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시대 역터.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연원역에 소속되어 노(奴) 61명, 비(婢) 41명, 기마(騎馬) 2필과 복마(卜馬) 5필이 있었던 것으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충주 지역에서 운용되던 연원역, 단월역(丹月驛), 용안역(龍安驛), 안부역(安富驛) 등 다른 역에 소속된 노비의 수가 대체로 200여 명에...
-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사락리 음동마을에 있는 조선 태종의 서자인 경녕군의 묘. 경녕군(敬寧君)은 조선 태종과 효빈 김씨 소생으로, 이름은 이비(李示+非), 자는 정숙(正淑)이고, 부인은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학문에 밝아 양녕대군·효령대군·세종에게 글을 가르쳤으며, 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의 5조에 걸쳐 왕실과 국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충성을 다하였다....
-
충청북도 충주시의 시화(市花)인 쌍떡잎식물 국화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국화는 꽃의 크기에 따라 대국(大菊, 18㎝ 이상)·중국(中菊, 9㎝ 이상)·소국(小菊, 9㎝ 이하)으로 나누고,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추국(秋菊, 10~11월)·동국(冬菊, 12월 이후)·하국(夏菊, 5~6월)으로 나눈다. 일반적으로 추국이 가장 흔하다. 국화는 전 세계에 20여 종이 분포하며,...
-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심원(深源), 호는 자재(字齋)이다. 세조 때 무신 권언(權躽)의 현손이다. 증조부는 어모장군 권팽(權伻)이며 조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어모장군 권사직(權司直),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첨지중추부사 권형, 어머니는 사인(舍人) 보성(輔誠)의 딸 진원윤씨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증(贈) 사복시정(司僕寺正) 수...
-
조선 전기 광산김씨 충주 입향조.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보(敬甫), 시호는 문경(文敬). 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낸 김소(金遡)이다. 부인 창평조씨 사이에 성균관사예를 지낸 아들 김성원이 있다. 1429년(세종 11)에 생원시에 급제하고, 1432년(세종 14) 식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정자가 되었다. 저작랑, 예문관감찰을 거쳐 1440년(세종 22) 통신사의 서...
-
조선 전기 충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국형(國馨). 증조할아버지는 김자수(金子粹), 할아버지는 김근(金根), 아버지는 김영유(金永濡)이다. 중종대에 사화의 부당함을 주장한 명신 김세필(金世弼)이 아들이고 손자는 김저(金䃴)이다. 세조대에 첨정을 지냈고 1483년(성종 14) 충주판관으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 관아의 노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로...
-
충주는 남한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삼국시대부터 수로 운송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로 중시되어 온 지방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의 세곡을 저장하는 12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충주에 설치한 조창이 덕흥창이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에는 덕흥창 이외에 경원창이 설치되어 경상도의 세곡을 받아 경창으로 수송하였다. 1465년(세조 11)에는 금천(현 충주시 중앙탑면 창동리)에 있던 덕흥창...
-
조선 전기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한 문신. 박팽년은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를 지내고 우승지를 거쳐 충청도관찰사와 형조참판을 역임했다.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성삼문 등과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되어 처형당한 사육신 중의 한 사람으로 아버지 박중림(朴仲林)과 동생 박대년(朴大年) 및 아들 박헌(朴憲)·박순(朴珣)·박분(朴奮)도 함께 처형되었다. 어머니·처·제...
-
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춘천(春川). 아호는 동보(東甫), 자는 혁지(革之). 박씨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40세손이며,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일곱째 아들인 강남대군(江南大君) 박언지(朴彦智)의 11세손이다. 박항은 고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였다. 개경(開京)에 있을 때 몽고군의 침입을 받아 춘천의 백성들이 격렬하게 항전하다가 전멸했을 뿐만...
-
고려 후기 충주 청룡사에서 간행한 불서(佛書). 당나라 승려 현각 대사가 선관(禪觀)을 닦는 요결(要訣)과 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찬술한 것으로, 뒤에 당나라 경주자사(慶州刺史) 위정(魏靜)이 이를 모아 10문으로 나누어 편집하고, 송나라 행정이 주를 달아 쉽게 풀이하여 2권으로 편찬한 것이다. 이 책은 송과 원에서 두 차례 간행되었던 것으로, 고려 말에 간행·...
-
충청북도 충주시 금릉동에 있는 조선 중기 사당. 조선시대에는 가문의식의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사당을 건립하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양정공 사우 역시 이러한 사당에 해당된다. 충주역에서 목행 방향 국도 19호선을 지나 칠금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금제교를 건넌 뒤 곧바로 우회전하여 1㎞ 정도 가면 능암마을이 나오는데, 양정공 사우는 이곳의...
-
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에서 독경을 하면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무경(巫經). 「옥추경」은 주문(呪文)과 부작(符作)을 함께 다루고 있는 축사(逐邪)의 무경이다. 독경(讀經)을 하면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신앙 때문에 가장 많이 읽히는 민간도교의 경전으로 한국의 민간신앙과 꽤 밀착되고 있다. 무경을 설(說)한 뇌성보화천존(雷聲普化天尊)은, ‘말세 중생을 구제하기 위...
-
운봉박씨 충주파의 종손인 박진홍(朴晉弘)[족보명:朴洪悅] 가에는 운봉박씨의 가승 전적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고종 23년(1886) 충훈부에서 당시 충주파의 종손이었던 박흥래(朴興來)[1834~1894]에게 내린 교첩과 완문 그리고 계하사목이다. 교첩은 충훈부에서 내린 것으로 우부승지 이정래가 박흥래에게 장사랑도사의 직책을 내리고 있다. 크기는 가로가 67㎝...
-
충청북도 충주 지역의 일반 복식 생활. 옷은 사람들이 추위나 더위를 피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원시시대에는 짐승 가죽이나 나무의 잎새나 줄기를 엮어서 간단히 몸을 가렸지만, 문명의 발달로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게 되었고 나중에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을 넘어 예절이나 신분에 따라 모양·옷감·색깔 등이 달라졌다. 또한 보통 때 입는 평상복과 의식 때...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덕여(德與), 호는 이봉(二峯). 증조할아버지는 이집(李潗), 할아버지는 탄천(炭川) 이지직(李之直)이다. 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이인손(李仁孫)이며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1427년 한성에서 태어난 이극감(李克堪)은 1444년(세종 26) 식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집현전에 들어갔다. 1447년(세...
-
조선 전기 충청감사를 역임했던 문신.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윤보(胤保), 호는 삼탄(三灘). 고려 말 시중을 역임한 이춘부(李春富)의 4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이옥(李沃), 할아버지는 이사근(李思謹), 아버지는 병조판서에 추증된 이온(李蒕)이다. 1422년(세종 4) 태어난 이승소(李承召)는 1438년(세종 20) 17세로 진사시에 급제하고, 1447년 식년시 문과에 장원으로...
-
조선 전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옥(群玉). 세종의 12남이자 네 번째 서자로, 어머니는 혜빈 양씨이다. 부인은 예빈녹사 권격(權格)의 딸로,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은 흥안군(興安君) 이중생(李衆生)이며 손자는 호천군(湖川君) 이옥근(李玉根)과 이인도정(利仁都正) 이숙근(李叔根)이다. 성품이 순수하며 효심과 우애심이 깊고 처신이 단정하고 무거운데다 검약하고 온공...
-
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
충청북도 충주시 용관동에 있는 전주이씨 한남군파 집성촌. 용관동은 충주시에 속하는 법정동으로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용두원과 관산의 첫 글자를 따서 용관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전주이씨는 신라 때 사공(司空)을 역임한 이한(李翰)을 시조로 한다. 전주이씨 한남군파의 파조인 한남군(漢南君)[?~1459]은 세종의 12남으로 어머니는 혜빈 양씨...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북도 충주 지역 역사. 조선시대 충주는 1395년(태조 4) 지방제도가 개편된 후 충청감영의 소재지이면서 목(牧)으로서 대원(大原)·예성(蘂城)으로 불렸다. 관내의 호수는 1,871호이며, 인구는 7,452명에 이르고, 시위군 440명과 선군(船軍) 465명이 있는 대읍이었다. 1458년(세조 4)에 충주진(忠州鎭)이 설...
-
충청북도 충주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1914년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가흥면과 금천면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가금면이라고 했다. 가흥면은 가금면의 북쪽에 있었고 금천면은 가금면의 남쪽에 있었다. 2014년 개칭된 중앙탑면이라는 명칭은 중원문화의 중심지였던 이 지역에 세워진 통일 신라 시대 석탑인 국보 제6호 충주 탑평리 칠층 석탑의 별칭인 중앙탑에서 유래하였다....
-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에서 천등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천등산 명당」은 산척면 소재지에서 제천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천등산·지등산·인등산 삼산이 있는데, 이곳에 갈마음수혈지혈의 천하명당이 있다는 풍수전설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발간한 『전설지』에 「천등산」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으며, 이는 당시 산척면 송강리의 주민 윤현출, 영덕리의...
-
고려 후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호보(浩甫). 호군(護軍) 최녹원(崔祿元)의 아들이다. 세종조에 파저강(婆猪江)의 야인을 정벌한 공으로 세조 묘정에 배향된 최윤덕(崔潤德)이 아들이며, 그 외에도 세 아들을 두었다. 아버지의 전공으로 공민왕 때 충용위산원(忠勇衛散員)에 기용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전공총랑(典工摠郞)이 되었다. 1385년(우왕 11) 충...
-
김남길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충주김씨는 김남길(金南吉)을 시조로 한다. 김남길은 경순왕의 셋째 아들 영분공 김명종(金鳴鐘)의 16세손으로 고려시대 문하시중을 지내고 나라에 공을 세워 충주군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김남길을 시조로 하고 충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시조 김남길의 5세손 김만수(金萬守)의 첫째 아들...
-
고려 후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왕실의 중요한 서책과 문서를 보관하였던 창고. 충주는 역사상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관방(關防)으로서 중요한 요충지이고 한강의 수운(水運)을 이용한 교통의 요지였다. 이 때문에 외적의 방어에 용이하고 교통이 편리하며 내륙 깊숙이 위치한 도시인 점이 고려되어 사고(史庫)가 설치되었다. 사고 관리는 충청도관찰사와 충주목사의 관...
-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배출된 충신, 효자·효부, 열녀의 총칭. 충주에는 많은 충신들이 있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백기당(白旗堂) 조웅(趙熊)을 비롯한 4명이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환여승람』에는 11명,『충주시지』에는 11명이 기록되어 있다. 충주 출신으로 나라와 향리에 헌신한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
1291년(충렬왕 17) 충주산성에서 고려군이 원의 반란 세력인 합단(哈丹)의 군대를 격퇴한 전투. 1287년(충렬왕 13) 4월 원(元)에서 흥안령(興安嶺) 동쪽을 지배하던 내안(乃顔)이 사심을 품고 동방의 여러 왕들을 충동질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원 세조(世祖)의 친정에 의하여 토벌되었다. 1288년 초에 내안의 잔여세력인 합단이 막북(漠北)에서 다시 반기를 들었는데, 원이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