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계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구조물. 건축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쉼터와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도 제공한다. 건축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주거 건축, 종교 건축, 관청 건축, 휴양 건축, 복지와 교육 건축, 상업과 공업 건축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각 영역별 건축의...
-
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문인.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용회(用晦), 호는 노계(蘆溪). 아버지는 광릉참봉(光陵參奉)을 지낸 돈목재(敦睦齋) 김기서(金麒瑞)이다. 김경희(金景憙)는 1515년 지금의 고창군 고창읍 화산리 호동마을에서 태어났다. 1534년(중종 29) 식년시에 생원 3등 34위로 합격하였다. 이어서 문과에 합격하였으나 김안로(金安老) 등의 농간으로 낙방하자 중종이...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원지(遠之), 호는 국재(菊齋). 집현전 학자 김양원(金暘元)이 증조할아버지로, 아버지는 참봉 김한련(金漢璉)이다. 김성진(金聲振)은 어려서부터 강개한 지기(志氣)가 넘치고 효행이 지극했는데, 아버지가 병환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입에 넣어 주었고, 몰래 허벅지살을 떼어내 탕으로 달여 먹임으로써 주변의 찬사가 끊이...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원이(遠而). 명필 노계(蘆溪) 김경희(金景熹)의 자손이며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장성 남문창의의 일원으로서 정유왜란 소사 전투에 명장의 전공을 세운 좌랑 홍우(弘宇)이다. 김여성은 1564년(명종 19년) 고창군 무장면 백양리에서 태어났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건주(建州)의 오랑캐가 침입하자 사계(沙溪) 김장생...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에 있는 김연, 김석원, 김기서, 김경희, 심진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노산사는 1826년(순조 26)에 고려 후기 명신인 김연(金璉)을 주벽으로, 김석원(金錫元), 김기서(金麒瑞), 김경희(金景熹), 심진(沈搢) 등 5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주벽인 김연은 광산김씨 양간공파(良簡公派) 파조로, 1215년(고종 2)에 개경 동부에서 태어나...
-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에 있는 김연, 김석원, 김기서, 김경희, 심진을 기리는 조선 후기 사당. 노산사는 1826년(순조 26)에 고려 후기 명신인 김연(金璉)을 주벽으로, 김석원(金錫元), 김기서(金麒瑞), 김경희(金景熹), 심진(沈搢) 등 5명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주벽인 김연은 광산김씨 양간공파(良簡公派) 파조로, 1215년(고종 2)에 개경 동부에서 태어나...
-
누정이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의 합성어이다. 누정은 정자의 고유 명사인 정호에 누(樓)와 정(亭) 자가 붙은 건축물로, 주로 마루로 되어 있다. 참고로, 정호에 당(堂)이나 각(閣), 태(台) 등의 문자가 붙은 건축물이라 해도 마루가 주가 되어 사방으로 트인 건축물이라면 누정으로 본다. 한편, 누(樓)와 정(亭) 자가 붙은 정호라도 건축물의 구조가 방과 부엌 중심이라면 그것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화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취석정은 노계(蘆溪) 김경희(金景熹)가 1546년(명종 1) 건립한 것으로, 김경희의 부친은 효행으로 광릉참봉을 제수 받은 김기서(金麒瑞)이다. 을사사화[1545]와 정미사화[1547]가 일어나자 김경희는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하고 호동(虎洞)에 낙향하여 여러 선비들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고 시를 지어 자연을 즐겼다. 이때 김경희...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화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취석정은 노계(蘆溪) 김경희(金景熹)가 1546년(명종 1) 건립한 것으로, 김경희의 부친은 효행으로 광릉참봉을 제수 받은 김기서(金麒瑞)이다. 을사사화[1545]와 정미사화[1547]가 일어나자 김경희는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하고 호동(虎洞)에 낙향하여 여러 선비들과 함께 학문을 강론하고 시를 지어 자연을 즐겼다. 이때 김경희...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한문으로 된 한시, 학문, 한학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 고창에서의 한문학은 고려 초에 본이 흥덕인 장연우(張延祐)에서 부터 기록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당시 중앙에 고창 인맥층이 두터워지면서 오세재(吳世才) 등 한문학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에 오면서 중앙 정계에 진출이 약해졌으나 유학이 진보를 거듭하여 김경희(金景熹), 김질(金質), 오희길(吳希吉...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화산리 앞에 꽃봉재가 있다. 꽃봉재 ‘화’자를 따서 ‘화산’이라 불렀는데, 처음에는 ‘화(花)’로 부르다가 ‘화(化)’가 좋다고 하여 ‘화산(化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전에는 ‘놋점[놋새·鍮店]’이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전에 놋점[놋새]으로 유명했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폐촌된 이후 밀양박씨(密陽朴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