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를 일컫는 말로, 구교(舊敎) 가톨릭과 달리해 신교(新敎)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개신교는 1884년(고종 21) 알렌(Horace Newton Allen) 선교사가 입국함으로써 정식으로 선교사업이 시작되었다. 1887년 최초로 장로교의 새문안교회가 창립되었으며, 이어...
-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모든 활동과 일상적으로 종사하는 생산 활동. 영주시의 경제·산업은 소백산맥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지리적 특징에서 살펴볼 수 있다. 소백산 남쪽의 낙동강 지류에는 토질이 비옥한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일찍부터 농경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였다. 또 영주시는 영남지방에서 기호지방으로 통하는 죽...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연구 또는 개발되고 있는 과학과 기술의 총칭. 영주 지역은 경북 북부에 위치하여 소백산을 배경으로 하는 청정한 자연환경 덕분에 생태와 환경, 농축산 분야, 산림 약용 분야와 관계된 과학 기술이 발달해 왔다. 멸종위기 토종 여우의 복원을 위해 소백산여우생태관찰원이 문을 열었고, 경상북도축산기술연구소,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약용자원연구소도 있다....
-
전근대시기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영주시 교육의 역사와 현황. 영주 지역의 교육은 고려시대의 향교, 조선시대의 향교·서원·서당, 근대의 신식학교, 현대의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설립으로 전개되었다. 영주 지역에 있었던 고려시대 대표적 국립교육기관인 향교로는 영주향교(榮州鄕校)와 순흥향교(順興鄕校)가 있다. 향교는 지방 교육기관으로,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말과 기억에 의존하여 전해오는 민간 문화의 총체. 구비 전승(口碑傳承)은 문자가 없거나 문자를 사용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말로 이어져 계승되는 것을 이른다. 구비 전승은 말로써 계승되기 때문에 가변성을 가지고 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말로 된 문학인 구비문학을 꼽을 수 있다. 구비문학은 설화, 민요, 무가, 판소리, 민속극, 속담, 수수께끼 등을 포함한...
-
경상북도 영주시 일대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의 모든 종류. 영주시에서는 풍기읍, 순흥면, 단산면, 봉현면에 걸쳐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있는 소백산맥 일대의 야생동물 관련 조사와 보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소백산맥은 다양한 지형이 발달해 있어 계곡, 암석돔, 초원, 습지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또 다양한 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서식을...
-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활동. 영주시는 어느 지역보다 덕망있는 학자를 많이 배출한 선비의 고장이다. 소백산 자락에 펼쳐진 영주는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받들어 모신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으로 출발하여 조선시대 최초의 사학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발전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고장이며, 고려 공민왕 때 형부상서...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이루어지는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영상, 공연 등의 분야에서 표현되는 모든 활동과 그 작품. 소백산 자락에 있는 영주시에서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문화를 형성하였다. 선사시대의 영주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가흥동 암각화와 곳곳에 분포하는 고인돌과 선돌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특히 암각화는 영주문화의 오랜 역사성을 보여준다....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민간에 전승되고 있는 생활풍속. 영주 지역의 민속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전통적인 요소들부터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화해온 것까지 그곳에서 살아온 영주 시민들에 의해 유지되고 이루어진 기층문화라 할 수 있다. 민속의 분야는 크게 민간신앙, 평생 의례, 세시풍속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영주 지역의 민간신앙은 마을 단위로 이뤄...
-
고대부터 현대까지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행하는 종교.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공인된 시기는 삼국시대이다. 372년(소수림왕 2) 고구려에서 처음 공인하였으며, 백제는 384년(침류왕 1), 신라는 가장 늦은 527년(법흥왕 14)에 공인하였다. 영주 지역에 본격적으로 불교가 보급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로 보이며, 기록상으로는 669년(문무왕 9) 영전사(靈...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시민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삶의 조건을 보장하고 사회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광범위한 사회정책. 영주 지역에서 사회·복지는 해방 이후 국가 구호사업 위주로 진행되었지만, 민주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회·복지에 관한 법률 및 제도적 정비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오늘날 각 지역의 사회·복지는 2013년 시행된 「사회보장기본법」...
-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를 통칭하는 시대의 역사. 선사시대(先史時代)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시대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철기시대(鐵器時代)로 구분하고 있다. 선사시대는 당대인들의 문자 기록이 없어서 고고학적 방법에 따라 연구할 수밖에 없으며, 아울러 지질학·형질인류학...
-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오고 있는 성씨. 한국의 성씨는 중국의 영향으로 받아 나타났으나, 점차 한국 고유의 제도로서 변화해왔다. 한국의 성씨는 성과 본관은 가문, 이름은 가문의 항렬과 구별 가능한 자(字)로 구성된 특이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국가 시기에 왕족과 일부 귀족에게만 나타났으나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하여 성씨 체계...
-
경상북도 영주시에 자생하는 식물의 모든 종류. 영주시는 소백산국립공원 일대의 높은 산악지역과 내성천 및 지류 하천들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곡저평야와 범람원, 구릉성 산지 등 다채로운 지형 경관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형 경관에 따라 다양한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영주시에서 자라는 식물은 총 1,067종에 달하며, 초본식물은 애기앉은부채, 창포, 큰연...
-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행해지는 식품과 음식에 관련된 모든 생활양식. 영주 지역은 북으로는 소백산, 남으로는 평야 및 하천이 있어 다른 지역과 비교해 벼농사가 가능한 농지는 적지만 부식이 풍부한 지역이다. 영주 지역은 쌀이 귀한 편이었기에 다른 곡물이 많이 들어가는 잡곡밥 또는 죽을 주식으로 삼았다. 대부분 음식은 다른 지역과 비슷하나 소백산 오정주, 순흥기지...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흥종교. 신종교(新宗敎)는 이전 기성 종교와 대응하여 쓰이는 개념이다. ‘새롭다[신(新)]’라는 의미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한다. 또한 ‘새롭다’라는 의미는 한편으로 별로 기반이 없고 정교화되지 못하다는 뜻과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호소력과 적합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의 양가성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신종교는 기성 종교와 마찬가지로 일...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이루어지는 언론 및 출판 활동의 총칭. 언론(言論)은 정치·사회·문화·교육 전반에 걸친 정보의 소통 수단으로 말이나 글을 통해 정보 전달과 여론 형성의 역할을 하는 행위를, 출판(出版)은 책·잡지·소책자를 인쇄하여 판매·배포하는 일련의 행위나 사업을 각각 통칭한다. 영주 지역에서 발생하는 대소사는 각 언론매체에서 방송·신문·인터넷신문 등을 통하여 음성...
-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 체계. 언어(言語)는 생각, 느낌 등을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를 말한다. 영주시의 언어는 ‘영주 지역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경북 방언의 일부에 해당한다. 영주의 언어는 경북의 언어 중에서도 ‘ㅅ’과 ‘ㅆ’이 구분되는 경북 북부 지역...
-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영주 지역의 역사. 소백산 아래 교통의 요충지였던 영주는 고대부터 삼국의 쟁탈지가 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부석사(浮石寺)가 창건되어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이 배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설립되는 등 유교문화를 꽃피워 나갔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기존...
-
경상북도 최북단에 있는 시. 영주시(榮州市)는 해발고도 약 200m로 남북이 길고 동서는 협소하다. 영주시의 북쪽은 소백산맥이 서남쪽으로 뻗어있으며 주봉인 비로봉[1,439.5m]을 비롯하여, 국망봉[1420.8m], 연화봉[1,394m]과 죽령[689m]을 경계로 하여 도솔봉[1,314m]으로 이어진 소백산 산록 고원부지에 형성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봉화군,...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공자의 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그 계승자들에 의해 실천된 학문적 활동과 의례적 행위 일반. 영주시는 ‘선비의 고을’로 불림에 대단한 자부심을 품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최초로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安珦)[1243~1306]이 바로 영주시 출신이며, 안향을 모시기 위한 우리나라 최초 서원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 영주시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시민들이 즐겨 입던 의복이나 의복과 관련된 생활 및 풍속. 영주 지역은 다른 지역민들과 비슷하게 대마와 목화를 재배하여 옷감을 짜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현재는 길쌈을 하지 않으나, 과거 영주 지역에서는 삼베와 무명길쌈을 주로 하였다고 전해진다. 6.25전쟁 이후 길쌈이라는 풍속은 점차 사라지고 시장에서 파는 광목과 같은 옷감을 사서 집 또...
-
경상북도 영주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영주시는 경상북도의 최북단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안동시 녹전면, 서쪽은 충청북도 단양군, 남쪽은 안동시와 예천군, 북쪽은 강원도 영월군과 접한다. 수리적 위치를 살펴보면 영주시의 동단은 동경 128°44′41″[영주시 평은면 오운리], 서단은 동경 128°25′23″[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남단은 북위 36...
-
경상북도 영주시의 지질·지형·기후 등 자연지리적 요소. 영주시는 총면적 668.89㎢의 도시로, 이중 임야 66.3%[443.25㎢], 밭 10.5%[69.98㎢], 논 11.5%[77.10㎢], 과수원 1.3%[8.97㎢], 대지면적 1.7%[11.45㎢], 기타 11.5%[58.14㎢]이다. 영주시의 동단은 영주시 평은면 오운리와 안동시 녹전면의 경계로 북...
-
경상북도 영주 지역에서 권력과 권위를 획득·유지·행사하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조정·통합하는 총체적 활동.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항상 희소한 자원을 획득하고 배분하는 과정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개개인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지위가 평등하지 않은 데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러한 불평등과 갈등·대립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영주시는 경북 북부 내륙 지역으로 야외 노지(爐址)나 빗살무늬토기와 같은 신석기시대 유적이 처음으로 발굴된 곳이다. 또한, 고인돌을 비롯해 선돌, 바위그림과 같은 청동기시대 유적 또한 상당수 발굴되었다. 그리고 삼한시대에는 진한 12국 가운데 기저국(己柢國)이 자리하던 곳으로 비정된다. 이런 사실들을 종교적 측...
-
경상북도 영주 지역의 문화와 생활양식이 반영된 주거 유형과 양식. 영주시는 전통적인 농촌 지역이면서도 벼농사보다 과수 농사가 중심인 곳이다. 해방 이전 한옥이 다수였던 영주시는 1970년대 이후 정부의 마을구조개선사업으로 점차 서구식에 가까운 가옥이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영주시에는 대체로 주택과 아파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과거 한옥의 원형은 문수면 수도리...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톨릭교회. 영주 천주교는 홍유한(洪有漢)[1736~1785]이 단산면 구구리에서 수계 생활을 홀로 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어 대한민국 천주교 성립보다 그 역사가 앞선다. 현재 옛 영주성당인 휴천동성당을 비롯하여 풍기성당, 하망동성당, 가흥동성당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주시 천주교의 시작은 홍유한으로부터 시작되...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이루어지는 체육 관련 활동과 제반 시설. 영주시에서 체육은 광복 후 전국에서 각종 체육대회와 농악대회가 개최되면서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유도를 비롯한 투기 종목의 훈련이 성행하면서 올림픽 선수를 발굴하며 영주의 체육이 발전하게 되었다. 각급 학교의 체육활동도 지역주민에게 영향을 끼쳐 함께 발전을 거듭하기에 이르렀다. 1961년 대홍...
-
경상북도 영주시에서 공공문제 해결 및 공공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되어 행해지는 제반 활동.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까지는 국가의 질서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기존 질서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사회간접시설의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