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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일대에서 활동한 조선 말기 학자인 전우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인 전우의 시문집으로, 1927년 손녀사위인 이인구(李仁榘)가 장손(長孫)인 전일효(田鎰孝) 등과 편집하고 간행하였다. 전우(田愚)[1841~1922]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추담(秋潭)·간재(艮齋) 등이다. 조선 말기의 학자로, 전재(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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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유학자. 국동화(鞠東華)[1824~1890]는 완주군 비봉면에서 태어났으며,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었던 유학자이다. 국동화의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백영(百英), 호는 죽헌(竹軒)이다. 국경예(鞠經禮)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국문방(鞠文邦)이고, 아들은 국태환(鞠台煥)이다. 국동화는 1824년(순조 24)에 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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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학자. 국영환(鞠瑛煥)[1874~1954]의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영옥(英玉), 호는 연함재(鍊緘齋)이다. 국영환은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飛鳳面 水仙里) 출신으로 율동거사(栗洞居士) 국염(鞠濂)의 후손으로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기품이 드세고 재사가 뛰어났으며 식견이 깊고 정밀하였다고 한다. 전우가 매우 장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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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유학자. 국태환(鞠台煥)[1846~1914]은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백도리(完州郡 飛鳳面 百島里)에서 태어났으며, 생원시 합격자로서 한학(漢學)에 조예가 깊었다. 국태환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경삼(景三), 호는 쌍괴당(雙槐堂)이다. 우국지사(憂國之士)였던 죽계(竹溪) 국명(鞠溟)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국동화(鞠東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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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월리는 비봉면의 7개 법정리 중의 하나로 동리, 명곡, 중리, 원내월, 천호마을이 있다. 내월리는 비봉면의 중심마을인 내월마을에서 유래되었다. 내월리는 본래 고산군 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천호, 명곡, 내월, 동리, 소농, 송치 각 일부와 북상면의 명곡을 통합해서 중심마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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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절터. 내월리 내월사지는 ‘내월사지’라고도 한다. 내월리 내월사지는 내월리 수봉산 남서쪽 기슭인 서학골에 위치하는데 원내월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800m가량 올라가면 확인할 수 있다. 내월리 내월사지는 2006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의 일원으로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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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명곡마을 서쪽 우묵시골에 있는 제철유적. 내월리 명곡 제철유적은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제철유적으로, 제련로의 위치와 제철유적의 운영 시기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완주군 비봉면과 익산시 여산면 경계에 천호산[500m]이 있는데, 이 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하는 천호천이 줄곧 남쪽으로 흐른다. 익산시 왕궁면 동봉리와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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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요덕사에 있는 조선시대 승려 송음당의 사리탑. 승탑(僧塔)은 부도(浮屠)라고도 부르며, 고승(高僧)이 입적(入寂)한 후 사리(舍利)나 유골(遺骨)을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승탑은 선종(禪宗)이 유입된 이후인 9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 승탑은 실상사 증각대사 응료탑(實相寺證覺大師凝寥塔)과 같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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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천주교 순교자 묘역.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전주 숲정이[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에 있는 천주교 순교지] 순교자들, 1866년과 1868년 순교자들이 안장된 후 내월리 천호성지 순교자 묘비군이 조성되었다.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천호마을 위쪽에 있는 천호성지는 우리나라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성지 중의 하나이다. 천호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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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치리는 비봉면의 7개 법정리 중의 하나로 산시, 대상, 대흥, 선동마을이 있다. 대치리는 대치리와 내월리의 경계를 이루는 ‘대치’라는 고개이름에서 유래했다. 대치리는 본래 고산군 북하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상, 대하, 천호, 시목, 신기, 선동마을을 통합해 이 지역에 있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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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대치리 대흥마을 서북쪽 산소골에 있는 제철유적. 대치리 대흥 제철유적은 조선시대에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제철유적으로 제련로의 위치는 파악하기 어렵다. 대치리 대흥 제철유적은 현지조사 때 산소골에서 기벽이 두껍고 승석문과 격자문이 시문된 회청색 경질토기[1100℃ 이상의 실내 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워 회청색을 띠는 단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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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출신의 무신. 류습(柳濕)[1367~1439]의 본관은 고흥(高興)이고,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아버지는 고려 말의 시중(侍中) 류탁(柳擢), 아들은 류지(柳漬)이다. 류습은 고려 말 음직으로 관에 들어가 합문인진사(閤門引進使)가 되었고, 조선 개국 후 과의상장군(果毅上將軍)을 지냈다. 류습은 태종 대에 들어와서 국왕의 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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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서 활동했던 근대 한학자 조형승의 시문집. 『만오유고(晩塢遺稿)』는 근대 한학자인 조형승의 시문집으로, 1967년 손자 조성렬(曺成烈)이 2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조형승(曺亨承)[1854~1916]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하경(夏卿), 호는 만오(晩塢)이다. 근대의 한학자로, 전라북도 진안(鎭安郡)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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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고개. 문드러미재는 조선시대 고산현(高山縣)에서 한양이나 익산 방면으로 넘어가는 관문이어서 ‘문드러미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대동여지도』에는 ‘문치(門峙)’라고 표기되어 있다. 문수산 옆에 있어서 ‘문수치(文殊峙)’라고도 불렀다. 문드러미재는 북쪽 천호산에서 갈매봉을 거쳐 내려오는 산 능선을 가로지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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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원. 반곡사(泮谷祠)는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사는 담양국씨(潭陽鞠氏)들이 덕행과 학문이 뛰어난 담양국씨의 선조를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현종 때 창건되었다가 흥선대원군 때 훼철된 뒤에 1967년에 와서 복원되면서 서원으로 이름을 고쳤다. 처음에는 국함(鞠涵)과 국침(鞠沈)만 향사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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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의 반곡서원에 소장된 고문서. 『반곡서원 소장 고문서』는 93건으로, 18세기 말에 작성된 1건을 제외하면 모두 19세기 초에서 말까지 작성되었다. 대부분의 문서가 반곡사[반곡서원]의 면역과 제향 및 담양국씨 효자 열녀 포창과 관련된 것들이다. 담양국씨와 관련된 문서들이 많은 것은 반곡사가 덕행과 학문이 뛰어난 자신들의 선조를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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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에 전하는 주인의 방망이를 들고 도망친 노비가 자신을 때리던 방망이에 제사지낸 이야기. 「방망이 놓고 지내는 제사」는 황인덕이 2001년 11월 10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의 조봉호[남, 78세]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466~467쪽에 「방망이 놓고 지내는 제사」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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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무신. 배무천(裵茂天)의 자는 중부(仲夫)이며, 본관은 성산(星山)이다. 아버지는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을 지낸 배욱(裵郁)이다. 배무천은 인조(仁祖) 연간 무과(武科)에 급제한 후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이후 배무천은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린 일이 문제가 되어 전라도 완주군 비봉면(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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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백도리는 비봉면의 7개 법정리 중의 하나로 현암, 자암, 신기, 담곡, 원백도, 능암마을이 있다. 백도리는 비봉면의 중심마을인 백도마을에서 유래했다. 백도리는 본래 고산군 북상면 지역인데 1914년 능곡, 칠전, 신곡, 사곡, 이전 일부와 서면의 자암과 백도를 통합하고 중심마을인 백도의 이름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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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백도리 성뫼산 정상부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백도리산성은 성뫼산 정상부를 한 바퀴 두른 테뫼식 산성으로 삼국시대 산성이다. 백도리산성은 완주군 비봉면 이전리산성 북쪽에 위치한 작은 산성으로 백제의 전초기지로 학계에 보고되었다. 백도리산성의 축성기법이 전라북도 동부 지역 삼국시대 봉수의 연대와 같기 때문에 전라북도 동부 지역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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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산리는 완주군 비봉면의 7개 법정리 중의 하나로 원봉산, 월암, 죽산, 용동, 사치마을이 있다. 봉산리는 비봉면의 중심 마을인 봉산마을에서 유래되었다. 봉산리는 비봉면의 남쪽에 위치하며, 본래 고산군 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용동, 죽림, 봉황, 신월, 우리, 봉산, 사치, 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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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봉산리 봉산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은진임씨[1738~1805]는 현감 임경우(林景佑)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영(林苓)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恩津面) 묵동(墨洞) 출신이다. 은진임씨는 결혼하기 전부터 현숙했다. 국사증과 19세에 결혼했으며, 국사증이 병에 걸리자 좋은 약이라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구해 썼다. 그러나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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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봉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 조영길(趙榮吉)과 조준(趙峻)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서 건립되었다. 조준[1573~1635]의 본관은 양주, 자는 사첨, 호는 유호(柳湖)이다. 대제학 조말생(趙末生)의 후손이다. 외할아버지는 덕수이씨 이대남이다.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 원주에 있던 영원성도 함락되었는데, 이때 조준은 어머니와 형인 조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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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서원. 봉양서원은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다. 비봉면 소재지에서 여산 방향으로 약 3㎞쯤 가면 길 오른쪽으로 동리마을로 진입하는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마을로 조금만 들어가면 봉양서원이 나온다. 봉양서원의 전신은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세워진 용계서원(龍溪書院)이다. 1701년(숙종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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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비봉저수지는 농업용수의 확보를 위해 1959년 1월 1일 착공되어 1967년 1월 1일 준공했다. 완주군의 북부에 있는 전형적인 산간형 농촌 지역 수선리의 농업용수를 관개하기 위해서 건립되었다. 비봉저수지의 유역 면적은 248㏊, 만수 면적은 7.3㏊, 홍수 면적은 9.5㏊이다. 수혜면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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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에 위치한 공립 초등학교. 비봉초등학교의 교훈은 ‘바르고 굳세며 푸른 꿈을 가꾸는 학생’이다. 교육 목표는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어린이, 스스로 공부하고 새롭게 생각하는 어린이, 행복한 꿈을 키워가는 어린이, 함께 뛰놀며 마음과 몸이 건강한 어린이이다. 비봉초등학교는 1928년 10월 15일에 비봉면장 조경환을 비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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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에 속하는 행정면. 비봉면은 완주군 3읍 10면 중의 1개 면으로 완주군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면적은 44.62㎢이다. 면 소재지가 위치하는 소농리를 비롯해 봉산리, 내월리, 백도리, 이전리, 수선리, 대치리 등 7개의 법정리와 35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비봉면은 면내에 위치하는 비봉산[285m]의 명칭에서 면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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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의 행정사무를 맡아보는 기관. 완주군을 구성하고 있는 13개 읍·면 중 비봉면의 주민 생활과 관련된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비봉면 행정복지센터는 행정, 민원, 주민 생활 지원 및 복지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비봉면은 조선시대에는 고산현의 서면(西面)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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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출신인 전경표의 시문집. 전경표(全景杓)[1854~1944]의 자는 회중(晦仲), 호는 삼수재(三修齋)이며, 본관은 관성(管城)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화월리 신화평 출신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조헌(趙憲)을 따르다 순절(殉節)한 설(渫)의 11세손이며, 부친은 전규한(全規漢), 모친은 장임추(張任樞)의 딸이다. 연재(淵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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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고흥유씨의 사당. 조선 중기 문신 유몽인(柳夢寅)과 유숙(柳潚), 조선 후기 학자 유중교(柳重敎)를 배향하기 위해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세운 사당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비봉삼거리에서 천호로 여산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에 3.6㎞ 이동한 뒤에 대치로 화산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나아가면 삼현사가 나온다. 삼현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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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의 삼현사(三賢祠)에 배향된 유중교의 시문집. 유중교(柳重敎)[1821~1893]의 초명은 맹교(孟敎), 자는 치정(穉程), 호는 성재(省齋)이며,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부친은 진사 유조(柳鼂), 모친은 한산이씨(韓山李氏) 이희복(李羲復)의 딸로, 유중교는 서울시 대평동리(大平洞里)에서 태어났다. 5세부터 화서(華西) 이항로(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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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농리는 비봉면의 7개 법정리 중의 하나로 신복, 문장, 평치, 원소농마을이 있다. 소농리는 비봉면의 중심마을인 소농마을에서 유래되었다. 소농리는 비봉면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본래 고산군 서면 지역인데 1914년 평촌, 문암, 장구, 신기, 소농, 송치, 호계 일부를 통합하고 중심마을의 이름을 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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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 출신의 조선 중기 학자인 국침의 시문집. 조선 중기 학자인 국침의 시문집으로, 7대손 국진백(鞠鎭百)이 편집하여 1807년에 3권 1책으로 간행하였다. 국침(鞠沈)[1576~1654]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심원(深源), 호는 송만(松灣)이다. 국함(鞠涵)의 아우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송표옹(宋瓢翁)·정화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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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선리는 비봉면의 7개 법정리 중의 하나로 원수선, 곤동, 송수, 평지, 산정, 부수마을이 있다. 수선리는 비봉면의 중심마을인 수선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수선리는 본래 고산군 북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라, 수출, 부소, 산정, 평지, 수선, 당산, 송수, 관동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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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운곡리에 있는 절터. 수선리 부소사지는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운곡리의 성뫼산 남쪽 하단부에 있고 수선저수지의 남쪽에서 확인된다. 수선리 부소사지는 2006년 『문화유적분포지도』에 의하면 ‘부소사지’로 보고되어 있으나 사명(寺名)과 관련된 문헌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당시 조사에서 수선리 부소사지에는 석축의 일부가 잔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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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수선리 송수사지는 비봉면에서 화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왼편에 송수마을이 있는데 송수마을 남서편 ‘절골’이라는 골짜기에 위치한다. 수선리 송수사지는 2006년 『문화유적분포지도』 제작의 일원으로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조사가 실시되었으며, 2013년 불교문화재연구소·문화재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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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에 전하는 시아버지의 생신을 챙겨드리기 위해 며느리가 머리카락을 자른 것에 관한 이야기. 「승가승무노인곡」은 황인덕이 2001년 11월 10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의 조봉호[남, 78세]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480~483쪽에 「승가승무노인곡(僧歌僧舞老人哭)」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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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에 전하는 시어머니가 미워 죽이려다가 도리어 사이가 좋아진 며느리의 이야기. 「시어머니를 죽이려면」은 황인덕이 2001년 11월 10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의 조봉호[남, 78세]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 456~459쪽에 「시어머니를 죽이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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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백도리에서 화산면 와룡리의 고산천 합류점까지 흐르는 하천. 용학천은 완주군 비봉면 수봉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흘러 고산천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용학천은 완주군 비봉면 수봉산[426.5m] 남쪽 산록인 백도리 능암마을[200m]에서 시작되어 남쪽으로 흐르다가 자암교에서 동북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동북쪽의 이전리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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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명석(柳命錫)[?~1930]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명석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삼여(三汝)이다. 유명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세칭 ‘유문구의사(柳門九義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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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출신의 무신. 유심(柳諗)[1683~1755]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신백(信伯)이다. 아버지는 월곡(月谷) 유종흥(柳宗興)이다.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출신으로, 한때 완주군 삼례읍에 살았다. 유심이 관직에 기용된 사실은 『승정원일기』 영조 대의 기록에 나온다. 1726년(영조 2) 5월에는 전직 사과(司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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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연봉(柳淵奉)[1879~1926]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연봉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춘호(春浩), 이명(異名)은 춘삼(春三)이다. 유연봉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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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연청(柳淵淸)[1869~1928]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연청의 본관은 고흥(高興), 이명(異名)은 춘호(春浩) 또는 춘일(春一)이다. 유연청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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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연풍(柳淵豊)[1875~1936]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연풍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춘오(春五)이다. 유연풍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세칭 ‘유문구의사(柳門九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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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영석(柳瑛錫)[1873~1952]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영석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명오(明五)이다. 유영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세칭 ‘유문구의사(柳門九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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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서 은둔했던 문인. 유종흥(柳宗興)[1652~?]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진보(振甫)이고, 호는 월곡(月谷)이다. 광해군 대에 대사간(大司諫)과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을 지낸 유숙(柳潚)의 증손으로, 부제학(副提學) 유간(柳藖)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별좌(別坐) 김자건(金自鍵)의 딸이다. 유종흥의 조카 유건(柳謇)은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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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준석(柳俊石)[1885~1971]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유준석의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공범(公範)이다. 유준석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에 유중화(柳重和)[자 치복(致福)] 등 유씨 가문의 8명과 더불어 일본에 항거하는 의진을 구성하였다. 세칭 ‘유문구의사(柳門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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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의병장. 유지명(柳志明)[1881~1909]은 1907년 스스로 의병대장이라 칭하며 의병을 모집하고 군자금을 확보해서 의병대를 조직했다. 1907년 9월 22일 전라북도 용담군 건무리에서의 전투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전과를 올렸으나 1909년 일본군 헌병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고 순국했다. 유지명은 1907년 9월 초순경부터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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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 살았던 무신. 유지호(柳之豪)[1596~?]의 자는 사준(士俊), 본관은 고흥(高興)으로 선무공신(宣務功臣) 유몽사(柳夢獅)의 손자이며, 병조참의(兵曹參議) 유광(柳洸)의 아들이다. 장인은 전의이씨(全義李氏) 이영선(李榮先)으로, 자는 극가(克家)이며 최명룡의 문인이다. 유지호는 서울 출생으로 전라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完州郡 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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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유치복(柳致福)[1866~1910]은 1907년 한 마을 사람 11명과 같이 항일구국투쟁을 맹서하고 삼남의진 의병대장 유지명 의진에 들어갔다. 유지명 의진에서 동지 3명과 함께 10월 10일 우북면 장암 이화순의 집에서 군자금 30원을 조달했다. 이어서 송태식 등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미력면 도내리의 최순표의 집에서 군자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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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출신의 의병. 유태석(柳泰錫)[1871~1922]은 비봉면 내월리의 유씨 집안 청년들과 함께 1906년 유지명 의병대에 참여해 주로 군자금 모금을 맡았다. 의병대 해산 후 은둔생활을 하다가 1916년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사망했다. 유태석은 월곡처사 유종흥(柳宗興)의 7대손이다. 유태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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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의병. 유현석(柳炫錫)[1888~1960]은 을사늑약 체결 이후 일본이 노골적으로 식민지화를 추진하자 1906년 10월 유씨 집안 9명과 거의(擧義)하고 군자금 모금에 주력했다. 의병 해산 후에는 고향에서 은거생활을 했는데 1916년 일본 경찰에게 의병 활동이 탐지되어 체포되었다. 유현석은 12년형을 선고받고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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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에 전하는 독립운동을 주도한 의병대장 유치복과 그를 도와 희생된 애국지사들의 이야기. 유치복(柳致福)[1866~1910]은 조선 말기 의병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출신이다. 유치복은 1907년 삼남의병 제2지대장 유지명 소속 부대의 총책으로 일본군과 싸워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일본군에게 총살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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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으로 활동한 의병. 이유종(李宥鍾)[1886~1918]은 1906년 완주군 비봉면의 고흥유씨(高興柳氏) 집안 청년들과 항일 구국 투쟁을 함께 하기로 결의하고 의병진에 들어가서 활약했다. 의병 해산 후에는 귀가하지 못하고 각지를 전전하던 중 부일배(附日輩)의 밀고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18년 옥사 순국했다. 1906년 면암 최익현이 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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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전리는 비봉면의 7개 법정리 중의 하나로 금곡, 이전, 구상, 구중, 구하마을이 있다. 이전리는 비봉면의 중심마을인 이전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진흙밭이 많아서 생긴 이름[진바실, 진밭]이다. 이전리는 본래 고산군 북상면 지역인데 1914년 구상, 구중, 구하, 금곡, 이전, 관동마을 일부를 통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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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이전리 구하마을에 있는 정려비. 강기환[1821~?]은 진양강씨로 호는 흥서(興瑞)이다. 부모를 변변하게 공양은 못했지만 유쾌한 성격으로 극진히 섬겼다. 부모가 죽은 후 강기환은 3년간 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어 땅이 패이고 눈물 젖은 풀이 말라 죽었다. 이를 본 주변 사람들이 글을 올리자 예식원 이용직(李容稙)이 주청해서 증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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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이전리 구하마을 서북쪽 요골에 있는 제철유적. 이전리 구하 제철유적은 본래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던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제철유적이다. 이전리 구하 제철유적 현지조사 때 요골에서 기벽이 두껍고 표면에 격자문이 시문된 회청색 경질토기[1100℃ 이상의 실내 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워 회청색을 띠는 단단한 토기] 조각과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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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이전리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이전리산성은 완주군 고산면과 비봉면 경계를 이룬 산줄기와 북쪽 골짜기를 포함하는 삼국시대 포곡식 산성이다. 이전리산성은 종래에 백제 동방성의 전진 기지성으로 학계에 보고되었는데, 그 주변에 삼국시대 산성 및 봉수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므로 가야세력과의 관련성도 상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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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의병. 이태종(李泰鐘)[1889~1925]은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서 출생했으며, 항일구국투쟁을 결의했던 고흥유씨 12인 중 유중화(柳重和)의 외조카이다.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한반도 내에서의 국제적 우위를 확인받게 되었다. 이후 일본은 노골적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전략을 추진해서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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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조옥승(曺玉承)[1828~1892]의 호는 월은(月隱)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할아버지는 진사(進士) 조명계(曺命啓)이고, 아버지는 진사 조석리(曺錫履)이다. 조옥승은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隱世稿)』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신암 조헌승과 우재 조호승이 친족관계인 것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조옥승은 한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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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학자. 조헌승(曺憲承)[1813~1860]의 호는 신암(信菴)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조헌승은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隱世稿)』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우재 조호승과 월은 조옥승이 친족관계인 것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조헌승의 문집(文集)으로 『신암집(信菴集)』 필사본(筆寫本) 1책을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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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에서 활동한 학자. 조형승(曺亨承)[1854~1916]의 자는 하경(夏卿), 호는 만오(晩塢)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조선 후기와 근대에 활동한 한학자이다. 아버지는 조석희(曺錫羲)이다. 조형승은 충익공 조문택(曺文澤)의 후손으로 문학에 조예가 깊고 성품이 인자했다. 참봉(參奉)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886년(고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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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학자. 조호승(曺暠承)[1819~1954]의 호는 우재(愚齋)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완주군 비봉면 월곡리(完州郡 飛鳳面 月谷里) 출신이다. 조호승은 『신암우재월은세고(信菴愚齋月隱世稿)』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신암 조헌승과 월은 조옥승이 친족관계인 것으로 보이나, 자세하지 않다. 조호승의 문집으로 『우재집(愚齋集)』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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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국명의 시문집. 『죽계집(竹溪集)』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국명의 시문집으로, 1915년 후손 국천환(鞠天煥)이 3권 1책으로 편집하고 간행하였다. 국명(鞠溟)[1583~1645]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거원(巨源), 호는 죽계(竹溪)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로,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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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에 전하는 진고비가 자린고비에게 부자되는 방법을 배워 잘 살게 된 이야기. 「진고비와 자린고비」는 황인덕이 2001년 11월 10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의 조봉호[남, 78세]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483~486쪽에 「진고비와 자린고비」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진고비와 자린고비는 친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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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위치한 성물 박물관.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은 한국 천주교회의 대표적인 성지 중의 하나인 천호성지에 조성된 박물관으로 가톨릭의 보편적 가치와 한국 천주교회사를 볼 수 있다. 특히 천호성지를 중심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사를 이해할 수 있다. 천호가톨릭성물박물관은 가톨릭의 보편적 가치와 한국 천주교회사에 대한 이해,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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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대치리 북쪽 천호산 봉우리 정상부에 있는 삼국시대 석성. 천호산성은 천호산 두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두른 포곡식으로 삼국시대 산성으로 추정된다. 종래 백제산성으로만 학계에 보고되었는데, 천호산성 내 북쪽에서 방형의 봉수시설이 발견되고, 현지 조사 때 빼곡한 물결무늬[밀집파상문]가 장식된 가야토기 조각이 수습되어 가야세력과의 관련성도 배제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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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전주교구 소속 천주교회. 천호성당은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일대를 관할 구역으로 두고 있는 로마가톨릭교회이다. 천호공소는 1839년(헌종 5) 기해박해를 전후로 형성되었다. 천호에는 주변 곳곳에 교우 촌들이었으며, 선교사들이 활동할 때에는 되재와 함께 고산 지역의 중요 교우 촌으로 역할을 하였다. 천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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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천주교 성지. 천호성지는 전주에서 순교한 천주교 성인 손선지, 이명서, 한재권, 정문호 네 분과, 여러 순교자들의 묘역이 있는 천주교 성지이다. 천호라는 지역은 옛 부터 용추네, 다리실 등으로 불리었다. 천호에 천주교인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39년(헌종 5) 기해박해 전후로 보인다. 이후 천호산 주변에 교우촌들이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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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와 비봉면 대치리에 걸쳐 있는 산. 천호산(天壺山)은 ‘속이 텅 빈 산’이라는 뜻이며 이는 산의 서북쪽에 위치한 호산리(壺山里) 천호동굴로부터 의미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비봉면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산을 ‘성주산’이라고 불렀으며, 맞은편 익산시 여산면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연대 미상의 옛 성터가 남아 있어 ‘성태봉’이라고 불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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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서 고산면 어우리 합류점까지 흐르는 하천. 천호천은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천호성지 아래에서 발원하여 고산면 어우리에서 고산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천호천은 완주군 비봉면과 익산시 여산면의 경계에 있는 천호산의 산명에서 유래했다. 천호천은 무능제→천호마을→내월리→소농리→봉산리→고산면 어우리를 거쳐 고산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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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 삼현사(三賢祠)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인 유숙의 시문집. 『취흘집(醉吃集)』은 조선 전기 문신인 유숙의 시문집으로, 1882년 약계서당(藥溪書堂)에서 5권 2책으로 간행하였다. 유숙(柳潚)[1564~1636]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연숙(淵叔), 호는 취흘(醉吃)이다. 159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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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에 전하는 화살보다 빨랐던 말에 관한 전설. 「화살과 말의 경합」은 황인덕이 2001년 11월 10일에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소농리의 유재춘[남, 69세]으로부터 채록해, 『완주의 구전설화』[신아출판사, 2001] 470~471쪽에 「화살과 말의 경합」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했다.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백도리 성산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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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수선리 출신의 조선 중기 학자인 국함의 시문집. 조선 중기 학자인 국함의 시문집으로, 5대손 국치권(鞠致權)이 편집해서 1913년에 4권 2책으로 간행했다. 국함(鞠涵)[1573~1653]의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자는 양원(養源), 호는 환성(喚醒)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송표옹(宋瓢翁)·정화곡(鄭禾谷)·심초정(沈草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