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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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대관동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원. 충청남도 보령시 대관동(大冠洞)[현 대천2동] 갈머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청연역(靑淵驛) 소속의 원(院)이다. 갈머리는 현재 대천여자중학교 뒤를 경계로 동쪽을 윗갈머리, 서쪽을 아랫갈머리라고 한다. 『여지도서(與地圖書)』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갈두리(葛頭里)’로 표기하였다. 원은 공적인 목적으로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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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왜구를 격퇴하고, 보령에 정착한 광산 김씨의 입향조. 김성우(金成雨)[1327~1392]는 고려 말 전라우도 도만호(都萬戶)로, 보령을 황폐화시킨 왜구를 소탕하고 보령에 정착하였으나 조선 건국 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신념으로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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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역참. 남전역(藍田驛)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따르면 1413년에 설치되었고, 1462년(세조 8) 역로를 정비할 때 이인역(利仁驛)·유양역(楡楊驛)·청화역(菁化驛) 등과 함께 이인도((利仁道)[조선 시대 충청도 공주의 이인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에 속하게 되었다. 남전역은 1530년(중종 30) 편찬된 『신증동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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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해안 및 도서 지역의 갯바위에서 돋아나는 원초로 만들었던 자연산 김. 돌김은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리 일원에서 생산되지만, 과거에는 보령시 해안과 도서 전역에서 생산되었다. 1970년대까지는 도서 지역이나 충청남도 보령시 해안마다 갯바위에 김이 지천으로 깔렸었다. 외연도리 주민들이 “비위에 뒹굴어도 [김 때문에] 다치지 않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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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인 1593년 6월 21일부터 29일까지 보령현감, 남포현감 등 충청도 병력이 참전한 2차 진주성전투. 경상도 진주성에서 의병장 김천일(金千鎰)[1537~1593], 경상우병마절도사(慶尙右兵馬節度使) 최경회(崔慶會)[1532~1593]를 비롯한 경상도 병력과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 황진(黃進)[1550~1593], 보령현감 이의정(李義精)[1555~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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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여 가르침을 따르고, 불경을 경전으로 삼는 종교.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어 공인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72년이다. 곧이어 백제와 신라에도 불교가 전래되었다. 백제의 불교는 384년(침류왕 원년)에 남중국 동진(東晋)의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전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다음해인 385년에 한강 유역의 도읍인 한산(漢山)에 불사(佛寺)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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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청소면 및 홍성군 장곡면의 경계에 있는 산. 보령시는 차령산맥의 말단부가 서해와 만나는 곳으로 서해안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해안에 이르기까지 높은 산맥이 뻗어 있는 지역이다. 태백산맥이 오대산 부근에서 갈라져 서남쪽으로 뻗은 차령산맥은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경계부와 충청남도의 중앙부를 통과할 때에는 산맥의 높이가 낮지만, 보령시에 이르러 높이 600~700m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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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잔미산에 있는 조선 후기의 봉수대. 조선 전기의 기록에는 옥미봉 봉수대가 없고, 18세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옥미봉 봉수대가 나타난다. 옥미봉 봉수대는 18세기에 신설된 봉수대이다. 옥미봉 봉수대는 순천에서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충청남도의 내륙을 거쳐 한양까지 연결되었던 제5거 중 옥구(沃溝)에서 갈라져 서천~비인~남포~보령~흥양~결성~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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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공자의 사상을 근간으로 그 계승자들에 의해 실천된 학문적 활동과 의례적 행위. 유교는 중국 춘추 시대 공자(孔子)[기원전 551~기원전 479]가 체계화한 사상으로 정치 사상,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맹자(孟子)[기원전 372~기원전 289], 증자(曾子)[기원전 506~기원전 436] 등 제자 및 계승자들을 통해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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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충청남도 보령시 인구의 주요 내역은 인구 추이(推移)와 인구 개황(槪況)을 중심으로 개관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인구 추이는 인구수의 시계열적 변화를 조선 시대와 근대 이후로 구분하여 파악하고, 인구 개황은 2020년 12월 말 기준의 세대 및 인구의 추이, 성비(性比), 읍면동별 인구 분포, 인구 동태(動態), 인구 이동, 총인구 중 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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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충청남도 보령시의 하천이나 골짜기를 막아 만든 큰 못. 18세기 중엽의 기록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보령 지역 저수지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기록으로 보아 논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옛날부터 저수지를 축조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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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있는 조선 시대의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과 의미를 기리기 위하여 나라의 명을 받아 세운 정려. 정려(旌閭)는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해 충신, 효자, 열녀를 찾아내 행적을 기록하고 표창하던 풍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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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수군의 군영. 조선 시대 수영(水營)은 오늘날의 해군에 해당하는 지방 군사조직이다. 수영은 도(道)별로 설치하였으며,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주재하였다. 충청수영(忠淸水營)은 충청도 해안 방어의 본영으로 중서부 서해안의 왜구 침탈 및 조운선(漕運船) 등의 보호 역할을 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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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보령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인 보령현(保寧縣)과 남포현(藍浦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보령현과 남포현은 서로 다른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보령현은 “본래 백제의 신촌현(新村縣) 이었는데, 신라 때에 신읍(新邑)이라 고쳐 결성군(潔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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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나 의례 등으로 구성된 문화 현상.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종교는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가 대표적이다. 보령시는 지리적으로 해안가에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수도에서 외진 곳에 있어 종교의 유입이 비교적 늦었다. 이러한 지역적 여건 위에 전통적인 민간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신흥 종교의 기반이 견고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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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있는 조선 시대 충청도의 해양 방어를 총괄하였던 성곽. 조선 시대 정3품의 충청도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가 주재하는 수영(水營)으로 성곽은 1510년(중종 5)에 석성으로 쌓았다. 이후 충청도 해역에 대한 방비, 조운선 호송 등을 담당하다가 1895년(고종 32) 폐영(閉營)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