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궁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신도비. 강주(姜籒)[1567~1651]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본관이 진주(晋州)이며, 자가 사고(師古), 호가 죽창(竹窓)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올랐으며, 아들 강백년(姜栢年)[1603~1681]이 고관에 올라 사후에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문장에 능하고 초서(草...
-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매곡리에 있는 강학년의 조선 후기 묘비. 강학년(姜鶴年)[1585~1647]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구(子久), 호는 복천(復泉)·자운(紫雲)이다. 벼슬은 장령(掌令)을 지냈으며, 아들 강호(姜鎬)[1605~1671]가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대사헌(大司憲)에 증직되었다. 회덕 잔골[자운동, 현재 대전광역시 대덕...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의 공진창 터에 있는 9기의 비석과 인근의 2기 비석이 세워져 있다. 공진창은 충청도 인근 40여 고을로부터 모아진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 80칸의 조창이었고 이를 한양으로 조운하는 책임을 맡은 해운판관(海運判官)이 주재하였다. 근래 삽교천방조제와 아산만방조제의 건설에 따라 인근...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 있는 김육의 대동법 시행을 기리는 조선 후기 비석. 김육(金堉)[1580~1658]은 서울 출신의 실학적 개혁 정치가로서 평생 대동법의 시행을 추구하였다. 김육은 1638년(인조 16) 충청도관찰사와 1649년(효종 즉위년) 우의정으로 재임할 때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하려고 노력했으나 김집 등 충청 지역 양반 지주들의 반대로 좌...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의 독성서사 터에 1918년 건립한 비. 독성서사 유허비(獨醒書社遺墟碑)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의 독성서사 터에 건립된 비로, 2006년 3월 7일에 아산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독성서사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와 쌍죽리 일대에 거주해 온 풍천임씨 집안의 임창(任敞)[1652~1723]과 임징하(任...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에 있는 근대와 일제강점기의 비석군. 윤보선 전 대통령의 해평윤씨 문중과 관련된 비석을 문중의 묘역에 모아 이전 설치하였다. 1895년부터 1900년까지 재임한 안성군수 시절에 흉년과 질병에 따른 조세 감면을 추진한 윤영렬의 송덕비는 1900년에 건립, 흉년에 구휼에 힘썼던 윤치소의 송덕비는 1920년에 건립되었다. 역시 구휼에 힘...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홍만조에 관한 비. 홍만조(洪萬朝)[1645~1725]는 조선 후기 문신이며, 호는 만퇴(晩退)이다. 1678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각 도 관찰사(觀察使)를 지내고 형조판서(刑曹判書)를 거쳐 1719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1722년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를 지내고 81세로 사망하였다. 만퇴홍공...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해운판관 선정비.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의 공세곶고지(貢稅串庫址) 앞에는 9기의 비석이 나란히 세워진 비석군이 있다. 이 중 6기는 해운판관(海運判官)의 선정비, 나머지 3기는 아산현감(牙山縣監)의 선정비이다. 해운판관은 비석군 왼쪽부터 이동근(李東根), 한진기(韓震琦), 장차주(張次周), 미상(未詳),...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성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성내리 비석군(城內里碑石群)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소재 옛 아산현의 관리들 위주로 세워졌던 송덕비(頌德碑)를 1958년 성내저수지를 조성하면서 흩어져 있던 비석을 한데 모은 것이다. 1976년에는 현재 성내리 쇠재마을 입구에 단을 세우고 12기의 비석을 세웠으며 주변을 정리 하여 단장하였다....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에 있는 애국지사 이남규의 순절지에 세운 비. 수당 이남규선생 순절비(修堂李南珪先生殉節碑)는 1906년(고종 43) 병오의병(丙午義兵) 당시 홍주의병장 민종식(閔宗植)이 패퇴하였을 때 민종식의 은신처를 마련해 주었다가 체포된 뒤 공주 감옥에 투옥되어 고초를 겪는 등 일제에 맞서다가 순절한 이남규를 기리기 위해 1986년 충청남도지사...
-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1동 온양행궁 자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세조의 온행 관련 비. 1468년(세조 14) 2월 세조는 속리산 복천암(福泉庵)에서 혜각존자(慧覺尊者)를 만나고 1468년 3월 초에 온양행궁에 행차하여 머무르게 되었다. 온양에 온 지 4일째에 신비로운 샘[神泉]이 마당 가운데에서 솟았는데, 그 물은 차갑기가 눈과 같고 맑은 것은 거울과 같았다. 이에 세조는 ‘...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 있는 개화기의 척화비. 척화비(斥和碑)는 척양비(斥洋碑), 위정척사비(衛正斥邪碑) 등으로도 불리며,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뒤 서양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흥선대원군의 명에 따라 전국에 세워진 비석이다. 김택영(金澤榮)이 지은 『한사계(韓史綮)』에는 "대원군이 스스로 양인(洋人...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 모아 있는 송덕비 비석군. 신창면 읍내리의 비석군은 특정 인물의 공덕을 칭송하는 문자를 새긴 송덕비이다. 송덕비는 관아의 입구나 도로변에 세워지지만, 신창현에는 옛 건물이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신창면 읍내리의 비석군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 297번지의 옛 신창현 동헌 터 앞에 있던 것을 1907년에 현재 위치로 이전한...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선정비. 심정기(沈庭耆)[1651~1695]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효종과 현종 때의 인물이다. 영의정을 지낸 만사(晩沙) 심지원(沈之源)[1593~1662]의 손자이며, 병자호란 시기 삼학사(三學士)[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홍익한(洪翼漢)] 중 한 명인 화포 홍익한의 외손이다. 음직으로 능참봉에 나아간 이...
-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6동[읍내동]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건물로 아문(衙門)과 동헌(東軒)이 남아 있는 읍내리의 관아는 근년까지도 관공서로 활용되었는데, 온주아문(溫州衙門)의 외벽 담에 옛 온양군에서 재임했던 관리들과 관찰사에 대한 송덕비를 모아서 세웠다. 2008년에는 관내에 산재한 홍석주와 김영식, 이응우의 비석을 추가로 이전 설치하였다....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송덕비 비석군. 특정 인물의 공덕을 칭송하는 송덕비는 대개 관아 주변이나 도로변에 세우는데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행정복지센터 앞마당 동쪽에는 송덕비가 일렬로 세워져 있다. 원래 관아 주변과 인근 다른 지역에 있던 비석들을 1941년에 면사무소 앞 길가에 모아 세웠고, 이후 1980년대에 면사무소 안에 옮겨 세운 것이다....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어제 신도비. 어제 이순신 신도비(御製李舜臣神道碑)는 정조(正祖)가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을 존경해 세운 신도비이다. 정조는 1793년 이순신을 영의정에 증직하고, 명나라 태조가 개국공신 무령왕(武寧王) 서달(徐達)의 비석을 건립하고, 전서(篆書)로 비의 이름을 새긴 예를 따라 이듬...
-
1760년(영조 36) 7월 영조와 사도세자가 온양행궁으로 왔을 때, 사도세자가 활을 쏘며 무술을 연마하던 터에 1795년(정조 19) 정조의 명으로 세운 대와 비각.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思悼世子)[1735~1762]가 피부질환을 온천요법(溫泉療法)으로 치료하기 위해 부왕의 허락을 받아 26세 되던 1760년 온양행궁에 행차하였을 때 활터를 마련하고 활쏘기 연습을 하...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에 있는 용담사 사적을 기록한 현대 비석. 권영하가 1946년에 사찰을 세우고 이름을 ‘용담사(龍潭寺)’라 한 뒤 사찰의 내력을 적은 사적비(寺蹟碑)를 세웠다. 권영하는 어머니가 1929년부터 이어 온 암자를 물려받아 용담사를 지었다. 용담사 사적비는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평촌리 1-1번지, 용담사의 아산 평촌리 석조약...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산정리에 있는 이순신 묘와 관련된 조선 후기의 표석.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 최후 전투였던 노량해전에서 1598년(선조 31) 11월 19일 순국한 뒤 이순신의 유해는 경상남도 남해 관음포 이락사에 임시로 모셔졌다가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묘당도 월송대에 며칠간 안치되었다. 1598년 12월에 이순신의 유해는 육로를 이용해 충청남도 아...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역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신도비. 1924년에 건립한 이간(李柬)[1677~1727]의 신도비(神道碑)이다. 이간은 본관이 예안(禮安), 자는 공거(公擧), 호는 외암(巍巖)이며 조선 후기 유학자로,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제자 8명인 강문팔학사 중 한 명이다. 이간은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해 낙론(洛論)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로,...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1746년 건립된 충민공 이봉상의 신도비. 이봉상(李鳳祥)[1676~1728]은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5대손으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의숙(儀叔),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1702년 알성시 병과에 급제하여 삼도수군통제사,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형조참판 등을 지냈다. 1725년(영조 1) 정미환국 때 어영대...
-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삼거리에 있는 이순신 묘역 입구에 세워진 조선 후기 비석.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의 외손인 홍우기(洪宇紀)[1633~?]가 김육(金堉)[1580~1658]에게 청해 신도비문을 받았다. 이어 오준(吳竣)[1587~1666]이 비문을 쓰고, 이정영(李正英)[1616~1686]이 전자(篆字)를 썼다. 1660년 건립을 계획...
-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향산리에 있는 이승우 관련 조선 후기 비석. 이승우 청덕비는 조선 후기 문신 이승우(李勝宇)[1841~1914]의 공덕비이다. 이승우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충청도 홍주목사로서 변란이 일어난 지방에 파견한 임시 무관직 초토사(招討使)를 겸하였다. 1894년 9월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때 아산 지역도 포함되는 충청도 내포 지역에서...
-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에 있는 1870년대 온양군수 이응우의 선정비. 이응우(李膺愚)는 1871년(고종 8) 6월에 온양군수로 부임하여 3년여 동안 재임하였는데, 세수 감소 등으로 군의 재고가 부족해지자 자신의 녹봉을 내놓아 충당하였다. 이응우가 재임 중 충당한 비용이 모두 3천여 금이었다고 한다. 이응우는 온양군수직을 마치고 1874년 7월에 무주부사로 이임...
-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2동의 온양온천역 광장에 있는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 이충무공사적비(李忠武公事蹟碑)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에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석(碑石)이다. 1984년 5월 17일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로 지정되었다. 이충무공사적비는 충청남도지사 이영진(李寧鎭...
-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만영의 송덕비. 조만영(趙萬永)[1776~1846]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윤경(胤卿), 호는 석애(石厓)이다. 1813년(순조 13)에 증광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1819년 부사직으로 있을 때 당시 7세인 딸이 효명세자의 빈으로 책봉되었다. 이후 이조참의, 대...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표석. 진청암(鎭淸巖)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인 조선시대에 조성하였다고 전해지나, 근거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진청암이 있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청리는 영인산 남쪽 골짜기로 지반에 돌이 많아 다른 마을에 비해서 물이 부족하고 내[川]가 늘 말라 있으므로 예전에 강척골, 간천...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현충사 터를 알리기 위해 1906년에 세운 비석. 현충사는 이순신과 이완, 이봉상의 제향을 이어오다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 그 뒤 일제의 강압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항거하며 지역 유림이 1906년 2월에 현충사 터에 유허비를 세웠다. 현충사 유허비는 충청남도 아...
-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대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신도비. 홍가신(洪可臣)[1541~1615]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흥도(興道), 호는 만전당(晩全堂), 시호는 문장(文莊)이다. 신도비는 2품 이상의 고위 문무 대신의 묘 앞에 세우도록 되어 있는데, 홍가신 신도비는 홍가신의 사후 증직(贈職)으로 묘 앞에 세워졌다. 홍가...
-
일제강점기 온양수리조합이 충청남도 아산시에 만든 저수지인 홍공제 건축공사의 사업 개요를 담은 기념비. 홍공제 준공비(洪公堤竣工碑)는 1927년 실옥보(實玉洑)와 온양저수지 공사가 완료되면서 사업 추진자를 기리고 사업 성과를 알리기 위해 제작되었다. 아산군수 홍우숭(洪祐崇)은 온양면과 인근 신창면, 선장면 등 논농사의 관개시설 개선을 목적으로 1925년 온양수리조합(溫陽水...
-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세교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홍만조의 신도비. 홍만조 신도비(洪萬朝神道碑)는 조선 후기의 문신 홍만조의 사적을 기리며 묘 앞에 세운 비이다. 홍만조(洪萬朝)[1645~1725]는 본관이 풍산(豊山), 자는 종지(宗之), 호는 만퇴(晩退)이다. 홍이상(洪履祥)의 손자로, 할아버지는 홍탁(洪鐸), 아버지는 홍주천(洪柱天), 어머니는 안동김...
-
충청남도 아산시 풍기동에 있는 효자 정신 관련 조선 후기 마애비. 효자 정신(鄭信) 비가 새겨져 있는 바위는 벼락바위 또는 효자바위라 부르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옛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효자 정신이 너무 가난해서 병든 노모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해 마음이 아팠는데, 어느 날 마당 앞을 지나던 개가 눈 똥에 보리쌀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