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신대리(新垈里)와 구만리(九萬里)에서 ‘신(新)’자와 ‘만(萬)’자를 따 ‘신만(新萬)’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엄정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대리·구만리·가자동(柯子洞)·두리(斗里)·탄방리(炭坊里)·미곡리(美谷里)·족동(簇洞)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신만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신만리에서 신털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엄정면 신만리 탄방부락의 성마루마을에서 남동쪽으로 600m를 가면 주막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보면 신털봉이란 낮은 산봉우리가 있고 그 맞은편에 큰 산소가 보이는데 이것이 양정승의 묘다. 「신털봉」 전설은 양정승의 장례 날 마침 비가 와서 조객들의 신발에 흙이 묻어 묘지 건너편 언덕에...
고려 전기 예성군에 봉해졌던 충주양씨 시조. 본관 충주(忠州). 탐라국왕 양을나(梁乙那)의 후손으로 충주양씨의 시조이다. 양능길(梁能吉)은 고려가 건국되고 후삼국이 통일될 때 공을 세워 삼중삼한대장군에 오르고 예성군에 봉해졌다. 본래 양능길은 제주양씨였으나 예성(중원소경의 별칭)을 식읍으로 하사받으면서 후손들이 양능길을 시조로 하고 940년(태조 23) 중원소경이 충주로...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경지(敬之), 호는 유정(柳亭). 고려 통합삼한대장군(統合三韓大將軍) 양능길(梁能吉)의 1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양무(梁茂)이고, 할아버지는 양환(梁煥), 아버지는 현령 양숙(梁肅)이다. 외할아버지는 윤정신(尹挺莘), 장인은 민사정(閔思正)이다. 1396년(태조 4) 생원시에 합격하고, 1405년(태종 5) 28...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문강리 문산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양여공의 정려문. 양여공 효자각은 조선 세종 때 병조좌랑을 지낸 양여공[1378~1433]의 효행을 찬양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양여공은 1396년(태조 5) 생원시에 합격한 후 1405년(태종 5)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兵曹正郞)에 올랐으나 병사(兵事)를 상왕(上王)에게 보고하지 않은 죄로...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양능길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양씨는 양능길(梁能吉)을 시조로 한다. 양능길은 본래 제주양씨였으나 고려 개국에 공이 있어 예성군에 봉해졌고, 이후 후손들이 양능길을 시조로 하고 충주(옛 이름 예성)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봉작은 출신 지역이나 거주 지역과 연관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조 양능길이 예성군에...
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사회 변동을 주도하며 존재한 지방 세력. 신라 하대에는 중앙 귀족들의 정권 다툼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됨에 따라 호족이라는 새로운 지방 세력이 대두하였다. 호족은 몇 가지의 부류로 구분된다. 중앙 귀족들의 정권 다툼에서 패배하여 지방으로 내려가 정착한 경우, 지방의 토착세력이던 촌주(村主)들이 성장한 경우, 청해진의 장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