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짚을 소재로 물고기집을 만들었어유. 물고기들이 짚으로 엮은 집을 들락거리듯 사람들도 우리 마을에서 쉬고 교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예술을 주제로 열리는 2006년도 ‘예술과 마을’이 7월 25일 개막식을 열고 8월 21일까지 신풍면 동원리 원골마을에서 작품 전시를 하였다. ‘예술과 마을’ 예술제는 2006년이 10회째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
내산리 정사골 뒷산에는 일명 평사할머니묘로 통하는 무덤이 있다. 묘는 정사골 뒷산 정상에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산순날이라 부르고 있다. 평사할머니의 후손인 김현진 씨는 이 무덤이 여기에 있게 된 데에는 비밀스런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평사할머니로 불리는 인물은 바로 한재 이목의 처이자 이세장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남편이 무오사화로 처형당하자 어린 아들을...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평기리에 있는 시멘트 제품 생산공장. 시멘트를 원료로 사용하여 시멘트 2차 제품을 생산하고, 그에 따른 이익 창출과 함께 레미콘 산업의 발전을 목표로 건립되었다. 아세아산업개발 공주공장의 전신은 대성산업개발이다. 대성산업개발은 1990년 12월 6일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평기리에 대성기업의 계열사로 설립되었다. 4년 뒤인 1994년 3월...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공주대학교 내에 있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 업체. 아이뮤직소프트는 멀티미디어 전문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로서 동영상, 정지영상, 음향, 애니메이션 등의 멀티미디어 솔루션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는 21세기 인터넷·정보화 시대에서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다양한 미디어를 빠르게 처리, 가공하는 기술과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하여...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음력 1월 15일에 남녀가 모든 행동을 아홉 번씩 반복하는 권면 의례. 농군들 사이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은 농군의 명절이다. 바쁜 농사철을 준비해야 하는 준비 시점임을 뜻한다. 본격적인 농사를 앞두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차원에서 많이 먹고, 일도 많이 하라는 의미의 권면 의례이다. 장정들 사이에는 “보름 밥은 아홉 번 먹고 나무도 아홉 짐을 해야 한...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 안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보흥리 안골 고분군은 우성면소재지에서 청양 방면으로 약 2.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형성된 능선의 동남사면 하단부에 해당하며, 현재는 산림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흥리 안골 고분군은 1986년 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이후 구체적인...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발양리에 있는 산. 정확한 유래는 찾아볼 수 없으나, 안골산의 서편 정면에 있는 곡저 평야인 안산들과 안산을 통해 안쪽산, 안쪽골짜기라는 표현의 줄임말로 생긴 지명으로 추측된다. 이인면과 계룡면 사이는 골짜기와 산릉이 번갈아가며 나타나고 있는데, 안골산은 그 경계부의 중앙이자 안산들의 동편에 위치해 있다. 높이는 321.8m이며, 이 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병두(安秉斗)는 1910년 7월 4일 충청남도 공주군 주외면 옥룡리 364번지(현재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36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안병두는 공주소년동맹 집행위원장으로 1931년 10월 충청남도 공주군 우성면 방흥리에서 소작쟁의가 발생하자 박명열(朴命烈)과 함께 쟁의를 지도하였다. 1931년 12월에는 이학근(李學根) 등...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덕지리에 있는 산. 안산은 높이가 96.3m이며, 안구상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잔구성 구릉이다. 안산의 동서로 곡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남동쪽으로 산릉을 따라 내려오면 하안 단구가 형성되어 있다. 북쪽은 낯몽딩이고개이다. 안산으로부터 남동쪽으로 내려오면 화정들이 있으며, 남쪽으로 부여군 초촌면의 송정들로 이어지고 있다. 안산 동...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성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석축 산성. 송곡리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을 축조한 배경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다 보면 안산교(案山橋)가 나온다. 송곡리 산성은 안산교 왼쪽에 있는 성재의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 안소랭이에서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산제와 노제. 대산리 안소랭이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호환을 막기 위해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의 신격은 ‘복주산신령’이다. 산제를 지내기 열흘이나 일주일 전에 공양주를 선출하여 음식 장만과 제사를 주관하도록 한다. 제비는 동계 기금으로 충당한다. 동계 기금은 마을에 있는...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자리한 지대가 높고 양지바른 곳에 마을이 있다 하여 고양골이라 하였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독안리(獨安里)와 고양리(高陽里)에서 ‘안(安)’자와 ‘양(陽)’자를 따 ‘안양(安陽)’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성두면(城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성두면 독안리·고양리·중산리(中山里)·덕암리(德岩里)·산현...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안영사(安永寺)가 있었던 곳으로 안영(安永)골 또는 안영동(安永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곡화천면(曲火川面) 지역으로, 1914년 곡화천면 만매(萬梅)·신매(新梅)·월산리(月山里)·월봉리(月峯里)·탑동(塔洞)·윤산리(尹山里)·중산리(中山里)·사양(沙陽)·남곡리(南谷里)·반송(盤松)·신기(新基)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안영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 터. 탄천면 안영리의 서남쪽에 있는 탑산골 계곡에 있다. 사역(寺域)의 중앙 부분에는 자연석을 포개어 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 석축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불탑(佛塔)이라 부르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지명과 관련하여 볼 때 탑지로 추정된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남아 있던 탑이 외부로 반출되었고, 마...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가신(家神)을 초청하여 치르는 굿거리의 하나. 공주 지역에서는 보통 정초나 가을에 안택고사를 모신다. 정초에 행하는 안택고사는 특히 액막이의 성격이 강한데, 이는 집 안에 있는 여러 신들을 잘 달래어 한 해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또한 명절이나 별식이 생기면 이를 집안신에게 골고루 바치기도 하며,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동네...
-
충청남도 공주시에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 길이는 약 10㎝이다. 머리와 몸통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다. 입은 주둥이 밑에 달려 있으며 밑에서 보면 말굽 모양과 비슷하다. 머리는 약간 튀어나와 있고 눈은 작고 두 눈 사이가 넓고 머리 중앙보다 약간 앞과 위쪽에 위치한다. 입은 작고 위 턱은 밑으로 길게 늘어뜨릴 수 있으며 윗 입술은 얇고 가늘며 아래 턱...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10㎝이다. 모래주사와 비슷하게 생겼다. 몸 빛깔은 등 쪽이 청갈색이며 눈 밑에는 희미한 1줄의 암색 띠가 있다. 배 쪽은 은백색을 띤다. 몸은 거의 원통형이며 약간 납작하다. 배 쪽은 납작하여 바닥에 붙는다. 눈은 머리 위쪽에 붙어 있으며 아래에서 본 입의 모양은 말굽모양이며 비교적 넓다. 위턱이 아래턱...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 호는 애일당(愛日堂). 판중추부사 문정공 정이오(鄭以吾)[1347~1430]의 아들이다. 그러나 정분에게 자손이 없어 종가에 봉사손(奉祀孫)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 자신의 장자인 정지산(鄭之産)을 그 종숙(從叔)인 정분의 계자(系子)로 입양시켜 대를 잇게 했다. 진주정씨가 이곳 호계리에 정착하게 된...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가정이나 개인에게 닥칠 ‘액’을 미리 막는 의례. ‘액(厄)’이란 재액이나 고통, 병고 따위의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모든 재액과 질병 등은 액신(厄神)이나 액귀(厄鬼)가 몸에 침입하여 일어난 현상으로 믿었다. 따라서 이런 액을 면하려면, 액신이나 액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미리 ‘막거나’ ‘건너뛰어야’ 한다. 또한 일단 병에 걸리...
-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야학을 통해 민족 실력 양성을 꾀했던 교육 운동. 야학은 3·1운동 이후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이 전개되면서 교육열이 고조된 데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일제의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 정책으로 인하여 교육 시설이 부족한 데다가 민족 교육이 온상지로 지목되어 사립 학교가 탄압을 받고 있어서 정규 사립 학교 설립이 어려웠다. 여기에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의무교...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화월리에 있는 산. 약산은 약산동의 주민들이 마을의 흉제를 예방하기 위해 산신당을 짓고 매년 정월 보름 영시에 산제를 올리던 곳이었다. 전국에 약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산이 많이 있는데, 보통 약산은 명칭 그대로 좋은 약초(藥草)나 약수(藥水)가 나올 때 붙여지곤 한다. 반면에 사곡면 화월리의 약산은 마을의 흉사를 예방하는 산신당을 모...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입석리에 전해지는 양반을 풍자한 민요. 관찰사가 근무했던 충청남도 공주의 특성상 양반을 비난하거나 풍자하는 민요는 많지 않다. 풍자를 담은 노랫말 또한 노골적이지 못하고 생활 속에 존재하는 일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고을 사또나 방백의 횡포가 심한 경우 이들이 빨리 죽기를 원하여 하는 말이 ‘땡감두 떨어지데’ 하는 식으로 표현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南原). 남원양씨의 공주 입향조(入鄕祖)인 양계무(梁季武)의 8세손으로 양정규(梁廷揆)와 홍관휴(洪觀休)의 딸 남양홍씨 사이에서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양진언(梁震彦)[1791~1853]은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효성이 매우 지극하였다. 16세 되던 해, 어머니의 병환이 매우 위중해지자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양천손(梁千孫)은 1902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8년 36세의 늦은 나이에 공주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양천손은 1922년 20세부터 공주 읍내에서 도자기 상점을 경영하여 부를 축적하였으며, 주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1935년에는 공주주조 조합장을 역임할 정도였다. 특히 양천손의 특별한 양조방법은 애주가들로...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에 양화부곡(良花部曲)이 있었고, 양화산성(陽花山城) 아래에 위치하여 양화(陽化)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공주군 진두면 신기리(新基里)·금곡리(金谷里)·능산리(陵山里)·송현리(松峴里)가 통합되어 양화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양화산성(良化山城)은 공주 남쪽 40리 지점에 있는데,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050척이고,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양화산성은 석성이었고, 성내에 우물이 한 곳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양화산성(良化山城)은 공주 남쪽 40리 지점에 있는데,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050척이고,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양화산성은 석성이었고, 성내에 우물이 한 곳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 전해지는 부녀자들의 인생 한탄조 민요.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신세 타령이라는 이름이나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신세 타령조 노래들이 전한다. 이 노래는 크게 남정네들의 소리와 여인네들의 소리로 나뉘고 이는 또한 한탄조로 일관하는 소리와 놀이마당에서 부를 수 있도록 힘없이 시작하여 흥겹게 바뀌는 것으로 나뉘는데, 「어떤 사람은 팔...
-
충청남도 공주시의 시화(市花). 개나리는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약 3m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회갈색으로 변한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의 긴 타원형이며 3개로 갈라지는 잎도 있다. 잎의 양면에는 털이 없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밝은 노란색으로 피는데 잎겨드...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 있는 공원. 어린이교통공원은 교통 안전에 대한 살아 있는 지식을 전달하고 놀이와 체험 학습을 통해 한발 앞선 새로운 모습의 어린이 교통 안전 체험 교육장으로서 어린이들이 보고, 이해하고, 느끼고, 체험을 통해 즐기며, 교통 법규 준수의 중요성을 인식해 장래 어린이들을 건전한 시민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조성한 공원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 지역에 큰 못이 있는데 그 못 속에 큰 고기가 많아서 고기가 춤을 춘다 하여 어무(漁舞)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지역으로, 1914년 정안면 어무리(漁舞里)가 어물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정안면 어물리가 되었다. 어물리의 대부분 지역에는 해발 고도 20...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하어리(下魚里)와 건천리(乾川里)에서 ‘어(魚)’자와 ‘천(川)’자를 따 ‘어천(魚川)’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성두면(城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성두면 건천리·하어리와 반탄면 소명리(召明里)·운암리(雲岩里), 정산군(定山郡) 목면(木面) 석화동(石花洞)·건예동(乾藝洞)의 각 일부가 통합...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어천리에서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어천리 장승제는 한 해 동안 주민들의 동안의 액운을 막고 마을에 전염병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민간신앙으로서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에게 제사를 지낸다. 다른 모든 마을 장승은 남녀 한 쌍인데 비해, 어천리 장승은 남자장승 하나에 부인장승 둘이 있어 첩을 둔 장승...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 있는 산. 옥백산·억복산이라고도 불리며, 전국에서도 유명한 활석광산이 있던 산이다. 서반봉 꼭대기에는 돌로 만든 간결한 제단이 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외지 사람들이 와서 가끔 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서반봉은 명우산 남쪽 산릉에 해당하는 봉우리로 명우산과 같은 화강편마암, 주입편마암, 안구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산봉우...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매체를 통하여 사실을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언론은 넓게는 말이나 글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또는 말이나 글 그 자체를 의미하며 좁게는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또는 그 관련 기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언론이라는 용어는 주로 이러...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언평(彦平), 호는 포신(逋臣) 또는 포옹(逋翁)이다. 생부는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이다. 우의정을 지낸 종숙(從叔) 정분이 후사 없이 죽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정효안이 자신의 장남인 정지산을 정분의 계자로 입양시켰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깊어 이름을 떨치더니 1445년(세종 27) 사마시에...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에서 엄대암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7년 공주시에서 시행 중인 ‘5도 2촌’ 정책의 일환으로 『공주 5도2촌』이라는 이야기 자료집이 발간됨에 따라, 현지조사 과정에서 주민에게 이길구가 채록하였다. 백제 말기에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 무르실의 아랫마을에는 힘이 센 엄대장이란 장사가 살고 있었다.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의 상황이라...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동학사 인근에서 개최되는 야외 무용 예술제. 1996년 홍보를 통해 관객을 모으는 대신 현대 예술 분야와 관련된 특별한 문화가 없는 계룡산에서 ‘계룡산 자락에 가면 달리 광고가 있든 없든 볼만한 춤 공연이 자연 속에서, 그것도 무료로 펼쳐진다’는 것을 인식시켜 관객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계룡산에서의 춤 공연이 기획되었...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집안의 재물을 지켜주는 수호신. 제주 지역에서 재신(財神)이며 사신(蛇神)인 업은 칠성신으로 여겨진다. 이 칠성신은 안 칠성과 바깥 칠성이 있는데 그 내력이 칠성 본풀이이다. 이와 관련하여 업에 대한 믿음에서 상업학교의 상징에는 예외 없이 뱀의 도상이 들어가 있다. 인도 철학에서의 업(業)은 과거 행위가 미래 세계인 다음 생에 영향을 끼...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 자는 여국(汝國).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의정부좌참찬을 지낸 최유경(崔有慶)의 9세손이다. 1646년에 최발원(崔發源)과 박계성(朴繼聖)의 딸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행용양위부사과(行龍驤衛副司果)를 지냈다. 겨울에 병환 중인 어머니께 잉어를 구해드렸으며, 부모가 병들자 허벅지를 베어 드려 효험을 얻기도 했다....
-
삼국시대 백제 제24대 왕. 백제 제22대 왕이었던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동성왕을 가리켜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곤지의 5명의 아들 중 둘째’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성왕(東城王)[재위 479~501]은 모대(牟大)·말다(末多)·마제...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신영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북서쪽과 남서쪽에 각각 산이 있어 해가 비치는 시간이 짧으므로 어두니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여드니라 부르게 되었다. 혹은 이 마을로부터 공주시내, 예산, 온양이 각각 80리가 되어 여드니라고도 한다. 팔십리, 팔계라고도 부른다. 여드니는 북서쪽에 있는 장산[403m]과 남서쪽에 있는 녹산[288m]에...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이고, 호는 석호(石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아들은 송시열(宋時烈)의 사위 윤박(尹搏)과 목천현감을 지낸 윤륜(尹掄)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급제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주서·시강원설서·예조...
-
중장1리는 여섯 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들은 각각 약간 거리를 두고 서로 다른 골짜기에 형성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여섯 개의 마을은 때로는 함께하고 때로는 각자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다음과 같이 각각 1반~7반으로 편성되어 있다. 1반 : 행이펄 2반·3반 : 솔아티 4반 : 삼거리 5반 : 갑산수 6반 : 배살미 7반 : 윗장(상장)...
-
조선 중기 공주목제독을 지낸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이다. 아버지는 조응지(趙應祉)이다. 이이(李珥),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65년(명종 20)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567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68년(선조 1) 관직에 올라 정주목, 파주목, 홍주목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퉁가리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 길이는 약 10~14㎝이다. 몸통 앞부분은 원통형에 가까우나 뒤로 갈수록 옆으로 납작하다. 주둥이는 몹시 납작하며 주둥이 끝에 입이 있고 좌우로 길게 찢어졌다. 아래 턱이 위 턱보다 짧고 입술은 두껍다. 입의 위쪽 앞에 가는 이빨의 넓은 이빨 띠가 있으며 아래 턱에는 좁은 이빨 띠가 있다. 눈은 작으며 머리의 위...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신종교의 하나. 1872년 미국의 찰스 러셀에 의해 설립되었다. 뉴욕의 브루클린에 본부가 있으며 한국에는 1912년 선교사 홀리스터에 의해서 전파되기 시작하여 현재 1,400개 회중에 9만 4천여 명의 신도가 있다. 왕국회관이라 부르는 교회당에서 매주 세 차례의 집회를 가지고 있다. 각 회중(會衆)들은 정해진 구역이 있으며 증인마다 전도할 이웃들이...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여호와의증인 교단 소속의 교회. 여호와의증인 왕국회관은 충청남도 공주시의 여호와의증인 신자들이 집회와 침례를 행하는 교회당이다. 1958년 옥응두·이서주 부부가 워치타워 성서책자협회 한국지부로부터 임명되어 공주 지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0년대 초에는 국민은행 공주지점에서 설립되었으며, 여호와의증인이었던 국민은행 공주지점장...
-
동원 1리의 이장을 맡아온 역대 이장들은 마을을 봉사하고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른 마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원골의 이장들은 임기는 보통 2년이지만, 사정에 따라 연임하기도 하였다. 신풍면사무소나 동원 1리 마을회관 등에는 역대 이장에 관한 자료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동원 1리 이장을 맡고 있는 조학묵 이장으로부터 과거부터 현재까지 동원리...
-
중장1리의 관문인 통미산 입구에는 주유소를 가운데에 둔 삼거리가 있다.(삼거리마을과는 상관없다.) 여기에서 갑사 방향으로 가면 중장1리의 삼거리마을로 들어가고, 좌측의 대전 방향으로 가면 윗장마을과 배살미마을이 있다. 배살미마을은 중장리에서 가장 전통있는 삼척진씨의 터전이다. 삼척진씨는 계룡면 열두대장의 대표적인 세 성씨중의 하나로, 1500년대 후반에 진응린(陳應麟)[...
-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공주시의 역사. 공주는 금강의 중류에 위치한 역사 도시이다. 선사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부 지역 거점으로서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 중부 지역 대표 도시의 하나이다. 남한에서 최초로 조사된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50만 년 전 인류가 거주하던 공간이며 신석기와 청동기시대를 거치며 도시 형성이 이루어진다....
-
고려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전통시대 육상 교통로에 설치되어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중앙과 지방 및 외국과의 공문서 전달, 변경의 긴급한 군사 정보 전달, 관물 수송, 관리 및 사신 왕래에 따른 숙박 등을 담당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통해 역(驛)은 삼국시대부터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 원(元)의 참적...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유구역이 있던 지역은 호남과 서울을 연결해 주는 중심 통로로 조선시대 교통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나라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이 6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
-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인 문중대의 문집. 문중대(文重大)[1919~1993]는 본래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출생으로 월남하여 충청남도 공주에 정착하였으며, 한때 공주 금성시사(錦城詩社)의 회장을 맡아 공주 지역 시회(詩會)를 이끌었다. 1979년 문중대의 회갑 때 받은 수연시(壽筵詩)를 모아 1980년 『연강수연시집(延岡壽筵詩集)』을 간행할 때, 책 뒤편에...
-
충청남도 공주시의 시화(市花). 개나리는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약 3m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회갈색으로 변한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의 긴 타원형이며 3개로 갈라지는 잎도 있다. 잎의 양면에는 털이 없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밝은 노란색으로 피는데 잎겨드...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행해지는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내용을 전달하는 종합 예술. 연극은 삶의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경험에 기원을 두고 있어 다른 어떤 문화적 산물 못지않게 역사적·지역적·민족적 소산인데 비해 영화는 제작 과정에 창조적 요소와 기계적·기술적 요소, 그리고 경제적 요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제작자, 스튜디오, 카메라,...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성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석축 산성. 송곡리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을 축조한 배경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다 보면 안산교(案山橋)가 나온다. 송곡리 산성은 안산교 왼쪽에 있는 성재의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에 있는 산. 연미산은 산의 꼬리가 제비꼬리를 닮았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연미산은 높이가 192m이며, 공주시가지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공주시를 관류하는 금강이 북서 방향에서 남서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는 곳에 있다. 연미산 정상을 기준으로 북쪽은 안산암질암, 남쪽은 역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동-남서 방향의 단층이 연미산...
-
16세기 사림의 시대를 맞이하여 일찍이 사림화에 앞장섰던 부전동민들은 근대 신학문 수용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리하여 부전 대동계에서는 일제시기인 1920년대에 장자동학교라는 강습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이 학교는 약 3년간 유지되었다고 하는데, 이 때 신식교육 교사의 월급으로 산제답을 제외한 동답재산이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부전동 주민들은 이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 중에서 가장 성...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산웅리에 있는 미술 공원. 연미산(燕尾山)[239m]은 산의 형세가 제비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연미산은 제비가 금강을 박차고 하늘로 비상하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연미산은 2006년 8월 8일부터 10월 31일까지 약 3개월간 한국자연미술가협회인 야투가 추진하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개...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과 우성면 도천리에 걸쳐 있는 터널. 연미터널을 연미산 터널로도 부른다. 2003년에 준공되었으며, 서산과 대전을 잇는 국도 32호선상에 있다. 연미터널을 건설하기 이전에는 연미산의 서쪽 산과 들을 개착(開鑿)한 도로를 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연미터널의 도천리 방향 출구 인근에는...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과 우성면 도천리에 걸쳐 있는 터널. 연미터널을 연미산 터널로도 부른다. 2003년에 준공되었으며, 서산과 대전을 잇는 국도 32호선상에 있다. 연미터널을 건설하기 이전에는 연미산의 서쪽 산과 들을 개착(開鑿)한 도로를 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연미터널의 도천리 방향 출구 인근에는...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 무성산 정상부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석축 산성. 한천리 주민들은 홍길동이 축성하였다고 전하는데, 실제로 홍길동이 축성하였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 발굴 조사를 통해 축성 시기가 밝혀져야 산성의 축성 배경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주 지역에서 예산으로 통하는 국도 36호선을 타고 12㎞쯤 가면 사곡면 면...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신흥리에 전해지는 모내기(삭모) 노래. 공주시 일원의 모심는 소리는 지역에 따라 메나리에 가까운 경조 고장, 육자배기조 고장 등으로 나뉘어 차이가 심하고 변화가 많은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후렴이 거의 없이 부르는 마을부터, 후렴을 흘림소리라 하여 구음만으로 이루어진 마을, ‘어럴럴러 상사디야’를 부르는 마을까지 다양한 후...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의 높은 산이 연(蓮)꽃 형세이므로 연(蓮)마루 또는 연종(蓮宗)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사곡면(寺谷面) 지역으로, 1914년 사곡면 구수동의 일부가 통합되어 연종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구읍 연종리가 되었다. 연종리의 동부와 서부·남부로는 각각 해발 고도 300~...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연종리에서 음력 1월과 10월에 지내는 마을 제사. 연종리 산신제는 들보다는 산이 위주였던 시절에 호랑이를 보호하고자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다. 산신당은 마을 뒤편에 울창한 소나무 아래에 6.6116m² 남짓한 당집이며, 매년 음력 10월에 제사가 치러진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면서 초저녁에 시작된 제사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어울...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연종리 연마루에서 음력 시월 초이틀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연종리는 원래 사곡면에 포함된 17구의 하나였다가 1973년에 유구읍으로 편입되었다. 연마루에서 산신제를 모시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집안의 발전을 기원하고, 산신이 기도를 들어주어 무병장수하며, 산신제를 모시는 것으로 부자가 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있는 계룡산 연봉 중의 하나. 전설에 따르면 이성계가 계룡산 연천봉에 올라 제단을 차려 놓고, 이곳에 왕도가 서고 모든 일이 잘 되도록 천지신명께 엄숙히 기도를 드린 곳이라고 한다. 꿈에 신선을 만났는데 신선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명하였다 한다. 연천봉의 명칭 뜻 그대로 하늘과 이어진 곳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과 우성면 신웅리 사이에 있는 고개. 백제 때부터 선비들의 한이 서린 고개이며 연미산 비탈길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연미라는 이름은 산세가 제비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연치미고개의 정상은 높이 71m이다. 중생대 백악기의 역암층으로 되어 있고, 고개로 접근하는 길은 대부분 흙, 모래, 자갈로 이루어진 신생대 제4기의 충적층으...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연평부원군 이귀의 신도비. 이귀[1557~1633]는 연안이씨로,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모집하였고, 양곡을 거두어 개성으로 운반하여 서울 수복전에 공로를 세웠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623년(광해군 15)에는 김류(金瑬), 신경진(申景禛) 등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안동김씨의 열녀비. 향지리 열녀비는 지방 유림의 발의로 군수가 세운 열녀비이다. 안동김씨는 부안임씨인 임완수의 처로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죽는 슬픔을 맞았다. 그러나 흐트러짐 없이 지극 정성으로 3년간 남편의 묘소를 옆에서 보살폈다. 안동김씨는 남편의 3년상이 끝난...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계실리에서 장수 김기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62년 4월 5일 충청남도 공주군 사곡면 운암리에서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신수남(남)이다. 옛날 김기남이란 장수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닦아 말타기·활쏘기·칼쓰기를 잘해서 마을에서는 장차 훌륭한 무인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와 하대리에서 칠석날 열리던 두레 막음 민속놀이. 계룡면 중장리·하대리는 계룡산 아래 위치하여 지형이 삼태기 속처럼 안온하고, 하나의 생활 권역을 이루고 있었으며, 중장리·하대리 지역 12개의 두레는 여름두레를 먹는 날이 모두 칠석날로 같았다. 중장리 마루들[宗谷]에는 선인이 심었다는 12그루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는 큰 두레 마당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와 하대리에서 칠석날 열리던 두레 막음 민속놀이. 계룡면 중장리·하대리는 계룡산 아래 위치하여 지형이 삼태기 속처럼 안온하고, 하나의 생활 권역을 이루고 있었으며, 중장리·하대리 지역 12개의 두레는 여름두레를 먹는 날이 모두 칠석날로 같았다. 중장리 마루들[宗谷]에는 선인이 심었다는 12그루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는 큰 두레 마당이...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 전해지는 부녀자들이 놀이판에서 부른 민요. 「열둘이 얼러서」는 공주시 일원에서 흔하지 않은 난봉가류의 노래이다. 더구나 다른 난봉 소리는 앞부분에 정상적인 노랫말로 이어지다가 난봉소리로 가는 데 반해, 「열둘이 얼러서」는 처음부터 난봉의 노랫말로 시작되고 끝나는 특징을 보인다. 가락이 단조롭고 빠르면서도 청춘가와 유사한데 변화를...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8~10㎝이다. 몸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다. 긴몰개보다 크게 자란다. 주둥이는 다소 둥글고 큰 편이며 입도 매우 크고 입구석이 눈의 앞 끝에 닿는다. 1쌍의 입수염은 눈의 반지름보다 짧다. 옆줄은 몸 양쪽 한가운데를 지나며 앞부분이 배 쪽으로 활처럼 휘어 있다. 비늘은 크고, 옆줄의 비늘 수는 33...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승려이자 승병장. 속성은 박씨(朴氏)이고,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기허(騎虛)이다.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한 뒤 사명대사 유정(惟政)과 함께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공주 천련암(天蓮庵)에 있으면서 선장(禪杖)을 가지고 무예를 익히기를 즐겼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 수백 명을 규합하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갑사의 표충원에서 매년 10월 임진왜란 때 순국한 영규대사를 비롯한 800 의승의 넋을 기리는 제사. 2000년 11월 5일 갑사 표충원에서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승병 800명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마친 승장 영규대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대제(大祭)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하여 매년 시행되고 있다. 1594년 열반 이후 408년 만에 처음으로 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규대사의 묘.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당(騎虛堂), 속성은 박씨이다. 공주 출신으로 갑사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승병 궐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조헌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탈환한 후, 1592년 금산성 전투에서 항전하다가 부상을 입고 현재의 비각 자리에서 숨...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영규대사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을 기리는 비. 영규대사 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참지 못하고 승병장(僧兵將)이 되어 승려 수백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영규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래 휴정대사의 수제...
-
충청남도 계룡면 유평리에서 영규대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73년 임헌도 교수가 갑사에 가는 도중 만난 구십 노인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을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갑사에 가는 도중 만난 구십 노인이다. 영규대사는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조실부모하여 외로운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어느 날 나뭇짐을...
-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승려를 규합해 전장으로 나선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영규대사’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속성은 밀양박씨, 이름은 영규(靈圭), 호는 기허당(騎虛堂), 공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계룡산 갑사에 들어가 출가한 뒤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공주 청...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기독교 사랑을 실천하는 도덕인, 수준 높은 학력을 지닌 지식인,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지성인, 튼튼한 체력과 정서를 갖춘 건강인을 육성한다. 교훈은 박애·진실·면학이다. 공주 지역에 공주영명고등학교가 설립된 것은 1904년 샤프 목사가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로 공주에 오면서부터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의 노골적인 침...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기독교 사랑을 실천하는 도덕인, 수준 높은 학력을 지닌 지식인,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지성인, 튼튼한 체력과 정서를 갖춘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한다. 교훈은 박애·진실·면학이다. 1905년 미국에서 선교사로 파송된 앨리스 샤프(Alice Sharp, 한국명 사애리시)가 설립하였던 명설학교가 1906년 10월 15일 윌리엄스(...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은거한 문신 정달영의 문집. 『영암집(寧菴集)』은 2권 1책이다. 장정법은 선장본이다. 광곽은 사주쌍변으로 반곽 크기는 가로가 16.5㎝이고, 세로가 22.3㎝이다. 행수는 12행이고, 한 행의 자수는 25자이다. 서문은 정달영(鄭達泳)[1828~1891]의 4종손(四從孫) 정헌태(鄭憲泰)가 썼고, 발문은 정달영의 재종손(再從孫) 정헌극(...
-
1458년 세조의 명에 의하여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에 창건한 사찰. 1458년(세조 4) 세조가 명하여 창건되었다. 처음 사찰 이름은 묘은사(妙隱寺)이었으나,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인조가 영은사에서 피신한 뒤 은적사로 바꾸었다. 1616년(광해군 8) 영은사에 승장(僧長)을 두어 전국 8도의 사찰을 관장하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승병 합숙...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대방 건축. 조선 후기의 사찰에서는 강당과 대중방을 겸하는 건축물이 나타난다. 특히 한양 근교의 사찰에서 많이 보이는 건축 형태인데, 이를 대방 건축이라 한다. 건물 가운데 불단을 두고 법회와 강론, 염불 등을 행하기도 하는 커다란 승방 기능을 하기도 한다. 대방에 붙여 작은 방을 두거나 근처에 요사채를 두기도 한다. 따...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법당. 공산성 북쪽에 위치한 영은사의 정면 중심에 있다. 사찰 전체가 북향을 하고 있어 대웅전 역시 북향이다. 영은사는 조선 전기인 1458년(세조 4)에 처음 창간되었다고 하나 사찰의 연혁과 관련된 자세한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영은사에는 대웅전을 대신하여 원통전이 있으나 이 건물은 조선 말기...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동으로 제작된 범종. 공주 영은사 청동 범종은 크게 용뉴부(龍鈕部)와 종신부(鐘身部)로 구성되어 있어, 신라시대 이래 제작된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용뉴부는 용이 네 개의 발을 힘차게 아래로 뻗쳐 발가락으로 동종의 천판을 강하게 짚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역동적으로 보인다. 볼록한 용...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동으로 제작된 범종. 공주 영은사 청동 범종은 크게 용뉴부(龍鈕部)와 종신부(鐘身部)로 구성되어 있어, 신라시대 이래 제작된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용뉴부는 용이 네 개의 발을 힘차게 아래로 뻗쳐 발가락으로 동종의 천판을 강하게 짚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역동적으로 보인다. 볼록한 용...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법당. 공산성 북쪽에 위치한 영은사의 정면 중심에 있다. 사찰 전체가 북향을 하고 있어 대웅전 역시 북향이다. 영은사는 조선 전기인 1458년(세조 4)에 처음 창간되었다고 하나 사찰의 연혁과 관련된 자세한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영은사에는 대웅전을 대신하여 원통전이 있으나 이 건물은 조선 말기...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서 영은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주시 공산성내에 영은사라는 절이 있다. 임진왜란 때 산신령의 도움으로 왜적을 번번이 물리쳤다는 전설로 이 절에는 신령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로 영은사(靈隱寺)라 불렀다는 전설이다. 1956년 5월 7일 충청남도 공주시 중학동에서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보(湺)가 있어 전답(田畓)을 기름지게 하고 사람도 영생한다 하여 영생(永生)이라 하였고,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반영동(班永洞)과 냉정리(冷井里)에서 ‘영(永)’자와 ‘정(井)’자를 따 ‘영정(永井)’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하면(新下面) 지역으로, 1914년 신하면 반영동·냉정리·소학리(巢鶴里)·복동(福洞)·의동(儀...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 냉정에서 정월 열나흗날 공동 우물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냈던 마을 제사. 신풍면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영정리는 본래 신하면(新下面) 지역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마새와 냉정을 합쳐 반영리라 하였고, 복골과 성황뎅이를 합쳐서 영정리라 했다가 나중에 영정리로 통합하였다고 한다. 이...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 마새에서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 지역에서 둥구나무제는 봉정동 반선말, 정안면 보물리, 정안면 월산리, 정안면 대산리 죽암, 우성면 귀산리 심산, 신풍면 쌍대리 짐대울 등에서 치러진다. 정안면 보물리에서는 둥구나무제를 괴목제(槐木祭)라고도 부르는데, 제일(祭日)에는 둥구나무에 황토 무...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영천리, 한산리, 구화리 일부를 병합하여 한산리와 영천리에서 한 자씩 따서 한천으로 명명하였고, 이에 따라 한천지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천리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신령스러운 무성산(武城山)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마을이라 하여 영천(靈川)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한천지를...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영천리, 한산리, 구화리 일부를 병합하여 한산리와 영천리에서 한 자씩 따서 한천으로 명명하였고, 이에 따라 한천지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천리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신령스러운 무성산(武城山)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마을이라 하여 영천(靈川)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한천지를...
-
충청남도 공주시 중학동에서 영천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55년 7월 9일 공주시 중학동에서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고병운(남)이다. 공주시 중동초등학교 남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영천지가 있다. 옛날 백제 때 웅진에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어찌나 가난했는...
-
충청남도 공주시의 시화(市花). 개나리는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약 3m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회갈색으로 변한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의 긴 타원형이며 3개로 갈라지는 잎도 있다. 잎의 양면에는 털이 없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밝은 노란색으로 피는데 잎겨드...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산학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스승이 머물고 있는 도량으로 영원하고 궁극적인 행복을 선사하는 곳이며, 또한 도량에서 추구해야 할 일이 바로 중생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라고 믿기 때문에, 이 도량에 상주하는 대중은 물론 한 번 다녀가거나 절 이름을 생각만 해도 최고의 행복을 얻으라는 원력으로 영평사(永平寺)라고 한다. 조선시...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영화를 상영하는 전문 극장. 영화관은 영사를 위한 스크린과 음의 재생 장치를 포함한 스테이지, 객석, 영사실, 로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는 영화관이 다수 생겼으며, 오늘날에는 복합관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영화는 영화관의 영사 재생 장치가 중요한데,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영화라 해도 재생 장치가 불량하면 충분한 효과를 올릴...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와 예술 활동. 예술은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등으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또는 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의해서 정신의 충실 체험을 추구하는 문화 활동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문학·음악·조형 미술·연극·무용·영화 등을 총칭하는 말이며 공간 예술, 시간 예술, 종합 예술 등으로 나눌 수...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1구 원골에서 열리는 마을 예술제. 예술과 마을전은 자연 미술의 시원적 형태라 할 수 있는 민중의 솜씨와 예술가의 예술이 만나는 접점을 시도하여 농즉예(農卽藝) 예즉농(藝卽農)이라는 관점을 실현하였다. 예술과 마을전은 농민과 예술가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질적 문화 간의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의 장이 됨은 물론 국내 최초로 농촌 마을에...
-
농어촌에 ‘브랜드 마을’이 뜨고 있다. 농어촌에 ‘마을 관광상품화’ 바람이 불고, 시골 마을들이 ‘전통 브랜드화’를 앞세우기 시작하여 체험마을과 테마마을이란 이름으로 마을을 브랜드화하고 있다. 충청남도도 주5일 근무제 확산과 웰빙 바람에 발맞추어 농촌지역 특색을 살린 체험마을 조성사업에 집중 투자를 하고 나섰다. 충청남도에 따르면 도와 각 시·군이 추진하고 있는 체험마을...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공주문화원이 후원하는 문화 예술 단체. 예인촌은 공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선무용단, 극단 파고, 월가리 풍장단, 웅진어린이합창단, 극단 금성, 우리문화공연단 논두렁 밭두렁, 햇님스튜디오 등이 모여 만든 문화 예술 단체이다. 정부 지원금 없이 순수한 예술 활동으로 공주의 지역 문화 예술의 창달을 도모하고, 단체 간 상호 협력 공연을...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공주문화원이 후원하는 문화 예술 단체. 예인촌은 공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선무용단, 극단 파고, 월가리 풍장단, 웅진어린이합창단, 극단 금성, 우리문화공연단 논두렁 밭두렁, 햇님스튜디오 등이 모여 만든 문화 예술 단체이다. 정부 지원금 없이 순수한 예술 활동으로 공주의 지역 문화 예술의 창달을 도모하고, 단체 간 상호 협력 공연을...
-
어떻게 농사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예즉농(藝卽農), 농즉예(農卽藝)’는 신풍면의 한 작은 마을인 동원리 원골마을에서 마을예술제의 주제로 내건 문구이다. 이 마을예술제를 시작한 사람은 임동식이라는 한 자연미술가이다. 그는 공주 자연미술비엔날레를 발기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자연미술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농사가 곧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공주 자연미술비엔날레의 모...
-
뜸밭골의 산신제는 4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대동계가 결성된 이래부터 지금까지 매년 정월 보름과 시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과연 현재의 산신제는 40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역사와 전통문화를 간직한 마을 내산리를 찾아 갔다. 흔히 산신제라 하면 산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옛 사람들은 산신령이...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순국지사. 본관은 보성. 자는 명여(明汝), 호는 무이재(無貳齋)이다. 아버지는 오치국(吳治國)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인정받았는데, 가학으로 배움의 기초를 세우고 20살 무렵에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 들어갔다가 임헌회의 권고로 간재 전우(田愚)에게 학문을 배웠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에 격분...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오동나무가 많은 골이라 오곡(梧谷) 또는 오실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목동면(木洞面)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태봉(下胎封), 외태봉(外胎封), 태산리(胎山里), 하태산(下胎山)을 병합하여 오곡리라 하고 목동면에 편입되었다. 1938년 이인면(利仁面)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다시 공주읍에 편입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오곡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오곡동 고분군은 공주시에서 남쪽으로 약 3㎞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오곡동 장척 동남쪽 산의 남서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북쪽의 해발 213m의 태봉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사면부에 해당하며, 남서쪽 전방에는 오곡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다. 오곡동 고분군은 1980년 1기의 돌방무...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남원. 아버지는 찰방 윤형준(衡俊)이다. 손자 오시수(吳始壽)[1632~1681]가 공주 지역에 전장을 마련하고,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오시수의 종숙(從叔) 오정창(吳挺昌)의 묘를 쓰면서 후손들이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세거하게 되었다. 남편 오횡(吳竑)[1606~1626]이 죽자 음식을 먹지 않고, 자결하여 정려를...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서 오뉘바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63년 2월 10일 임헌도 교수가 공주시 중학동 184-7번지에서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최건구(남)이다. 300여 년 전 공주의 개울동리에 김의삼이란 사내와 김의숙이란 남매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무술에 뛰어나며 칼쓰기·말타기에 능숙하였다. 또한 이 마...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청량사 폐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오층 석탑. 건립 연혁과 관련된 기록이나 변천 내용이 자세히 전해오지 않는다. 전체적인 탑의 조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낮은 단층 기단에 5층 탑신으로 만들었으나 현재 4층까지만 남아 있다. 지대석 위에 올린 기단에는 면석과 우주석을 각각 별도의 석재로 만들어 세웠고, 그...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청량사 폐사지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칠층석탑. 건립 연혁과 관련된 기록이나 변천 내용이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탑의 조형으로 보아 통일신라 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50년대에 무너진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계룡산 동학사 뒤편 비로봉 아래 산 중턱에 공주 청량사지 오층 석탑과 남북으로 나란히 있...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경도(景圖)이다. 보성오씨 시조 오현필(吳賢弼)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오응두(吳應斗)이고, 어머니 전의이씨 이경우(李景佑)의 딸이다. 부인은 연안이씨 이희정(李希程)의 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촌형 오대린(吳大麟)과 함께 왕을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겸오위도총부부총관효충장의선무원종공신(嘉善大夫同知中...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이고,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다. 어머니는 조간(趙幹)의 딸이다. 1673년(현종 14)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1680년(숙종 6) 사헌부지평·홍문관부수찬, 1683년 지제교(知製敎)를 거쳐 1687년 승지가 되었다. 1694년 개성부유...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동(梧桐)나무가 많이 있어 오동리(梧桐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성두면(城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성두면 오동리가 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우성면 오동리가 되었다. 오동리의 북부와 서부로는 해발 고도 100~200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북부로는 검은봉고개가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오동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 오동리 돌방무덤은 오동리의 서쪽으로 깊게 형성되어 있는 큰골 안쪽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해발 308m의 사마산에서 동북쪽 해발 208m의 검은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에서 동주한 능선의 남동사면 하단부에 해당한다.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의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
-
공암이발소는 약 5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미용실이 남녀를 불문하고 가는 곳이라면 이발관은 남자들만의 헤어샵이다. 공암이발소 는 반포면사무소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골목을 따라 내려간 첫 번째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골목은 현재도 옛 장터라고 불릴 정도로 반포면의 작은 시장이 섰던 곳이다. 시장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아직도 여기저기...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의 명당(明堂)이 있다 해서 오룡(五龍)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목동면(木洞面) 지역으로, 1914년 목동면 상조리(上調里)·하조리(下調里)·만수동(萬樹洞)·내조리(內調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오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가 되었다. 오룡...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밤갓에서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현재 공주 지역의 노신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장승제를 뜻하기도 하고, 공주시 검상동의 경우처럼 마을 앞의 여러 선돌(주석지신, 여석지신, 구석지신, 와석지신)에 대한 제사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구읍 신영리 여드니, 우성면 도천리, 우성면 동대리, 의당면...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요룡리 오룡이라는 명칭은 옛날 마을 앞 못에 다섯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오룡동 남쪽 끝에는 욧골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마을 서쪽 정안천 가에 요당(蓼塘)이라는 큰 못이 있는데, 이곳에도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 말기에는 이 부근을 요당변이라 불렀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요룡...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요룡리 오룡이라는 명칭은 옛날 마을 앞 못에 다섯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오룡동 남쪽 끝에는 욧골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마을 서쪽 정안천 가에 요당(蓼塘)이라는 큰 못이 있는데, 이곳에도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 말기에는 이 부근을 요당변이라 불렀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요룡...
-
갑사에서 중장리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길가 양쪽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우거진 나무 숲의 터널은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로 풍성한 녹음을 자랑한다. 숲은 장승이 자리한 곳에서 시작해 갑사까지 1㎞에 못 미치는 거리로 이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이 숲을 ‘오리숲’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전의 오리숲은 약 2㎞에 달하는 거리로 지금보다 훨씬 우람한 나무들이 대단한...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 살던 효부. 본관은 창녕(昌寧). 아버지는 참봉 성언홍(成彦弘), 남편은 오몽렬(吳夢烈)이다. 슬하에 아들 오복립(吳復立)을 두었다. 병든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셔 효부라고 칭송되었으며 특히 호랑이에게 물려 간 시아버지를 구출해 낸 일화는 『충효등록(忠孝謄錄)』을 비롯하여 『공산지(公山誌)』, 『호서읍지(湖西邑誌)』, 『금고실기(今古實記)』, 『조선환여승람...
-
수백년간 열두대징이를 지킨 집안이 있다. 밀양변씨, 삼척진씨, 전주이씨가 순서대로 입향하여 중장리 일대에 자리잡았고, 훗날 동래정씨가 아랫동네인 하대리 넓은 땅을 소유하면서 세거하였다. 이 네 가문은 오늘날 대부분 마을을 떠나 후손을 찾아보기 힘든데, 지금까지 집안의 터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윗장마을 진중용씨 부부이다. 중장1리 윗장마을에 입향한 삼척진...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구(德耉), 호는 묵재(默齋)이다. 할아버지는 직장 오극권(吳克權)이고, 아버지는 직장 오세현(吳世賢)이다.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참봉 성근(成近)의 딸이다. 오백령은 슬하에 4형제를 두었는데, 오준(吳竣)[1587~1666]은 벼슬이 판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명필로 유명하였다. 오단(吳端)[...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오백령의 사우.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종했던 오백령의 사우로, 영정을 봉안하던 것이 사우로 발전한 경우이다. 건립 시기가 명확하지 않으나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에서 예산 방면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7㎞ 정도 가다 보면 우성면소재지가 나오는데, 오백령 사우는 면소재지 직전...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오한영(吳漢英)이고, 어머니는 공산이씨이다. 평소 효성이 남달라 부모 섬기기를 지성으로 하였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매일 어머니의 인분을 맛보아 병세를 확인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어머니에게 먹여 여러 날 목숨을 연장시켰다. 1782년(정조 6) 뛰어난 효행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고양이과에 속한 포유동물. 벵골살쾡이의 아종으로 한국, 중국 북동부 및 우수리 강,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하며 만주살쾡이라고도 한다. 일본의 쓰시마 섬에 서식하는 쓰시마살쾡이를 같은 아종으로 보는 견해와 독립 아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몸길이는 약 55~90㎝, 꼬리 길이는 약 25~32.5㎝이다. 몸은 고양이와 비슷하지만 고양이보다 크고 불...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이(德而), 호는 수촌(水邨)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오정원(吳挺垣)이다. 1656년(효종 7)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한 뒤 가주서(假注書)가 되었고, 사간원정언·세자시강원문학·사헌부지평·교리·이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664년(현종 5) 사복시정(司僕寺正)·평안도암행어사를 지냈으며, 사헌부집의·응교·의정부사인을 거...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시수의 신도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 벼슬아치의 무덤 남동쪽의 큰길가에 세운 석비(石碑)를 말한다. 오시수 신도비는 두 기가 존재한다. 우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에 세워진 것이고, 좌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에 연루되어 추탈되었던 오시수(吳始壽)[1632~1681]의 관작이 1784년(정조 8...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의 열녀.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정자(正字)를 지낸 유명전(柳命全)이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할 때, 남편인 오시원(吳始元)[1658~1673]이 정원로(鄭元老)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되자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후손인 오휘상(吳徽相)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명정을 받아 정려가 세워졌다. 정려각 내의 좌측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명정의 연대...
-
당산제의 기본적인 준비가 이루어지는 것은 매년 연말 마을 총회때부터라 할 수 있다. 이때에 전 주민이 다 모이면 다음해의 당산제를 주관할 제주와 유사를 선출한다. 옛날에는 생기복덕을 가려서 엄하게 선출하였지만, 이제 마을 노인 중에 당산제의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골라 뽑고, 유사는 지목하되 총회 직후 당산제 당일까지 1~3개월간 부정한 일이 없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모든...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익표(吳翼杓)는 1888년(고종 25) 6월 8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공주 영명학교와 서울 감리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동경의 아오야먀[靑山]학원에 재학 중 1918년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귀국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충청남도 공주 고향에 내려와서 1919년 3...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익표(吳翼杓)는 1888년(고종 25) 6월 8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공주 영명학교와 서울 감리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동경의 아오야먀[靑山]학원에 재학 중 1918년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귀국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충청남도 공주 고향에 내려와서 1919년 3...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오인리에 있는 평야. 오인들은 의당면 서부 지역에서 우성면과의 경계 지대를 흐르는 정안천(正安川)에 의해 형성된 대규모 충적 평야이다. 의당면 서부 경계 지대와 의당면 북쪽과 접한 정안면의 중앙부를 각각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정안천으로 인해 비교적 넓은 면적의 충적 평야가 연속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의당면 서부 지대를 흐르는...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속하는 법정리. 정안천(正安川)가에 있어 언개 또는 어인포(於仁浦)·오인포(五仁浦)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요당면(要當面)의 지역으로, 1914년 요당면 천변리(川邊里) 일부와 반정면(半井面)의 오류동(五柳洞) 일부, 정안면(正安面) 원대리(院垈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오인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오인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성. 오인리 산성은 발굴 조사를 통해 축성 시기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표 조사를 통해 수습된 유물 중 백제시대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북쪽의 경우도 왕도 웅진을 향해 침입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공주에서 천안으로 통하는 국도를 타고 1...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의 열녀. 본관은 해주(海州). 조부는 지돈녕(知敦寧) 정효준(鄭孝俊)이며, 아버지는 판서 정익(鄭榏)이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할 때, 남편인 오정창(吳挺昌)[1634~1680]이 정원로(鄭元老)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되자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정려가 있으며, 명정 현판은 정려각 내의 중앙에 걸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정창의 처 해주정씨 정려. 공주에서 청양 방면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7㎞ 정도 가면 우성면소재지가 나오는데, 그곳에 조금 못 미쳐 도로 오른쪽에 단지리가 나온다. 오정창 처 해주정씨 정려는 도로변 왼쪽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이익공 건물이다. 정려각 내의 중앙에는 ‘열녀자헌대부예조판서겸지경연예...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오지영(吳智永)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아흔아홉 칸짜리 저택을 소유할 정도로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대지주였다. 오지영은 조선 말기 광산의 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으로 보이며, 1930년대 말 기준으로 212㏊ 전(田)과 92㏊의 답(畓) 등 392㏊의 토지를 소유한 대주지였다. 오...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소학리(巢鶴里) 쪽에 용 못이 있어 옥룡골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동부면(東部面)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원동(水源洞), 대추동(大秋洞), 장기대(將棊臺), 강경동(江景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옥룡리라 하고 주외면(州外面)에 편입되었다. 1938년 주외면이 폐지되어 공주읍에 편입되면...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 있는 산. 옥백산·억복산이라고도 불리며, 전국에서도 유명한 활석광산이 있던 산이다. 서반봉 꼭대기에는 돌로 만든 간결한 제단이 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외지 사람들이 와서 가끔 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서반봉은 명우산 남쪽 산릉에 해당하는 봉우리로 명우산과 같은 화강편마암, 주입편마암, 안구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산봉우...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포옥리(浦玉里)와 상성리(上城里)에서 ‘옥(玉)’자와 ‘성(城)’자를 따 ‘옥성(玉城)’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성두면(城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성두면 포옥리·상성리·용산리(龍山里)·작동(作洞)·사동(寺洞)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옥성리가 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 터. 사역(寺域)에 해당되는 대지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윗단은 면적이 약 661㎡이며,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편이 많이 남아 있다. 사역의 아랫단은 평지를 이루고 있는데, 연고 없는 무덤들이 있다. 옥성리 사지는 사역 내로 추정되는 범위에서 확인된 기와편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소규모의 사찰이 있...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토축 산성. 옥성리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성 시기를 전혀 짐작해 볼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의 축조 배경도 현재로서는 잘 알 수 없다. 공주에서 청양으로 통하는 국도 36호선을 타고 서쪽으로 약 4㎞쯤 가면 우성면 상서리에 닿게 되는데, 여기에서 남쪽으로 난 소로를 타고 약 1.5㎞쯤...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옥여(玉汝)이고, 호는 묵재(默齋)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기(李夔)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이정화(李廷華)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청송부사 권용(權鎔)의 딸이다. 1592년(선조 25) 강릉참봉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였고, 이어 이덕형(李德馨)·이항복(李恒福)...
-
양지머리 국물에 밥을 넣은 충청남도 공주시의 향토음식. 한국인은 주식으로 밥에 국물음식을 같이 먹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밥과 국이 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을 장국밥이라 하고, 국과 밥이 따로 나오는 경우는 따로국밥이라고 한다. 장국밥 주로 5일장에 오는 외지의 상인이나 나그네에게 제공되었던 음식이다. 장국밥의 명칭은 국물을 끓일 때부터 간장으로 간을 한 국에 밥을 마는 것에서 기...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원전(元田)이라 불렀고, 땅에서 뜨거운 물이 나와 원천(源泉) 또는 온천(溫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포면(反浦面) 지역으로, 1914년 반포면 박정자(朴亭子)·사봉리(沙峯里)가 통합되어 온천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가 되었다. 온천리의 동부와 남부로...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완부부곡은 공주의 서쪽 4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완도부곡은 지금의 가랏골을 말하며, 이 마을은 노동·완동으로도 불린다. 가랏골이란 명칭은 마을 주변에 갈대가 무성한 데서 유래하였다. 강아지풀이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마곡사에서 정안천으로 흘러...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제민천 상의 교량. 길이는 45m, 총 폭은 25m, 유효 폭은 14m, 높이는 8.4m이다. 경간 수는 3개, 최대 경간장은 15m이다. 상행과 하행은 각각 2차선이다. 왕릉교는 공주시의 구시가지를 남북 방향으로 종단하면서 흐르는 제민천(濟民川) 상에 건설된 여러 개의 교량들 중의 하나로 1991년 준공되었다. 왕릉교...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네발나비과에 속한 나비. 날개 편 길이는 60~70㎜, 앞 날개는 길이 32~44㎜ 정도이다. 표범나비류 가운데 중간 크기의 종이다. 날개 아래쪽에는 은색 무늬의 변이가 다양하다. 수컷은 앞 날개 윗면에 검은색 줄무늬의 성표(性標)가 있다. 암컷은 수컷에 비하여 약간 크며 날개 폭도 약간 넓다. 암컷이 수컷보다 날개 바탕색이 진하며, 날개 아...
-
허임의 생애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부모는 관노와 사비였는데, 특히 부친은 악공으로 당대 최고의 피리꾼이었으며, 만년에는 거문고에도 능했던 만능 음악인이었다. 또한 학춤을 잘 추었다. 가무(歌舞)의 재능을 동시에 겸한 것이다. 부모로부터 미천한 신분과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은 허임은 임진왜란이라는 변수로 인해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광해군을 모시고 침구의로...
-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동에 있는 노인 복지 시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여 노인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9년 시공하여 1980년 본관을 완공하였다. 이듬해인 1981년 7월 2일 개원하였다. 1985년까지 4개 동을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사회 심리 복지 사업, 지역 사회 조직 사업, 의료 서비스...
-
갑사에서 시작되는 익구곡 골짜기에는 도참설에 따라 수많은 명당 터가 있었다. 갑산소의 뒷산을 ‘뜸띠날맹이’ 라고 하는데, 뜸을 뜬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명산과 명당터를 찾아 그 맥을 끊고 다닐 때에 갑산소 뒷산에 기인이 나온다는 자리를 찾아내서 불을 지폈다. 이 산줄기가 부여로 이어지는데 강한 지기가 흐른다 하여 뜸을 떠 기를 없애버린 것...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입석리에 전해지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놀이판에서 부르던 민요. 「외다리 가진 땅개비가」는 성인이 부르는 소리와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 두 가지가 있다.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는 발 고르기, 발 끼기, 한 커리 두 커리 등의 놀이에 반드시 필요한 노래였다. 이 놀이는 2인 이상이 발을 뻗어 서로 양발 사이로 엇갈리게 끼고 한 사람이 이 노래를...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에서 요강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 통천보에 요강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에 통천보에는 수구렁이와 암구렁이가 사이좋게 살았는데 암구렁이는 산 중턱 큰 바위 아래에 살았고, 수구렁이는 좀 떨어진 산 아래 바위 아래에서 살았다. 그들은 늘 다정하게 지냈는데, 하루는 구렁이보다 몇 배가 큰 지네가 통천...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에 있는 한국천주교 대전교구 유구성당의 공소(公所). 요골공소는 1866년 병인박해 이후 각지에서 모여든 신자들이 일군 교우촌(敎友村)에서 기원한다. 이 교우촌은 1883년 프랑스 선교사 두세(Doucet)가 충청도 지역을 순회할 때 최초의 공소 가운데 하나로 설정되었으며, 1884년 초대 공소회장으로 이화진이 부임하였다. 1897...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요랑(要郞)과 요동(要洞)·오룡동(五龍洞)에서 ‘요(要)’자와 ‘용(龍)’을 따 ‘요룡(要龍)’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요당면(要當面) 지역으로, 1914년 요랑·요동·오룡동이 통합되어 요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가 되었다. 요룡리의...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절 터. 의당면 요룡리에서 두만리로 넘어가는 요룡리 오룡동마을과 동쪽으로 인접한 산막골 계곡 상단부에 있다. 사역(寺域)으로 추정되는 범위는 약 331㎡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곳은 절 터로 전해지고 있지만 특별한 유구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사역 내에서 소수의 백자편이 확인되었다. 요룡리 사...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제사.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많은 서낭제가 올려졌으나, 제3공화국 시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실시한 미신타파에 상징적인 대상이 되어 서낭당의 돌무지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따라서 마을 단위로 올리던 서낭제들도 모두 사라지고, 오직 의당면 요룡리만 마을고사로 서낭제를 올린다. 요룡리 서낭...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요룡리 오룡이라는 명칭은 옛날 마을 앞 못에 다섯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오룡동 남쪽 끝에는 욧골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마을 서쪽 정안천 가에 요당(蓼塘)이라는 큰 못이 있는데, 이곳에도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 말기에는 이 부근을 요당변이라 불렀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요룡...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요룡리 오룡이라는 명칭은 옛날 마을 앞 못에 다섯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오룡동 남쪽 끝에는 욧골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마을 서쪽 정안천 가에 요당(蓼塘)이라는 큰 못이 있는데, 이곳에도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 말기에는 이 부근을 요당변이라 불렀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요룡...
-
열일곱살에 중장리로 들어왔다. 그해가 1942년. 해방되기 직전이었다. 원래 고향은 충청북도 옥산이었는데, 선비로 사셨던 아버지는 나라가 일제치하에 들어가자 1934년에 고향을 떠나 10승지지로 알려져 있던 공주로 오셨다. 일곱 살부터 10년간 살았던 동네는 이인면 잣골로, 두 형이 이인에 있던 금광산에서 일을 하며 집안의 생계를 이어갔다. 형들 덕분에 어려서는 직접 고생하는 일...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가마 터. 요지(窯址)는 토기·질그릇·오지그릇·도자기·기와·벽돌·숯 따위를 구워내는 시설을 뜻한다. 공주 지역에도 이와 같은 요지 유적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에서는 왕실을 비롯한 민간인들이 사용하는 그릇과 기와 등을 다량으로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령왕릉은 구운 벽돌을 이용해 축조...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욕설을 이용하여 흥을 키우면서 부른 민요. 공주시에는 15수의 욕타령이 있었으며 지금도 5수의 욕타령이 전한다. 욕타령은 굿거리장단으로 창부 타령과 흡사하게 부르는 것, 노랫가락과 유사한 노래, 각설이 타령 속에 포함된 욕타령 등이 있다. 이중 「욕질」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욕타령」은 창부 타령재로 부르는데, 흥을 위해서 고함치듯 소리...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굴. 동굴의 바위에 용의 발자국이 있고, 용의 꼬리가 스친 자국이 있으므로 용굴이라 부른다. 용굴은 공주시 금학동 지막골 뒷산에 위치한다. 월성산(月城山)과 주미산(舟尾山)의 산줄기가 주변을 에워싼 산골짜기 오지에 해당한다....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용암리에서 발원하여 대교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본류는 금강이고, 제1지류는 대교천이다. 하천의 지정 근거는 충청남도 88호 지방 2급 하천이다. 하천 연장 2.50㎞, 유로 연장 6.50㎞, 유역 면적 7.05㎢이다. 용두천은 의당면 동부에 있는 하천으로서 의당면과 장기면의 광범위한 지역을 흘러 금강으로 유입되는 대교천의 지류이다. 해발고도 약 8...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옛날 옛적 이곳이 바다였을 때 그 가운데 솟은 봉우리에서 아름다운 선녀가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낚시질 하던 선녀를 발견한 임금이 억지로 선녀를 궁으로 데리고 가자, 이에 노한 옥황상제가 선녀를 용으로 변하게 하였다. 임금은 선녀를 잊지 못하여 선녀가 앉았던 자리에서 늘 낚시질을 하였으며, 용이 된 선녀는 낚시...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면 추계리에서 용목동이라는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목동은 공주시 유구면 추계1리 양지의 뒤쪽으로 산을 가파르게 오르는 지점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양지는 항일의사가 태어난 곳으로 입구에는 황희 정승의 17세손인 항일 독립투사 황병주 선생의 유허비가 서있다. 마을 앞으로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데, 금계산의 높은 봉우리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에 있는 연못. 장자못은 인색한 부자가 중에게 쇠똥을 주었다가 벌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며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지명 전설이 깃든 연못이다. 이 마을에 살았던 장자(長者)가 동냥하는 중에게 나쁜 짓을 하여 그 벌로 장자의 집이 큰 못이 되었다고 하여 ‘장자못’ 또는 ‘장자지(長者池)’라고 한다. 혹은 이 연...
-
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에서 용못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스님을 냉대하여 벌을 받는 이야기로 주인공의 인색함과 악행으로 징계자로부터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1959년 7월 9일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 소학리에서 임헌도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이석주(남)이다. 옛날 백제시대에 지금의 공주시 소학동 삼거리에서 논산 방면으로 오른쪽, 지금...
-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3동에 있는 조선 중기 유학자 이유태(李惟泰)가 세운 사립 교육 기관. 용문서원의 모체는 처음 1663년(현종 4)에 용문서재(龍門書齋)라는 이름으로 건축되었으며, 현재의 용문서원은 1977년에 관비의 지원을 받아 복원되었다. 조선 중기의 유현인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를 향사하고 있다. 이유태가 공주 중호(현 공주시 상왕동)에 강학 육...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있는 폭포. 용문폭포는 예로부터 갑사구곡(甲寺九曲)의 하나로 유명하다. 갑사구곡으로는 용유소, 이일천, 백룡강, 달문담, 군자대, 명월담, 계룡오암, 용문폭포, 수정봉을 말한다. 갑사구곡은 갑사로 오르는 계곡 일대를 지칭하는 데 추갑사(秋甲寺)라고 불릴 만큼 가을이면 단풍으로 붉게 물들고, 여름에는 우거진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에서 용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옛날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 고을에 어린 삼남매를 거느린 아낙네가 과부가 되어 혼자 살고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자 여기저기에서 기우제를 지냈지만 가뭄은 계속되어 식수마저 부족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마음씨 착한 과부댁의 우물은 홍수가 졌을 때나 흉년이 들었을 때도 아무 걱정 없이 물이...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형이 용의 꼬리를 편 형국(形局)이라 하여 용신동(龍伸洞)이라 하였으나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용신리(龍伸里)와 봉촌리(鳳村里)에서 ‘용(龍)’자와 ‘봉(鳳)’자를 따 ‘용봉(龍鳳)’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성두면(城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성두면 용신리·봉촌리·신영리(新永里)·입암리(笠岩里)·평동(坪洞)·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구왕1리에서 용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주시 계룡면 구왕1리 마을회관에 있는 느티나무 정자를 끼고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면 용산(龍山)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계룡산 자락의 마을로 경치가 수려해 반포의 신소로부터 상창소를 하창소로 이어지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예로부터 삼소지간이 마화구룡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던 곳이라...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이다. 아버지는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역임한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윤원거는 1635년(인조 13)에는 성균관 재생으로 들어갔으며, 이때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운동에 참여하여 그...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의 머리를 닮은 용성(龍城)이 밑에 있어 용성(龍城)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목동면(木洞面) 지역으로, 1914년 목동면 백곡(栢谷)·초봉리(草鳳里)·석남리(石南里)와 반탄면(半灘面) 괴남리(槐南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용성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이인면 용성리가 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용성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토축 산성. 공주에서 부여로 통하는 국도 변에 있는 만큼 축조 경위는 왕도의 방비 체제와 관련시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남아 있는 형태로 볼 때는 사비보다 웅진을 방비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공주에서 부여로 통하는 국도 40호선을 타고 8㎞쯤 가다 보면 용성리 누에머리에 닿게 된다. 용성리 산...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용성리에서 축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2년 구중회가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서 채록하여 『공주민속』에 수록한 것이다. 제보자는 내산리 이장이다. 옛날 백제 때에 공주시 이인면 작골산 속에 노파와 남매가 살고 있었다. 그들 남매는 누나와 무술이 뛰어난 무룡이라는 동생으로, 아름답고 지혜가 넘쳐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와 달산리 경계에서 발원하여 이인면 만수리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본류는 금강이다. 하천 지정 근거는 충청남도 62호(1998년 4월 10일) 지방 2급 하천이다. 하천 연장 11.70㎞, 유로 연장 12.13㎞, 유역 면적은 39.60㎢이다. 기점의 계획상의 홍수량·홍수위·하폭은 각각 95㎥/s·46.22EL.m·21m이고, 종점의 계...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에 있는 자연 마을. 용숫골은 마을의 지형이 용의 형국이라 하며, 용수동(龍水洞), 용세동(龍細洞)으로도 부른다. 용숫골의 땅 속에는 항상 이무기가 백 년을 수도하기 위해서 파묻혀 있다가, 백 년이 지난 후 기도의 보람이 있는 이무기는 용이 되어 승천을 한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이무기가 승천을 하면 바로 다른 이무기가 자리를 차지하...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에 있는 자연 마을. 용숫골은 마을의 지형이 용의 형국이라 하며, 용수동(龍水洞), 용세동(龍細洞)으로도 부른다. 용숫골의 땅 속에는 항상 이무기가 백 년을 수도하기 위해서 파묻혀 있다가, 백 년이 지난 후 기도의 보람이 있는 이무기는 용이 되어 승천을 한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이무기가 승천을 하면 바로 다른 이무기가 자리를 차지하...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용산(龍山)과 수선리(水仙里)에서 ‘용(龍)’자와 ‘수(水)’자를 따 ‘용수(龍水)’가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하면(新下面) 지역으로 1914년 신하면 용산·수선리·운락동(雲洛洞)·월계리(月溪里)·가흥리(佳興里)·학소리(鶴巢里)·만수리(萬水里)·봉곡(鳳谷), 무릉리(武陵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용...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서 발원하여 연기군 금남면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본류는 금강이다. 하천 지정 근거는 충청남도 88호(1991년 5월 9일) 지방 2급 하천이다. 하천 연장 20.90㎞, 유로 연장 21.35㎞, 유역 면적 95.29㎢이다. 기점의 계획상의 홍수량·홍수위·하폭은 각각 170㎥/s·235.89EL.m·10m이고, 종점의 계획상의 홍수량·...
-
공암마을 앞쪽으로는 계룡산 동학사 골짜기에서 시작하여 금강으로 빠지는 용수천(龍秀川)이 흐른다. 이 용수천은 과거에는 지금과는 달리 두 갈래로 나뉘어 흘렀는데, 천의 폭이 좁아 비가 많이 내릴 때면 물이 넘쳐 인근 논밭이 전부 물에 잠기곤 했었다. 이장 서만호씨의 제보에 의하면 한번은 한 농부가 두 개의 내 사이에 있는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려...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에 있는 자연 마을. 용숫골은 마을의 지형이 용의 형국이라 하며, 용수동(龍水洞), 용세동(龍細洞)으로도 부른다. 용숫골의 땅 속에는 항상 이무기가 백 년을 수도하기 위해서 파묻혀 있다가, 백 년이 지난 후 기도의 보람이 있는 이무기는 용이 되어 승천을 한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이무기가 승천을 하면 바로 다른 이무기가 자리를 차지하...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음력 1월 15일 새벽에 한해의 복을 얻고자 마을 공동 샘에서 하는 세시풍속. 음력 정월 대보름은 농민에게는 본격적인 농사철을 앞두고 농사를 준비하는 시작점이다. 농군들에게 물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이것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해의 복을 불러서 자신의 가족 안으로 들이려는 가정주부들의 마음이 새벽부터 마을 공동 샘의 물을 차...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속했던 법정리. 용이 노는 바위가 있다고 하여 용암(龍巖)이 되었고,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상용리(上龍里)와 송암리(松岩里)에서 ‘용(龍)’자와 ‘암(岩)’자를 따 ‘용암(龍岩)’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의랑면(儀朗面) 지역으로, 1914년 의랑면 용보리(龍洑里)·오산리(吳山里)·수포리(水包里)·송암리·갑산리(甲山里)·상룡리·석현리(石...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에 있는 연못. 장자못은 인색한 부자가 중에게 쇠똥을 주었다가 벌을 받았다는 내용으로,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며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지명 전설이 깃든 연못이다. 이 마을에 살았던 장자(長者)가 동냥하는 중에게 나쁜 짓을 하여 그 벌로 장자의 집이 큰 못이 되었다고 하여 ‘장자못’ 또는 ‘장자지(長者池)’라고 한다. 혹은 이 연...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하신리에서 용툼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아주 오랜 옛날에 공주시 반포면 하신리 이곳은 모두 바다였다고 한다. 뒤에는 기암절벽의 계룡산이 짙푸른 산림에 싸여 있고, 지금 용툼벙이 있는 곳에는 커다란 산봉우리가 마치 섬처럼 신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에는 이따금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선녀가 한 사람 내려와서 낚시를 드리우곤 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속했던 법정리. 용고개 아래에 위치하여 용현(龍峴)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의랑면(儀郞面) 지역으로, 1914년 의랑면 용대리(龍垈里)·용두(龍頭)·용계(龍溪)·소룡리(巢龍里)·변리(邊里)·단암(丹岩)·행현(杏峴)이 통합되어 용현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의당면 용현리가 되었다가 2012년...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우공로의 무덤 앞에 세운 비석. 우공로(禹恭老)는 본관이 단양으로 공주의 토착 성씨이다. 장자 우현손은 충청병마절도사를, 차남 우석손은 재령군수를, 삼남 우종손은 안주판관을 각각 역임하였다. 이렇게 단양우씨는 조선 말기에 많은 인물을 배출한 사족 집안이다. 우공로 묘비는 단양우씨의 후손들이 선조인 우공로의 행적을...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을 지나 아치천과 합류하는 하천. 우교천은 석성천의 지류로 탄천면 남동부와 논산시 노성면의 경계 지역을 지나 탄천면의 동부 지역을 남북 방향으로 흐른다. 우교천은 행정구역상으로는 화정리, 덕지리, 장선리 일대를 지나는데, 장선리 일대에서 논산시 노성면에서 흘러오는 아치천(芽峙川)과 합류한다. 우교천과 지류 연변에는 해발 고도 2...
-
1894년(고종 31)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과 조선·일본 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내각을 성립하였으며, 6월 23일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친일내각과 함께 동학농민군 토벌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전봉준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다시 봉기하였다. 그러나 전봉준을 비롯한 손...
-
1894년(고종 31)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과 조선·일본 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내각을 성립하였으며, 6월 23일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친일내각과 함께 동학농민군 토벌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전봉준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다시 봉기하였다. 그러나 전봉준을 비롯한 손...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과 주미동 사이에 있는 고개. 우금치는 공주 남쪽을 지키는 관문이었으며, 동학운동 때 관군과 싸워 동학 농민군 10만 명이 전사한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우금치는 우금(牛禁)과 우금(牛金)이라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옛날에 도둑이 많이 있어서 해가 저물었을 때 소를 끌고 고개를 넘어가면 도둑들한테 소를 빼앗긴다고 해서...
-
충청남도 공주시 주미동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우금치는 공주 시내에서 남쪽으로 40번 도로를 따라 부여 방향으로 넘어가는 첫번째 고개를 말한다. 이곳은 동학혁명군의 위령탑이 위치한 유명한 곳이다. 우금치 고분군은 이 우금치 산록의 남동사면에 위치한다. 우금치 고분군은 1932년에 알려졌다. 당시 지표면에 상당수의 고분이 노출되어 외형 파악이 가능한...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서 우금치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59년 7월 7일 임헌도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에 수록한 것이다. 제보자는 공주군 계룡면 경천리 신문철(남)이다. 옛날 뱁새울에 김길복이라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멀쩡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몸져눕고 말았다. 그러나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남들처럼 약을 쓸 수도 없는 처지였다....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동학농민운동 격전지. 공주 우금치 전적은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항전을 전개한 곳이다. 전봉준이 지휘하는 농민군은 1894년 9월 재봉기 이후 논산에 머물며 공주를 공격 목표로 설정하는 작전을 세웠다. 당시의 공주는 충청도 감영(監營)이 있는 곳이었고, 또 우금치는 공주에서 부여 방면으로 넘...
-
1894년(고종 31)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과 조선·일본 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내각을 성립하였으며, 6월 23일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친일내각과 함께 동학농민군 토벌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전봉준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다시 봉기하였다. 그러나 전봉준을 비롯한 손...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과 주미동 사이에 있는 고개. 우금치는 공주 남쪽을 지키는 관문이었으며, 동학운동 때 관군과 싸워 동학 농민군 10만 명이 전사한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우금치는 우금(牛禁)과 우금(牛金)이라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옛날에 도둑이 많이 있어서 해가 저물었을 때 소를 끌고 고개를 넘어가면 도둑들한테 소를 빼앗긴다고 해서...
-
1894년(고종 31)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과 조선·일본 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내각을 성립하였으며, 6월 23일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친일내각과 함께 동학농민군 토벌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전봉준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다시 봉기하였다. 그러나 전봉준을 비롯한 손...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서 개최되는 예술제. 1992년 추모 제례는 동학 정신 계승과 시민 참여 확대를 위하여 제향을 기본으로 다양한 행사를 구성하여 우금티예술제로 전환되었다. 동학 100주년을 맞은 1994년에는 100주년 기념 행사를 계기로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우금티예술제는 소수의 축제에서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로 거듭나게 되었다....
-
원골 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을까? 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해 주는 것은 현재 지표상에 남아있는 유적이다. 현재까지 원골에서 선사시대의 유적이 확인되지는 않지만, 유구천과 주변의 산세 등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므로, 원골 내지는 그 주변에 밝혀지지 않은 유적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공주지역은 금강과 금강 유역의 깊고 넓은 하천들...
-
원골마을 은 특산물로 은구들에서 재배되는 밥맛 좋은 벼, 맑은 공기와 가을 햇살로 빨갛게 잘 익은 홍고추, 그리고 버섯재배사에서 재배되는 표고버섯 등을 마을의 특산물로 자랑하고 있다. 벼는 비옥한 토질과 농민들의 땀과 노력으로 벼농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공주 신풍면은 밥맛을 인정받은 일품벼를 재배하고 있으며, 1모작 기재배로 미질이 향상되었다. 특히 원골마을...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전해지는 청소년들이 일상이나 놀이판에서 부르던 민요.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의 성인 민요 중에는 신세 타령조의 노래들이 많다. 이 노래는 청소년들이 가족을 모두 거창하게 표현하면서 자신을 돌팔이라 자탄하지만, 노래는 흥겹게 부르는 특징이 있다.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부르던 노래로 남녀 노래 2곡이 있다. 「우리 아버지 서...
-
웅진초등교육박물관은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초등교육박물관답게 최초의 국어교과서에서부터 제7차 교육과정에 이르는 다양하고 희귀한 교과서들을 소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2001년 11월 1일 처음 문을 연 이래로 지금까지 매년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사진으로 본 한국의 표정’(2001)이라든가 ‘방학숙제로 보는 초등교육 70년’, ‘국어...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전해지는 흥겨운 자리에서 부르던 연희 민요.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의 창부 타령은 경기민요와 달리 상청을 쓰지 않고 생활에서 사용하는 목청, 즉 평성을 써서 부르며 기분이 좋아지고 흥이 나면 상청을 섞어서 부른다. 앞뒤 후렴 또한 형식이 자유로워 여러 가지 변형된 소리가 존재하고 즉흥적으로 입술 터는 소리나 의성어를 이용하여 흥을...
-
윗장마을 의 진중용씨는 1927년생으로 일제강점기에 10대를 보내고 18세에 해방을 맞았다. 그 시절의 고생담이야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대대로 양반집안이란 자부심에 살았어도 세상이 뒤바뀐 일제 식민지 시대에 집안의 전통을 지키기는 힘들었다. 어려서는 계룡면사무소 옆동네인 유평리의 계룡보통학교를 다니며 공부했는데 그 시절 인근에서 유일한 교육시설이었기에 계룡면 뿐...
-
공암리 사람들은 예로부터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벼농사가 주업이라도 다른 지역은 왠만하면 고추나 포도 등 과실업 또는 특용채소를 상품작물로 삼아 재배하여 부수익을 얻고 있는 실정인데 공암은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상품작물을 경작하는 사람이 없다. 최근 이런 것에 의문을 갖고 연정말에 사는 김응천씨는 토마토를 재배하기 위해 하우스를 짓고 몇 년째 시도하고 있지만 풍년...
-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에게 가장 큰 마을의 보물이자 자랑거리는 마을회관이다. 마을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회관은 205㎡(약 62평) 규모의 대지에 2층 양옥건물로서 외관부터 근사하다. 현재 마을회관의 부지는 공암리 주민이었던 임희수씨가 마을을 위하여 기증한 것으로, 공주시에서 지원된 금액 8천만원과 이장님이 기증한 7천 5백만원으로 2000년 2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2...
-
① 6시 내고향 - 3377회 (방송일 : 2005년 5월 2일) 백년가약 제44호 충남 공주시 신풍면 원골마을 ‘예즉농(藝卽農), 농즉예(農卽藝)’ 예술이 곧 농사요, 농사가 곧 예술인 마을 원골. 마을 주민은 모두 예술가가 되고, 그곳의 자연은 모두 예술작품이 된다. 1993년부터 젊은 예술인들이 마을을 찾아와 야외 미술제를 개최한 이래 2000년부터는 마을 주민들이 주최가 되...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에 있는 장애인 요양 시설. ‘장애인복지법’ 제48조에서 규정하는 바와 같이, 장애인 생활 시설은 장애인이 필요한 기간 생활하면서 재활에 필요한 상담, 치료, 훈련 등의 서비스를 받아 사회 복귀를 준비하거나 장애로 인하여 장기간 요양하는 시설을 의미한다. 종류로는 먼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가족과 같이 살 수 없는 장애 아동이나 장애 성인...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에 있는 산. 예전에 마을 일대에 큰 가뭄이 들었는데,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내자 빗방울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큰 비가 왔다. 그 이후부터 비를 몰고 온 산이라 해서 우산봉이라 불리워졌다고 한다. 또한 옛날 대홍수가 났을 때 모두 물바다로 잠겼는데, 이 산은 높아서 다 잠기지 않고 꼭대기가 우산만큼 남았다고 해서 우산봉으로 불렸다고 하며...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서 경사동 절손 명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2년 구중회가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서 채록하여 『공주민속』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내산리 이장이다.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경사동에 이모의 처 예안김씨 묘소가 있다. 예안김씨는 천기를 아는 여인이었다. 이씨의 가문이 절손될 것을 미리 알고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서 재배하는 오이.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은 오이 재배에 적합한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오이를 자급 자족하거나 공주 시장에 소규모로 판매하는 정도로 규모가 영세하고 출하량이 적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1984년 우성농업협동조합의 지원 아래 작목반이 결성되고 겨울철 저온 처리법을 이용한 재...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 단지리, 방문리, 왕성리, 대성리 일대에 있는 평야. 우성농조들은 우성면의 중앙부를 동서 및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유구천(維鳩川)이 하천의 북쪽과 남쪽 범람원에 형성한 대규모 벼농사 지대이다. 해발 고도 20여m에 형성되어 있으며, 주변에는 100여m의 낮은 구릉성 산지들이 발달해 있다. 우성농조들 동쪽에는 채죽산[170m]이...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원래 북쪽의 우정면이라는 명칭은 인조가 이괄의 난으로 피난 중에 소에게 물을 먹였다는 소우물에서 유래한 것이다. 남쪽 금강 변의 성두면이라는 명칭은 성 터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우정면과 성두면을 병합하고 우정면과 성두면의 이름을 따서 우성면(牛城面)이라 하였다. 우성면은 정안천·유구...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있는 집성촌. 1920년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우성면의 반촌리·동곡리·목동리·귀산리·내산리에서는 만경노씨, 상서리·방문리에서는 함평오씨, 방흥리·신웅리에서는 보성오씨, 옥성리·대성리·봉현리에서는 김해김씨, 보흥리·옥성리에서는 단양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1. 만경노씨 『만경노씨족보』에 의하면 만경노씨의 시조는 고려시...
-
1920년대 일제의 수리 시설 확충에 반대하여 공주 지역 우성면에서 일어난 농민운동. 우성면민들은 일제에 의한 우성수리조합의 설립을 반대하여 조합 설립의 부당성을 진정하고 도지사·군수와의 면담을 요청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한편 공사 저지 투쟁까지 전개하였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식민지 경제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우성수리조합 설립 반대 투쟁은 농민민족운동의 한 양상...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방흥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꿈과 희망을 주는 교육 공동체와 함께 변화하는 학교”라는 슬로건 아래 적성에 맞는 진로를 개척하며 실력을 갖춘 사람,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 건강한 신체와 바른 심성을 지닌 사람, 높은 자존감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참되게, 새롭게, 씩씩하게’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심신이 건강하고 생각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사람, 탐구할 줄 알고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사람,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즐겁게 생활하는 사람,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이해하고 애호하는 사람, 나라를 사랑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스스로 , 새롭게, 끝까지’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충현서원 입구에 있는 송시열의 추향기가 적혀 있는 비석.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자리한 충현서원의 입구 정면에는 두 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 중 정면 좌측에 있는 것이 우암송선생추향기비이다. 이 비에는 충현서원에 주자(朱子)와 이존오(李存吾), 이목(李穆), 성제원(成悌元), 김장생(金長生), 송준길(宋浚吉), 송시열(宋時烈...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우물. 조선 중기 때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공주로 피난을 갔을 때, 소가 기갈이 심하자 물을 먹이고 간 후로 유명해졌으며, 면 이름도 우정면이라 하여 7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에 우성면이 되었다. 『공산지(公山誌)』제2권 36장에 “仁祖大王……馬極駕牛間關過木洞村直一路邊之井駐蹕飮牛 命名曰牛井牛井之(인...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옛날 농경시대 목동이 소를 몰고 다닐 때 소가 즐겨 물을 마시던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소우물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무성산(武城山)에서 발원한 산줄기가 소우물 주변을 에워싸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금강(錦江)을 가로막고 우뚝 솟은 연미산(燕尾山)과 취리산(就利山)이 보인다. 얕은 구릉과 논·밭으로 둘러싸...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옛날 농경시대 목동이 소를 몰고 다닐 때 소가 즐겨 물을 마시던 우물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소우물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무성산(武城山)에서 발원한 산줄기가 소우물 주변을 에워싸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금강(錦江)을 가로막고 우뚝 솟은 연미산(燕尾山)과 취리산(就利山)이 보인다. 얕은 구릉과 논·밭으로 둘러싸...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칠봉산(七峯山)·불무산(佛舞山)·평안산(平安山) 사이에 위치한 곳에 운중반월(雲中半月)이라는 명당(明堂)자리가 있어 구름실 또는 운곡(雲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탄면(半灘面) 지역으로, 1914년 반탄면 운곡리(雲谷里)·홍성리(鴻城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운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래 궁원(弓院)이 있어 궁원이라 하였다가,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운곡리(雲曲里)와 궁원리(弓院里)에서 ‘운(雲)’자와 ‘궁(弓)’자를 따 ‘운궁(雲弓)’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지역으로, 1914년 정안면 운곡리·궁원리·보물리(甫勿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운궁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 터. 사곡면 운암리 상원사계곡을 형성하는 산의 칠부 능선에 있다. 운암리 상원사지는 3단의 축대석을 쌓아 조성되어 있는데, 전체 면적은 약 991㎡에 불과하다. 사역(寺域) 내에는 2동의 암자형 신축 건물이 있으며, 뒤편으로 약 30m의 거리를 두고 6기의 부도가 안치되어 있다. 수습되는 유물은 기와...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2리 생골에서 정월 초사흗날과 열 나흗날, 시월 초사흗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구름재의 운정(雲頂)과 거북바위 구암(龜岩)을 합쳐 운암리라 하였으며, 생골은 마곡사 서쪽에 있으며 마을에 찬 샘이 있다고 해서 생골이라고 부른다. 마을 사람들은 산신제에서 마을의 안녕과 결속, 농사의 풍요가 이루어지기를 기...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마을의 삼재를 막고 산짐승의 피해를 막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운암리 운정에서는 원래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과 음력 시월 초하룻날에 상당(上堂)과 삼신당에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합하여 산제(산신제)라고 불렀다. 10월에는 초사흗날 제사를 지냈지만 초하루로 변경하였다. 또 음력 정월 14일에는 노신제(...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운정리(雲停里)와 구암리(九岩里)에서 ‘운(雲)’자와 ‘암(岩)’자를 따 ‘운암(雲岩)’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사곡면(寺谷面) 지역으로, 1914년 사곡면 운정리·구암리·화전리(花田里)·장전리(長田里)·사내리(寺內里)가 통합되어 운암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암산(雲巖山) 아래에 위치하여 운암(雲巖)골 또는 운암(雲巖)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탄면(半癱面) 지역으로, 1914년 반탄면 삼산리(三山里)·신대리(新垈里)·소명리(昭明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운암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이인면 운암리가 되었다. 운암리의...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구암리에 있는 산. 산의 형태나 경치 때문이 아니라 산 주변의 운정(雲亭)의 ‘운’ 자와 구암(龜岩)의 ‘암’ 자를 합쳐 운암산이라 하였다. 운암산은 높이가 290m이며, 이인면의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성 산지로 청양군과 마주하고 있다. 운암산의 북쪽과 서쪽 사면은 흑운모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동쪽부터 남쪽까지는 안산암질암...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성의 중요성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민요. 「운우지정 사설」은 남녀의 육체적 관계를 고급스럽게 은유적으로 표현한 성인들만의 노래이다. 공주시 일원에는 성을 직접적으로 노래한 일명 씹타령이 4수가 전해진다. 각설이 타령재 속에 3수, 잡가 형식 1수의 형식이다. 잡가 형식의 씹타령은 재담조의 노래로서 음담이 주를 이루며 즉흥적인 면이 강하여...
-
공암 1리의 마을길은 무척 운치가 있다. 농촌 풍경이 아주 넓게 펼쳐져 있어서도, 도로가 잘 닦여 있어서도, 인도가 잘 나있어서도 아니다. 물론 이런 것들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마을이 정겹고 운치 있게 느껴지는 것은 공암 주민들의 살아있는 숨결을 정답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암은 몇 사람 살지 않는 작은 시골마을이 아니다. 공암 1리만도 약 600여명이...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곰나루 인근에 있는 「곰나루 전설」과 관련된 사당. 곰나루라는 명칭은 처녀곰과 나무꾼 총각 사이에 얽힌 아름답고도 슬픈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실제로 곰나루 북쪽에 솟아 있는 연미산 중턱에는 전설 속의 곰이 살았다는 동굴이 곰나루를 내려다보고 있다. 「곰나루 전설」 이후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나루터 인...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공산성은 동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에워싼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는 해발 110m고, 서쪽에 있는 산봉우리는 해발 85m인데, 광복루는 동쪽에 있는 해발 110m의 산봉우리 정상부에 있다. 광복루는 원래 조선시대 중군영의 정문 문루였고, 명칭도 폐문루(閉門樓)였다. 일...
-
686년부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한 신라의 지방행정조직. 공주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가 475년(문주왕 1) 북한성(北漢城)에서 천도하여, 538년(성왕 16) 다시 부여로 옮기기까지 백제의 도성이었다. 백제가 나당(羅唐)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나서 당나라는 공주 지역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었으며, 670년(문무왕 10)에는 신라가 관장하였다. 신문왕 때 웅천주(...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서 산제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47년 10월 6일 공주시 중학동에서 임헌도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최건구(남)이다. 옛날 공주읍 지금의 교동에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혼자 몸으로 많은 가족을 거느리는 농부였으므로 가난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루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일원에서 생산되는 쌀 브랜드.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은 이전부터 유구천과 대룡천의 맑은 물을 이용해 양질의 벼를 생산해 왔지만 수확 후 처리 문제와 마땅한 판로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1995년 정부 지원 사업인 미곡종합처리장 유치를 계기로 최신 설비인 습식연마기, 색채선별기 등을 갖추고 양질의 쌀을 생산하게 되었다. 웅진 쌀은 공주 지...
-
475년 백제 문주왕이 왕도를 한성(현 서울)에서 웅진(현 공주)으로 옮긴 사실. 백제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은 3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백제 왕도인 한성을 공략하였으며, 개로왕은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한성이 함락되었다. 그 과정에서 개로왕은 죽음을 당하였다. 이에 한성에서 즉위한 문주왕(文周王)은 고구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자 그해 10월에 웅...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사립 교육 박물관. 교육에 관련된 자료들을 시대별로 수집, 보관, 전시하여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인성 교육 및 체험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성인들에게는 지나간 옛 추억을 통한 인간성 회복 및 정서 순화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2001년 8월 7일 웅진초등교육박물관 설립을 인가받아 2001년 11월 10일 폐교된 청산초등학교...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서 음력 3월 16일을 전후하여 계룡산 산신제에서 유교식으로 행해지는 수신제. 계룡산 산신제는 조선시대까지 국행제의로 지내져 오던 것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단절되어 신원사에서 불교식으로만 이어져 오던 것을 옛 형식을 갖추어 다시 복원한 전통의 향토 축제이다. 계룡산 산신제는 유교식, 불교식, 도교식의 종합 산신제 형식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와 공주시 봉정동을 연결하는 다리. 웅진대교는 봉정동에서 방아달산[159.6m]을 지나고 우성면 도천리에서 부엉산을 지나기 때문에 금강과 지방도 651번에서 고도가 높은 곳에 건설되었다. 웅진대교는 금강의 다른 교량들과는 달리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 상에 건설된 다리로 부여~금남 간 지방도 651번인 백제큰길 위를 교차하...
-
660년 당나라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한 통치 기구. 웅진 지역은 사비 천도 이전 63년간 백제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사비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웅진이 수도로 결정된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으며, 방어상 유리하다는 점도 그 중의 하나였다.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당시 의자왕 역시 웅진성으로 피신한 사실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백제는...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고마나루 또는 웅진(熊津)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동부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약리, 용당리, 박산리, 서혈동, 한산리, 송산리, 하봉촌 일부를 병합하여 용당주읍(龍堂州邑)이라 하고 주외면에 편입되었다. 1938년 주외면이 폐지되면서 공주읍에 편입되어 용당정(龍堂町)이 되었다. 1947년...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웅진동 고분군은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백제시대의 고분군 지역으로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이 일대에서는 1960년대 말 수습 조사된 박산소 고분군을 제외하고도 3번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1979년 웅진동 산610-1번지를 포함한 지역에서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1), 1989년 수습 조사된 것을 웅진동...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웅진동 고분군은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백제시대의 고분군 지역으로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이 일대에서는 1960년대 말 수습 조사된 박산소 고분군을 제외하고도 3번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1979년 웅진동 산610-1번지를 포함한 지역에서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1), 1989년 수습 조사된 것을 웅진동...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웅진동 고분군은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백제시대의 고분군 지역으로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이 일대에서는 1960년대 말 수습 조사된 박산소 고분군을 제외하고도 3번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1979년 웅진동 산610-1번지를 포함한 지역에서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1), 1989년 수습 조사된 것을 웅진동...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절 터. 공주시 웅진동 오약골 금강변 곰나루 부근의 낮은 구릉상에 있다. 금강이 북에서 남으로 휘어 돌아가면서 남쪽으로 시야가 트이는 것으로 보아 남향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웅진동 사지는 탑골이라 불리며, 1930년대만 해도 석탑이 있었다고 한다. 웅진동 사지의 남쪽으로 약 50m의 거리를 두고 큰샘이라...
-
일제강점기까지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서 음력 2월과 9월에 길일을 정하여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냈던 마을 제사. 웅진동은 1947년 일본식 지명 표기를 고치는 과정에서 용당리(龍堂里)에서 변경하였으며, 웅진동은 주외면(州外面) 11구의 하나로 남부면(南部面)의 외약리(外若里), 용당리(龍堂里), 박산리(朴山里), 서혈동(西穴洞), 한산리(韓山里), 소정리(...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서 정월 열나흗날 남·여 장승을 합궁시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냈던 마을 제사. 1947년 일본식 지명 표기를 고치는 과정에서 용당리(龍堂里)에서 웅진동으로 변경하였으며, 웅진동은 주외면(州外面) 11구의 하나로 남부면(南部面)의 외약리(外若里), 용당리(龍堂里), 박산리(朴山里), 서혈동(西穴洞), 한산리(韓山里), 소정리(小亭里),...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한산소 한산(韓山)에 있는 시대 미상의 토축 산성. 한산(韓山)은 해발 121m의 나지막한 야산으로, 한산을 속칭 ‘성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산성이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성의 축조 시기는 전혀 알 수 없다. 관련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발굴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아 축조 시기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전무하다. 따라서...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백제시대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수신제를 올렸던 사당의 터. 웅진사가 있는 고마나루에는 처녀곰과 나그네, 또는 나무꾼 총각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재 고마나루 북쪽에 솟은 연미산 중턱에 전설 속 곰이 살았다는 곰굴이 고마나루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나루터 인근에 웅...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공주 공산성의 백제시대 명칭. 475년(문주왕 1) 고구려의 침입으로 수도였던 한성이 함락되자, 백제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이후 538년(성왕 16) 백제 성왕은 사비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따라서 웅진에 도읍한 시기는 63년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웅진으로 도읍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한 것에...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금성동·옥룡동에 걸쳐 있는 백제시대 석축 성곽. 공주 공산성의 축성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천도 이전에 축조된 것인지, 아니면 천도 후에 축조되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천도 이전에 축조되었다면 축조 배경을 잘 알 수 없지만, 천도 이후에 축조되었다면 왕궁 및 왕도 방비를 위해 축성된 것이 분명하다. 공주시 북단에는 금강이 동에서...
-
계룡문화회가 매년 봄·가을에 열고 있는 웅진성 수문병들의 근무 교대식을 주제로 한 축제. 1996년 백제문화제 개최 평가 회의 시 정통 백제사를 주제로 한 상설 프로그램의 신설 필요가 제기되어 매년 같은 형태로 반복 개최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기획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2년 동안 당시 공주시청 문화관광과 이걸재가 웅진 백제 당시 왕성이었던 공주 공산성의 옛 모습을 살...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서 음력 3월 16일을 전후하여 계룡산 산신제에서 유교식으로 행해지는 수신제. 계룡산 산신제는 조선시대까지 국행제의로 지내져 오던 것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단절되어 신원사에서 불교식으로만 이어져 오던 것을 옛 형식을 갖추어 다시 복원한 전통의 향토 축제이다. 계룡산 산신제는 유교식, 불교식, 도교식의 종합 산신제 형식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에 있는 식료품 제조 공장. 웅진식품은 1976년 ‘정신 문화에서 생활 문화까지 인류에 봉사한다’라는 경영 정신에 입각하여 자연의 맛, 자연의 정서를 제품에 담아 건강한 마실거리,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6년 4월 부식물 납품 및 판매, 섬유 제조를 목적으로 미보산업을 설립한 이래 같은 해 10월 동일산업(주)으로...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에 있는 액체 여과기 생산 공장. 정수기, 세척기 등을 생산하여 생활 용품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건립되었다. 1994년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에 웅진코웨이의 생산 공장으로 건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지 면적은 19,085㎡이고 건물 면적은 9,115㎡이다. 코웨이 유구공장이 생산한 전 품목이 1995년 세계수질협회(WQA)의 골...
-
686년부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한 신라의 지방행정조직. 공주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가 475년(문주왕 1) 북한성(北漢城)에서 천도하여, 538년(성왕 16) 다시 부여로 옮기기까지 백제의 도성이었다. 백제가 나당(羅唐)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나서 당나라는 공주 지역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었으며, 670년(문무왕 10)에는 신라가 관장하였다. 신문왕 때 웅천주(...
-
동원 1리 원골마을은 마을의 북쪽을 산이 두르고 있는 지형이다. 바로 옥녀봉(玉女峰)에서 광덕산(廣德山)으로 이어지는 지형을 말하는데, 옥녀봉은 유구리와 화흥리 경계 부근에 있는 봉우리로 단정하고 빼어나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국이라 하여 옥녀봉이라 부른다. 또한 광덕산은 원골과 화흥리 경계 부근에 있는 봉우리 골이 많으며 토산으로 되어 넓은 덕이 있다하여 광덕산이라 부...
-
과거 원골의 탑제는 마을 주민 전체가 아닌 개인 이대형의 조모님과 모친인 남씨 할머니에 의하여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90년대 초반경까지 지내졌다. 1945년 해방 직후 일본에서 귀국한 이대형씨 부친은 탑 근처의 집을 인수하고 개축 공사를 하였다. 그 과정에서 탑을 위해야 좋다는 여론이 있어 지낸 탑제가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이다. 탑 근처에 살아온 이대형씨의 모친 남씨 할머니...
-
원골 로 시집 와서 지금까지의 지내온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준 임형화(49세)씨는 원골마을 동계 총무인 조병동의 부인으로 원골에 살고 있는 얼마 안되는 40대 젊은 주부 가운데 한사람이다. 임형화는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고, 20대 시절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였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하던 중 충북 옥천으로 파견을 나가 근무하게 되었고,...
-
『한국지명총람』에 옛 신풍현이 있던 터이기 때문에 원골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원골은 ‘원님이 살았다’는 이야기와 연관이 있다. 동원리 원골에는 원님에 대한 전설이 3가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이야기는 마을의 조장하 할아버지에게 들었다. 첫 번째 전설은 옛날 원골에 원님이 살았는데, 어느 날 원님이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원님의 부인이 다른 남자와 바람이...
-
원골마을 의 한가운데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이 있다. 신풍면 동원리 380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3층 석탑은 1976년 1월 8일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되었다. 석탑이 있는 주변은 고려시대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지금은 주택이 들어서고 또한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예전 사찰의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고려시대...
-
마을 운영을 담당하는 것은 원골마을의 ‘동계’로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관련자료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다. 동계의 명칭은 ‘원골동계’이지만, ‘원골’이 동원 1리를 대표하는 지명이므로 동원 1리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이 가입 대상이다. 마을에 새로 이사를 오게 되면 돈이나 쌀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한다. 동계에서 하는 일은 마을 질서를 바로 잡는 마을의 대표격인 조직이다. 동계는 마...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병주(黃秉周)는 1884년(고종 21) 11월 20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추계리에서 출생하였다. 천도교 신자인 황병주는 1919년 3월에 교주인 손병희가 서울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고 체포된 사실을 알았으며, 고향인 공주 지역에서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14일 당시의 충청남도 공주군...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원봉리에 있는 산. 산봉이 둥글다 해서 원봉이라 부르는 산이다. 산 아래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도 산명에 따라 원봉이라 부른다. 원봉은 다른 이름으로 두리봉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원봉은 높이가 109.8m이며, 공주시를 관류하는 금강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충적토가 산체를 둘러싸고 있는 고립 구릉으로 나타나 있다. 원봉은 전...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속해 있다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으로 편입된 법정리. 산 봉우리가 둥그스름한 두리봉이 있어 원봉(圓峰)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포면(反浦面) 지역으로, 1914년 반포면 은계리(隱溪里)와 주곡리(舟谷里)가 통합되어 원봉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반포면 원봉리가 되었다. 2012년 7월 세종특별자...
-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로 289-1에 있는 원불교 대전·충남교구 소속의 교당. 1974년 6월 20일 대전교당 교무 신제근에 의해 공주교당이 설립되었으며, 최지족화 주무가 교무로 부임하였다. 처음에는 최지족화, 손법훈, 정일행, 온법준, 윤세현 등 5명의 교도가 있었고, 초대 교도회장은 노진광이었으며, 주무는 최지족화와 손법훈이었다. 1975년 이수진 교무가 정식 초대 교...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유하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원산정은 박의립에 의해 창건되었고, 아들 5형제가 지내던 곳이다. 따라서 원산정의 건립 연대는 박의립의 생몰년을 감안하면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건립 후 원산정의 사적은 정확치 않다. 건립 이후 언제, 어떤 이유로 정자가 없어졌는지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공주 관련 읍지나...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한국불교법륜종 소속의 사찰 한국불교법륜종은 한국 불교 27개 종단 가운데 하나로, 1988년 11월 고려 말의 승려인 태고(太古) 보우(普愚)를 종조로 창시한 종단이다. 1972년 승려 석일화가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태고종 사찰이었으나 한국불교법륜종의 창종 이후 바뀌었다. 현재 주지는 승려 석해월(釋海月)이 맡고 있다. 원효사 산...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에 명정승(明政丞)이 이곳에서 탄생하여 명가울이라 불리었고, 명개나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명가울·명가리 또는 명가동이라 하였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월하동(月下洞)과 명가리(明珂里)에서 ‘월(月)’자와 ‘가(珂)’자를 따 ‘월가(月珂)’가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사곡면(寺谷面) 지역으로, 1914년 사곡면 월...
-
백제불교사상연구회에서 발행되었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불교 포교지. 대한불교조계종 6교구 계룡산 갑사의 주지 승려였던 장곡과 지역 불교 포교에 뜻있는 불자들이 모여 백제불교사상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월간 백제불교』는 백제불교사상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공주·대전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법을 포교하기 위하여 창간한 월간지이다. 초기 편집장은 사희수가 맡았고, 편집 자문...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산(月山) 아래에 위치하여 다리실 또는 월곡(月谷)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 평전리(平田里)·암정리(庵亭里)·치곡(治谷)·상동천리(上東川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월곡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계룡면 월곡리가 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월곡리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요당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공주군 요당면 월곡리, 비계리, 내동, 두릉리, 흥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월곡리라 하였다. 월곡리 북부 지역으로는 300여m의 산지가, 서부와 동부 지역으로는 200여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북부...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월곡저수지는 의당면 월곡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87년 착공하여 1989년 준공되었다. 제방 구조는 흙댐(휠댐)이며, 유역 면적은 253㏊, 유효 저수량은 17만 5,200㎥이며, 제방 높이는 14.5m, 제방 길이는 182m이다. 물넘이 형식은 측수로식이며, 물넘이 길이는 20m이다. 물...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월곡저수지는 의당면 월곡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87년 착공하여 1989년 준공되었다. 제방 구조는 흙댐(휠댐)이며, 유역 면적은 253㏊, 유효 저수량은 17만 5,200㎥이며, 제방 높이는 14.5m, 제방 길이는 182m이다. 물넘이 형식은 측수로식이며, 물넘이 길이는 20m이다. 물...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동에 있는 산. 공주시가지의 남쪽에 위치하는 데 해가 지는 모양이라 하며, 공주중동초등학교 뒷산인 일출산의 상대적 개념에서 따온 산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월락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광복 후에 일락산으로 다시 고쳤다. 현재는 두 이름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일락산은 구릉성 산지로 높이는 170m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월명리와 상미리, 하미리의 이름을 따서 월미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우정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선무리, 상미리, 하미리, 감천리, 월명리, 송산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월명리와 상미리, 하미리의 이름을 따서 월미리라 하고 우성면(牛城面)에 편입되었다. 1983년 공주읍에 편입되었고, 1986년 공주읍이...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운중반월형(雲中半月形)의 명당(明堂)이 있다 하여 월산이라 하였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월은리(月隱里)와 중산리(中山里)·조산리(趙山里)에서 ‘월(月)’자와 ‘산(山)’자를 따 ‘월산(月山)’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지역으로, 1914년 정안면 월은리·송천리(松川里)·목동(木洞)·중산리·호도리(胡...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고덕동에서 음력 1월 3일에 지낸 마을 제사. 월산리 고덕동 산신제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마을 어른들은 고려 중엽부터 지냈다고 한다. 행사는 정월 초이튿날부터 행해진다. 산신제는 시대의 흐름과 젊은 사람들의 부족, 행사의 경비 문제 등으로 더 이상 치르지 않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에 있는 산제당. 월산리 고덕동 산신제는 매년 정월 열나흘과 시월 초하루에 지낸다. 산신제는 약 400여 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산신제를 올리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호환(虎患)이라고 전한다. 어느 해 주민 두 명이 호랑이에게 희생당했고, 그 후부터 잡귀가 왕성하고 호환이 더욱 심해져 산신제를 지냈는데, 그 후로는 마을에 탈이 나...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월은에서 정월에 길일을 잡아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월은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월산리에 편입되었다. 이때 같이 편입된 마을이 송천리(松川里), 목동(木洞), 중산리(中山里), 호도리(胡桃里), 용운리(龍雲里), 조산리(趙山里), 화평리(花坪里) 일부이다. 월은동은 월산...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중산동에서 가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낸 마을 제사.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중산동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월산리에 편입되었다. 이때 같이 편입된 마을이 송천리(松川里), 목동(木洞), 월은리(月隱里), 호도리(胡桃里), 용운리(龍雲里), 조산리(趙山里), 화평리(花坪里) 일부이다. 1861년 간행된 『공산...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서 발원하여 노성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본류는 금강이다. 제1지류는 논산천이고, 제2지류는 노성천(지방 2급 하천)이다. 하천 지정 근거는 충청남도 177호(1966년 7월 29일) 지방 2급 하천이다. 월산천은 해발 고도 약 40m에서 흐르며, 계룡면 경천리, 논산시 상월면 월오리와 지경리 일대에 규모가 상당히 큰 평야들이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 있는 산. 공주시의 진산(鎭山)으로, 조선시대에 서울과 남부 지역 연락에 중추적 역할을 한 봉수대가 있다. 조선시대에 축조된 봉수대는 전라도 지방에서 올라오는 남쪽 노성(魯城) 성산(城山) 봉수를 받아 북쪽의 정안면 고등산 봉수대로 연결되었으며, 삼남 지방에서 서울로 통신하던 중요한 곳이었다. 현재는 공주 공산성을 비롯하여 공주시민들이...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월성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월성산 고분군은 월성산의 북쪽 줄기에서 서쪽으로 전개된 첫 번째의 능선 서남사면에 위치한다. 월성산은 공주시가지의 동쪽 외곽에 위치한 봉화대로 불리는 해발 314m의 비교적 높은 산이다. 월성산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많은 백제시대 고분군이 분포한다. 남서쪽에는 월성산 고분군, 남쪽에는 능치 고분군, 북쪽에...
-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월성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대. 월성산 봉수대는 논산 노성산에서 보내는 봉수를 받아 정안면 북계리 고등산 봉수대로 보내고 있다. 월성산 봉수대의 석축은 남북 직경 33m, 동서 직경 13m로, 남북이 긴 타원형의 형태이며, 둘레는 80m에 이른다. 또한 석축의 남쪽에는 봉수대로 출입하기 위한 문지가 남아 있고, 북쪽으로는 건...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다래울, 옹골, 사송정(四松亭) 세 마을을 합쳐 예전부터 부르던 이름으로 소나무에 비치는 달빛이 절경이라 하여 월송(月松)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동부면(東部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공동(五公洞), 약천리(藥川里), 상송리(上松里), 성덕동(聖德洞), 가흥리(嘉興里), 요동(要洞)의 각 일부를 병...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동현리에서 발원하여 공주시 월송동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본류는 금강이다. 하천 지정 근거는 충청남도 88호(1991년 5월 9일) 지방 2급 하천이다. 월송천은 장기면 동현리에서 발원하여 월송동의 중앙부를 남북 방향으로 흘러 금강에 합류하는 소규모 하천이다. 해발 고도 40여m에서 흐른다. 하천 연장은 4.20㎞이고, 유로 연장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 상문곡(上文谷)과 하문곡(下文谷)이 통합되어 월암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가 되었다. 월암리의 서부와 동부로는 해발 고도 300여m와 100여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중앙부로는 월암천(月岩...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에서 발원하여 경천리에서 노성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본류는 금강이다. 제1지류는 논산1천이고, 제2지류는 노성천(지방 2급 하천)이다. 하천 지정 근거는 충청남도 88호(1991년 5월 9일) 지방 2급 하천이다. 월암천은 계룡면의 기산리·봉명리 경계 지대에서 남쪽으로 흘러들어 월암리, 유평리, 하대리, 금대리, 화헌리, 경천리 등...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봉안리에 있는 고개. 고개 옆에 있는 산의 형상이 둥근 달과 같다고 하여 다름고개라 부르며, 월현(月峴)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차적으로는 이 고개의 아래에 형성된 마을도 다름고개 또는 월현이라 부른다. 이 마을은 본래 이씨, 서씨들이 거주하던 곳이며 그들의 묘가 많이 있는데, 그 묘의 형태가 마치 달과 유사하다고 한다. 고개 북서쪽에 낮은 산(13...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서 개최되었던 면단위 씨름대회. 윗뜰씨름은 여름두레 먹는 날 놀이판에서 성행하였던 씨름이 면단위의 편씨름 판으로 발전한 민속놀이이다. 공주시 반포면·계룡면·이인면·탄천면 등지에서는 봄두레 먹는 날이나 여름두레 먹는 날 힘자랑에 속하는 들돌 들기와 씨름을 가장 흔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마을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씨름꾼들이 배출되었고, 여름두레가 모두...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속하는 법정리. 시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아 버들개 또는 유계(柳溪)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요당면(要堂面) 지역으로, 1914년 요당면 종현(鍾峴)·구곡리(九谷里)·세청리(洗靑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유계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의당면 유계리가 되었다. 유계리의 북부와 서부·중부로는 해발 고...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유계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유계저수지는 의당면 유계리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82년 착공하여 1988년 준공되었다. 제방 형식은 흙댐(휠댐)이며, 유역 면적은 190㏊, 만수 면적은 8.1㏊, 수혜 면적은 95㏊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계곡형 소류지이다. 유효 저수량은 74만 7,740㎥이며, 제방 높이는 26.4m,...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유학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르는 말. 유교는 불교 및 기독교와 함께 한국 3대 종교의 하나로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전통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문화 등 한국 사회와 역사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한국 유교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전환점은 조선의 성립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유교는 조선의 개국과...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에 있는 농공단지. 농공단지란 1983년 제정된 ‘농어촌 소득원개발 촉진법’에 따라 지역에 공업을 유치하여 농촌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하고, 나아가 지방 재정 확충 및 주민 소득 증대를 통한 도시와 농·어촌 간의 지역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개발 지역을 가리킨다. 1989년 12월 유구읍 유구리 658번지 일대가 농공단지로 지정되었다. 1...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시대 유구역(維鳩驛)이 설치되었고, 마을 뒷산이 비둘기 모양이므로 비득재 또는 유구(維鳩)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역리(驛里)·풍기리(豊基里)·창촌(倉忖)·남방리(南坊里)·석담리(石潭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유구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석남리에 있는 한국천주교 대전교구 소속의 성당. 천주교 박해기에 유구성당 관할 구역에는 둠벙이(현재의 신풍면 조평리)·진밭(현재의 사곡면 신영리)·먹방이(현재의 신풍면 쌍대리)·관불(현재의 유구읍 녹천리)·만년동(현재의 유구읍 만천리)·용수골(현재의 사곡면 유룡리)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들 교우촌은 1866년 병인박해로 모두 와해되었으며,...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석남리에 있는 한국천주교 대전교구 소속의 성당. 천주교 박해기에 유구성당 관할 구역에는 둠벙이(현재의 신풍면 조평리)·진밭(현재의 사곡면 신영리)·먹방이(현재의 신풍면 쌍대리)·관불(현재의 유구읍 녹천리)·만년동(현재의 유구읍 만천리)·용수골(현재의 사곡면 유룡리)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들 교우촌은 1866년 병인박해로 모두 와해되었으며,...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유구역이 있던 지역은 호남과 서울을 연결해 주는 중심 통로로 조선시대 교통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나라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이 6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읍. 1750년대에 면리(面里)가 정착되면서 신풍현이 신상면(新上面)과 신하면(新下面)으로 분리되어 신풍현의 위쪽이라 하여 신상면으로 하였다. 1942년 면 이름을 유구역의 이름을 따서 신상면을 유구면(維鳩面)으로 개칭하였다. 백제시대에 벌음지현 또는 무부현(武夫縣)이었고, 고려시대에는 공주목 신풍현 관할이었으며 유구역이 설치되었다. 조선시대...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있는 집성촌. 공주시의 다른 면들에 비해 유구읍의 동족마을은 현저히 적은데, 이는 유구읍이 조선시대부터 양반의 고장이 아닌, 역이 있던 상권과 교통이 발달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1920년에 조사, 발간된 『조선의 성』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성씨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한 자료로, 여기에 신하면 동족마을로 노동리의 경주김...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석남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기본이 바로 된 예절 바른 사람(도덕인),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실력 있는 사람(실력인), 창의력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신지식인), 자연과 환경을 아는 건강한 사람(건강인), 국제적 감각을 지닌 유능한 사람(세계인)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창의·창조, 성실·근면, 협동·봉사’이다. 1952년 3...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과 신풍면 경계부에서 발원하여 우성면에서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유구천은 지방 1급 하천이며, 본류는 금강이다. 하천 지정 근거는 대통령령 제16,636호이다. 유구천은 상류 지역인 유구읍 덕곡리 일대에서는 해발 고도 140여m에서 흐르며, 중류 지역인 사곡면 호계리 일대에서는 40여m에서 흐른다. 하류 지역인 우성면 평목리...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석남리에 있는 한국천주교 대전교구 소속의 성당. 천주교 박해기에 유구성당 관할 구역에는 둠벙이(현재의 신풍면 조평리)·진밭(현재의 사곡면 신영리)·먹방이(현재의 신풍면 쌍대리)·관불(현재의 유구읍 녹천리)·만년동(현재의 유구읍 만천리)·용수골(현재의 사곡면 유룡리)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들 교우촌은 1866년 병인박해로 모두 와해되었으며,...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석남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른 인성으로 개성을 키워 가는 전인적 개성인, 새롭게 생각하고 탐구하는 창의적 능력인, 꿈을 갖고 자기의 소질을 계발하는 진로 개척인,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가치 창조인, 공동체의식을 갖고 협동하는 공동체 공헌인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근면, 성실’이다. 1914년 4월 1일 유구공립...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명칭이 유(油)터리로 기름재라 하였고, 마을 앞에 있는 못에서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한다고 하여 용숫골 또는 용수동(龍水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사곡면(寺谷面) 지역으로, 1914년 사곡면 유치리(油峙里)·기동리(基洞里)·용수동(龍水洞)이 통합되어 유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가교리에서 유마천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주시 사곡면 가교리는 태화산 기슭 마곡사에서 흐르는 사곡천과 유구 차령에서 흐르는 유구천이 합쳐지는 곳이다. 마을의 역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마곡사가 개창하면서 산막과 초막으로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유마지지 가활만인’은 ‘유구와 마곡 사이는 만 사람이 살 만하다.’는 뜻으로...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인 정인창의 문집. 『유몽집(惟夢集)』은 2권 1책이다. 장정법은 선장본이다. 광곽은 사주쌍변으로 반곽 크기는 가로가 16.1㎝이고, 세로가 21.7㎝이다. 행수는 12행이고, 한 행의 자수는 25자이다. 서문은 정헌태(鄭憲泰)와 정인현(鄭寅賢)이 썼고, 조카인 정둔(鄭鈍)과 양윤석(梁允錫)의 발문이 각각 1편씩 붙어 있다. 권1은...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이고,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이다. 할아버지는 윤황(尹煌)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권씨로 권시(權諰)의 딸이다. 아버지 윤선거가 성혼(成渾)의 외손이므로 가학(家學)이 성리학이었다. 효종(孝宗) 말...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충경공(忠景公) 유형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유취장(柳就章)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 부인은 경주이씨이다. 유선기(柳善基)[1695-1722]는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훈련원정, 훈국아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경종의 등극으로 1722년(경종 2) 소론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발생한 신임사화(申壬士禍)에 아버지...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천향(天鄕)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공주 충렬사에 배향된 유형(柳珩)[1566~1615]이고, 아버지는 포도대장을 지낸 유병연(柳炳然)[1625~1681]이다. 원래 진주유씨 세거지는 경기도 고양이었는데 유형의 장남 유충걸(柳忠傑)이 공주로 이거(移居)한 것으로 추정된다. 묘소는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 신방리 언덕에 있...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유룡리와 정안면 월산리·고성리에 걸쳐 있는 산. 봉우리가 길게 빼어나 갈모(기름종이로 우산같이 만들어 갓 위에 덧씌워서 비를 막게 한 것)같다고 하여 갈미봉이라 불리며 유점산(油岾山)이라고 하기도 한다. 금강을 경계로 공주시 북부 지방에 넓게 나타나고 있는 선캄브리아기의 화강암질 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갈미봉은 높이가 515m이다. 주...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장. 본관은 풍천.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다. 아버지는 임수성(林守成)이다. 1559년(명종 14)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信黙)의 제자가 되었으며, 3년 뒤 승과에 합격하여 많은 유생들과 교유하였다. 1575년(선조 8)에는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휴정을 찾아가서...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지사.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통제사 유형(柳珩)이다. 1618년(광해군 10) 후금이 요동 지방을 공격해오자, 명나라는 조선에 요동정벌군을 요청하였다. 조선에서는 강홍립(姜弘立)을 도원수, 평안도병마절도사 김경서(金景瑞)를 부원수로 하여 1만 3천여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하게 하였는데, 이때 유지걸은 18세의 어린 나이로 형 유효걸(柳孝傑)을 대신하...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숙춘(叔春), 호는 죽당(竹堂)이다. 증조부는 유열(柳悅)이고, 할아버지는 유자문(柳子文)이다. 아버지는 유한평(柳漢平)이며, 어머니는 홍귀해(洪貴海)의 딸이다. 원래 진주유씨의 세거지는 경기도 고양 지역이었는데, 유진동의 증손 유충걸(柳忠傑)[1588~1665]이 광해군 폐모 사건 등의 어수선한 정국을 피해 외향인 공주에 이거하면서 공주 지...
-
조선 중기 진주유씨 공주 입향조.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통제사 유형(柳珩)이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진주유씨의 입향조로 알려져 있다. 1618년 진사시에 합격했는데, 그 해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서인으로 강등시켜 서궁(西宮)에 유폐하자, 이에 분개하여 대과를 단념하고 공주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비로소 벼슬에 나갔으며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사재감직장...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어린이 교육 담당 기관. ‘교육법’에 의해 설치, 운영되는 교육부 관할의 교육 기관으로 재정 형태에 따라 공립 유치원과 사립 유치원으로 구분된다. 공립 유치원은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 주를 이루며, 사립 유치원은 개인, 법인, 종교 단체 등 설립 주체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있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 최초의 유치원은 1912년 9월에 설립...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버드나무가 많아 버들미 또는 유산(柳山)이라 하였다.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유산리(柳山里)와 유평리(柳平里)에서 ‘유(柳)’자와 ‘평(平)’자를 따 ‘유평(柳平)’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 지역으로, 1914년 진두면 유평리(柳坪里)·한림리(翰林里)·화곡리(華谷里)·월암리(月岩里)와 익구곡면(益口谷面)의...
-
충청남도 공주시 공주시 검상동에 있는 기초 화학 물질 제조업체. 반도체 관련 세제와 재료 생산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중추가 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7년 12월 23일 설립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검상동 검상농공단지에 반도체 재료를 생산하는 제1공장과 반도체 공정용 세정제를 생산하는 제2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9월 금산인삼주와 합병했다. 본사는 충청남도...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실, 버드골 또는 유곡(柳谷)이라 하였다.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유곡(柳谷)과 송하리(松下里)에서 ‘유(柳)’자와 ‘하(下)’자를 따 ‘유하(柳下)’가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탄면(半灘面) 지역으로, 1914년 반탄면 유곡·원산리(元山里)·송하리·견산리(見山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유하리로 개편되었...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무신. 본관은 진주.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이다. 할아버지는 유진동(柳辰同)이고 아버지는 유용(柳溶)이며 어머니는 선산임씨(善山林氏)이다. 장남 유충걸 때 진주유씨들이 공주 지역에 세거하게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북상하여 강화도에 이르러 김천일(金千鎰) 장군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하봉리 충렬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무신 유형 장군의 교지와 호패 각 1점. 유형은 진주유씨로, 자는 사온(士溫), 호는 석담(石潭)이다. 어려서부터 무예가 출중하여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과 강화도에서 공을 세우고, 1595년(선조 28)에 무과에 급제한 후 이순신의 휘하에서 노량대전에 참전하였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전투에서 승전하여...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 냉정에서 정월 열나흗날 공동 우물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냈던 마을 제사. 신풍면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영정리는 본래 신하면(新下面) 지역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마새와 냉정을 합쳐 반영리라 하였고, 복골과 성황뎅이를 합쳐서 영정리라 했다가 나중에 영정리로 통합하였다고 한다. 이...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부령. 김홍필(金弘弼)의 딸이다. 유회원(柳晦源) 처 부령김씨(扶寧金氏)는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13세에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어른처럼 애석해 했다고 한다. 장성하여 이웃에 사는 충경공(忠景公) 유형(柳珩)의 7대손인 유회원의 세 번째 부인으로 시집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자식을 낳지 못하자 근심이 많았다고 한다...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회원의 처 부령김씨의 정려. 유회원 처 부령김씨 정려는 1812년(순조 12) 10월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는데, 부령김씨는 남편이 후사 없이 죽자 양자를 들여 장례를 치른 뒤 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이러한 열행이 알려져 정문이 내려졌다. 공주에서 예산 방향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20㎞ 정도...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 세거하던 훈신,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백(誠伯)이다. 아버지는 수군통제사 유형(柳珩)이다. 1618년(광해군 10)에 무과에 급제하여 1622년에 황해병사가 되었다. 1623년 황주목사로 있던 중에 백성에 대한 착취가 심하다는 탄핵을 받고 의금부에 투옥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와 다시 등용되어 북변 수비를 위해 장만(...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 아호는 윤(胤), 자는 거경(巨卿)·종견(從犬), 호는 송산(松山)이다. 할아버지는 시중(侍中) 조인규(趙仁規)이며,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덕유(趙德裕)이다. 어머니는 오의(吳懿)의 딸이다.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조준(趙浚)의 동생이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여러 절의 주지를 역임하다가 30세가 넘어 환속...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윤각의 처 광주김씨 정려. 윤각 처 광주김씨 정려는 광주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1725년(영조 1) 명정을 받아 세워졌다. 광주김씨는 남편이 유배를 당하자 유배지에 따라가 남편이 신원되기만을 빌었고, 마침내 신원이 되자 자진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열행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윤각 처...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윤귀영(尹貴榮)은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1929년 12월 2일 발생한 공주고등보통학교의 동맹휴학을 주도하였다. 1929년 12월 2일 당시 윤귀영은 공주소년동맹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즈음인 1929년 12월 2일에 동맹휴학 운동을 벌인 공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1929년 12월 3일 학교에...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이고, 호는 석호(石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아들은 송시열(宋時烈)의 사위 윤박(尹搏)과 목천현감을 지낸 윤륜(尹掄)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급제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주서·시강원설서·예조...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윤수(尹脩)이며,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숙부 윤건(尹建)에게 양자로 입계하였다. 부인은 동래정씨(東萊鄭氏)로 공주목사(公州牧使)를 역임한 정유순(鄭惟醇)의 딸이다. 칠원윤씨는 본래 정산(定山)[현 충청남도 청양군의 옛 지명]에서 대대로 세거하고 있었다. 그 후 정확한 사연이나 시기는 알...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이다. 아버지는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역임한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윤효지(尹曉之)의 딸이다. 윤원거는 1635년(인조 13)에는 성균관 재생으로 들어갔으며, 이때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묘종사운동에 참여하여 그...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윤원거의 묘. 공주시 계룡면소재지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6㎞를 가다 보면 유평리 계룡초등학교가 나온다. 계룡초등학교를 지나 논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를 가면 영규대사 묘 입구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300m 들어가면 유평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파평윤씨 묘소 중 가...
-
오랜 교직생활을 마치고 내산리에 들어 온지도 벌써 20여년이 넘었다. 1985년 서산 운신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든 교정을 떠나 내산리에 들어오신 윤을용 할아버지. 농촌의 하루라는 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의미한 일상의 연속 같이 보이지만 여든이 넘은 노부부에게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모른다. 하루도 변함없이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윤찬(尹燦), 자는 정숙(靜叔), 호는 후촌(後村)이다. 병사(兵使) 윤선지(尹先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돈(尹暾)이며,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윤창세(尹昌世)이며, 어머니는 청주경씨(淸州慶氏)로 부제학 경혼(慶渾)의 딸이다. 아우는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이다. 부인은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이고,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이다. 할아버지는 윤황(尹煌)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권씨로 권시(權諰)의 딸이다. 아버지 윤선거가 성혼(成渾)의 외손이므로 가학(家學)이 성리학이었다. 효종(孝宗) 말...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증의 묘. 명재 윤증은 윤선거(尹宣擧)의 아들로, 17세기 조선조의 격동기를 살다 간 성리학자, 예학자이다. 윤증은 주자학적 종본주의를 고수하고, 학문의 자유로운 토론을 억압하며, 시대 변천에 역행하여 당면 과제를 외면하는 당시의 노론 정객과 정면으로 대립하였다. 윤증의 사상은 소론 진보 세력...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윤행대(尹行大)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이형욱(李亨郁)의 딸이다. 윤직은 어머니가 화상을 입자 3일 밤낮으로 슬프게 울며 잠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의원에게 녹색의 약초가 화독(火毒)을 제거하는 데 좋다는 말을 듣고는 한겨울에 약초를 구하러 나서 우연치 않게 약초를 발견하여...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윤찬(尹燦), 자는 정숙(靜叔), 호는 후촌(後村)이다. 병사(兵使) 윤선지(尹先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돈(尹暾)이며,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윤창세(尹昌世)이며, 어머니는 청주경씨(淸州慶氏)로 부제학 경혼(慶渾)의 딸이다. 아우는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이다. 부인은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중추...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서(子恕)이고, 호는 농은(農隱)이다. 할아버지는 윤황(尹煌)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다. 형은 윤증(尹拯)이다. 유일(遺逸)로 장령을 역임했다. 1674년(현종 15) 특별 인재를 추천할 때 이지렴(李之濂), 한기, 이동규 등과 함께 추천...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속하는 법정리. 밤나무가 많이 있어 밤나무정이·밤나무골 또는 율정(栗亭)·율동(栗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요당면(要堂面) 지역으로, 1914년 요당면 율동·월봉리(月峯里)·부평리(富坪里)·신리(新里)·양촌리(陽村里)·흥덕리(興德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율정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의당면 율정리가...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율정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토축 산성. 율정리 산성은 성벽의 흔적이 뚜렷한 편이지만 정확한 축조 시기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을 축조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없다. 공주에서 북쪽으로 약 6㎞쯤 가면 의당면 율정리가 나오는데, 이 마을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산이 성재산이다. 율정리 산성은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아녀자들이 윷가락으로 공기놀이를 하듯 즐기는 민속놀이.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어린 소녀부터 나이 든 아녀자에 이르기까지 여인들이 윷가락을 이용하여 공기놀이하듯 즐기는 윷놀이가 전승된다. 베틀질을 흉내 내는 베틀 윷놀이 21종과 보리풍년 윷놀이 21종이 존재했으나, 베틀 윷놀이는 9종만 전하고 보리풍년 윷놀이는 21종 모두 전해지고 있다. 20...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겨울철 농한기에 장기를 두듯이 윷의 수를 내어 말판을 쓰는 윷놀이. 윷두기는 매우 독특한 윷놀이이다. 2인이 마주 앉아 각각 두 가락의 윷을 손에 잡고 상호 1회씩 윷 한 가락을 엎고 네 가락을 합하여 만들어지는 윷을 보고 말판에 말을 쓴다. 윷은 자신의 손에 있는 두 가락에 한하여 1회에 한 가락만 엎어야 하고 자신이 유리하다 하여 엎지 않거나 한...
-
동원1리는 마을의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마을 앞에 넓게 펼쳐진 은구들을 기반으로 풍성한 농작물과 최근에는 표고버섯, 홍고추, 축산물(돼지) 등을 생산하여 소득을 높이고 있다. 특히 표고버섯과 홍고추는 1995년 무렵부터 시작되어 작목반이 구성되었고, 저온저장고과 농산물 집하장, 농기계보관창고 등의 시설이 생겼다. 은구들에서 재배되는 벼는 원골마을의 특산물인...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에 속했던 법정리. 옛날 지혜로운 장부(丈夫)가 있었는데 그가 하루는 용과 지혜를 겨루는 내기를 하다가 그만 장부가 죽고 말았다. 용이 생각하기를 장부만한 사람이 죽은 것이 매우 섭섭하였다. 그래서 용은 돌로 상여를 만들어 놓았다고 하는 데 그가 무덤 속으로 들어가던 날 용도 땅속으로 들어가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또한 용이 땅속에 숨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은룡리 농골 공동묘지에서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은룡리 농골 거리제에서 주민들은 음력 열 나흗날 밤이 되면 마을의 공동묘지에 모여서 떡과 여러 음식, 술 등을 차려놓고 고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는 마을 사람들의 한 해 동안의 건강, 농사의 풍요로움, 자식의 번창을 기원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뒤...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은룡리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시대 미상의 토축 산성. 산성의 축성 시기가 불분명한 만큼 성벽의 축조 경위 또한 정확히 알 수 없다. 공주 시내에서 조치원으로 통하는 국도 36호선을 타고 약 9㎞쯤 가면 장기면소재지가 있는 도계리에 닿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남쪽으로 난 소로를 타고 2㎞쯤 들어가면 은룡리 은골마을이 나오는데, 은골의 서남...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폭포. 은선폭포는 계룡산 국립공원 계룡팔경의 하나이다. 계룡팔경은 충청남도에서 1984년 선정하였는 데 천황봉(天皇峰)의 해돋이, 삼불봉(三佛峰)의 겨울눈꽃[雪花], 연천봉(連天峰)의 해넘이[落照], 관음봉(觀音峰)의 구름[閑雲], 동학계곡(東鶴溪谷)의 신록(新錄), 갑사계곡(甲寺溪谷)의 단풍, 은선폭포(隱仙瀑布)의 자욱한...
-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 시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은제팔찌. 삼국시대의 팔찌는 남녀가 공용으로 착용했던 장신구인데, 무령왕릉에서는 왕비의 것만 출토되었다. 왕비의 팔찌는 금제와 은제로 만들어졌는데, 그중 은제 팔찌[銀製釧]가 제작의 우수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무령왕비 은팔찌는 왕비가 왼쪽 손목에 찼던 것으로, 안쪽 옆면 주위에 치각점...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음력 2월 1일에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에 앞서 일꾼인 머슴을 하루 놀리고 먹이는 세시풍속. 머슴 명절 혹은 농군의 명절이라 칭하는 음력 2월 1일은 본격적인 농사를 앞두고 일꾼들에게 하루를 쉬도록 배려하는 시간이다. 고된 노동을 준비하듯이 놀이 보다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영양보충을 하며 휴식을 취한다. 음력 2월이 되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기 시작...
-
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유명한 음식제조업체 및 음식물을 조리하여 판매하는 가게. 충청남도는 농업이 주가 되므로 곡물, 채소 및 농산물이 많이 나며, 금강 지역에서는 민물고기 등의 수산물이 난다. 계룡산 지역 주변에는 버섯 및 산채류 등을 식생활 자원으로 하는 음식제조업체와 음식점들이 있다. 1) 김순남 할머니 장아찌 충남 지역 장아찌 시장 대부분을...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여러 형식으로 소리를 결합하여 나타내는 시간 예술. 고급 문화가 귀족들의 것이고 서민 문화가 서민들의 것이었던 17세기 이전의 문화적 흐름을 생각할 때, 소리는 참으로 신선한 것이며, 한민족의 문화적 깊이를 깊게 한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귀족 문화에서 파생된 예술이 현재 우리나라의 고급 문화로 자리 잡아버린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사하...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용현리[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용현리]에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메주.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용현리는 예부터 장맛이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지역이다. 의당 전통손메주는 용현리 부녀회원들이 직접 재배한 국산 콩만을 엄선하여 전통적 제조기술로 제조하여 맛과 품질이 매우 뛰어나다. 메주를 볏짚으로 발효시켜 감칠맛이 나고 유난히 구...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의당면은 조선시대 의랑면(儀朗面)과 요당면(要堂面) 지역으로, 의랑면은 지형이 우리 속 같은 의랑골이 있어 의랑면으로 하였고, 요당면은 정안천(正安川)에서 흐르는 냇물이 동혈산(銅穴山)의 끝자락인 이 지역에 와서 못을 이루므로 요당(蓼塘)이라 하였다. 요당에서 용이 백 년에 한 번 승천할 때마다 뛰어난 인물이 배출되었다고 하여...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있는 집성촌. 1920년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조선의 성』은 조선의 성씨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 자료이다. 동족촌의 발생 연대에 대한 『조선의 취락』에 의하면, 전국 1,685개의 동족촌 중 발생 연대가 300~500년 전의 것이 38.3%, 100~300년 전의 것이 20.8%, 500년 이전의 것이 12.3%, 100년 미만의 것은 1.4%에...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슬기롭게, 튼튼하게 자라자”라는 교훈 아래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착하고 실력 있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바르게, 슬기롭게, 튼튼하게 자라자’이다. 1923년 5월 15일 의당공립보통학교 2학급으로 편성되어 개교하였다. 1938년 4월 1일 의당공립심상소학교로 개칭되었으며,...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태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바르게 행동하며 개성을 추구하는 전인적 개성인, 항상 새롭고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창의적 능력인, 자기의 소질을 계발하고 탐구하는 진로 개척인,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문화 창조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조화로운 공동체 공헌인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정직, 질서, 성실’...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공주 지역에서 일반 백성과 승려들로 구성되어 활동한 민간 군사 조직체. 임진왜란 때 공주 지역에서는 영규대사(靈圭大師)[?~1592]를 중심으로 500명의 승병이 궐기하였다. 영규는 갑사(甲寺) 청련암(靑蓮庵)의 승려로 속성은 박씨이며, 계룡면 월암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무예 익히기를 즐겼다. 영규가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킨 시기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선조가...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몸에 걸치거나 입었던 의복 및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공주 지역은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의생활 양식이 현대화되어 있다. 특히 2008년 현재 대부분 일상복으로 서양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결혼식 폐백 등 특별한 의례복으로만 전통복식이 착용되고 있다. 현재 확립된 전통복식은 남성은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여성은 치마·저...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공주군 반탄면(半灘面) 지역으로, 1914년 반탄면 미북리(美北里)라 하다가 이곡리로 개칭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가 되었다. 이곡리의 북부·동부·서부로는 해발 고도 200여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동부로는 운암산(雲岩山)[292m]이, 남부로는 매봉재가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 백실에서 탑에 제를 올리어 금강의 수해를 막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냈던 마을 제사. 이곡리는 1983년에 이인면에 편입되었다. 이곡리의 원래 순수 우리말 이름은 배실이다. 1914년 일본의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배실이 이곡리(梨谷里)로 번안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공주 지역은 여러...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에 있는 거석 기념물. 이곡리 선돌은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0.8㎞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곡리에 위치한다. 이인면소재지에서 공주-부여 간 국도 40호선을 따라 약 1㎞ 남짓 지나면 오른쪽으로 이곡리로 들어가는 소로가 나 있다. 이 길은 이인에서 금강으로 넘어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다. 이 소로를 따라 2㎞ 정도 더 들어가면 도...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에 있는 거석 기념물. 이곡리 선돌은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0.8㎞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곡리에 위치한다. 이인면소재지에서 공주-부여 간 국도 40호선을 따라 약 1㎞ 남짓 지나면 오른쪽으로 이곡리로 들어가는 소로가 나 있다. 이 길은 이인에서 금강으로 넘어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다. 이 소로를 따라 2㎞ 정도 더 들어가면 도...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관세(李寬世)는 1908년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대원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29년 공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에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동맹휴학 운동을 벌였다. 이관세는 1929년 11월 27일 공주고등보통학교 4학년생 30여 명을 모아 식민지 교육의 결함과 총독 정치를 비판하며 동맹휴학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등 주도적 역...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관직(李觀稙)은 1883년(고종 20) 7월 10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사현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00년(고종 37) 대한제국(大韓帝國) 육군무관학교(陸軍武官學校)의 보병과에 입학하여 1903년(고종 40) 9월 20일에 졸업하였다. 1905년(고종 42) 4월 18일부터 육군 보병 참위(參尉)로 육군연성학교(陸...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옥여(玉汝)이고, 호는 묵재(默齋)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기(李夔)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이정화(李廷華)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청송부사 권용(權鎔)의 딸이다. 1592년(선조 25) 강릉참봉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였고, 이어 이덕형(李德馨)·이항복(李恒福)...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귀의 묘. 공주시청에서 송산리 고분군을 지나 소정펄길을 타고 약 7.95㎞ 가면 이인면 만수리가 있다. 만수리 아랫마을의 남서쪽 계성산 능선에 연평부원군 이귀의 묘소와 묘비가 있다. 본래 공주 이귀의 묘가 있는 계성산에는 이귀와 아들 연양부원군 이시백(李時白), 사우당 이시담(李時聃), 연성군 이시방(李時昉)을...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규상(李圭尙)은 1894(고종 31) 5월 21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당시 공주 영명학교(永明學校)에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이규상은 1919년 3월 12일과 3월 15일에 걸쳐 공주 지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된데 자극받은 영명학교 교사 김관회(金寬會)·현언동(玄彦東)과 졸업생 김사현(金士賢...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 전주(全州). 덕천군(德泉君)의 13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면달(李勉達)[1793~1877]이며, 어머니는 보성오씨(寶城吳氏)로 오종헌(吳宗憲)의 딸이다. 공주 지역의 전주이씨들은 덕천군의 후손들로 덕천군의 손자인 상산군(商山君)의 장남 이요년(李堯年)의 아들인 진주목사 이몽경(李夢慶)[1538~1624]부터였다. 원래 이들은 양주 지역에...
-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평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덕사와 이태연의 묘비. 이덕사와 이태연은 한산이씨 집안으로 부자간이다. 이덕사의 묘비는 1666년(현종 7년)에, 이태연의 묘비는 1725년(영조 1년)에 각각 세워졌는데, 특히 이덕사는 우암 송시열의 장인으로, 사위인 송시열이 직접 찬서(撰書)하였고, 이태연 묘비는 권상하(權尙夏)가 찬서(撰書)하였다....
-
고려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개국공신. 본관은 전의(全義). 초명은 이치(李齒)이다. 충청남도 전의현(全義縣)[현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전동면 일대에 있던 옛고을 이름] 출신으로 이후 전의이씨(全義李氏)의 시조이다. 이도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후백제 정벌을 도왔다. 다시 말해, 왕건의 군대가 금강(錦江)에 이르렀을 때 마침 강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했는데 당...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서 이도 묘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62년 10월 5일 공주시 중학동에서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박윤교(남)이다. 공주시 신관동 시목에서 월송동으로 가는 길가에 이도산(李棹山)이 있다. 그 산위에 전의이씨(全義李氏) 시조인 이도(李棹)의 묘가 있다. 전하는 바에...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활동한 국악인. 이동백은 1867년 충청남도 서산군 비인면에서 출생하여, 1950년까지 생존한 조선 말기 다섯 명창 중의 한 사람이다. 8살에 서당 공부를 하였고, 13살에 판소리에 입문하여 김정근, 김세종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20살 때 2년간 독공하였다. 이동백은 진주 이곡사에서 3년 독공에 들어가기 전까지 공주 지역에서...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의 10남인 덕천군의 13대손이고, 덕천군의 현손인 공주 입향조 이몽경(李夢慶)의 4남 이담(李湛)[580~1642]의 7대손이다. 아버지는 이무형(李茂亨)[1793~1861]이고, 어머니는 결성장씨(結城張氏)[1789~1832]이다. 효심이 지극하여 늘 부모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아버지...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 공주(公州). 아버지는 이엽(李曄)이다. 이명덕은 1392년(태조 5) 생원으로 식년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사헌부감찰, 사간원우헌납, 장령, 사인, 집의를 거쳐 품계가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에 이르렀으며, 형조참의겸지도관사(刑曹參議兼知都官事) 등을 역임하였다. 1415년(태종 5)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이 되었다가 좌...
-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공주 출신의 지사.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경장(敬章)이고, 호는 송은(松隱)이다. 할아버지는 첨의정승 이사손이고, 아버지는 전공판서 충청공 이엽(李曄)이다. 조선 각 시기에 간행된 읍지류에 등록된 가문을 보면, 공주이씨는 전주이씨를 비롯하여 부안임씨, 김해김씨, 여흥민씨 등과 더불어 공주의 유력 성씨 및 명족의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옹(中雍), 호는 한재(寒齋). 조선의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이윤생(李閏生)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아들은 명종 때 청백리에 녹선된 이세장(李世璋)이다. 이목은 1489년(성종 20) 19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의 재생이 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목과 아들인 이세장과 관련된 유적. 이목(李穆)[1471~1498]은 반포면 충현서원에도 제향된 인물로 조선 전기 호서의 사림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옹(仲雍), 호는 한재(寒齋),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19세로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1495년 25세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
1596년(선조 29) 충청남도 부여 및 홍산 일대에서 이몽학(李夢鶴) 등이 일으킨 난. 임진왜란은 당시 국가의 권위를 상당히 실추시켰고, 백성들의 생활을 점차 피폐하게 만들었다. 계속되는 흉년과 전쟁은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당시 곡식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벼슬을 나누어주던 모속관 이몽학 등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안해하는 민심을 쉽게 결속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서얼...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하신리에 전해지는 모심기 노래. 「이물꼬 저물꼬 후려놓고」는 당초 계룡산으로 유명한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즉 공주시의 동쪽 산악 마을에서 부르던 모심는 노래였다. 모내기 소리는 흔히 ‘모방구치는 소리’라고 말하는데 노랫말은 그대로 사용하면서 후렴 부분을 생략하여 아낙네들이 부르기도 하였고, 가락도 일부 변형된 소리로 바뀌었다. 노랫말...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 전해지는 부녀자들이 놀이판에서 흥겹게 부르던 민요. 「이별노래」는 여인들이 억압 속에 사는 자신의 인생을 한풀이 형으로 부르는 흥겨운 노래다. 가락이 단조롭고 빠르면서도 청춘가와 유사한데 변화를 많이 주어 흥을 유도한다. 노래는 시어머니나 남편이 자신이 무엇인가를 잘못했으니 나가라지만 나갈 수 없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림(李秉霖) 1889년(고종 26) 6월 4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1일 이기한(李綺漢) 등과 함께 당시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일대에서 8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1919년 4월 1일 정오 무렵 이병림과 시위군중은 인근의 광정리(廣亭里)...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병억(李秉億)은 1919년 4월 1일 당시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을 이기한(李綺漢) 등과 함께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1일 이병억은 시위군중 800여 명을 이끌고 당시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 석송리(石松里)에서 출발하여 면사무소가 있는 광정리(廣亭里) 지역까지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
-
고려시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이복은 병석에 있는 어머니를 위하여 겨울에 금강 물의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모친을 치유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리고 공주시 옥룡동 부근에 ‘국을 엎질렀다’는 뜻의 ‘갱경(羹傾)골’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갱경골은 이복이 어머니에게 먹일 국을 얻어 귀가하던 중 서두르다 넘어져 국을 엎지른 곳이란 유래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
조선시대 금강[충남 공주] 출신으로 일본 도조(陶祖)가 된 도공. 공주 금강에 살던 이삼평은 도공으로 활동하다 임진왜란 중인 1596년 사가번의 번주(藩主)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조선 철군 때 예닐곱 명의 조선 도공과 함께 포로로 피랍되었다. 당시 20대 청년이었던 이삼평은 일본의 가라쓰[唐津]에 도착하여 오기군[小城郡] 다쿠촌[多久村]에 살면서 가나가에[金ヶ江...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이상구(李相龜)는 1859년(철종 10) 3월 16일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 664번지에서 출생하였으며,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 체결에 격분하여 김복한(金福漢)·안병찬(安炳瓚) 등이 주도한 홍주의병에 참여하였고, 1906년(고종 43) 2차 홍주 의거를 계획하고 문석환(文奭煥)과 더불어 종사(從事)로서 종군하...
-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화가. 이상범(李象範)은 근대화단의 대표적인 화가로 1897년(고종 34)에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석송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에 서울로 이주하였으며, 1915년 생활고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학비를 받지 않던 서화미술원(書畵美術院)에 입학하였다. 1917년 서화미술원을 수료하고 나서 1918년 21세에 스승이었던 심전(心田...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이선(而善)이다. 공주의 예안김씨 입향조(入鄕祖) 김숙량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김해이다. 예안김씨가 공주에 정착하게 되는 배경은 조선 초기 당진감무(唐津監務)를 지낸 김숙량(金叔良)이 공주이씨를 후처로 맞이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예안김씨는 입향 초기부터 공주 지역에서 사족으로서의 위치를 굳혀 간 것으로...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현(李升鉉)은 1878년 10월 4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3월 14일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維鳩) 장날 천도교인(天道敎人) 황병주(黃秉周)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경에 유구 장터에 모인 군중 30...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의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증(贈)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윤생(李閏生)이며, 아버지는 영안도병마평사(永安道兵馬評事)를 역임한 이목(李穆)이다. 이세장은 1516년(중종 11)에 사마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고, 1534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검열(檢閱), 대교(待敎),...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승현(李升鉉)은 1878년 10월 4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19년 3월 14일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維鳩) 장날 천도교인(天道敎人) 황병주(黃秉周) 등이 주동하여 일으킨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경에 유구 장터에 모인 군중 30...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현충(玄忠), 호는 사우당(四友堂)이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이다. 영의정을 지낸 연양부원군 이시백(李時白), 서봉(西峯) 이시방(李時昉)과 형제지간이다. 호조판서로 증직된 숙부 이자(李資)가 양부이다. 어릴 적부터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고, 특히 오언시를 잘 지었다. 1613년(광해군 5)...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명(季溟), 호는 서봉(西峯)이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이다. 영의정을 지낸 연양부원군 이시백(李時白), 사우당(四友堂) 이시담(李時聃)과 형제지간이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유생 신분으로 아버지와 함께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으로 녹훈되었다. 1627년(인조 5)...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1913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였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서울방송국에서 근무하였으며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청주고등학교와 공주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49년부터 1971년까지 공주사범대학 교수로 근무하였다. 공주사범대학 교수로 재임하는 동안, 공주사범대학 부속 중·고등학교 교장을 겸임하기도...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이원선(李元善)은 1877년(고종 14)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08년(순종 2) 11월 23일 전라남도에서 일본에 대항하여 일어난 조경환(曺京煥) 의진(義陣)의 우익장(右翼將)이 되어 총 70여 정을 휴대한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전라남도 영광(靈光)·함평(咸平)·나주(羅州)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1607년(선조 40)에 충청남도 금산군 노동리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다. 어머니는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김집(金集)이 천거하여 1634년(인조 12)에 희릉참봉이 되었다. 이어 세자사부(世子師傅)를 지냈...
-
1894년(고종 31) 11월 19일 충청도 공주 이인역에서 동학농민군과 관군 및 일본군의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 1894년 정월 전라도 고부봉기로부터 시작된 제1차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5월 관군과의 전주화약을 계기로 일시적인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라도 전역에 집강소(執綱所: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전라도의 각 군현에 설치하였던 농민 자치 기구)를 설치하고...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서 개최되었던 면단위 씨름대회. 윗뜰씨름은 여름두레 먹는 날 놀이판에서 성행하였던 씨름이 면단위의 편씨름 판으로 발전한 민속놀이이다. 공주시 반포면·계룡면·이인면·탄천면 등지에서는 봄두레 먹는 날이나 여름두레 먹는 날 힘자랑에 속하는 들돌 들기와 씨름을 가장 흔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마을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씨름꾼들이 배출되었고, 여름두레가 모두...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인부곡(利仁部曲)과 이인역(利仁驛)이 있던 지역이어서 이인(利仁)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탄면(半灘面) 지역으로, 1914년 반탄면 역리(驛里)·산의리(山儀里)·명룡리(鳴龍里)·신산리(申山里)·송정리(松亭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이인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이인면 이인...
-
충남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공주시 이인면 면사무소 앞에 충청도관찰사 선정비 3기와 찰방 선정비 5기의 비석군이 위치해 있다. 관찰사 선정비 3기는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윤광안, 남일우, 박제순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찰방 선정비 5기의 경우 역대 이인찰방들 중 이계희(李繼禧), 안승후(安承煦), 박창순(朴昌淳), 이범천(李範天)...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 운암산에서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지내는 마을 제사. 이인리 운암산 산신제와 거리제는 이인리가 형성된 백제시대부터 전래되어 온 의례이다. 약 20여 년 전에 미신 타파라는 이유로 산신제가 중단되었다가 몇 년 전에 다시 지내게 되었다. 운암산에 있는 신당에는 원래 산신의 그림이 있었지만, 몇 년 전에 도난당하는 바람에 그림 없이 산신...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서 확인된 원삼국시대의 무덤. 이인리 널무덤은 이인면소재지에 위치한 이인중학교의 동쪽 전방부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남서쪽의 산에서 북동향하여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사면 하단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표고상으로 55m의 위치에 있으며, 지형적으로 구릉의 선상부에 해당하나 비교적 저평한 지역이다. 공주-부여 간 국도 40호선 확...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행정면. 조선시대에 이도역(利道驛)이 설치되어 있던 곳으로, 이도가 임금의 이름과 소리가 같다 하여 이인역(利仁驛)으로 바뀌었고 이인역 일대를 이인리(利仁里)라 하였다. 1915년 목동면사무소를 목동리(木洞里)에서 이인리로 이전하면서 마을 규모가 더 큰 이인리로 면 이름을 정하였다. 백제시대에 웅천(熊川) 관할이었고, 신라시대에는 웅주(熊州) 관...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있는 집성촌. 전주이씨는 인물조뿐 아니라 문무관 등 다른 어느 가문보다 돋보인다. 이인 지역에도 전주이씨 등 여러 성씨가 세가하고 있지만 기록이나 내역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서 확인하기 힘들다. 우선 입향 시기로 보면 만수리, 오룡리, 신흥리의 선산김씨, 초봉리와 신영리의 안동김씨, 이곡리 경주이씨들이 1600년대 이인 지역으로 입...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용성리 성항산(城項山) 정상부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성. 공주시내에서 부여로 통하는 국도를 타고 약 9㎞쯤 가면 이인면소재지에 닿기 전에 용성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2㎞쯤 나아가면 용성리 성항산에 닿게 된다. 이인산성은 성항산 정상부에 있다. 동벽이 산 정상부를 지나고 있는 데 비해 서벽은 중복(中腹) 가까운 지점을 지...
-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던 역원이다. 고려 때부터 1894년 갑오개혁으로 역원제가 폐지될 때까지 있었다. 1535년(중종 30)부터 찰방(察訪)이 주둔하여 산하의 9개 역을 관할하였다. 이인면은 한양과 호남으로 통하는 대로에 있어 백제시대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고려시...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전인적 성장의 기반 위에 개성을 추구하는 사람,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사람, 우리 문화 이해의 토대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 민주시민 의식을 기초로 공동체의 발전에 공헌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을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교훈은 ‘성실, 창의, 봉사’이다. 1981년 11월 21일 12학급으로...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룬 개성있는 어린이, 기초와 기본을 토대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어린이, 학습 경험을 바탕으로 진로를 개척하는 어린이, 전통 문화 위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어린이, 이웃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어린이를 육성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올바른 인격을 소유한 성인으로 자라기...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재환(李載煥)은 1899년(고종 36)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용진리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1911년 독립운동을 펴기 위해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그 후 길림성(吉林省)에서 주진수(朱鎭洙)·손일민(孫一民)·우재룡(禹在龍) 등이 조직한 광복회(光復會)에 참여하였다. 1917년 군자금 모집...
-
고려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경(順卿), 호는 석탄(石灘)·고산(孤山). 이존오는 1360년(공민왕 9)에 문과에 급제하고, 수원(水原)에 있던 경기관찰도(京畿觀察道)의 서기(書記)를 거쳐 사관(史官)에 발탁되었다. 1366년(공민왕 15) 우정언(右正言)이 되어 신돈(辛旽)의 횡포를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으나, 이색(李穡)...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활동한 국악인. 이동백은 1867년 충청남도 서산군 비인면에서 출생하여, 1950년까지 생존한 조선 말기 다섯 명창 중의 한 사람이다. 8살에 서당 공부를 하였고, 13살에 판소리에 입문하여 김정근, 김세종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20살 때 2년간 독공하였다. 이동백은 진주 이곡사에서 3년 독공에 들어가기 전까지 공주 지역에서...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탄금(彈琴), 호는 사포(沙浦)이다. 성호 이익(李瀷)과 『택리지(擇里志)』를 저술한 이중환(李重煥)을 배출한 여주이씨 집안의 종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상홍(李尙弘)이다. 이상홍은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사위이다. 이지천은 1598년(선조 31) 형인 풍곡(楓谷) 이지화(李知和)[1573~16...
-
충청남도 공주에 묘소가 있는 조선 인조의 다섯째 아들. 이징이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묻힌 까닭은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를 따라 공주로 피난 와서 신분을 감추고 오룡골에 사냥을 나가 만난 처녀와의 인연으로 죽어서 처녀가 살고 있는 오룡골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조선 제12대 왕 인...
-
공암1리 버스정류장에서 남쪽으로 닿아있는 산언덕을 오르면 이천서씨 선산이 있다. 선산을 가기위해 언덕에 오르면 바로 1966년에 세워진 서장호 처 부안임씨의 효부정려가 있다. 여기에서 바로 시작되는 대전-공주간 23번 국도에 놓여진 육교를 타고 공청봉 자락산으로 건너가면 선산과 재실, 고청서기 묘지가 나온다. 고청 서기 묘지는 선산 분묘 중 가장 높은...
-
공암은 이천서씨의 동족마을이다. 이천서씨 중에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인물은 고청(孤靑) 서기(徐起)[1523-1591]이다. 그는 충청우도 남포현(藍浦縣) 제석동(帝錫洞)에서 태어나 노년에 공암에 정착한 인물로 한미한 출신의 한계를 딛고 일어나 당시 신분사회의 질곡 속에서도 개인적 역량으로 한 시대에 기록될 만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사람이다. 서기가 공주...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형(季衡), 호는 성암(醒菴)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의 9대손이다. 아버지는 이홍제(李弘濟), 어머니는 상산박씨(商山朴氏)로 통덕랑(通德郞) 박용원(朴龍遠)의 딸이다. 1904년 일본 사람들이 철도 부설을 위하여 공주에 있는 선영(先塋)을 침범하자, 유림의 진정서를 갖고 관계자를...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7년 공주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에 평소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인 학생들을 모욕하는 언동을 일삼는 일본인 교장의 침략적 본성에 분개하여 학교장의 반성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냈다가 6월 26일 퇴학당했다. 교장이 취한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로 동급생 4학년 50여 명이 7월 2일에 “(1) 학생 퇴학을 경솔히 하지 말 것, (2) 교장...
-
고려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개국공신. 본관은 전의(全義). 초명은 이치(李齒)이다. 충청남도 전의현(全義縣)[현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전동면 일대에 있던 옛고을 이름] 출신으로 이후 전의이씨(全義李氏)의 시조이다. 이도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후백제 정벌을 도왔다. 다시 말해, 왕건의 군대가 금강(錦江)에 이르렀을 때 마침 강물이 불어나 건너지 못했는데 당...
-
조선 중기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정숙(靜叔), 호는 눌재(訥齋)이다. 아버지는 이덕사(李德泗)이고, 우암 송시열이 매부이다. 1642년(인조 20) 진사로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자·검열을 거쳐 이듬해 대교가 되었고, 1646년 설서·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공산현감·수찬을 지냈고 낙당(洛黨) 김자점(金自點)의 일파로 탄...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장. 본관은 풍천.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다. 아버지는 임수성(林守成)이다. 1559년(명종 14)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信黙)의 제자가 되었으며, 3년 뒤 승과에 합격하여 많은 유생들과 교유하였다. 1575년(선조 8)에는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휴정을 찾아가서...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 논밭을 소유하고 직접 농사를 지은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조선 제2대 왕 정종이다. 어머니는 정종의 후궁인 성빈 지씨이다. 정종의 열 번째 아들이다. 평소에 검소하여 사치를 멀리 하였고 가난한 자를 살피는 등 성품이 곧은 인물이었다. 왕자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농사에 힘써 공주에 논밭을 소유하고 때때로 내려와 직접 농사를 지었다. 어느 해 여...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수리과에 속한 새. 몸길이는 수컷이 약 32㎝, 암컷이 약 39㎝이다. 암컷이 수컷보다 약간 크며 날개는 작고 꼬리는 비교적 길다. 수컷의 겨울깃은 앞 이마와 가느다란 눈썹선의 경우 회백색이고 윗부분은 회청색이며, 아랫부분은 흰색 바탕에 등갈색의 가로무늬가 분포한다. 머리 꼭대기는 매우 진하며 허리와 위 꼬리덮깃은 엷은 색을 띤다. 눈 앞은...
-
충청남도 공주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총체. 2006년 12월 31일 현재 공주시의 총 인구는 129,862명(남자 65,473명, 여자 64,389명)으로 충청남도 전체 인구 1,974,433명의 6.5%를 점유하고 있는데, 매년 감소 추세에 있다. 인구 밀도는 138명/㎢, 세대 수는 49,744세대, 세대당 사람 수는 2.6명 등으로 모든 수치가 감소 추세에 있다...
-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지표상에 존재하는 인문적 사상들을 지리적 관점에서 분석한 분야. 공주 지역은 충청남도의 동부 중앙에 있다. 경도상으로 볼 때 동쪽은 연기군의 서면·남면·금남면과 그리고 대전광역시의 유성구·서구에 접하고 있으며 동쪽의 맨 끝은 반포면 봉암리의 동쪽으로 동경 127° 17' 30"이다. 서쪽은 예산군의 대술면·신양면과 청양군의 운곡면·대치면·...
-
갈색 한복을 곱게 입은 김종국 할아버지는 삼거리마을 안쪽에 ‘영덕사’ 라는 작은 절집을 짓고 살고 있다. 어릴 때 경상도 안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청년시절에는 전라도 광주와 강원도 삼척, 경기도, 충청북도 등 안가본데가 없이 떠돌며 살았다. 말년에 우연히 중장리에 들어왔다가 아예 자리잡고 사는데 살아본 중에는 이동네가 제일 좋다. 어릴때에 부모가 돌아가시면서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일...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서 인절미와 도루메기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절미와 도루메기에 얽힌 유래담으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전해 오는 이야기나 역사적인 사실과 관계되어 공주시 산성동에 전해 오는 임금의 피난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1967년 1월 7일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함. 제보자는 공주시 산성동의 박천일(남)이...
-
1624년(인조 2) 2월 이괄의 난으로 한양이 함락됨에 인조가 공주에 잠시 피난한 일.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국방의 강화와 중립적 외교 정책 등 민생과 대외 정치에 있어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대내 정치에 있어서는 대북파의 권력 독점을 허용함으로써 다른 정치 세력들을 소외시켰고, 무엇보다도 인목대비를 폐비시킴으로써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호남(湖南)에서 한양(漢陽)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인제원이 있어 인풍이라 하였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인제원(仁諸阮)과 풍정리(豊亭里)에서 ‘인(仁)’자와 ‘풍(豊)’자를 따 ‘인풍(仁豊)’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지역으로, 1914년 정안면 인제원·강산리(姜山里)·풍정리·사곡리(沙谷里)...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도교 계통의 신종교. 국제도덕협회는 1947년 이후 우리나라에 소개된 일관도(一貫道)라는 신종교의 한 교파이다. 이 종교는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을 융합하여 일관한다는 뜻에서 ‘일관도’라 한다. 공주의 국제도덕협회는 170여개 지부 중의 하나이다. 공주의 국제도덕협회는 1962년 화교인 모덕경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
1764년(영조 40) 공주 출신인 김인겸이 일본을 다녀오고 지은 장편 기행가사. 「일동장유가」는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 출신인 김인겸이 조엄(趙曮)을 정사로 하는 일본 통신사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수행하여 일본 에도(江戶, 오늘날 東京)까지 11개월 동안(1763. 8. 3~1764. 7. 8)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일본의 문물, 제도, 인물, 풍속 등을 8,...
-
충청남도 공주시 봉황동에 있는 산. 공주시가지의 남쪽에 위치하는 데 해가 지는 모양이라 하며, 공주중동초등학교 뒷산인 일출산의 상대적 개념에서 따온 산 이름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떨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월락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광복 후에 일락산으로 다시 고쳤다. 현재는 두 이름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일락산은 구릉성 산지로 높이는 170m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평생의례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의식과 예절로서 ‘통과의례’, ‘일생의례’라고도 한다. 인간의 일생은 연속적인 과정이기도 하지만 몇 가지의 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단계를 건널 때마다 의례가 따른다. 따라서 평생의례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되었음을 공식적으로 나타내는...
-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며 외국 사신의 왕래, 공무 여행자에게 말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주요 도로에 대개 30리마다 두었다. 여러 개의 역을 하나로 편성하여 찰방(察訪) 또는 역승(驛丞)이 이를 관장하는 동시에 교통로 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보고하기도 하였다. 기록에 나타나는 공주...
-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며 외국 사신의 왕래, 공무 여행자에게 말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주요 도로에 대개 30리마다 두었다. 여러 개의 역을 하나로 편성하여 찰방(察訪) 또는 역승(驛丞)이 이를 관장하는 동시에 교통로 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보고하기도 하였다. 기록에 나타나는 공주...
-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며 외국 사신의 왕래, 공무 여행자에게 말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주요 도로에 대개 30리마다 두었다. 여러 개의 역을 하나로 편성하여 찰방(察訪) 또는 역승(驛丞)이 이를 관장하는 동시에 교통로 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보고하기도 하였다. 기록에 나타나는 공주...
-
내산리도 다른 농촌마을들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마을의 유래와 내력을 알만한 자료들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구체적인 사실들은 그 아픔만큼이나 미약하다. 일제강점기 내산리가 처한 현실은 다른 마을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일본의 수탈과 그로 인해 만성적인 기근이 초래된 데 대한 분노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강화된 공출은 농민의 불만을 가중시켰고 이에 대해...
-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35년간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시기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역사.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강점기는 1910년대의 무단통치기와 1920년대의 문화정치기로 불리는 민족분열통치기, 그리고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의 파쇼통치기 등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식...
-
윗장마을 은 양반마을이라 풍장을 못쳤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농사짓는 마을에 두레가 없을 리가 없다. 열두대징이의 각 마을별 두레는 본래의 역할과 별도로 마을 사람들의 단결력을 보여주는 상징과 같았다. 중장1리에서는 갑산소와 갑사동 두레가 유명했는데, 하대리 마룻골 형님두레를 제외하면 갑산소와 갑사동 두레패가 세기로 유명했다. 두레가 나서는 날에는 풍장패가 요란하...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하신리에 전해지는 부녀자들이 흥을 내기 위해 부른 민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징용이나 군복무 등으로 남편과 이별한 여인들이 임을 그리워하여 부른 민요는 매우 다양하다. 이런 노래는 임을 그리워하면서 ‘산이 막혀 못오시나 물이 막혀 못오시나’ 하는 전통 노랫가락의 노랫재에 즉흥적으로 더해 부른 것이 이후 민요로 자리 잡은 것으로...
-
삼국시대 백제 제23대 왕.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삼근왕이 문주왕의 맏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아울러 아버지 문주왕은 개로왕, 곤지 등과 더불어 제20대 왕이었던 비유왕(毗有王)의 아들이었다. 장남이었던 개로왕의 직계 가족들은 한성(漢城) 함락과 더불어 고구려군에 의해 몰살되었다. 따라서 문주왕이 개로왕을 뒤이어 백제 제22대 왕으로 즉위하였고, 문주왕 다음에는 문주...
-
고려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 낙향하여 살던 충신.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1342년(충혜왕 복위3)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임숙(林淑), 어머니는 유씨(劉氏)이다. 부인은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최유(崔濡)의 딸로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맏이는 임모(林摹)로 수사(水使), 둘째는 임목(林穆)으로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 셋째는 임서(林叙)로 충의교위좌군사직(忠毅...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의병. 임대수(林大洙)는 1882년(고종 19) 2월 12일 현재의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송당리에서 출생하였다. 임대수는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나서 쇠퇴하여가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충청남도 일대에서 의거의 기치를 올려 19개 군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순종 1) 정미칠조약이 체결되고 이어서 군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미술관. 미술 작품을 수집·보전하고 전시하여 지역민들의 문화 수준을 향상시키고, 다양한 미술 문화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미술 문화를 이끌어갈 차세대를 양성할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1996년 2월 착공하여 1997년 5월에 본관과 휴게실 2개 동이 준공되었다. 1997년 10월 2월에 문화관광부에 등록되었고, 설립자 임립이 관장으로...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활동한 국악인. 임윤수는 서울대학교, 이화여대에서 강사 생활을 하였으며, 충청남도연감편찬위원회 위원장, 대전시립연정국악연구원 원장, 충청남도 문화상 심사위원, 한국시조연합회 상임고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충청남도지부 지부장, 충청남도 문화재위원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또한 1998년에는 공주시 충남연정국악원을 건립하였고,...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장. 본관은 풍천. 속명은 임응규任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다. 아버지는 임수성(林守成)이다. 1559년(명종 14)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信黙)의 제자가 되었으며, 3년 뒤 승과에 합격하여 많은 유생들과 교유하였다. 1575년(선조 8)에는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의 휴정을 찾아가서...
-
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은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연합군을 형성, 일본에 대항하는 한편, 일본과의...
-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현대문학인. 임헌도(林憲道) 시인은 1920년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40년 『조선일보』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필 활동을 시작하였다.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공주대부설고등학교 교사,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를 역임하면서 시와 시조를 창작하는 한편, 공주 지역을 포함한 충청 지역 구비문학 작품의 수집·...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문신. 19세기 한말 대표적인 성리학자로서 충청남도 연기·공주 일대에서 크게 활약한 임헌회(任憲晦)[1811~1876]는 많은 관직들을 사양하고 성리학 특히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한 인물이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며, 자신의 문하에 간재(艮齋) 전우(田愚) 등이 있다.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명로(明老), 호는 고산(...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의 모양이 갓처럼 생겼다 하여 갓골 또는 입동(笠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하면(新下面) 지역으로, 1914년 신하면 두암리(斗岩里)·군치리(君峙里)가 통합되어 입동리라 하고, 1942년에 신풍면 관할이 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신풍면 입동리가 되었다. 입동리의 동부와...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입동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시 신풍면 입동리에는 백룡리·선학리와 연결된 구절산이 있는데, 예전에 이 산에는 아홉 개의 절이 있었다고 한다. 5·16 군사정권 이후 산속에 있는 무허가 사찰들이 간첩들의 은신처로 사용된다 하여 강제 철거되었다. 절이 철거된 이후부터 마을에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특히 젊...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선사시대부터 근세에 이르는 거석 기념물의 한 종류. 선돌은 자연석이나 자연석을 일부 다듬어 세워 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고인돌과 조합을 이뤄 세워 놓은 것도 있다. 선돌의 연대를 추정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지역에 따라 다르다. 서유럽의 경우에는 신석시시대 후기부터 시작하여 청동기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선돌에 성혈(性穴)을 새겨 놓...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커다란 선돌이 있어 선돌 또는 입석(立石)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상면(神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서모리(西牟里)가 통합되어 입석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구읍 입석리가 되었다. 입석리의 동부와 서부로는 해발 고도 200~300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입석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지내는 마을 제사. 유구읍 입석리에는 약 100년에서 4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데, 10여 년 전부터 이곳에서 성황제(城隍祭)를 지내기 시작했다. 옛날에 입석리 주변, 지금의 한국공연예술체험마을에 약 300평이 숲처럼 나무들로 가득 찼었는데 경기장을 조성하면서 숲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숲이 없어지...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용봉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갓바위 명칭은 마을에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던 데서 유래하였다. 옛날 이 마을에 사는 이기영의 밭 가운데에 갓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갓바위를 부귀를 주는 바위라 하여 오래도록 섬겼다. 갓바위는 용바위의 북쪽에 위치한다. 우성면과 청양군 목면과의 경계인 공수원에서 신풍면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