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마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216
한자 大邱競馬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임삼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대구경마장 설립
성격 운동시설
설립자 대구부(大邱府)

[정의]

1920년 대구에 설치된 경마장.

[개설]

일제는 ‘문화통치’의 일환으로 각 지역에 오락 시설, 스포츠시설 등을 대규모로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를 시작으로 대구 지역에는 대구경마장을 비롯하여 대구공설운동장[대구운동장], 대구골프장, 대구수영장 등이 설치되었다.

[변천]

1920년 대구에 경마장이 설치되면서 대구에서는 부산과 함께 경마회(競馬會)를 개최하였고 경마구락부도 결성되었다. 대구부(大邱府)[현 대구광역시]는 1920년대부터 시가지 계획을 실시하면서 대구의 도시망을 다시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대구 시내에 흩어져 있던 유흥·스포츠·오락 시설을 모두 한곳에 모아 운영하기로 계획하였다. 이 계획은 대구부가 1928년 제3차 시가지 계획[5개년]의 일환으로 대구공설운동장[대구운동장]을 이전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 본격화되었다.

대구부는 20만 원을 투자하여 달성공원 뒤편 연못을 중심으로 경마장, 육상경기장, 대 야구장, 수영장, 테니스코트 등을 모두 이전하여 대구공설운동장 뒤편에 유원지 겸 스포츠 시설을 조성하기로 계획하였다. 대구부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고 결국 새로운 대구경마장은 1933년 10월 서구 원대동에 준공되었다. 대구경마장은 마장과 관람석 등을 갖추었고, 정기적으로 경마회를 개최하였다. 대구경마장은 해방 이후에도 유지되어 한국경마회 경북지부는 1947년 10월 30일부터 1947년 11월 3일까지 열린 대구추계단련경마를 대구경마장에서 개최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통치의 정당성과 업적을 알리기 위하여 1929년 9월 12일부터 1929년 10월 31일까지 경복궁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하였을 때 대구 경마구락부는 부산, 군산, 평남 등의 경마구락부와 함께 1929년 9월 13일부터 1929년 9월 15일까지 사흘간 경성 신당리경마장에서 경마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대구부에서는 1929년 11월 13일부터 1929년 11월 17일까지 5일 간 대구 신천 강변에서 경마대회를 개최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경마장이 건립되면서 절도 사건, 마권 사기, 경마로 전 재산을 날린 사람의 강도 행각 등과 같은 새로운 사회문제가 발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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