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800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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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馬高地戰蹟館 |
영어공식명칭 | Baengmagoji Exhibition Hall |
이칭/별칭 | 백마고지 기념관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1길 72[산명리 1822-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홍택 |
준공 시기/일시 | 1990년 05월 03일 - 백마고지전시관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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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백마고지전시관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1길 72[산명리 1822-3] |
현 소재지 | 백마고지전시관 -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1길 72[산명리 1822-3] |
성격 | 전시관 |
면적 | 191,736㎡ |
전화 | 033-450-5559 |
[정의]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산명리에 있는 백마고지전투의 전시관.
[개설]
백마고지전투는 6·25전쟁이 절정에 이르렀던 1952년 10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3㎞ 북방에 있는 무명의 한 작은 고지를 둘러싸고 한국군과 중공군이 치열하게 접전하였던 전투이다. 한국군 보병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전력을 기울여 쟁탈전을 벌인 끝에 우리 국군의 승리로 매듭지어진 전투라 할 수 있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0일 동안 백마고지 전투를 벌인 결과 아군과 적군 2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는데, 전투 과정에서 발사한 포탄만 적군 측 5만 5000발, 아군 측 22만 발이었다. 또한 아군과 적군이 12차례의 공방전을 벌이며 24회나 주인이 바뀌었다. 백마고지전투가 끝난 후 산의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백마고지’로 불리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마고지전투는 한국군의 방수(防戍) 능력을 높이 평가받은 일전으로서 보(步), 전(戰), 포(砲), 공(空)의 협공이 긴밀하게 이루어진 고지 공방의 범례가 되는 결전이기도 하였다. 백마고지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현재 백마고지전시관이 건축되어 6·25전쟁 당시 치열하였던 현장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이와 동시에 민족상잔의 비극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되새기고 있다.
[건립 경위]
백마고지전시관은 백마고지전투에서 희생된 한국군, 미군, 중공군 등 전사자의 영혼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변천]
백마고지전시관은 1990년 5월 3일 건립되었다. 현재는 DMZ 안보투어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구성]
백마고지전시관은 ‘기념의 장’, ‘회고의 장’, ‘다짐의 장’ 등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격렬한 전투 현장을 재현하였으며, 높이 22.5m의 기념탑을 세웠다.
‘기념의 장’에는 통일에 대한 염원과 전승을 기념하기 위한 전적비가 설치되어 있다. 특히 당시 백마부장이었던 김종오 장군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 내에는 백마고지 탈환의 모습이 담긴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정상을 눈 앞에 두고 국군이 적의 기관총으로 더 이상 전진을 할 수 없게 되자, 제 9사단 제 30연대 1중대 3소대장 강승우 소위가 오귀봉 하사, 안영권 하사와 함께 수류탄을 뽑아 들고 육탄 돌격을 감행하였다. 결국 기관총 진지를 폭파한 후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아군은 백마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하여 탄피로 만들어진 조형물이다.
‘회고의 장’에는 아군과 적군의 전사자를 추도하기 위한 위령비와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다짐의 장’에는 전망대, 자유의 종각 등이 설치되어 있다.
[현황]
백마고지전시관은 현재 국군 희생자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망대와 함께 자유의 종각도 건립하여 추모의 공간이자 안보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