서사원(徐思遠)과 더불어 의병을...
-
조선 후기 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성산(星山). 남편은 곽희수(郭希壽)이다. 곽희수 처 성산이씨(星山李氏)는 시아버지가 결혼 초부터 병으로 앓아눕자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 남편은 전력부위 수문장(展力副尉水門將)으로 근무하기 위해 한양으로 떠났다. 이 사실을 안 왜구가 남편의 군사 기밀을 탐지하기 위해 약장수를 가장하고 성산이씨에게 접근하자 이를...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 성산이씨 집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가양주. 토속주 혹은 민속주는 특정 지방에서 오래 전부터 전승되어 온 술로서, 사용하는 재료와 제조법에서 특성을 지닌다. 토속주는 보통 특정 지역에서 세거해 온 집안의 종가를 중심으로 제조법이 개발, 전승되는데, 이는 술이 종가의 연례적인 봉제사와 접빈객의 역할 수행에 필수적인 음식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관동스무주...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의병장 김면(金沔)의 유적. 송암(松庵) 김면은 1541년(중종 36)에 태어난 학자로 참봉(參奉),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정인홍과 함께 경상우도의 3대 의병장 중 한 사람이었으며 곽재우, 정인홍과는 달리 남명 조식의 문인인 동시에 일찍이 퇴계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마하여 퇴계 문인들과도...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달원(達元). 중종 때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지낸 김효동(金孝東)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호일(金浩一)이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상능(金相能)[1834~?]은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후암리에서 태어났다. 평소 부모를 극진한 효성으로 모셨는데, 칠순의 아버지가 수개월 동안 병이 들어 온갖 약을 써도 효험이 없고 아무 음...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선산[一善]. 초명은 세옥(世玉), 자는 문원(聞遠), 호는 모헌(慕軒)·연한당(燕閒堂).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8대조이며, 김종직의 넷째 아들인 김숭연(金嵩年)[1486~1539]이 7대조이다. 김숭연은 일직손씨(一直孫氏) 사이에 세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인 김윤(金綸)이 일찍 졸하여 6대조인 김유(金維)[1515~1562]...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일선(一善). 자는 술이(述而). 아버지는 김극창(金克昌)이고, 외할아버지는 이성림(李成霖)이며, 장인은 이상중(李尙重)이다. 김선영(金善英)[1605~1676]은 1636년(인조 14) 과거에 급제하여 내직으로 성균관사예, 형조정랑, 예조정랑, 예조좌랑겸춘추관기주관, 성균관직강, 세자시강원필선, 통예원봉예겸춘추관편수관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외...
-
조선 후기 고령 지역의 효부. 본관은 완산(完山). 외가가 평도공(平度公) 최유경(崔有慶)의 11세손이며, 남편은 김세유(金世瑜)이다. 김세유 처 완산최씨(完山崔氏)는 평소 가난한 살림에도 홀로 된 시아버지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그러던 중 남편과 시아버지가 학질에 걸렸는데, 좋다는 약을 써도 전혀 차도가 없고 오히려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우연히 집 마당으로 고...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일선(一善). 호는 매암(梅庵).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7세손이다. 김시사(金是泗)는 아홉 살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기를 마치 어른같이 하고, 표주박 하나를 벽에 걸어 놓고 죽을 먹는 그릇으로 사용하였다. 어머니의 등에 종기가 나자 상처를 입으로 빨아내어 낫게 하였으며,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는 지나친 슬픔으로...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형원(浻源), 호는 송호(松湖).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재종형이다. 김연(金演)[1547~1640]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종형 김면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무계 전투에서 공을 세워 통훈대부(通訓大夫) 군자감정에 제수되었다....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삼연(三然). 아버지는 김보경(金寶鏡)이다. 김영곤(金永坤)은 타고난 성품이 남달라서 어려서부터 늙어서까지 부모님을 모시는 데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이러한 성품을 가졌기에 부모의 명을 단 한 번도 거역하는 일이 없이 성심으로 받드는 모습으로 이웃을 감동시켰다. 고종 때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중학교관(中學校官)에 추증되고 정...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돈재(遯齋). 아버지는 사간 벼슬을 지낸 김치웅이다 김응정(金應井)은 선조 때 봉직랑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무사히 호종(護從)하였다.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에 책봉되었다....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이자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고조할아버지는 1519년(중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오른 김탁(金鐸)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무과로 출신하여 경원도호부사 겸 경원진병마첨절제사(慶源都護府使兼慶源鎭兵馬僉節制使)를 역임한 김세문(金世文)[1520~1569]이다. 정경부인(貞敬夫人) 김해김씨(金海金氏) 사이에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맏아들...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풍암(楓庵).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재종숙이다. 김홍원(金弘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9세 나이로 재종숙 김면의 휘하에서 종군하였다. 벼슬은 오위대호군(五衛大護軍)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일등의 녹권을 받았다....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여명(汝命), 호는 의재(義齋).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재종숙이다. 김홍한(金弘漢)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종숙 김면과 함께 성산면 무계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수성(壽城). 호는 매음(梅陰). 나이준(羅以俊)은 1636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 벼슬에 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혼자서 공자·안자·맹자·자사의 신주를 행재소까지 무사히 모셨다. 훗날 사림(士林)에서 사계사(泗溪祠)를 세워 행적을 추모하였다....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적.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박민국(朴敏國)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는 전적으로서,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남와 구거에 고서와 간찰을 비롯한 전적이 남아 있다. 남와 구거는 박민국이 서재 겸 사랑채로 세워 학문을 닦고 교우한 집으로, 배흘림기둥과 천장이 특이한 3칸 겹집의 팔작기와지붕 건물이다. 이곳에 소장된 전적 중 대다수는 분실하...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있는 송시열, 권상하, 한원진, 윤봉구, 송환기를 배향한 조선 후기 서원. 노강서원은 영조 때인 1692년 창건하여 송시열(宋時烈)을 주향으로 하고 권상하(權尙夏), 한원진(韓元震), 윤봉구(尹鳳九), 송환기(宋煥箕)를 배향하고 있다. 당시 고령에서 유일하게 노론계 서원이었던 노강서원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성주군에 속하였다. 송곡리 하로다마을에서 상로다...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변이(變而). 증조할아버지는 중추부사(中樞府事)를 지낸 노삼(魯參)이다. 노지도(魯至道)는 임진왜란을 당하여 아버지와 함께 왜구에게 붙잡혀 그 칼날에 죽임을 당하려는 순간, 아버지를 품에 안듯이 하여 칼날을 막았다. 화가 난 왜구가 마구 칼을 휘둘러 온몸을 난자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적장에게 혈서를 써서 던지고는 아버지를...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고곡리에 있는 김면을 배향한 조선 후기 서원. 송암(松庵) 김면(金沔)은 1541년(중종 36)에 태어난 학자로 참봉(參奉), 공조좌랑(工曹佐郞)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이었던 그는 일찍이 퇴계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마하여 퇴계 문인들과도 긴밀한 교유를 맺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종도(趙宗道), 문위(文偉) 등과 거창, 고...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답곡리에 있는 곽간을 기리기 위해 세운 재실. 포산곽씨 17세손인 죽재(竹齋) 곽간[1529~1593]은 조선 중기의 문신, 학자이며 1546년 중광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1566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공조(工曹), 형조(刑曹), 예조좌랑(禮曹佐郞)을 거쳐 영천군수, 공주목사, 강릉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악재(樂齋) 서사원(徐思遠)과 함께...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내상리에 있는, 정순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재실. 대가야읍 쾌빈리에 위치한 쾌빈교를 지나 좌회전하고 내상리 방향으로 지방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도로변에 있는 내상리[동촌] 표지석에서 마을 안쪽으로 120m 진행하면 푸른 함석 기와지붕으로 된 재실이 보인다. 1802년 동래정씨 후손이 정순문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는데, 조선 말기 화재로 전소되어)...
-
1597년 고령 둔덕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0) 8월 초순...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평지리에 있는 조선 중기 재실. 만남재는 고령박씨의 중시조인 청하공(淸河公) 박지(朴持)의 묘를 수호하고, 종중회의를 열기 위해 마련한 재실이다. 박지의 묘는 만남재의 뒤편 왼쪽 산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박지의 비문은 1728년 그의 11세손이자 조선 후기 문신이며 병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朴文秀)[1691~1756]가 지...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에 있는 오선기, 곽수강을 배향한 조선 후기 서원. 오선기(吳善基)의 자는 경부(慶夫), 호는 한계(寒溪)이고 본관은 고창(高敞)이다. 경상북도 고령에서 출생하였다. 장용우(張龍遇)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산림처사로 후학 양성에 힘썼던 인물이다. 저서로는 『한계집(寒溪集)』이 있다. 곽수강(郭壽岡)의 자는 진옹(鎭翁), 호는 매헌(梅軒)이고 본관은 현풍...
-
조선 후기 고령 지역에 성리학적 윤리를 보급하기 위해 시행된 향촌 자치 제도. 16세기 이후부터 사림 세력은 훈척 세력의 향촌 지배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수단을 찾았다. 이는 향촌에 성리학적 윤리를 보급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학(小學)』 교육을 하고 더불어 향약을 실행하였다. 고령의 향약 주도 세력은 향약에 참가한 사람들의 명부인 향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고령향교에 소장된...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 있는, 정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재실. 모의재는 홍경래(洪景來)의 난 때 순절한 가산군수(嘉山郡守) 정시(鄭蓍)를 추모하기 위해 정국풍(鄭國風)이 후산에 묘지를 정하고 세운 재실이다. 성산면사무소에서 국도 26호선을 따라 대구·화원 방면으로 진행하다가 첫 번째 삼거리에서 용암·다산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3㎞쯤 가다 무계리 마을 표지석에서...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우물. 성산면 무계리에는 해주오씨의 집성촌이 있으며, 마을의 우물은 총 4곳이 있었다. 무계리에서 가장 중앙에 있는 한샘우물은 공동 우물로서 옛 계곡 근처에 만들었다. 우물과 샘은 지하수이다. 지하수는 땅 위에 존재하는 지표수와 달리 땅속을 흐르다가 경사 급변점에서 땅 위로 솟아오르므로 지혈출수(地穴出水)라는 말처럼 땅속으로 뚫린 구...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죽연(竹淵) 박윤(朴潤), 월오(月塢) 윤규(尹奎), 요락당(樂樂堂) 박택(朴澤), 학암(鶴巖) 박정번(朴廷璠), 매헌(梅軒) 최여설(崔汝楔) 등 5명을 제향하고 있다. 이 중 윤규와 박정번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사마방목(司馬榜目)』에 의하면, 윤규는 1531년(중종 26)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2등...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김종직을 모시는 불천위 사당. 사당(祠堂)은 선현과 조상의 업적과 넋을 기리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건물로 매년 정기적으로 제향을 올린다. 특히 국가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은 인물에 대해서는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 내에 모시면서 계속적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불천위(不遷位)라고 한다. 문충공 사당은 점필재(佔畢齋...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고령군청에서 국도 26호선을 따라 쌍림면 방면으로 들어오면 쌍림면사무소를 지나게 된다. 면사무소를 지나면 송림리와 합가리로 가는 두 갈래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나 있는 송림리 방향으로 들어와 백산초등학교에서 약 400m 떨어진 곳에 하거리가 위치한다. 미산서당은 하거리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국도변에 있는 새마을에서 안쪽으로...
-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성보(成甫), 호는 기은(耆隱). 증조할아버지는 이조판서 박장원(朴長遠)이고, 할아버지는 세마(洗馬) 박선(朴銑)이며, 아버지는 영은군(靈恩君) 박항한(朴恒漢)이다. 어머니는 공조참판 이세필(李世弼)의 딸이다. 박문수(朴文秀)[1691~1756]는 1723년(경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로 뽑혔고, 이듬해...
-
조선 후기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효자. 부사(府使)를 지낸 박윤서(朴潤緖)의 아들로 효종(孝宗)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훈련원 선전관(訓練院 宣傳官)에 이르렀다. 박윤서(朴潤緖)는 평소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부모의 생명이 위급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소생케 하고자 하였다. 박윤서(朴潤緖)가 부모에게 보인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예절을 뛰어 넘는 것이었...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치순(致淳), 호는 사포(沙圃). 증조할아버지는 박사준(朴思峻)이다. 박상림(朴尙林)[1839~1904]은 10세에 배우던 책을 덮고 나무를 하여 부모의 수고를 대신하였고, 15세에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책을 읽으며 극진한 효성으로 부모를 모셨다. 어머니가 머리에 종기가 나서 온갖 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고 고통스러워...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외리에 있는 박승수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비석. 박승수 영세불망비는 1787년 10월 현감 박승수(朴升壽)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원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외리 88고속도로변 산기슭 옛 물레방아 터에 있었으나, 고속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마을회관 앞으로 이전하였다. 비신과 한 돌로 된 비수(碑首)가 있다. 비수는 비신 최상부...
-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사옹(槎翁) 박명윤(朴明胤)의 현손이다. 박여장(朴汝章)은 영조 대 무과에 등제하였으며, 1728년(영조 4)의 이인좌의 난[무신란] 때 의거(義擧)하여 공을 세웠다. 이 일로 훈련원첨정에 제수되었다....
-
조선 후기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숙빈(叔彬), 호는 용담(龍潭)·도천(道川). 증조할아버지는 박한하(朴漢何)이고, 할아버지는 참봉 박식(朴埴)이며, 아버지는 승지를 지낸 복재(復齋) 박양좌(朴良佐)이다. 어머니는 성산배씨(星山裵氏) 별좌(別坐) 배은(裵垠)의 딸이다. 둘째 아들로, 형은 남계(藍溪) 박이문(朴而文)이다. 부인은 충주박씨 참판 박응복...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극술(克述), 호는 매헌(梅軒). 아버지는 학암(鶴巖) 박정번(朴廷璠)이다. 박창선(朴昌先)은 15세 때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망우당 곽재우와 함께 화왕산 의병진에 입성하여 장무서기(掌務書記)를 맡아 공을 세웠다. 성균생원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화왕산 의병진에 입성하여 세운 공으로 선무원종이등공신(宣武原從二等功臣)에 녹선되었...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래(仲來), 호는 용재(慵齋). 아들은 박섬(朴暹)[1696~1760], 손자는 박사연(朴思淵)[1732~1756]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박종주(朴宗冑)이다. 양죽당 정완[참판공으로 임진왜란에서 창의함]의 5대손이다. 박태중(朴泰重)[1677~1729]은 5~6세에 이미 완숙한 군자의 모습을 갖추었고, 장성하여서는 덕행을 겸...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대가야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동종. 고령군 대가야박물관에는 반룡사에서 제작, 보관되었던 동종이 있는데, 종은 원래 소리를 내는 악기의 하나였다. 그런데 불교에서 부처의 뜻을 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면서 ‘청정한 불사에 쓰이는 맑은 소리의 종’이란 뜻으로 범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 가면 범종각, 혹은 범종루라고 불리는 건물이 있고,...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원전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반암서원은 여말선초 문신이었던 정구(鄭矩)로부터 아들인 정선경(鄭善卿), 손자인 정종(鄭種), 정비(鄭秠)를 제향한 서원이다. 정구[1350~1418]는 감찰대부(監察大夫) 정양생(鄭良生)의 아들이다. 자는 중상(仲常), 호는 설학재(雪壑齋)로 1377년(우왕 3) 문과에 을과 2등으로 급제하여...
-
조선 후기 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성산(星山). 이기춘(李起春)의 조카딸이며, 남편은 통덕랑(通德郞)을 지낸 배두(裵(山+斗))이다. 배두 처 성산이씨(星山李氏)는 규범이 엄한 가정에서 자라 출가하여 정성과 공경으로 시아버지를 모셨다. 그러던 중 초상을 당하여 슬픔으로 몸과 마음을 온전히 수습하지 못하고 있을 때 화재가 일어나 집과 사당이 모두 소실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통중(通衆), 호는 명암(明菴). 고령군 덕곡면에 터를 잡은 성산배씨의 입향조이다. 배집(裵楫)은 1590년(선조 23) 호방별과(虎榜別科)에 급제하여 오위사직(五衛司直)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령의 개산(開山) 등지에서 왜병(倭兵)과 싸워 많은 공을 세웠고, 돌아와 선무사(宣撫使)를 지냈다. 1597년(선조 30)...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요지. 대가야읍에서 덕곡면 노리 방향으로 난 군도 2호선을 따라 가다보면 덕곡면사무소가 있는 예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좀 더 가야산 방향으로 올라가면 오른편에 백리로 진입하는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는 덕곡면 가륜리에서 백리를 거쳐 성주군 수륜면 신파리로 연결된다. 백리 백자요지는 백리 새터마을을 지나 밤티마을에 조금 못 미친 도로...
-
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전쟁.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 뒤 후금(後金)과 조선은 형제지국(兄弟之國)으로서 평화유지를 약속했으나 조선은 해마다 많은 액수의 세폐(歲弊)와 수시의 요구에 감당하기 힘들었으며, 당시 강력한 숭명배금(崇明排金) 사상으로 후금과의 형제 관계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후금은 점차 영역을 확대하고, 명...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대가야박물관에 있는 조선시대 고령 상무좌사의 전적과 물증 자료들. 보부상 유품(5)으로는 『선생안(先生案)』, 『반수선생안(班首先生案)』, 『접장선생안(接長先生案)』, 『계안(稧案)』, 『좌사계규약(左社稧規約)』, 『고령군좌사절목(高靈郡左社節目)』, 『좌사계규약급계원명부입하부록(左社稧規約及稧員名簿入下附錄)』, 『상무사장정(商務社章程)』,...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우물. 산주리 우물은 300여 년 전 조선 후기에 마을이 형성될 당시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쌍림면 산주리 마을 중앙 도로변에 위치하며, 마을 뒷산의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길 옆에 샘이 솟아나는 우물이다. 특히 향나무가 바로 옆에 있어 향기도 좋고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또한 여름에 물이 매우 차갑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고령의 도공 김해김씨가 이룩한 일본 도자기 문화의 일맥. 오늘날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말한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강토 방방곡곡에서 무차별로 끌고 간 수많은 도공들을 일본의 사쓰마[薩摩]와 아리타[有田]·가라쓰[唐津]·아가노[上野]·다카도리[高取]·하기[萩]·야쓰시로[八代]·소다이[小代] 등 규슈[九州...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리에 있는 성산이씨 6현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조선시대 비석. 성산이씨 육현비는 의재(義齋) 앞뜰에 위치해 있는데, 세종 때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을 지낸 송오(松塢) 이사징(李士澄), 옥산(玉山), 선조 때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낸 근재(謹齋) 이동례(李東礼)와 세 아들 죽포(竹圃) 이현용, 국포(菊圃) 이문용, 매포(梅圃) 이택용[이상 삼포(三...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창녕(昌寧). 고려 시중(侍中)을 지낸 성송국(成松國)의 13세손이다. 성풍세(成豊世)[1572~1650]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홀로 된 어머니를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로 피난시키고 난 뒤 자신은 상주진(尙州鎭)의 병사로 입대하였다. 훈련을 마치면 상주진에서 나정리까지 180리 길을 저녁에 갔다가 아침이면 돌아오기를 계속하였다. 상주진의 병마절도...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성풍세가 피난하였다고 전하는 석굴. 성풍세(成豊世)는 본관이 창녕이며,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냈던 성석린(成石璘)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성주 노곡으로 피난 와서 의병에 가담하여 낮에는 나라를 지키는 데 힘쓰고 밤에는 효를 다하는 충과 효를 겸비한 효자라고 전한다. 성풍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764년(영조 40) 성만철이 「성효자효행지(成孝子孝行誌)」...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나정리에 있는 성풍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 비석. 성풍세(成豊世)의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영의정을 지낸 성석린(成石璘)의 후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주 노곡(魯谷)으로 피난을 간 성풍세는 전쟁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의병 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았다. 어머니의 연세 83세 때 도끼로 얼음을 깨어...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최호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시대 비석. 송애(松崖) 최호문(崔虎文)은 조선 헌종 때 문과 을방에 제2인자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과 봉화현감을 지냈다. 천성이 순박하여 가난하고 천한 것을 구별하지 않고 너그러웠으며, 가난한 백성들을 잘 도와주어서 인심이 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문적으로는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
조선 후기 임진왜란 이후 귀화한 중국인 무장. 아버지는 명나라 병부시랑(兵部侍郞) 시윤제(施允濟)이다. 시문용(施文用)[1572~1623]은 1572년 중국 저장성[浙江省]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당시 유격장군(遊擊將軍) 남방위(藍方威) 휘하의 행영중군(行營中軍)으로 종군하여 7년간 각지에서 많은 전공을 올렸다. 임진왜란 이후 신병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경상북도 성주에 우거하였다. 선조...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여인(汝引). 아버지는 신경추(申景樞)이다. 신급(申汲)[1624~1695]은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급하자 자신의 피를 내어 약으로 썼다. 어머니의 장례 후에는 여막도 없이 무덤 아래에서 끼니도 거른 채 슬피 울었는데, 비바람이 몰아쳐도 그치는 일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몸이 상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호숙(灝叔), 호는 합곡당(合谷堂). 신수항(申守沆)[1585~1640]은 1621년(광해군 13)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과 진잠현감을 지냈다....
-
조선 후기 고령 에서 거주한 문신.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주백(周伯), 호는 청천(靑泉). 밀양에서 출생하였고, 고령에서 거주하였다. 친아버지는 신태래(申泰來), 어머니는 김석현(金碩玄)의 딸이며, 신태시(申泰始)에게 입양되었다. 신유한(申維翰)[1681~1752]은 33세 때인 1705년(숙종 31)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다. 1713년(숙종 39) 계사(癸巳) 증광시(...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초천(樵川).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신계상(申啓相)이다. 신정제(申正濟)는 부모가 동시에 전염병에 걸려 생명이 위급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모두 베어 피를 흘려 넣어 회생하게 하였으며, 입맛을 잃어 음식을 먹지 못하자 얼음 속에서 잉어가 솟아오르고 눈 속에서 토끼가 기어 나오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 그것으로 부모의 입맛...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한은(閒隱). 신정제(申正濟)의 고손자이다. 신종록(申鍾祿)[1830~1902]은 3세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의 손에서 자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를 극진한 효성으로 섬겼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앓아눕자 낮에는 곁을 지키며 보살피고, 밤이면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정화수를 길러 놓고 천지신명에게 어머니 대신 자신이...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귀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군. 현감 정후기락 애민선정비(縣監鄭侯基洛愛民善政碑)와 현감 이후수겸 영세불망비(縣監李侯秀謙永世不忘碑)는 현감인 정기락(鄭基洛)과 이수겸(李秀謙)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건립한 것이다. 현감 이후수겸 영세불망비는 1871년(고종 8)에 세워졌으며, 현감 정후기락 애민선정비의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쌍림면사무소 앞 정원...
-
경상북도 고령군 운수면 대평리에 있는 중국 절강시씨 후손들이 세운 재실. 시문용(施文用)은 1572년 명나라의 예부상서(禮部尙書) 시윤제(施允濟)의 아들로, 병부좌랑(兵部佐郞)을 지내다가 1597년 명나라의 황제 신종의 명을 받아 병력을 이끌고 합천, 가야산 등지에서 왜적을 토벌하고 조선에 머물러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임명되었다. 1622년 벼슬을 사직하고 타계함에 따라 그...
-
경상북도 고령군 우곡면 사촌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서원. 영연서원은 신덕린(申德隣), 박은(朴誾), 정사현(鄭師賢) 3현을 향사(享祠)하였다. 그 후 운수면 운산리에 있는 운천서원과 합쳐지면서 홍익한(洪翼漢), 김수옹(金守雍)의 위패를 옮겨 함께 추향하였다. 신덕린은 여말선초의 서화가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불고(不孤), 호는 순은(醇隱)이다.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성용(...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도학자 이기춘의 묘각. 국도 33호선을 따라 성주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덕곡삼거리에서 덕곡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다시 도로변에 있는 덕곡면 반성2리 표지석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100m쯤 진행하면 반성2리 경로회관을 지난 50m 부근에 옥산재가 위치하고 있다. 옥산재는 성산인 도학자 옥산 이기춘(李起春)을 위하여 고령, 성주, 현풍,...
-
1597년 고령 둔덕에서 정기룡이 왜장 다이라 스키마스를 생포하기 위한 작전.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선봉장으로 한 다이라 스키마스[平調益]가 이끄는 왜군 1,000명이 1597년(선조 30) 8월 초순에 고령 서남방 둔덕(屯德)[현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에 주둔하자 정기룡(鄭起龍) 장군은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명을 받아 기병 150명과 보병 800명을 거느리고 고령에...
-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원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우물. 마을에 우물이 다섯 개 정도 있었지만 상수도의 도입으로 우물의 기능이 사라졌고, 현재까지 마을 입구 중앙에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 중앙의 우물은 물의 빛깔이 좋고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우물과 샘은 지하수이다. 샘이 자연 발생적 용출이라면 우물은 땅속의 대수층(帯水層)에 통이나 관을 박아 끌어올리는 인위적인 것...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훈혜(薰兮). 증조할아버지는 유경해(兪景海)이다. 유세훈(兪世薰)[1583~1649]은 평소 지극한 정성으로 부모를 봉양하였는데, 아버지가 학질에 걸려 오랜 병고 끝에 입맛을 잃었다가 갑자기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였다. 하지만 엄동설한이라 고기를 잡을 수 없어 두껍게 언 얼음을 두드리며 통곡하자 물새가 날아와 물고기를 떨어뜨...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여경(汝慶). 유세훈(兪世薰)의 고손자이다. 유정환(兪鼎煥)[1716~1785]은 아버지가 오랜 병환으로 고생하자 13세의 어린 나이로 아버지의 인분을 맛보며 병세를 살폈으며, 생명이 위급함에 이르러서는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함으로써 연명하게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여 의원을 모시러 그믐밤에 홀로 고개...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계형(季亨), 호는 회와(晦窩). 할아버지는 윤지선(尹止善)이고, 아버지는 경주부윤 윤리(尹理)이다. 윤양래(尹陽來)[1673~1751]는 1699년(숙종 25) 진사를 거쳐, 1708년(숙종 34)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에 초임되었는데, 이때 글씨를 빨리 써서 비주서(飛注書)라는 별명을 들었다....
-
조선 후기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명종 대에 영의정을 지낸 윤인경(尹仁鏡)의 현손으로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윤사흠(尹思欽)이며, 아버지는 윤영(尹泳)이다. 아들인 윤리(尹理)는 경주부윤을 지냈으며, 손자인 윤양래(尹陽來)는 판돈녕부사를 역임하였다. 윤지선(尹止善)은 1644년(인조 22) 벼슬을 마다하고 지금의 고령군 운수면 봉평리로 내려와 덕...
-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의병이자 무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인로(仁老). 고려 말 현조(顯組)인 안동장군(安東將軍) 이미숭(李美崇)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광영(李光榮)이다. 이경령(李景齡)[1541~1597]은 지금의 고령군 쌍림면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용력(勇力)이 출중하였으며 무예를 익혀 솜씨가 비범하였다. 그러나 신왕조(新王朝)에 항거한 이미숭...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성산(星山). 호는 죽함(竹檻). 이근수(李根壽)[1832~1886]는 지금의 고령군 덕곡면 예리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하였지만 부모를 모시는 데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이웃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아버지가 방안의 냉기와 습기로 말미암아 몸에 마비가 일어나는 풍비(風痺)에 걸려 생명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고, 매일 하늘에 간...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여응(汝應). 고조할아버지는 명종 대 유일로서 사헌부지평에 천거된 근재(勤齋) 이동례(李東禮)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현룡(李見龍)이며, 할아버지는 통덕랑 이유달(李惟達)이다. 아버지는 옥천(玉川) 이익화(李翊華)로 현종 대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미수(眉叟) 허목(許穆)이 그의 재주를 귀하게 여겨서 강릉참봉에 천거하였다....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자소(子韶), 호는 현와(弦窩). 아버지는 이세량(李世良)이다. 이도(李蒤)[1593~?]는 문장이 일세의 사표가 되었으며, 1619년(광해군 11) 생원시에 급제하였다. 관지찰방을 지냈으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전식(全湜)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귀원리에 이도가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재실...
-
조선 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성산(星山).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이득춘(李得春)이다. 강양정씨(江陽鄭氏) 어모장군 정림(鄭琳)의 딸과 결혼하여 4남 2녀를 두었다. 이동길(李東吉)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송암(松庵) 김면, 존재(存齋) 곽준, 모계(茅溪) 문위, 학암(鶴巖) 박정번 등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키고 군자금을 댔다. 전쟁이 끝난 후 고령 향안(鄕案)을 앞장서...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성산(星山). 아버지는 이언함(李彦涵)이다. 이득춘(李得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면(金沔), 곽준(郭䞭), 문위(文緯), 박정번(朴廷璠)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웠다. 은첨지중추부사(恩僉知中樞府事)에 올랐으며, 전쟁이 평정된 후에는 고령 향안(鄕案)을 제정하여 풍속 교화에 힘썼다....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학생. 본관은 여주(驪州).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순국한 이경령(李景齡)의 후손이다. 이병규(李炳奎)는 1862년(철종 13) 진주민란[임술민란] 당시 어사 서상지(徐相至)의 특별 추천으로 진주명사관(晉州明司官)이 되어 이한필(李漢弼)과 더불어 난민을 진정시켰다. 진주에서 발생한 임술민란을 진정시킨 공으로 어사로부터 『상서(尙書)』 한 질을 상으로...
-
조선 후기 고령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안악(安岳). 판서 이호(李灝)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욱(李旭)이며, 아버지는 이희직(李希稷)이다. 이희직은 임진왜란 당시 조호익(曺好益)과 더불어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이석번(李碩翻)은 선조 때 무과에 등제하여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을 지냈다. 임진왜란 당시 고령을 비롯하여 청도, 현풍, 진주 일대에서 의병 활동을 펼쳤다....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에 있는 이수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비석. 이수겸 사창불망비는 1870년 현감 이수겸의 사창(社倉) 운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안화리에 있다고 조사되었으나, 현지 확인 결과 주민들도 소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 자료를 통해 볼 때, 호패형으로 비석 전면이 마모되었다. 대자(大字)는 잘 보이지만 소자...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도숙(道叔), 호는 송천(松川)·우재(尤齋)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이춘형(李春亨)이며, 어머니는 공인(恭人) 순흥최씨(順興崔氏)이다. 독자로 태어났다. 인천이씨(仁川李氏) 부인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 이영숙(李永淑)[1564~1630]은 1589년(선조 22)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이어서 무과에 등제하였다. 임진왜란이...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대이(大而), 호는 매헌(梅軒). 할아버지는 유일(遺逸)로 천거된 이동례(李東禮)이며, 아버지는 국포(菊圃) 이문룡(李文龍)[1548~1655]이며, 어머니는 진양하씨(晉陽河氏)이다. 이문룡은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이며, 병자호란 당시 형 이현룡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으나 항복 소식을 듣고 미산(微山) 아래에서 은거...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이의상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비석. 당시 양전리 일대에는 수리시설이 좋지 못하여 작황이 나빠 주민들의 생활이 몹시 어려웠는데, 현감 이의상(李宜相)이 많은 주민들을 구제하였다. 이에 지역 주민들이 그의 공을 기리고 추모하고자 1800년 청덕애민비를 건립하였다. 개진면 양전마을과 하양전마을 도로변에 있다. 비신은 호패형으로 규모는...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성백(誠伯), 호는 죽포(竹圃). 이현룡(李見龍)은 일찍이 한강(寒岡) 정구(鄭逑)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627년(인조 5) 홍다시(洪多時)의 난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1635년(인조 13)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천거로 참봉에 제수되었다. 병자호란 때 다시 창의하여 오위사정·별제·주부를 역임하였다. 이경석(李景奭)...
-
조선 후기 경상북도 고령군 출신의 열녀(烈女). 광산이씨(光山李氏) 모재(茅齋) 이홍우(李弘宇)의 딸로 나이 19세 때 임진왜란을 당하여 피난을 가다가 왜적을 만나게 되었다. 왜구는 이씨를 희롱하며 손목을 잡았다. 그러자 이씨는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칼을 꺼내어 왜구에게 잡혔던 자신의 손목을 잘라버렸다. 이씨의 단호한 행동에 겁을 먹은 왜구는 도망치듯 물러갔다. 하지만 잘린 손목의...
-
1592년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맞서 고령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부산포를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왜군의 주력 부대는 동래-기장-좌수영-울산-경주-영천-의흥-군위-문경의 좌로(左路)와 동래-양산-밀양-청도-경산-대구-안동-선산-상주의 중로(中路), 동래-김해-창원-영산-창녕-현풍-성주-지례-금산-추풍령-영...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판언(判彦). 전극창(全克昌)은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봉사를 역임하였고, 1637년(인조 15) 북쪽 변방에 보고가 있어 창솔의려북병사 재임 중에 안주 전투에서 부윤 이만성(李萬成)과 함께 순절하였다. 호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시호는 충경공(忠敬公)이다....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유학자이자 의병. 본관은 성산(星山). 시조는 전호익(全虎翼)이며, 7대조 전이갑(全以甲)은 고려 태조를 도와 태사(太師)가 되었다. 파조이자 5대조 성산백(星山伯) 전순(全順)은 공양왕 대 헌납(獻納)의 벼슬을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자 향리에 은거하였다. 고조할아버지는 감찰 전현노(全玄老)이며, 증조할아버지는 형조참의 전전중(全殿中)이다. 할아버지는 학행으...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이지(以之), 호는 경모재(敬慕齋). 할아버지는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를 지낸 전극창(全克昌)이다. 전주국(全柱國)[1692~1777]은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33세가 되던 1723년(경종 3) 부친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를 하였고, 1728년(영조 4) 모친상을 당하여 3년간 여막을 지켰다. 1734년(영조 10) 국상...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점필재 종택은 조선 후기 영남 사림파의 종조인 김종직(金宗直)[1431~1492] 가문의 종가이다. 김종직은 길재(吉再)의 학풍을 계승한 김숙자(金叔滋)의 아들로 1453년(단종 1)에 진사가 되고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 사가독서(賜暇讀書)하고 1462년(세조 8)에 승문원박사로 예문관봉교를 겸하였...
-
조선 후기 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창녕(昌寧).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여동생이며, 남편은 월담(月潭) 정사현(鄭師賢)이다. 정사현 처 창녕조씨(昌寧曺氏)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계절마다 의복을 지어 묘소 앞에 드렸다가 불에 태우는 일을 3년간 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자식들을 불러 놓고 “나는 언제나 너희 아버지를 뒤따르고자 하였으나 너희들이 어려서 차마 그러지 못하고...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중린(仲鱗). 아버지는 정사현(鄭師賢)이며, 큰아들로 태어났다. 아들로 정유례(鄭有禮), 정상례(鄭尙禮)가 있다. 정서(鄭序)는 임진왜란 때 아들 정유례, 정상례, 조카 정이례(鄭以禮), 정준례 네 사람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병절교위(秉節校尉)에 제수되었다....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무신.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신숙(藎叔). 할아버지는 정희년(鄭熙年)이고, 아버지는 정항(鄭恒)이다. 정언충(鄭彦忠)은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1585년 서생포에 수군 만호로 부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인홍의 창의군에 가장(假將)으로 참여하여 무계전투에서 싸웠다. 1597년 남원부사에 제수 되었다. 1605년...
-
1597년 정유재란 때 고령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에 맞서 싸운 전투. 1597년(선조 30) 왜군이 조선을 재침략한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8월 초순 왜군이 고령 방면으로 침입하자 정기룡(鄭起龍) 장군이 고령에서 왜군과 맞서 7월 15일 도진리전투, 8월 7~8일 둔덕대첩, 8월 16일 용담천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할아버지는 정우(鄭堣)이다. 정집(鄭潗)은 영조 무신란(戊申亂) 때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자 그 처분의 부당성을 상소하였다. 무신란 당시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에서 유명철(兪命哲)이 진을 치고 항거할 때 참여하여 쌀과 옷을 하사(下賜)받았다....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 정자. 제삼정이 위치한 개포리는 남동쪽 경계를 낙동강이 흐르고, 남서쪽 경계를 회천이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성산면과의 경계 지역에는 제석산(帝錫山)[389m]이 동서로 뻗어 있으나 곳곳에 평탄한 농지가 있고, 또 낙동강 변을 중심으로 농경지가 발달하여 농산물 생산이 풍부하다. 고령 현감 이형중(李衡仲)이 부임하여 송천방(松泉坊)...
-
조선 후기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해주오씨(海州 吳氏) 오원(吳瑗)의 딸이며, 조규승(曺奎承)의 아내로 병든 시아버지를 봉양하는데 효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시아버지의 병이 너무 깊어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누군가가 인육을 먹으면 효험이 있을 것이라 하여 오씨는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시아버지에게 드렸다. 그러자 시아버지의 병세가 점차로 차도를 보였다....
-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김재협(金載協)의 딸이며, 조범환(曺範煥)의 아내로 시집을 온지 얼마 되지 않은 21세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김씨는 손수 남편의 묘소 옆에 거처를 짓고 신주를 받들었다. 김해김씨(金海金氏)가 시묘를 하는 동안 길쌈을 하여 남편 무덤의 모든 석물을 마련하였다. 그 후에도 김씨는 시묘살이를 그치지 않고 평생토록 이어갔다. 경상북도 고령군...
-
조선 후기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출가한 효부. 현감을 지낸 임중수(林重秀)의 딸이며, 조상벽(趙相璧)의 아내로 평소 시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모셨다. 임씨는 남편이 병으로 생명이 위급하게 되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로 소생케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고, 얼마지나지 않아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오씨는 장례가 끝나는 날 남편의 뒤를 따르기 위해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주변...
-
조선 후기 고령 지역의 열녀.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진사(進士)를 지낸 하서천(河瑞千)이며, 남편은 조정필(趙廷弼)이다. 조정필 처 진주하씨(晋州河氏)는 남편의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곡을 하였는데, 그 곡소리가 처음 상을 치를 때와 같았다. 아들을 잃은 시아버지의 슬픔을 씻어 드리기 위하여 온갖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그러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하늘을 우러러보며 울부...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월막리에 있는 곽홍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재실. 재실은 주로 시조나 중시조의 묘소 근처에 세워진 건물로, 시향제나 묘사의 준비 장소로 사용되거나 문중의 종회 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또한 제사에 참여하는 후손들의 음복과 망제(望祭), 숙식 제공, 제사에 필요한 물건의 보관, 제사 음식의 관리 등의 기능을 한다. 곽홍지(郭弘址)[1600~1656]의...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에 있는 오운을 모신 불천위 사당. 사당(祠堂)은 선현과 조상의 업적과 넋을 기리고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건물로 매년 정기적으로 제향을 올린다. 특히 국가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은 인물에 대해서는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 내에 모시면서 계속적으로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불천위(不遷位)라고 한다. 죽유 오운 사당은 오운(吳澐)[...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죽유 종택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의병장인 오운(吳澐)을 기리기 위해 지은 종가이다. 오운[자는 태원(太源), 호는 죽유(竹牖) · 죽계(竹溪)]은 1540년에 출생하였으며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다. 1566년(명종 21) 별시문과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성균관에 등용되어 학유, 직강 등을 지내고...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오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진주하씨와 나주임씨의 비각. 열녀 진주하씨는 선비 조정필(趙廷弼)의 처이며, 진사 하서우(河瑞于)의 딸로 1632년(인조 10)에 태어나 18세 되던 해에 조씨 문중으로 시집와서 2년 후에 남편이 죽자 삼우제를 지낸 후 독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조정에서 알고 1758년(영조 34) 정려를 내렸다. 열녀 나주임씨는...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창녕조씨 정려비. 임진왜란 때 김면, 곽재우 등과 같이 왜병에 대항하여 공을 세운 정서(鄭序)의 부친 월담(月潭) 정사현(鄭師賢)의 부인인 창녕조씨의 정려 사실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건립과 관련해서는 “숭정기원후사기사삼월일구대종손유학진주정세권립생원경산이우세근찬구대손유학정민세근서(崇禎紀元後四己巳三月日九 代宗孫幼学晋州鄭世権立生員京山...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쾌빈리에 있는 조선 후기 와요지. 대가야읍에서 국도 33호선을 따라 성산면 방향으로 가다가 쾌빈교를 지나면 왼쪽에 쾌빈리 정방마을이 나온다. 쾌빈리 와요지는 정방마을의 끝 부분에 해당하는데, 해동디오팰리스로 들어가는 진입로 옆 쾌빈리 고분군이 분포하는 산기슭에 위치한다. 처음 확인했을 당시에는 민가 뒤쪽의 산기슭을 절토하는 과정에서 유적이 노출되어 있었다....
-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고령의 도공 팔산(八山)이 이룩한 일본 도자기 문화의 일맥. 오늘날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말한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강토 방방곡곡에서 무차별로 끌고 간 수많은 조선 도공들을 일본의 사쓰마[薩摩]와 아리타[有田]·가라쓰[唐津]·아가노[上野]·다카도리[高取]·하기[萩]·야쓰시로[八代]·소다이[小代] 등...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박경가의 업적을 기록한 조선 후기 비석. 학양(鶴陽) 박경가(朴慶家)는 조선시대 순조 때 사람으로 고령인 박문국(朴文国)의 아들이다. 7세 때 모친상을 당하였으나 장례를 잘 치렀다. 집이 가난하여 몸소 고기를 잡아 반찬을 장만하였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께 피를 먹이는 등 병환을 잘 간호하여 관찰사와 고을 원님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입재...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성균진사를 지낸 학양(鶴陽) 박경가(朴慶家)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 및 문하생들이 지은 건물이다. 박경가의 자는 남길(南吉)이며 본관은 고령으로 1779년에 태어났다. 『사마방목(司馬榜目)』에 의하면 1810년(순조 10) 그의 나이 32세 되던 해에 경오(庚午)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三等) 5위로 생원진...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군. 합천에서 고령을 거쳐 서울로 가는 진상품을 인수인계하는 장소를 확정하고, 이 사실을 영원히 잊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합천군수와 고령현감이 1841년 1월에 세운 비석이다.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 속칭 개실마을[佳谷] 앞 도로변에 있던 것을 도로 확·포장 공사시 비석을 보존하기 위해 도로에서 마을 쪽으로 조금 들어가 있는...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우물. 해방 이후 약 130호에 이르던 개실마을에는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구가 줄어들어 현재는 약 62가구가 생활하고 있다. 맨 처음에는 개실마을 뒷산 계곡을 따라 나오는 맑은 물을 먹다가 김종직 종택 내부에 우물이 생겼고, 콩밭골에도 마을 공동 우물이 만들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물과 샘은 지하수이다. 우물은 땅속의 대수층(帯水層...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합가2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요지. 쌍림면에서 합천군 율곡면으로 넘어가는 국도 33호선을 따라 가다보면 합가리마을이 나온다. 합가리는 크게 개실마을이 있는 합가1리[바깥개실마을]와 합가2리[안개실마을]로 나누어지는데, 합가2리 백자요지는 합가2리의 샛담마을 뒤편에 있다. 즉 샛담마을 뒤편에 형성된 골짜기인 가내실골이 끝나는 지점에 민가 1채가 있는데, 합가...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기재 김수옹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조선 후기 재실. 기재 김수옹은 1513년 월기[지금의 대가야읍 지산리]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글의 이치를 깨달았다. 또한 겸손과 미덕을 겸비하고 용감했으며, 특히 큰 절개를 가져 상대가 낮다고 교만하지 않고 세도가 있다고 아부하지 않는 대쪽 같은 기질이었다. 김수옹이 1559년(명종 14) 죽자...
-
조선 후기 고령 출신의 효자.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여보(儷甫). 아버지는 허명신(許命申)이며,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허항(許伉)[1636~?]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이웃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어머니가 병들어 꿩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꿩이 홀연히 부엌으로 날아들었고,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이 덮인 못 위로 고기가 뛰어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이 같은 기이...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진양정씨 문중 재실. 대가야읍 중앙 공영주차장에서 합천 해인사 방면으로 400m가량 떨어진 고령군청 부근 도로변에 접해 있다. 450여 년 전 월담 정사현이 남명 조식과 강마도의지소(講磨道義之所)로 건립하여 월담정이라 하였으며, 150여 년 전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이건하면서 이름을 황산재로 개칭하였다. 본체 건물은 1m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