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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 원구억에 있는 정려. 황락(黃洛) 처 안동김씨[?~1592]의 아버지는 진사로 참봉을 지낸 김우갑(金友甲)이다. 황락 처 안동김씨는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일본군이 가슴에 손을 대자 더러운 손이 닿았다고 큰 소리로 일본군을 꾸짖으며 품고 있던 장도로 손목을 자르고, 7월 21일에 장도칼[패도]로 가슴을 도려내고 자결했다. 남편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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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려각.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유기현(柳基賢), 유기섭(柳基燮)의 정려이다. 유기현[1814~1881]의 본관은 전주, 자는 치호(致浩)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유광참(柳光參), 증조할아버지는 유계운(柳啓運), 할아버지는 유여룡(柳汝龍), 아버지는 유상준(柳相峻)이다. 외할아버지는 부평이씨 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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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1932년에 만든 정려각.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1932년에 만든 구와리 유발처 남양홍씨 정려(柳誖妻南陽洪氏旌閭)와 효자 유영철 정려(孝子柳英喆旌閭)이다. 남양홍씨[1856~1938]의 증조할아버지는 승지 홍우량(洪禹良), 할아버지는 홍유정(洪有鼎), 아버지는 홍재혁(洪在赫)이다. 남편은 2살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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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려. 완주군 삼례읍 구와리 전와마을에 있는 1947년에 중수한 유지현(柳之賢), 유기창(柳基昌), 유한철(柳漢喆), 유기호(柳基灝) 처 평양조씨(平壤趙氏)의 정려이다. 유지현(柳之賢)[1768~1837]의 본관은 전주, 자는 선지(善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광은(柳光殷), 할아버지는 유봉운(柳逢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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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금평리 신풍마을에 있는 개화기 남방희와 남수희 쌍효각. 금평리 남방희, 남수희 정려는 남수희와 남방희 형제의 쌍효각이다. 남수희는 신혼을 모르고 살았으며, 부모님 병 치료에 백약을 찾다 보니 재산이 줄고 집안이 기울어졌다. 3년간 고기와 술을 입에 대지 않았으며 아주 검소하게 살았다. 날마다 부모 묘를 찾아 살폈고 울음소리와 눈물이 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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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김계헌(金啓憲)[1794~?]의 본관은 김해, 자는 중여이다. 아버지는 김귀몽[1777~?]이다. 외조는 전주이씨 이준익이다. 김계헌의 나이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김계헌이 성장해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셨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슬픔 속에서 상을 치렀고,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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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구암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김언철(金彦哲) 처 옥야(沃野) 장씨(張氏)의 아버지는 장억기(張億紀)이다. 부인의 품성은 덕이 있고 정갈하며 시집 와서는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을 예로써 받들었다. 1597년(선조 31) 정유재란 때 지금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원당동에 살았다. 옥야장씨 부인은 전주성이 함락된 뒤 일본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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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송규환 처 안씨 정려. 안씨의 본은 탐진(耽津)으로 이조판서 고은 안지(安止)의 후손이다. 안씨는 예의범절이 분명하고 미모 역시 빼어났다. 격이 맞는 송규환(宋規煥)과 혼인해서 시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극진하게 모시어 군자의 도와 일치하는 섬김이라 칭해졌다.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이름모를 병으로 눕게 되자 약이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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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 청명에 있는 임락풍·임락관·임락성의 효자 정려. 임락풍·임락관·임락성 정려[孝子 學生 林樂豊 林樂觀 林樂晟之閭]의 효자 정문은 외삼문으로 되어 있다. 조양임씨 삼형제는 나란히 효자이다. 임락풍은 1797년(정조 21) 출생해서 1866년(고종 3)에 세상을 떠났는데, 부인 우주황씨는 석노의 딸로 1794년(정조 18)생이며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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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둔산리에 있는 윤언형 처 전주이씨 정려. 전주이씨는 고산현 이규홍의 딸로 1797년생인 유언형과 1819년 3월 3일 혼인을 했다. 그해 6월 25일 처가에 가던 중 고산천에서 남편이 목욕하다 익사하자 전주이씨는 21세의 나이로 애통해 하며 식음을 전폐하다가 동년 8월 3일 치마에 돌을 감싸고 스스로 익사했다. 모든 사람이 전주이씨를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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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봉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조영길(趙榮吉)과 조준(趙峻)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서 건립되었다. 조준[1573~1635]의 본관은 양주, 자는 사첨, 호는 유호(柳湖)이다. 대제학 조말생(趙末生)의 후손이다. 외할아버지는 덕수이씨 이대남이다.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 원주에 있던 영원성도 함락되었는데, 이때 조준은 어머니와 형인 조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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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묵계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려. 수원백씨의 열녀비 전면에 있는 명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사구이효(事舅以孝)[시아버지 섬기기를 효로써 하였으며] 사부이열(事夫以烈)[지아비 섬기기를 열행으로 하였다.] 일편고심(一片苦心)[편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하였으니] 천추대의(千秋大義)[길이길이 오래도록 남을 큰 의로움이로다] 아범공순(雅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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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상삼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려. 오희첨(吳熙瞻)[1755~?]의 본관은 낙안, 자는 사순(士淳), 호는 기암(奇巖)이다. 할아버지는 봉계 오명좌(吳命佐), 아버지는 오언박(吳彦博)이다. 오희첨은 고산면 삼기리 출신이다. 오희첨은 어려서부터 항상 부모의 곁에서 모시며 날마다 부모를 기쁘게 해 드렸다. 이웃 어른들이 혹시 과일이나 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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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리 마천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려. 유양원(柳良源)[1857~?]의 본관은 문화, 자는 경화이다. 친부는 유석조, 양부는 유석언이다. 어머니는 남평문씨[1806~1886]이다. 유양원은 1857년(철종 8) 5월 10일에 태어났다. 유양원의 부모님이 뜻하지 않은 병으로 자리에 눕자 몸에 좋은 약과 귀하다고 하면 산신령님께 빌며 산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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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상운리 신기마을에 있는 개항기 박기헌의 정려각. 박기헌의 자는 원화(元化)이고 호는 사이당(四而堂)이다. 아버지는 증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贈 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계택(桂澤)이고 어머니는 숙부인 진주강씨이다. 어머니 진주강씨가 병이 나자 변을 맛보고 병이 깊음을 알았으며 하늘에 대신 죽기를 축원했다. 박기헌은 부모의 상을 당하자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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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성북리 남동마을에 있는 정려. 완주군 화산면 성북리 남동마을에 있는 평택임씨 정려군이다. 이곳에는 5개의 비석이 있다. 임상인(林尙仁)[1533~1605]의 정려는 가장 왼쪽에 있다. 성북리 임상인 정려비의 형태는 개석이 있는 쌍주 안에 비석이 있다. 비석의 명문은 ‘효자학생임상인지려(孝子學生林尙仁之閭)’이다. 원래 성북리 임상인 정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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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원신교마을에 있는 유도양 처 연안이씨의 정려. 유도양의 처 연안이씨는 시어머니가 병환에 걸려 위독해지자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간호하며 자기 몸을 돌볼 틈 없이 약을 달여 간병을 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고 위독해지자 단지주혈[부모의 입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어드리는 것]을 했다. 이같은 기사가 1892년(고종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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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 원신교마을에 있는 유태양과 부인 반남박씨의 정려. 유태양[1804~1860]은 본관이 전주이고, 시조 장령공의 17세손이며, 아버지는 유규보이다. 아내 효부 반남박씨는 1804년(철종 11, 갑자)생이고, 1859년 1월 5일 사망했다. 유태양은 평생 효경(孝經)을 읽었고 떳떳한 일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괴질에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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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 용복마을에 있는 개항기 박효진의 정려. 박효진은 밀양박씨로 자는 문중(文中)이다. 아버지는 달해(達海)이고 자는 사즙(士楫)이다.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하자 박효진이 항상 탕약과 원하는 음식을 손수 마련했는데 하루는 꿩고기를 원해서 하늘에 비니 꿩이 집으로 날아와 구할 수 있었고, 또 신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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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에 있는 정우홍의 정려. 정우홍은 하동정씨로 1713년(숙종 39) 정진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부모를 공양하는데 효성이 지극했다. 정우홍이 11살 때에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대변의 맛을 보면서 병간호를 했으며, 19세 때에는 아버지가 값자기 꿩고기가 드시고 싶다고 하자 막연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타까워하자 꿩 한 마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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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오산리 오산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구석린 효자각. 구석린은 1676년(숙종 2)에 고산면 오산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리 뛰어나 부모님을 편안히 모셨다. 부친상을 당해서는 예로써 안장한 다음 묘 옆에서 여막을 짓고 3년을 모셨다. 돌아와서 바로 모친상을 당함에 다시 아버지 묘 옆에 안장하고 3년을 시묘했다. 그동안 구석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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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 하학마을에 있는 개항기 이근섭의 효자 정려. 이근섭은 연안이씨이고, 좌의정 이귀령의 자손이다. 이근섭은 유복자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남보다 더욱 청순하며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했다. 집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도 어머니를 향한 마음이 날로 더해 갔다. 어머니의 가냘픈 삶은 오직 아들에 기대를 걸 뿐이었다. 어머니가 죽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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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상리에 있는 유석진의 효자각. 유석진은 기계유씨로 고산현에 처음 들어 온 입향조 성보의 손자다. 원래 운제현 사람으로 고산현의 관리였다. 부친인 천을(天乙)이 괴질에 걸려 병세가 악화되어 기절하고 깨어나기를 반복하니, 유석진이 기도로서 하늘에 도움을 구하고 널리 약을 구하며 간병하고 있을 때, 한 의원이 말하기를, 살아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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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황새골마을에 있는 송정 처 반남박씨의 정려. 무진년 9월에 이성리 송정처 반남박씨 정려각을 세웠다. 무진년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자세히 알 수 없다.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황새골마을은 전주-김제 간 716번 지방도로에서 갈산리-금구 방향 713번 지방도를 타고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황새골마을이 나온다. 이성리 송정처 반남박씨 정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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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이성리 원이성마을에 있는 개항기 정언술의 정려. 정언술은 동래정씨로 태어난 지 겨우 50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나, 새어머니에 대해서도 효성을 다했다. 새어머니는 강보에 싸인 전 부인의 아들 정언술을 길렀다. 정언술은 새어머니의 보살핌 아래 공부를 해서 지방 수령이 되었다. 정언술은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 슬픔이 본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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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이전리 구하마을에 있는 정려비. 강기환[1821~?]은 진양강씨로 호는 흥서(興瑞)이다. 부모를 변변하게 공양은 못했지만 유쾌한 성격으로 극진히 섬겼다. 부모가 죽은 후 강기환은 3년간 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어 땅이 패이고 눈물 젖은 풀이 말라 죽었다.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이 글을 올리자 예식원 이용직(李容稙)이 주청해서 증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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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출신의 학자. 임낙풍(林樂豊)[1797~1866]의 본관은 조양(兆陽)이며, 자는 경재(慶哉)이고, 호는 한천재(寒泉齋)이다. 아버지는 임상우(林尙愚)이다. 동생은 임낙관(林樂觀)과 임낙성(林樂晟)이다. 아버지 임상우와 함께 효자로 알려져 있다. 임낙풍은 1885년(고종 22)에 정려(旌閭)가 내렸다. 후손 임학수(林學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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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관인. 최용각(崔龍角)은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 최아의 둘째 아들로 대호군공파 중시조이다. 최용각의 아버지는 전주최씨 문성공파 시조인 최아이다. 최아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최용각은 둘째이다. 최용각의 아들은 판도판서(版圖判書)를 역임한 최철(崔哲)이고 부인 정경부인 허씨(許氏)는 중호군(中護軍) 허선(許瑄)의 딸이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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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무지마을에 있는 개항기 하정용과 부인 김해김씨 효열각. 하정용은 진양하씨로 어머니 유씨가 전염성인 이질에 걸려서 6개월을 고생하고 약을 써도 쉽게 낫지 않자 깨끗하게 목욕재계하고 하느님께 빌기도 했다. 하정용과 하정용 부인은 약효를 시험하기 위해 대변의 맛을 보았는데, 결국에는 어머니 유씨가 회복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시자, 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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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해전리 해전마을에 있는 일제강점기 경주김씨와 신범균 처 파평윤씨의 정려. 경주김씨는 남편인 신태로(申泰魯)가 나이 겨우 20대에 의원도 모르는 병에 걸리자 온갖 노력으로 치료에 힘썼으며, 약이란 약은 두루 구해 써 보고 대변의 맛을 보기까지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손가락을 잘라 입에 피를 떨어뜨렸다. 간병은 허사가 되고 낭군은 눈을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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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유상마을에 있는 오재효와 오인한의 정려비. 오재효[1858~?]의 본관은 동복이고 자는 양여이며, 호는 송암이다. 임진왜란 공신 오세우의 13세손으로 아버지는 오연원이다. 부인은 전주최씨, 아들 오윤탁, 손자 오인한, 증손자는 오병근이다. 사망한 날은 7월 24일인데 정확한 해는 모른다. 오재효의 묘는 소양면 유상의 아래 자좌[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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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부모에 대해서 효도를 한 사람들과 시부모나 남편에 대해서 열행을 하거나 정절을 지킨 사람.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지방의 풍속을 교정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충신과 효자 및 열녀를 발굴하여 정포(旌褒) 하는 것 이상이 없는 것을 알고 방백, 수령에게 이들을 찾아 올리도록 했다. 수령과 가문은 자신의 고을과 가문에 정표(旌表)되면 이보다 더 자랑스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