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900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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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奎夏 |
영어공식명칭 | Gim Gyuha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가평군 북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범성 |
출생 시기/일시 | 1890년 1월 26일 - 김규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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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72년 - 김규하 사망 |
출생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
거주|이주지 |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
활동지 | 경기도 가평군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북면 만세시위 참여 |
[정의]
일제 강점기 경기도 가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김규하(金奎夏)[1890~1972]의 본관은 언양(彦陽)이며, 아버지는 김동환(金東煥)으로 1890년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태어났다. 백부 김주환(金周煥)에게 입양되었다. 부인은 신성녀(申性女)로, 슬하에 5형제를 두었다.
[활동 사항]
김규하는 이규봉(李圭鳳)의 문하에서 공부였다. 1919년 3월 1일 이규봉은 서울에 상경하였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서울에 있던 제자들과 만나 만세시위의 경위를 들었다. 이규봉은 가평에 돌아와 아들 이윤석(李胤錫), 정흥교(鄭興敎)에게 이 사실을 전하였다. 이후 장기영(張基英), 정성교(鄭聖敎), 이만석(李萬錫), 정재명(鄭在明) 등 19명의 동지를 규합하고, 약 1,800여매의 태극기와 500여매의 비밀통문을 제작하였다.
3월 14일 가평군 북면 각지에 통문이 전달되었다. 이튿날인 3월 15일 오전 9시 군중은 북면의 성황당에 모여 먼저 만세를 부르고, 북면사무소로 이동하였다. 북면사무소 앞에 수백명의 인원이 모였고, 모두 목소리를 모아 만세를 불렀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다시 주민들을 인솔하여 가평읍내로 이동하였다. 가평읍내에 도착한 주민들은 군청과 각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만세를 불렀고, 가평 읍내의 주민들도 이에 호응하여 만세를 부르게 되었다.
김규하의 부인 신성녀는 아낙네들을 모아 밤새워 태극기를 제작하도록 했다고 하며, 김규하도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에 일본 경찰들은 주도자인 이윤석과 정흥교 등을 체포하였고, 주민들은 체포된 이들의 방면을 위해 다음날인 3월 16일 헌병주재소로 몰려가다 목동리 당고개에서 헌병들과 조우하였다. 200여명의 주민들은 헌병과 격투를 벌이며 투쟁에 나섰으나 일본 경찰은 이들을 가두고 이 가운데 주도인물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체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