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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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지역에 소재한 오래된 옛집의 총칭. 고가는 계층성에 따라 상류 주택, 중류 주택, 서민 주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상류 주택은 경제력 있고 지배층인 양반의 집으로 반가(班家)라 하며 지역에 따라 분포가 달리 나타난다. 반가는 안채와 사랑채를 비롯하여 기타 공간으로 이루어지며 기능과 성격에 따라 다양한 마당이 형성된다. 채와 칸의 분화가 발달한 형태로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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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소개되는 고문서류는 풍덕마을의 방호3파인 이충배(李忠培) 씨의 댁에 있는 자료들이다. 이복영·이충배 씨는 숙종 때 벼슬을 한 이진항의 후손으로 이진항(李震恒)이 받은 7점의 교지와 1점의 점령을 소장하고 있다. 고문서류 외에 호패·화살통·화살집·가죽으로 만든 인궤(印櫃) 등이 있다. 교지는 왕이 신하에게 벼슬·시호·자격·토지·노비 등을 내려주는 사령의 문서를 말한다. 문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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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석 씨를 처음 만난 것은 마수리의 대성(大姓)인 운봉박씨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신석 이장인 이유성 씨가 한문 공부도 많이 했고 보학에도 밝은 분이 박장석 씨라고 말하면서 그를 추천했다. 사실 마수리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운봉박씨의 유래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역사라는 것은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다. 박장석 씨를 만나 운봉박씨가 고려 말에 시작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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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에 있는 조선 말기 하마비.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궁가, 문묘 등의 앞에 세워놓은 표석으로,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게 하였다. 충주 지역에는 충주향교 앞의 하마비와 충주 경종 태실 앞의 하마비가 있다. 충주 경종 태실 앞에 1689년(숙종 15)에 세운 원자아기씨 태실비와 1726년(영조 2)에 세운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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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한수재(寒水齋). 아버지는 집의(執義)를 지낸 권격(權格)이다. 형제로 우참찬(右參贊)을 지낸 권상유(權尙游)와 권상명(權尙明)이 있다. 송준길(宋俊吉)과 송시열에게 배우고, 1660년(현종 1) 진사가 되었다.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하던 중, 1668년에 스승 송시열이 좌의정 허적(許積)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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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손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순공(文純公) 권상하의 묘. 조선 후기의 학자인 권상하(權尙夏)는 안동권씨 후예로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또는 한수재(寒水齋)라 하였고,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송시열의 제자로 ‘예송논쟁’에 휘말려 유배되었고, 숙종 때에는 우의정·좌의정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기호학파를 계승하였고 ‘기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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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삼재를 시조로 하고 유한찬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시 세거 성씨. 기계유씨는 신라 때 제6관등 아찬 유삼재(兪三宰)를 시조로 한다. 유삼재의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통일신라가 망한 후에도 고려에 불복하므로 태조 왕건이 유삼재의 신분을 낮추어 기계(현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의 호장(戶長)을 삼았다. 이후 후손들이 기계를 본관으로 삼았고, 후대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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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현경(顯卿), 호는 동원(東園). 할아버지는 목사를 지낸 김사원(金士元)이고, 아버지는 김응무(金應武)이다. 1540년(중종 35) 진사시에 급제하고 1547년(명종 2) 알성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9년 예문관대교, 홍문관정자를 거쳐 1550년 저작(著作), 박사, 1551년 홍문관부수찬, 사간원정언, 1553년 홍문관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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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태숙(泰叔), 호는 사천(沙川)·운촌(雲村). 아버지는 숙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김인백(金仁伯)이다. 박지계(朴知誡)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630년(인조 8) 식년시 생원과에 급제하였다. 스승 박지계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상소하여 구명했고, 1635년(인조 13) 박지계가 별세하자 1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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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때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서예가. 711년(성덕왕 10)에 태어난 김생(金生)은 안동의 문필산, 경주의 경일봉 석굴, 봉화 청량산 김생굴, 음성군 원통산 기슭의 김생암 등에서 글씨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충주 북진의 언덕에 김생사(金生寺)가 있었는데 김생이 두타행(頭陀行: 승려의 수련)을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이를 미루어볼 때 김생은 말년에 충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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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회백(晦伯). 경주김씨 계림군파의 12대손이다. 조부는 종성부사를 지냈던 김원립(金元立)이고, 아버지는 정랑 김민교(金敏敎)이다. 20세 전에 선원전 참봉이 되고 1662년(현종 3) 예빈시로 전임하였다. 같은 해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사간, 장령·집의 등 주로 언론 계통의 관직을 거쳤으며, 1683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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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 지역에 있는 풍류를 즐기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기능을 가진 다락식의 집 누정(樓亭)이란 누와 정의 합성어로서 『설문』에 의하면 누는 중첩시켜 올린 집이라고 하여 형상에 따라 정의하고 있고, 『석명』에 의하면 정(亭)은 정(停)으로 표기하여 잠시 놀다가는 곳으로 풀이하여 기능에 따라 정의하고 있다. 누정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포괄하는 용어이다.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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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 단호사의 창건 연대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조선 숙종 때 중건한 후 사찰 이름을 약사(藥寺)라고 개명하였으며, 1954년 겨울에 단호사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대웅전의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과 충주 단호사 삼층석탑 등의 유물들을 통해 처음 설립된 시기가 고려시대가 아니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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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용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 후기에는 선대 유현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기 위해 사당을 많이 건립하였는데 이를 향현사(鄕賢祠)라 하였다. 무릉사 역시 이러한 향현사 중의 하나이다. 충주에서 국도 3호선을 타고 살미면을 지나 휴게소가 있는 용천삼거리에서 수안보·문경 방향으로 약 400m 정도 직진하면 좌측에 충주 최응성 고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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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민함의 신도비. 민함(閔涵)은 여흥민씨 판서공파 파조(派祖)이다. 아들은 민응건이다. 민함은 무관으로서 1679년(숙종 5)의 내승(內乘) 민함이 정주목사가 되었고, 1700년(숙종 26) 통제사로 역임 중에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행실이 좋지 않다고 탄핵을 당했으나, 다행히 숙종이 윤허하지 않았다.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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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에서 불교 신자들이 모여 예배하는 곳. 충주 지역의 사찰에 대해서는 『고려사』에 숭선사·죽장사·대원사·개천사, 『세종실록』에 청룡사·김생사·용두사·엄정사·향림사,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련사가 보인다. 이후『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각종 지리지에도 사찰명이 기록되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사찰이 있었던 것은 오늘에 전하는 수많은 절터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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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문. 1716년(숙종 42)에 명정(命旌)된 문화인 유충건(柳忠健)과 아들 유시량(柳時亮), 손자 유송제(柳松齊)의 3대에 걸친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문이다. 유충건은 유몽정(柳夢鼎)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으며, 광해군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36세에 모친상을 당하자 죽을 먹으며 시묘(侍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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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읍리(邑吏)를 역임한 인물. 본관은 충주(忠州). 증조할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석광필(石光弼)이며, 아들 석지강(石至剛)은 사마시에 합격했다. 임진왜란 때 석감의 조카 석천수(石天壽)가 피난하여 왔는데, 어느 날 보리를 벤 후 밤에 교동(校洞)에 들어가니 왜적의 방화로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석감은 조카인 석천수와 함께 화염을 무릅쓰고 향교에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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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읍리(邑吏). 본관은 충주(忠州). 도사(都事) 석광필(石光弼)의 고손이다. 작은아버지는 석감(石鑑)이며, 아들은 석응선(石應璿)으로 사마시에 합격했다. 석천수는 예조(禮曹) 및 병조(兵曹)의 수교(受敎)를 수록한 『호성공사실(護聖公事實)』중의「호성사고유문(護聖祠告由文)」에 따르면 임진왜란으로 피난해 있던 어느 날 밤 교동(校洞)에 들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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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손력동(遜力洞)과 탄동(炭洞)에서 ‘손(遜)’자와 ‘동(洞)’자를 따 ‘손동(遜洞)’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동량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탄동·두무실·마실·발락동이 통합되어 손동리로 개편되었다. 1956년 7월 8일 충주읍이 충주시로 승격됨에 따라 중원군에 속하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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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화양동주(華陽洞主). 증조할아버지는 봉사(奉事)를 지낸 송구수(宋龜壽)이고, 할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송응기(宋應期)이다.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를 지낸 송갑조(宋甲祚), 어머니 선산곽씨(善山郭氏)는 봉사를 지낸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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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에 있는 자연마을. 옛날에 참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었는데, 여우가 많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여우골로 불리던 곳이다. 여수월의 여수는 여우의 방언형이며, 월은 지명에서 곡(谷)의 뜻으로 쓰이는 울의 다른 형태이다. 여수월이 속해 있는 마을인 교현동은 본래 충주군 북변면(北邊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야현리(冶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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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창로(蒼老), 호는 후조헌(後凋軒). 할아버지는 유충건(柳忠健), 아버지는 유시량(柳時亮)이며, 동생은 유계제(柳桂齊)·유회제(柳檜齊)이다. 과거에 급제하여 조선 현종 때 정언·지평 등 언관에 종사하였으며, 1674년(숙종 즉위)에 장령을, 1683년(숙종 9)에는 삼척부사를 지냈다. 아버지의 종기가 심하여 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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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안림동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 의림사지는 충주시의 동쪽 외곽에 위치한 마즈막재 아래에 세워진 고려시대의 사찰 터로서, 그동안 지명에 따라 안림동 사지, 이궁지(離宮址), 대궐 터 등으로 불렸다. 그러나 의림사지에 대한 문헌 기록과 자료가 전혀 없어 창건과 폐사 시기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찰의 이름이 확인된 것은 1989년 충주대원고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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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영조 4) 3월 이인좌 등이 정권 탈취를 기도하며 충청감영을 공격하면서 일어난 사건.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은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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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증조할아버지는 증영의정 이란(李鸞)이고, 할아버지는 선무공신 이극일(李克一)이고, 아버지는 부판결사를 지낸 이정(李淀)이고, 어머니는 참판 김반(金槃)의 딸이다. 상국(相國)을 지낸 이완(李浣)의 조카이다. 1645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비변랑(備邊郞)·사복내승(司僕內乘)을 거쳐, 1649년 영일현감(迎日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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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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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무신. 본관 평택(平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역임한 임유명(林有名), 할아버지는 호조참판을 역임한 임덕윤(林德胤), 아버지는 영중추부사를 역임한 임황(林篁),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1594년(선조 27)년 충주에서 태어난 임경업(林慶業)은 1618년(광해군 10) 동생 임사업(林嗣業)과 함께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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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계영(繼榮).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임황(林篁)이고, 형으로는 병마절도사 충민공(忠愍公) 임경업(林慶業)과 임승업(林承業)이 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당시 형인 임승업이 맹산 수령으로서 출전한 뒤 형 대신 노모를 봉양하다가 이듬해 모친상을 당하여 밤낮으로 슬프게 통곡하였다. 이때 청나라 군사가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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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순(仲淳), 호는 장암(丈巖). 고조부는 좌의정 송강 정철(鄭澈)이고, 증조부는 강릉부사 정종명(鄭宗溟)이다. 할아버지는 생원 정직(鄭溭), 아버지는 청안현감 정경연(鄭慶演), 어머니는 여흥민씨이다. 장암 정호는 병자호란을 피해 충주로 낙향한 정경연의 아들로 1648년(인조 26) 충주의 노은 고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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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북도 충주 지역과 경상도를 잇는 주요 교통로였던 고개.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서울과 동래(부산) 사이를 연결하는 교통로였고, 군사적으로도 요충지였다. 조령은 제1관문, 제2관문, 제3관문이 있으며, 이들 관문과 성벽은 1708년(숙종 34)에 축조되었다. 이 중 제3관문을 지나면 경상북도이다. 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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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단호사에 있는 고려 전기 석탑. 단호사는 충주시에서 상당히 고찰(古刹)에 속하는 사찰이다. 현재는 작은 규모의 사찰이지만, 철불과 석탑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창건시에는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호사는 사찰에 남아 있는 현판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숙종 연간[1675~1720]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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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단호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 후기 철조여래좌상. 불상이 봉안된 단호사는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때 중건하여 약사(藥寺)라 하였고, 1954년에 단호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충주 단호사 철조여래좌상은 고려시대 불상으로 1969년에 보물 제512호로 지정되었다. 머리는 두터운 나발이고 육계는 작은 편이다. 눈은 반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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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경내에 있는 조선 후기 임경업을 기리는 비. 임경업[1594~1646]은 조선 인조 때의 명장이다. 자는 영백(英伯), 호는 고송(孤松)이며 본관은 평택이다. 1618년(광해군 10) 무과에 급제하여 1633년(인조 11) 명나라의 반란군을 토벌한 공으로 명나라 황제로부터 총병의 관직을 받았다. 병자호란 때에는 백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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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경량(景亮), 호는 한천(寒泉). 아버지는 생원(生員) 허초(許礎)이고 어머니는 임하임씨(臨河林氏)이다. 숙종조 영의정을 지낸 허적의 할아버지이다. 선조 때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등용된 뒤 1587년(선조 20) 선공감 봉사(奉事)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왕을 따라 호종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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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여차(汝車), 호는 묵재(黙齋)·휴옹(休翁). 아버지는 보은현감 허한(許僩)이며 어머니는 김제갑(金悌甲)의 딸이다. 허적은 1633년(인조 11) 24세 되던 해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7년 28세의 나이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부터 주서·검열·봉교·수찬을 역임하였다. 1640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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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양천허씨 영당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허한, 허적을 각각 그린 초상화 2폭. 규모나 화풍 면에서 조선시대 초상화의 격조를 갖춘 영정으로, 세부 표현에 이르기까지 허술하지 않은 깔끔한 작품이다. 허한(許僩)[1574~1642]의 호는 향오(香塢)이며, 허잠(許潛)의 셋째 아들로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예천군수(醴泉郡守), 이천부사(利川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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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조선시대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공신들의 충절을 높이 사 이들의 관직을 추증하면서 시호를 내리고 사당을 짓도록 하였다. 지방에서는 유림들이 뜻을 모아 지방을 빛낸 유현을 기리거나 가문의식이 형성되면서 존조경종(尊祖敬宗)이 강화되어 묘소 인근에 많은 사당이 세워졌다. 충주 제1로터리에서 직진하여 충주시문화회관 앞 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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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대이(大而), 호는 창애(蒼厓). 할아버지는 홍만종(洪萬鍾)이며 아버지는 형조참판 홍중하(洪重夏)이다. 홍경보는 1723년(경종 3)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727년(영조 3) 정언이 되어 형률(刑律) 시행의 잘못에 대하여 상소하였다. 1728년 부수찬과 참찬관을 거쳐 대사간이 되어 숙종에게 수덕(修德)과 정요(政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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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중(成中), 호는 채봉(彩峰). 사헌부대사헌 홍이상(洪履祥)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장령 홍집(洪雨+集)이며, 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홍주삼(洪柱三)이며, 어머니는 경림군(慶林君) 이정(李淀)의 딸 경주이씨(慶州李氏)이다. 홍만수는 1673년(현종 14)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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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범(聖範). 사헌부장령 홍집(洪雨+集)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전라도관찰사 홍주삼(洪柱三)이며, 아버지는 이천부사 홍만운(洪萬運), 어머니는 군수 정하(鄭何)의 딸 동래정씨(東萊鄭氏)이다. 홍중주는 1677년(숙종 3)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4년 사간원정언이 되어 장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