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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0년 진주농림학교 2학년 재학 중 기숙사 학생 48명으로 구성된 토론 연구회의 회장을 맡아 3·1운동 당시의 진주 읍민과 진주농림학교 학생들의 활약과 항일 독립 사상을 높이 평가하였다. 1920년 5월 29일 동급생 문위동(文渭東), 신영안(申英安) 등과 모의하여 제2차 진주 독립 만세 운동을 1920년 8월 30일 천장절(天長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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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경상남도 양산시에 설립되었던 사설 여자 야학. 1922년 8월 30일 양산부인회에 의해 양산여자야학이 문을 열었다. 양산부인회의 서기인 권은해[1903~1994]의 이름으로 경상남도 학무과에 등록되었으며, 보통학교 교실을 빌려서 농부들이나 사회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야학의 교사는 고을의 고등학교를 마친 남녀 청년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19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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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경상남도 양산시에 설립되었던 사설 유치원. 1923년 2월 8일 양산 유지들의 발기로 청년회관에서 양산유치원 발기회를 개최하였다. 같은 해 4월 23일 양산청년회에서 양산유치원을 위해 강연회를 개최하였는데, 전병건의 사회로 시작된 이 강연회에서 권득구는 ‘아동심리’, 김철수는 ‘아동교육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양산유치원의 재정은 양산의 유지들이 양산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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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어린이 교육 담당 기관. 교육법에 의해 설치·운영되는 교육부 관할의 교육 기관으로 재정 형태에 따라 공립 유치원과 사립 유치원으로 나누어진다. 공립 유치원은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 주를 이루며 사립 유치원은 개인, 법인, 종교 단체 등 설립 주체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있다. 경상남도 양산 지역 최초의 유치원은 일제강점기 양산부인회에서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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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규홍(李圭洪)은 1893년 아버지 이재영(李宰榮)과 어머니 김정숙(金貞淑)의 차남으로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백농(白農)이며, 자는 도숙(道淑)이다.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1913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부에 입학하였으며, 1916년 졸업하고 귀국하였다. 1939년 5월 타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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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이풍(田二豊)은 1920년에 조직된 양산청년회의 일원으로 활동해오던 중 1927년 신간회의 결성과 더불어 양산에서도 청년 운동 및 사회 운동 전반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할 즈음 이 지역의 주도적인 인물로 부상하였다. 1927년 6월의 긴급 총회를 통하여 양산청년회의 기존 간부들이 총사직함과 동시에 전이풍이 김기오(金基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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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의 독립운동가. 조병구는 일제시대 통도사에 있으면서 일본어 사용과 창씨개명 반대운동을 펼쳤다. 당시 통도사 종립학교였던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순지리의 통도중학교(지금의 보광중학교 전신)에 교사로 재직하면서 일본의 역사와 국체를 부인하고, 우리민족사와 언어·문학 등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배일사상과 민족의식 앙양을 위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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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정치가이자 경제인. 지영진은 서울 보성중학교 2년 중퇴 후 청년기에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신간회 활동에 참여했다. 1928년 김철수(2대 경상남도지사, 도쿄 2·8 독립운동 주도) 등의 주도로 창립한 신간회 운동에 동조하여 1929년 2월 20일 신간회 양산지회 임시집행부 부회장을 맡았으나, 그 이듬해 5월에 신간회 양산지회에서 완전히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