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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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조선 후기에서 현대까지의 교육 연혁. 조선 시대 대표적인 교육기관은 향교와 서원이었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에 설치된 관학 교육기관이었으며,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이었다.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도 보령향교·남포향교·오천향교 등이 확인되므로, 조선 시대 관학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원으로는 화암서원·신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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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도 보령 남포현감으로 부임하여 신안사 창건을 발의한 문인 관료. 권상신[1759~1824]은 충청도 공주 출신으로 문과 장원 급제 후 관직 생활을 하였는데, 1796년(정조 20) 보령 남포현감(藍浦縣監)으로 부임하여 주자(朱子)[1130~1200]를 제향(祭享)하는 영당(影堂)의 건립을 발의하여 신안사(新安祠)가 건립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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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신흥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사우. 신안사(新安祠)는 주자(朱子), 백이정(白頤正)[1247~1323]을 배향(配享)하기 위해 보령시 남포면에 세운 사우(祠宇)이다. 주자, 백이정, 송시열(宋時烈)[1607~1689], 이제현(李齊賢)[1287~1367], 권상하(權尙夏)[1641~1721], 한원진(韓元震)[1682~1751] 등 6인을 배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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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보령시의 역사. 보령은 원삼국 시대 만로국(萬盧國), 또는 소위건국(素謂乾國)이 자리했을 것으로 비정(比定)되지만 그 실체는 분명하지 못하다. 백제 시대에는 사비기(泗沘期)를 전후하여 방군성제(方郡城制)가 실시됨에 따라 설림군[서천]의 영현(領縣)인 사포현과 결기군[결성]의 영현인 신촌현으로 편제되었다. 고려 시대에 양광도로 편제된 보령은 보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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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공자의 사상을 근간으로 그 계승자들에 의해 실천된 학문적 활동과 의례적 행위. 유교는 중국 춘추 시대 공자(孔子)[기원전 551~기원전 479]가 체계화한 사상으로 정치 사상,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맹자(孟子)[기원전 372~기원전 289], 증자(曾子)[기원전 506~기원전 436] 등 제자 및 계승자들을 통해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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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은거한 조선 전기의 문인. 이몽규(李夢奎)[1510~1563]는 조선 전기의 선비로 일찍부터 학문이 높은 경지에 도달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고 전원생활을 동경하여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에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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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에 있는 이몽규의 신도비. 이몽규 신도비(李夢奎 神道碑)는 1837년(헌종 3) 홍양해(洪量海)가 짓고 한후현(韓後賢)이 글씨를 쓰고 김연행(金淵行)이 전액(篆額)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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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과 서천의 서원에 향사된 조선 전기의 문신. 이산보(李山甫)[1539~1594]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1517~1578]의 조카이다. 임진왜란 때는 선조를 호종(扈從)하고 전후에는 기근을 해결하고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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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의 화암서원에 제향된 조선 전기의 문신. 이정암(李廷馣)[1541~1600]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연안성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정암의 후손들이 충청남도 보령에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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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청라 지역 출신으로 『토정비결』의 저자인 조선 전기의 문신. 이지함(李之菡)[1517~1578]은 충청남도 보령 청라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이다. 수리(數理)·의학·복서(卜筮)·천문·지리·음양·술서(術書) 등에 달통하여 『토정비결(土亭秘訣)』을 지었으며, 『농아집(聾啞集)』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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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에 있는 조선 후기 이지함의 묘. 이지함(李之菡)[1517~1578]은 『토정비결(土亭秘訣)』의 저자로, 본관은 한산(韓山), 호는 토정(土亭)이다.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맏형 이지번(李之蕃)[1508~1575]과 화담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약(醫藥)에 능통하였으며, 어염상고(魚鹽商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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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에 속하는 법정리. 법정리는 법률로 정하여진 리로서 지번의 기준이 되며, 법정리에는 인구와 생활권을 고려하여 1개 또는 여러 개의 행정리가 설치된다. 행정리는 20~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전통적인 촌락을 기초로 하는 경우가 많다. 법정리와 행정리로 구분되는 리는 우리나라에서 읍·면 지역의 하부 말단 단위로, 주로 농어촌 지역에 존재한다. 법정리로서 장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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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인조반정, 이괄의 난 등에서 활약한 조선 후기 문신. 정엽(鄭曄)[1563~1625]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요직을 두루 거치며 임진왜란 때 수원을 방비하고, 이괄의 난에는 인조(仁祖)[재위: 1623~1649]의 공주 파천을 제기하였다. 충청도관찰사 재임 중 화암서원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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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보령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인 보령현(保寧縣)과 남포현(藍浦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보령현과 남포현은 서로 다른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보령현은 “본래 백제의 신촌현(新村縣) 이었는데, 신라 때에 신읍(新邑)이라 고쳐 결성군(潔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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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 조존성(趙存性)[1554~162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 가서 조선에서의 명군 철수를 중지시켰으며, 명군의 군량미 수송에도 큰 공을 세웠다. 광해군의 생모 추존에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는데, 이때 외가가 있는 충청남도 보령에 은거하며 보령과 인연이 깊어졌다. 정묘호란 때에는 전주로 세자를 호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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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나 의례 등으로 구성된 문화 현상.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종교는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가 대표적이다. 보령시는 지리적으로 해안가에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수도에서 외진 곳에 있어 종교의 유입이 비교적 늦었다. 이러한 지역적 여건 위에 전통적인 민간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신흥 종교의 기반이 견고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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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속하는 법정면. 일반적으로 면은 법정면이며, 시군에 딸린 지방행정 구역 단위로서, 농촌 지역을 주로 한 구역이다. 면은 몇 개의 리(里)로 이루어져 있다. 보령시에도 1개 읍 및 5개 동 외에 10개 면이 있는데, 청라면(靑蘿面)은 그중 한 면이다. 청라면의 지리적 특성은 명칭 유래, 형성 및 변천, 자연환경, 현황 등의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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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한산 이씨(韓山 李氏)는 이윤경(李允卿)[?~?]을 시조로 하고 이곡(李穀)[1298~1351]을 중시조로 하며, 이치(李穉)[1477~1530]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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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액 서원. 화암서원은 이지함(李之菡)[1517~1578], 이산보(李山甫)[1539~159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을 위하여 1610년(광해군 2) 보령시 청라면에 세운 서원으로, 1686년(숙종 12) 사액(賜額)을 받았다. 이지함, 이산보와 함께 이몽규(李夢奎)[1510~1563], 이정암(李廷馣)[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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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화산동 화현마을에서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약 100년간 운영되었던 서당. 근대 교육이 자리 잡기 전에는 지역마다 크고 작은 서당이 운영되어 기초 교육을 담당하였다. 서당에서는 주로 한문 강독, 한자 연습, 시문 짓기 등의 교육을 주로 하였으며, 교재는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 『통감(通鑑)』, 『소학(小學)』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