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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영조 26) 경에 제작한 전국 군현지도첩인 『해동지도』[8책]에 수록된 제주 지도. 『해동지도』 제7책 호남전도에 2종이 수록되어 있다. 이는 지도 앞면에 기록된 주기(註記)에 “탐라양지도개시본읍인본이상략부동병존이비참고(耽羅兩地圖皆是本邑印本而詳略不同竝存以備參考)”라고 기재된데서 추측할 수 있다. 즉 2종의 「제주삼현도」는 탐라지도병서와 같은 목판본을 필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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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시인 겸 문신인 임제(林悌)가 제주도를 여행하며 적은 기행문. 『남명소승(南溟小乘)』은 당대 명문장가로 명성을 떨쳤던 조선 중기의 시인 겸 문신 임제[1549~1587]가 대과에 급제한 후, 당시 제주목사인 아버지 임진(林晉)을 만나고 4개월 동안 제주에 있으면서 지은 글이다. 1577년 11월 3일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 자신이 직접 본 제주의 경승(景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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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김상헌(金尙憲)이 안무어사로 제주에 왔을 때 지은 일기체 형식의 글. 김상헌(金尙憲)[1570~1652]은 임금의 명을 받아 1601년 7월 제주에서 발생했던 길운절·소덕유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처벌될 것을 염려하던 제주도민을 위로하기 위해 제주에 오게 되었다. 『남사록(南槎錄)』은 이때의 일을 1601년 8월부터 6개월 간 기록한 것이다.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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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김성구(金聲九)가 정의 현감 재임 시의 일들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글. 『남천록(南遷錄)』은 김성구[1641~1707]가 부수찬(副修撰)에 임명된 1679년(숙종 5) 3월 12일부터 정의 현감으로 좌천되었다가 1682년(숙종 8) 1월 16일 아버지가 임시로 사는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남긴 기록이다. 김성구는 정의 현감 재임 때의 일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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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1월 제주·대정·정의 3군(郡)의 호구와 집의 형태를 기록한 총책(摠冊). 『삼군호구가간총책』은 「삼군호구가간존안책(三郡戶口家間存案冊)」과 「삼군호구가간상납총(三郡戶口家間上納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삼군호구가간존안책」은 당시 제주도에서 보관 중이던 문건으로 보이며, 「삼군호구가간상납총」은 실제로 호구와 집의 칸수인 가간(家間)을 조사하여 기록한 것으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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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제주의 군제(軍制)와 봉수(烽燧)·연대(烟臺)를 기록한 문헌. 『제주삼읍군제(濟州三邑軍制)』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제주병제봉대총록(濟州兵制烽臺摠錄)』[규 4485)] 수록되어 있는데 1880년대 서귀포 지역의 군제(軍制)와 봉수(烽燧)·연대(烟臺)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편자·간행지 미상의 필사본으로, 1책(冊) 18장(張)으로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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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종친(宗親) 이건(李健)이 제주 유배기간 중 기록한 풍토기.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는 이건이 1628년부터 1635년까지 8년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제주도의 기후와 토지상태·풍습·생활상 등을 기록한 것이다. 이건은 선조의 손자인 인성군(仁城君) 공(珙)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자강(子强), 호는 규창(葵窓)이다. 1628년(인조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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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정(金淨)이 제주 유배 기간 중 기록한 기행문.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은 김정이 1519년(중종 14) 11월에 일어난 기묘사화로 인하여 진도에서 제주도로 이배되었던 1520년 8월부터 사사(賜死)되던 1521년 10월까지 16세기 제주 지역의 풍토와 상황을 기록한 것이다. 『제주풍토록』은 김정이 36세 되던 1521년 외질(外姪)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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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헌종 7) 제주목사이던 이원조(李源祚)가 재임 시 조정에 올렸던 장계(狀啓) 모음집. 『탐라계록(耽營啓錄)』은 1841년 윤3월 13일부터 1843년 5월 22일까지 마정(馬政), 환곡(還穀), 포폄(褒貶), 군액(軍額), 삼읍에서 올라 온 첩보(牒報)에 대한 보고 등이 수록되어 있어 19세기 후반 서귀포 지역의 당시 상황을 살필 수 있다. 1책의 필사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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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원조(李源祚)가 제주목사 재임 시의 일을 일기체 형식으로 적은 기록. 『탐라록』은 이원조가 제주목사로 임명되던 1841년 1월부터 1843년 7월까지 자신의 생활과 치적을 기록한 시문집류이다. 1843년 봄에 쓴 이주현(李周賢)의 서문(序文)을 통해 작성연대를 추측할 수 있다. 3책[상․중․하]으로 된 필사본으로 크기는 각각 31.0×20.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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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년(숙종 28)에 제작된 제주도 지도. 『탐라순력도』는 조선 시대 제주 목사 이형상(李衡祥)의 순력 및 행사 장면을 화공 김남길(金南吉)이 그린 제주 유일의 풍속화첩으로, 제주도의 풍광과 풍속 등을 총 43면에 담고 있다. 그 중에 「한라장촉」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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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원조(李源祚)가 제주목사 재임 시 하급기관에 발송했던 공문 모음집. 『탐영관보록(耽營關報錄)』은 이원조가 제주목사 재임시 영문(營門)에서 제주목 4면(面)과 대정현ㆍ정의현 및 각 진(鎭) 등에 하달한 전령(傳令), 감결(甘結) 등을 수록한 공문 모음집이다. 수록 기간은 1841년(도광 21) 3월 일부터 1843년(도광 23) 4월 초 5일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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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녹산장과 갑마장, 그리고 일제 강점기 마을 공동목장 경계선으로 설치된 돌담시설. 잣성은 국영목마장의 상하 경계선에 해당되며 『제주계록』[1846-1884]에는 장원(墻垣)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에 따라 하잣성·중잣성·상잣성 그리고 간장(間牆)으로 구분된다. 가시리에는 번널오름 하잣성, 갑마장 잣성, 갑마장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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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에 있는 조선 초기 한계로 부부묘. 가시리 설오름 청주한씨 방묘는 한계로(韓繼老)묘라고도 한다. 청주한씨제주 입도조 한천(韓蕆)의 아들인 한계로와 그 부인의 묘로 아버지 묘 바로 아래에 있다. 아들의 묘가 먼저 조성되고 한천의 묘는 나중에 이장해 왔다. 고려 말~조선 초기에 이르러 제주도 유력집단의 묘제로 돌덧널무덤[方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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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경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에 있는 1750년 경 흑우를 방목하기 위해 설치한 특별 목장. 가파도 별둔장(加波島 別屯場)에서는 흑우를 방목해 진상에 대비하기 위해서 낮고 평평한 완경사지[용암대지]를 목장으로 이용했다. 『제주읍지』에 의하면, 목장의 공간규모가 주위 10리 정도였으며, 방목하는 소는 103두라고 했다. 가파도 별둔장의 최고 책임자인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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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 일대에 위치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의 유물산포지. 가파도 유물산포지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사람들이 생활했던 마을이 위치하던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석기 등이 흩어져 있다. 유물 산포지에서는 신석기 시대 융기문 토기가 일부 출토된 바 있지만 대체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적갈색 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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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에 있는 조개더미. 가파도는 조개더미, 고인돌·유물산포지 등 선사시대 유적과, 매부리당·뒷성서낭당 등 민속신앙 유적이 산재해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리 340번지 일대에 있는 가파도 조개더미는 섬의 북동편에 제주 본섬과 마주한 해안에 인접하여 자리하고 있다. 가파도 상동마을에서 동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위치해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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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일대에 위치한 신석기시대 생활유적. 감산리유적은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이 생활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석기 등이 흩어져 있다. 발굴조사 결과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어골문토기(魚骨文土器)[빗살무늬토기의 일종], 단사선문토기(短斜線文土器)[빗살무늬토기의 일종], 압인문토기(押引文土器)[압인문은 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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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구포시 대정읍 일과리 출신의 선비이자 학자. 대정향교 훈장이자 학자, 문인이었던 강사공(姜師孔)은 추사 김정희와 교류한 석학으로 일재(一齎) 변경붕(邊景鵬)과 함께 대정의 학문과 미풍양속 진작의 중추적 역할을 한 선비였다. 대정향교 훈장으로 재임하면서 서귀포 지역 유림 발전에 힘썼고, 문장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강사공은 1772년 대정읍 일과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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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 출신의 문신.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오응(五應), 호는 명재(明齋)이다. 1747년(영조 23) 성산읍 삼달리(三達里)의 입촌(入村) 시조인 강일명(康一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는 강문달(康文達), 증조부는 강사안(康嗣安)이며, 외조부는 김무홍(金武弘)이다. 강성익은 처음 오봉조(吳鳳祚)에게 학문을 배우고, 후에는 변성우(邊聖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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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 일대에 위치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 유물산포지. 강정동 유물산포지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사람들이 생활했던 마을이 위치하던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석기 등이 흩어져 있다. 유물 산포지에서는 대체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적갈색 경질토기가 다수 확인된다. 강정동 유물산포지는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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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에 거주했던 1862년 임술 제주민란의 주동자. 1862년, 진주민란을 비롯한 전국적인 민란의 영향과 지방관의 경제적 수탈로 제주도에서는 모두 세 차례의 민란이 일어났는데, 본관은 진주(晋州). 대정현 광천리[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사람인 강제검(姜悌儉)은 2차와 3차 봉기를 주도하였다. 이 농민봉기는 강제검의 난으로도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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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형성된 탐라국 시대 서귀포시의 역사. 고대 사회에 형성된 탐라국은 제주도에 존재했던 옛 국가의 명칭으로 그 의미는 ‘섬 나라’를 뜻한다. 탐라국 건국 신화의 내용을 알려주고 있는 『고려사』 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는 ‘탐라(耽羅)’가 탐진(耽津)의 ‘탐(耽)’자와 신라(新羅)의 ‘라(羅)’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라 설명하고 있다. 탐라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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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강정동에 있는 조선시대 과원 터. 고둔과원은 조선 시대 제주 지역의 감귤을 중앙정부에 진상하기 위해 대정현에서 설치하여 운영 관리하였던 과수원이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에는 제주과원은 전체 35개 있었으며 그 중 대정현(大靜縣)에는 6개 과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둔과원(羔屯果園)은 대정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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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건국에서부터 멸망[918~1392년]에 이르기까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역사와 문화. 탐라는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기 9년 전인 925년(고려 태조 8)에 고려에 조공을 하고 있었다. 약 350여 년 동안 탐라는 ‘국(國)’으로서 고려와 대외 관계를 계속해 오다가 1161년(의종 15)에 현령관 최척경이 파견되어 오자 비로소 고려 군현 제도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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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의현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사앙(士昻), 일명 고만추(高萬秋). 아버지는 고원(高瑗), 할아버지는 고상흘(高尙仡), 증조부(曾祖父)는 1666년(현종 7)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고홍진(高弘進)이며, 외조부(外祖父)는 이인제(李仁濟)이다. 증조인 고홍진이 이호(梨湖) 오도롱 사람인데, 그의 조모가 감목관 김대명(金大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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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 고대~조선 시대 유력 집단의 분묘. 고분(古墳)은 고고학적으로 삼국 건국 초기부터 통일신라시대 화장묘 성행기까지의 묘제로, 한정된 시대에 몇 가지 요소를 구비한 지배층의 분묘이다. 하지만 제주는 고려 말 조선 초에 이르러 방형분이 등장하여 다른 지역과는 차이를 보인다. 제주도 내에 존재하는 무덤 가운데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탐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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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선사 시대의 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선사 시대 거석 기념물의 일종으로, 한국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이다. 고인돌은 대부분이 묘제이지만 일부는 집단의 의식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기념물]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는 ‘고인돌’, 일본은 ‘지석묘(支石墓)’, 중국에서는 ‘대개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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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서귀포 지역에서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한 감귤을 재배했던 농장. 조선 시대 조정에서는 제주 감귤이 종묘 천신용, 빈객 접대 등 궁중에서 가치가 높아 주요한 진상품으로 재배하도록 했다. 이러한 감귤류 나무를 재배하던 장소가 과원이었다. 조선 시대에 본격적으로 제주 과원의 조성되기 시작된 것은 1526년(중종 21) 제주목사가 감귤을 진상하기 위해 5방호소[서귀(西歸)·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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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영천천 계곡 바위에 새겨진 글씨. 관나암(觀儺巖) 마애명은 서귀포시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맞은편 상효교(上孝橋) 아래로 500m 정도 거리에 영천천(靈泉川)[지금의 효돈천] 서쪽 둔덕 바위에 '관나암(觀儺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관나암 뒤편으로 1466년(세조 16) 이유의 목사에 의해 역원과 점마소의 역할을 했던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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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서 뗀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우리 나라의 구석기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70만년 전까지 올려보고 있으며, 지역적으로 차이는 있으나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는 1만년 전까지 영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인들은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 거주하면서 뗀석기를 사용하였으며 수렵, 어로, 채집 생활을 하였다. 제주 지역의 경우에도 이와 다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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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에 있는 조선 시대 옹기 가마. 제주 사람들은 가마[窯]를 ‘굴(窟)’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생산된 그릇의 빛깔에 따라 노랑굴과 검은굴로 구분한다. 구억리 검은굴은 지명을 따서 ‘구석팟 검은굴’이라고도 부른다. 구억리 검은굴은 검은빛이 나는 그릇을 생산하였다. 가마는 16°의 자연 경사면에 길이 810㎝, 소성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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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 에 있는 조선 시대 옹기 가마. 제주 사람들은 가마[窯]를 ‘굴(窟)’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가마에서 생산된 그릇의 빛깔에 따라 노랑굴과 검은굴로 구분한다. 구억리 노랑굴은 구억리 상동 속칭 ‘너비낭알’이라고 불리는 곳 서쪽에 있어 ‘섯굴’이라고도 부른다. 구억리 노랑굴은 노란 빛깔을 띠는 옹기가 생산되었던 가마이다.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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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도 대정현 창천리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형숙(亨叔), 호는 산수헌(山水軒). 아버지는 제주 목사를 역임한 권정성(權定性)이고 증조부는 권상하(權尙夏)이다. 권진응(權震應)[1711~1775]은 어려서부터 징사(徵士) 한원진(韓元震)의 문하에서 수학, 독서를 많이 했으나 과거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를 치르지 않고 의정 대신과 이조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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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 있는 조선시대 과원. 1653년(효종 4) 이원진(李元鎭)이 편찬한 『탐라지(耽羅志)』 과원조(果園條)에 정의현 지역에 정자·독학·별과원·우전·금물·향목·원통·성산 8개소가 등장한다. 이 자료에 의하면 금물과원(禁物果園)은 정의현 서쪽 50리에 있으며 유자 55그루, 산귤 2그루 외에 새로 심은 각종 과수 26그루, 치자 3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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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일대의 수로 개척자.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출생으로 본관이 김해(金海)인 김광종(金光宗)은 1832년(순조 32) 3월부터 1841년(헌종 7) 9월까지 10여년에 걸쳐 오직 자신의 사재(私財)만을 이용하여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의 황개천 바위를 뚫고 약 1만여 평이나 되는 화순마을의 넓은 들에 물을 끌어올 수 있게 수로를 개척하였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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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정에 말을 바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의귀리 출신의 공신(貢臣)이며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경보(慶甫), 호는 장전(長田)이다. 1608년 정의현(旌義縣) 의귀리(衣貴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임진왜란과 그 이후, 말 천여필을 조정에 바치고 헌마공신(獻馬貢臣)에 오른 김만일(金萬鎰)이다. 김대길(金大吉)은 1630년(인조 8)에 무과에 급제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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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그 이후 시기에 조정에 말을 바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의귀리 출신의 공신(貢臣). 전국 최대의 목장지대였던 제주도에서 임진왜란 발발 당시 가장 많은 말을 소유하고 기르던 부자였다. 그는 목장 경영에 성공하여 많은 말을 소유하였고, 임진왜란 이후 계속되는 전란으로 중앙정부가 말 부족에 시달릴 때 자신의 말 중에 상당 부분을 국가에 바쳤고, 자신은 물론 아들 손자까지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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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정현[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 등 500여종에 이른다. 1786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가문인 경주 김씨는 조선 시대 대표적인 훈척가문으로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김노경(金魯敬)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영조의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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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추사유물전시관에 소장된 김정희(金正喜)의 일괄 유물. 추사 김정희 고택의 전래유물로 추정되는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인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 관련 유물 10점과 『신해년책력(辛亥年冊曆)』[표제 1점, 유묵 15점]이다. 김정희 필적은 서예사 연구 자료로 가치가 있으며 보물 제547호로 지정된 ‘예산 김정희 종가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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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에 있는 유물산포지. 난산리 유물산포지는 2곳이 있다. 1지구 유물산포지는 성산읍 난산리 2905번지 일대이고, 2지구 유물산포지는 성산읍 난산리 146번지 일대이다. 난산리 유물산포지는 2군데가 알려져 있는데 1지구 유물산포지는 역사시대 유물산포지로 풍력단지가 조성된 곳이다. 좌보미오름과 궁대오름 등 오름들이 산재한 비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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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증(李增)이 제주 어사로서 순무할 때의 일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 이증[1628~1686]은 1679년(숙종 5) 10월 불법으로 재물을 탐했다는 전 제주 목사 윤창형(尹昌亨)과 정의 현감 상인첨(尙仁詹)의 일을 조사함과 동시에 문무시재(文武試才)를 시행하고 민정(民情)을 살피기 위해 안핵겸순무어사(按覈兼巡撫御史)로 제주에 파견되었다. 이와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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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의현에 소속된 봉수. 남산봉수는 달산봉수·독자봉수와 교신했다. 달산봉수와의 직선거리는 4.5㎞, 독자봉수와의 직선거리는 3.9㎞이다. 정의성과 인접해 있어서 주변의 상황을 정의현에 연락하는 역할을 하였다. 소속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대체로 봉수대들은 해안에 접한 곳이거나 해안으로부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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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리에 있는 유물산포지. 남원리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1리 1376번지 일대이며, 구 일주도로변 남원읍사무소 남쪽에 있으며, 해안과도 가깝다. 남원리 유물산포지에는 경작지와 민가 조성되어 있고 지표상에서 적갈색경질토기와 회색경질토기가 수습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원삼국시대 유적으로 판단된다. 남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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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대록산과 성읍리 따라비 오름 일대의 평원에서 조선 후기에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대규모 말 목장. 녹산장은 1709년(숙종 35) 이후 산마장(山馬場)이 침장(針場)·상장(上場)·녹산장(鹿山場)으로 개편되면서 등장했다. 녹산장의 공간 규모는 동서 75리, 남북 30리 정도였다. 녹산장 운영이 유명무실해지자 주민들이 녹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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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의현에 소속된 봉수.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하동 서북쪽에 있는 높이 136m의 달산봉에 위치하고 있는 달산봉수는 남서쪽으로 토산봉수, 서쪽으로 남산봉수와 교신하였다. 달산봉수는 조선 초기부터 존재했다. 토산봉수와의 직선거리는 6.1km, 남산봉수와의 직선거리는 4.5km이다. 소속별장 6명, 봉군 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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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예동에 위치한 대정현에 소속된 연대. ‘연디왓’·‘연디밑’이라 부르는 곳에 연대가 있다. 이곳은 하예동 포구 인근 속칭 ‘큰코지’와 이어지는 4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동쪽으로는 별로천연대, 서쪽으로 산방연대와 교신했으며, 별로천연대와의 직선거리는 2.3km, 산방연대와는 5.7km이다.대포동 앞 해안, 서쪽으로는 멀리 송악산까지 바라다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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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정군(大靜郡) 소속 군병들의 군적부(軍籍簿). 『대정군군병도안(大靜郡軍兵都案)』은 속오군(束伍軍)만을 기재한 『제주속오군적부(濟州束伍軍籍簿)』와 달리, 속오군은 물론 성정군(城丁軍), 마대(馬隊) 군수수솔(郡守隨率), 진방군(鎭防軍) 봉군(烽軍)·연군(煙軍)·파수(把守)·교직생(校直生)의 편제와 병적 등이 기록되어 있다. 내용으로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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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 에 있는 조선 시대 성터. 대정성지는 조선 시대 제주도의 3읍성 중 하나로 대정현에 축성된 성곽 유적지를 말한다. 행정 구역상 대정성지는 대정읍 안성리, 인성리 및 보성리 일대에 걸쳐 자리 잡고 있다. 제주읍성으로부터 대정성지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50km 정도이다. 제주도는 1416년(태종 16)에 제주목과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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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부를 관할하고 있던 옛 행정 구역. 조선이 개창된 이후 제주는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이는 이미 고려 시대 원에 의해 설치된 목마장에서 생산된 제주의 말이 대명 외교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전시(戰時)에는 전쟁 수행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였기 때문이었다. 중앙 정부의 이와 같은 인식은 제주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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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인성·보성리 일대에 있는 성곽. 대정현성은 대정현이 설치된 2년 후에야 축조되었다. 즉, 1418년(태종 18) 대정현감 유신(兪信)에 의해 1개월만에 완성되었다. 대정현성은 제주읍성이나 정의현성과는 달리, 당시에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었으나, 북문은 후에 폐쇄되었다. 문 위에는 모두 초루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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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 2325번지 일대에 위치한 초기철기에서 원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대포동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 2325번지 일원에 해당한다. 유물산포지는 해안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회수천 하류의 텅긴내 서쪽에 형성되어 있다. 회수천의 동쪽으로는 하원동 유물산포지 1지구와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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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대포포구에 있는 법화사지 주초석 출토지. 속설에 의하면, 존자암이 상원(上源), 법화사가 중원(中源), 일명 대포동사지가 있는 곳이 하원(下源)이었다고 전한다. 예전에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대포리에서 하원 법화사로 가는 옛 길이 있다고 전하며 법화사에 가까운 옛 포구로는 대포리가 있어 외지에서 법화사로 올 경우 이 대포포구를 이용했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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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포동에 위치한 대정현에 소속된 연대. 대포연대는 대정현에 소속된 연대로서 대포동 해안과 접한 25m의 벼랑 위에 축조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마희천 연대, 서쪽으로는 별로천 연대와 교신했다. 마희천 연대와 직선거리는 4.5㎞이고, 별로천 연대와는 2.6㎞ 떨어져 있다. 지형이 주위보다 밖으로 돌출되어 있고 높은 곳이라 강정동 앞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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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에 위치한 정의현에 소속된 봉수. 서귀포 성산읍 신산리 망오름이라 불리는 독자봉에 위치한 독자봉수는 서쪽으로 남산봉수, 북동쪽으로 수산봉수와 교신하였으며, 직선거리는 남산봉수와 3.9km이고 수산봉수와 7.3km이다. 소속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독자봉수는 조선 전기 사지악봉수 혹은 오음사지악봉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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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일대에 있는, 자연적·인공적 동굴을 이용한 살림터. 동굴 유적은 전세계적으로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주거 유형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구석기 시대 이후에는 특수한 목적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동굴이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방어 장소나 자연 환경의 해악에 따른 피신 장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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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일원에 위치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 무덤 유적. 동일리 지석묘군은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주변 마을을 조성했던 당시 주민들이 축조한 무덤유적으로 동일리 고인돌은 서귀포시 서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동일리 1614번지, 1628번지 외 3필지[동일리 지석묘 1호], 160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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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대포동에 있었던,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시대 대정현 동쪽의 방어 요충지에 설치된 군대의 경계 감시소. 제주도는 왜구의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김녕·조천·도근천·애월·명월·차귀·동해·서귀·수산 방호소 등 9개의 방호소가 설치되었으며, 이중 동해방호소는 대정현 동부 지역을 감시하는 방어유적으로 원래 강정마을에 있었던 가래방호소(加來防護所)를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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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마라도에 있는 유물산포지. 마라도 유물산포지는 전체가 난대성 동·식물과 해식동굴이 발달한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423호]이다. 마라도 유물산포지는 대정읍 가파리 산12번지 일대이며, 마라도 남쪽해안에 있다. 마라도 유물산포지는 전체가 난대성 동·식물과 해식동굴이 발달한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4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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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 위치한 정의현에 소속된 연대. 말등포연대는 제주읍성의 139리, 정의현성에서 동남 20리에 해당하는 연대로 북동쪽으로 협자 연대, 남서쪽으로는 천미 연대와 교신했으며, 직선거리로는 협자 연대와 5.3km이고 천미 연대와 6.9km이다. 소속별장 6명, 연군[직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신양리에서 해안선이 일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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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년(숙종 31)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무릉리·영락리 일대에 설치된 우목장. 『제주읍지』에 따르면, 모동장은 제주목사, 감목관, 우감(牛監) 2명, 색리 1명, 겸찰군두 2명, 목자 10명에 의해 운영되었고, 목장둘레는 37리였으며, 소 203수, 말 9필이 있었다. 『탐라지초본』[1840년대]에는 우감 2명, 군두 1명, 목자 14명, 소 637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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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모슬진에 소속된 봉수. 높이 186m인 모슬봉 정상에 위치한 모슬봉수는 북서쪽의 당산봉수, 남쪽의 저별봉수와 교신했으며, 저별봉수와의 직선거리는 5.7km, 당산봉수와의 직선거리는 14.5km이다. 소속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대정현 혹은 모슬진 소속의 봉수로 주로 간봉(間烽)[중간 봉수대]의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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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와 관련된 정신적·사회적 활동의 결과물로 다음 세대로 계승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지정·관리하는 문화유산. 「문화재 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으며, 유형·무형 문화재와 기념물·민속 문화재 등으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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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제주민란을 일으킨 주동자. 1898년 제주민란은 일명 ‘방성칠의 난’이라고도 하는데 당시 제주 지역은 서울에서 파견된 세리(稅吏)의 지나친 조세 수탈로 농민들의 삶은 대단히 고단하였다. 세리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은 1898년 2월 7일 방성칠을 지도자로 하여 광청리 일대 화전민 수백 명이 제주성 내의 관아에 몰려가 화전세·목장세 및 호포의 과다징수와 환곡의 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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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백록담 정상 동쪽 암벽에 새겨진 글씨. 조선 시대 제주에 왔던 목사(牧使)·어사(御使)·적객(謫客)들이 한라산 정상에 올라 한라산과 백록담을 대상으로 자연을 읊은 시와 등반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새긴 것들이다. 백록담 마애명은 서귀포시 토평동인 백록담 동쪽 암반과 동쪽 꼭대기 암벽에 있다. 1. 시각(詩刻) ① 임관주의 5언 절구 망망창해활(茫茫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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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4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범섬 일대에서 최영 장군과 목호 세력(牧胡勢力)이 제주 관할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인 전투. 범섬 전투는 1374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소재 법환 포구 앞바다에 자리잡은 범섬 일대에서 최영(崔瑩) 장군과 제주 몽골족의 목호 세력(牧胡勢力)이 제주 관할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인 최후의 결전이다. 당시 1374년(공민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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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조선 시대 과원 터.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에는 제주과원은 전체 35개 있었으며 그 중 대정현(大靜縣)에는 6개 과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법화과원(法華果園)은 대정현 법화사 서쪽에 조성되었다. 『탐라지(耽羅志)』[1658]에 의하면 당시 식재된 감귤 수종과 양은 유자 66그루, 유감 2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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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에 있는 고려 말 최영 장군이 목호세력과의 전투를 위해 머물렀던 주둔지. 법환동 막숙 터는 최영(崔瑩) 장군과 제주 몽골족의 목호세력(牧胡勢力)이 제주 관할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인 최후의 결전지로서, 1374년 범섬 전투의 전적지 가운데 하나이다. 1374년(공민왕 23) 고려의 최영(崔瑩) 장군이 대규모 출정군을 거느려 1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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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일대에 위치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 유물산포지 법환동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동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 286번지 일원에 해당한다. 법환동 새마을회관 남쪽 해안가에 인접하여 형성되어 있으며, 유적은 해안에서 약 7m 이상 올라온 비교적 평탄한 대지에 분포하고 있다. 현재 유물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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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신도리 출신의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만리(萬里), 호는 일재(一薺). 부친은 성휴(聖休)이고 조부는 시해(是海)이며, 증조부는 희련(希蓮)이다. 외조부는 오계희(吳繼姬), 처부는 김구적(金龜迪)이다. 그의 집안은 종조(從祖)였던 변시중(邊是重)을 비롯하여, 변성운(邊聖運)·변성우(邊聖遇), 삼종형(三從兄)인 변경우(邊景祐) 그리고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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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보목동에 있는 유물산포지. 서귀포시 보목동은 해안마을이며 해안에 있는 섶섬에는 파초일엽 자생지[천연기념물18호]가 있다. 보목동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보목동 361번지 일대이며, 보목천 하류 동편에 인접해 있으며 해안과도 가깝다. 보목동 유물산포지에는 감귤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지표상에는 조선시대 도자기와 기와편들이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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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전 근대 시기에 봉[횃불]과 수[연기]로써 급보를 전하던 통신 방법. 봉수의 봉(烽)이라 함은 후표(候表)의 뜻으로 불을 피워서 통보하는 것을 의미하며, 시목(柴木)에 불을 질러서 그 연기를 바라보게 하는 것을 수(燧)라고 하여, 낮에는 연기, 밤에는 봉화를 들어 통보하는 제도를 말한다. 봉수의 횟수는 거(炬) 또는 거(擧)로 나타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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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산방굴사 암벽에 새겨진 글자. 산방굴사(山房窟寺) 마애명은 영주 10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산방굴사의 암벽에 새겨진 마애명이다. 산방굴사는 고려 말의 고승인 혜일(慧日)이 산방법사라 하여 이곳에서 수도했다 전하는 동굴이며, 산방덕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산방굴사에서 바라보는 형제섬과 가파도, 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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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대정현에 소속된 연대. 산방연대는 동쪽으로 당포 연대, 서쪽으로 무수 연대와 교신했으며, 당포 연대와의 직선거리는 5.7km이고 무수 연대와는 6km이다. 소속 별장 6명, 연군[직군] 12명이 배치되어 별장 1명, 연군 2명이 1조가 되어 한 달에 5일씩 망을 보았다. 조선 세종 19년(1437) 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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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중심의 서북쪽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 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산방현(山房縣)은 1300년(충렬왕 26년)부터 1416년(태종 16년)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산방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339번지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 일대에는 북동으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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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삼달리 일대에 위치한 신석기 시대 유물산포지. 삼달리 유물산포지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생활했던 유적이 위치한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가 흩어져 있다. 유물산포지에서는 대체로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조흔문 토기(粗痕文土器)[안벽에 조갯날로 정면한 토기]가 확인된다. 삼달리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동남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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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물산포지. 상모리 유적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하면서,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 고멍무늬 토기 문화의 마지막 전파지역이다. 이 유적은 제주도의 민무늬 토기를 대표하며, 이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층위별로 출토양상이 명확하여 제주도 민무늬 토기의 변천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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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 조개더미. 상모리 유적은 주거 유적인 유물 산포지와 조개더미 구역으로나뉘는데, 상모리 조개무지는 지리적으로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하면서, 남한 지역에 있는 유일한 청동기 시대 조개더미유적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농경 생활이 본격화되면서 어로 활동의 비중이 낮아지면서 조개더미와 같은 유적이 발견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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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일대에 위치한 초기 철기~남북국 시대 유물산포지. 상예동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일원에 해당한다. 상예동 유물산포지는 현재 1514번지 일원[1지구], 870번지 일원[2지구], 940번지 일원[3지구]으로 모두 세 군데에서 확인된다. 1지구는 다소 내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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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耽羅初期]의 무덤 6기. 상예동 지석묘군에는 남방식 고인돌과 개석식 고인돌이 혼재하고 있으며, 5기만이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1기[제5호]는 미지정 유적이다. 고인돌 제1호는 상예동 1514번지의 속칭 ‘난이머들’ 과수원의 중심에 있다. 이 중 1514번지 내에는 3기가 존재하고 있는데 3기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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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에 위치한 조선시대 대정현 지역 유력집단의 묘제인 방묘(方墓). 제주도의 일반적인 방묘는 여말선초에 이르러 도내 유력집단에서 사용된 묘제로 모두 능선상에 입지하는데 부부묘역이거나 집단묘역을 이룬다. 분묘의 조성은 먼저 지형을 정지한 후 판석을 사용하여 장방형의 호석을 돌리고 가운데 토광안에 목관을 안치하는 형태로 석곽묘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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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효동 2479번지 일대에 위치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 유물산포지. 상효동 유물산포지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사람들이 생활했던 마을이 위치하던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석기 등이 흩어져 있다. 유물 산포지에서는 대체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적갈색 경질토기가 다수 확인된다. 상효동 유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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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색달동에 있는 유물산포지. 색달동 유물산포지는 제주도 서귀포시 색달동 2562번지 일대이며, 중문관광단지 내 중문마린파크 북쪽 대지상에 있다. 유물산포지 동쪽에는 색달천이 있고 남쪽에는 해안이 비교적 가깝게 위치해 있다. 유적의 범위는 대략 2,000평이다. 색달동 유물산포지에서 적갈색경질토기가 출토되었다. 색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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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색달동에 있는 초기철기 시대[耽羅初期]의 대표적인 무덤. 제주도 고인돌 6형식 중에 지하형인 제4형식에 속한다. 제4형식은 지석이 이중으로 고인 형식이다. 비탈면을 이용하여 한쪽은 작은 할석이 받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제주도 고인돌 형식 중 중간 단계에 해당된다. 서귀포시 색달동 1741-1번지 외 1필지에 위치하며, 색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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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에 자리한 후기 구석기~신석기시대의 동굴유적. 생수궤 구석기 바위그늘유적은 해식동굴에 형성된 동굴유적으로 천지연폭포로부터 솜반내[솟밭내·선반내]의 하류방향으로 약 700m 지점의 동편 단애하단부에 위치한다. 유적이 보고된 것은 1975년으로, 당시 영남대학교 정영화 교수가 천지연폭포 일대에서 구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뗀석기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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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에 있던 조선 시대 방어시설인 서귀진 터. 진은 변방의 방어를 위하여 북변과 해안지대에 구축된 군사행정구역으로서, 조선 시대에 와서 왜구의 방어를 위하여 남방 연변에 많이 설치되었다. 조선 시대 제주도에서는 방호소 또는 진으로 불렸다. 조선 후기에는 9진으로 정착되었고 모든 진에 성이 축조되었는데 9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서귀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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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유배생활을 했던 곳. 조선 시대 유배 중에 가장 가혹한 조치인 절도안치(絶島安置)는 중죄인을 원악(遠惡)의 도서에 유폐시키는 형벌이다. 조선 시대는 당쟁 때문에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유배가 활용되었고, 더욱이 원배(遠配)보다 도배(道配)로서 절도안치가 선호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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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에 위치한 모슬진에 소속된 연대. 대정읍 일과리 해안도로에 위치하고 있는 서림연대는 동쪽으로 무수 연대, 서쪽으로 차귀진 소속의 우두 연대와 서로 교신하여야 하지만, 우두 연대를 대신하여 당산 봉수가 중계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직선거리로는 무수 연대와 3.2km이고 당산 봉수와 2.1km이다. 소속 별장 6명, 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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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 제주도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의 분석을 통한 상고[선사·원사·고대] 문화의 흐름은 한반도와는 조금 다르다. 제주도의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는 한반도의 일반적인 틀을 따르는 게 합당하고 청동기와 초기 철기 전반부는 그 전개 과정이 후행하거나 유물군이 혼합되어 있어서 민무늬 토기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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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에 있는 유물산포지. 성산리 유물산포지는 성산읍 성산리 225-1번지 일대로 성산항 포구 남쪽에 있다. 성산리 유물산포지는 성산일출봉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420호]이 있는 곳으로 해안가에 있다. 성산리 유물산포지의 범위는 남북50m, 동서 40m의 규모이며, 구릉의 사면에 자리 잡고 있고 초기 국가 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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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에 위치한 수산진에 소속된 봉수. 성산봉수는 남서쪽의 수산봉수, 북서쪽의 지미봉수와 교신하였으며, 직선거리로는 수산봉수와 4.2㎞이고 지미봉수와 5.4㎞이다. 소속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이 봉수는 남동쪽에서부터 북쪽 해안까지 장애물이 없어서 적을 감시하기에 용이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남제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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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일대에 위치한 신석기시대 유물산포지. 성읍리 유물산포지는 신석기시대에 생활했던 마을이 위치하던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석기 등이 흩어져 있다. 유물산포지에서는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문양의 유문토기와 함께 석기류가 다수 확인된다. 성읍리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동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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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 유적이 자리한 곳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1리 1634-1번지 일대이다. 지리적으로는 해발 135m의 중산간지대에 위치한 유적으로 해안에서 7~8km정도 내륙에 자리하고 있다. 유적의 동편으로 천미천이 자리하고 있으며, 2004년 발굴조가 이루어진 곳은 제주시에서 성읍리로 들어가는 초입부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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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에 위치한 정의현에 소속된 연대. 소마로연대의 동쪽으로는 천미 연대, 서쪽으로는 벌포 연대 그리고 북쪽으로는 매 오름이 있다. 천미 연대와의 직선거리는 5.2km이고, 벌포 연대와는 6.7km이다. 소속 별장 6명, 연군[직군] 12명이 배치되어 있다. 표선면 한지동 마을의 동쪽에 위치한 이 연대는 바다와 4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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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벌라리왓’ 일대에 있는 신석기 후기 유적. 제주도에서 확인되는 대부분의 선사유적은 해안 저지대의 비옥한 평탄유지와 음용수 확보에 유리한 하천·용천수가 자리한 곳, 해산물 채취에 유리한 조간대가 인접된 곳에 자리하고 있다. 반면에 수산 벌라리왓 유적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도 서사면 중산간지대의 넓은 목초지대가 형성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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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 수산진성은 조선 시대의 관방 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관방 시설은 험준한 곳에 시설을 만들어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한 것으로 조선 시대 제주의 관방 시설은 대부분 왜구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3개 읍성 및 9개 진성, 25개소 봉수와 38개소 연대가 있었다. 1434년(세종 16) 정의현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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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있었던 고려 후기의 목장. 1273년 삼별초 항쟁이 여몽연합군에 의해 진압된 후, 몽골[원]은 일본 정벌의 야망을 품고 군마 생산을 위해 1276년 몽골식 탐라목장을 수산평에 설치했다. 이 목장은 『원사(元史)』에도 등장하며, 원나라가 점령지에 설치한 14개 황가목장(皇家牧場) 중의 하나였다. 원은 1277년경 수산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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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111번지에 위치한 초기철기~원삼국시대 무덤유적. 신도리 고인돌은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주변 마을을 조성했던 당시 주민들이 축조한 무덤유적으로, 서귀포시 서남부 지역의 해안과 가까운 낮은 구릉상에 축조되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111번지로 신도2리 해안초소에서 북으로 300m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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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에 있는 옹기 가마 터. 신도리 도요지는 노란빛 나는 옹기를 구웠던 '노랑굴'로, 가마는 17°의 자연 경사면을 이용해 축조되었다. 아궁이부터 뒷구멍까지 전체 길이는 약 16m이고, 소성실의 너비는 156㎝이다. 아궁이·부장[연소실]·불벽[격벽]·소성실[번조실]·잿불구멍[창불구멍]·뒷구멍[배연구·굴뚝]·출입구·부장쟁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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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일대에 위치한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신례리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동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740번지 일원에 해당한다. 효돈천·신례천·종남천 등 크고 작은 하천 5개가 남쪽 해안으로 흐르고 있으며, 완만하고 평탄한 대지 위에 형성되어 있다. 2012년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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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탐라 초기]의 무덤. 제주도 고인돌 6형식 중에 지하형인 제2형식에 속한다. 제2형식은 남방식 유형에 속하나, 전형적인 남방식에 비해 지석 대부분을 제대로 다듬지 않은 할석을 사용하였다. 또한 지석의 숫자는 3~10매로 그 예가 다양하다. 이러한 형식은 제주도 고인돌 형식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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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귀포시 대정현에 유배된 문신. 신명규(申命圭)는 1618년(광해군 10)에 출생하였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원서(元瑞) 혹은 군서(君瑞), 호는 묵재(默齋) 혹은 적안(適安)이다. 조부는 대사성 신민일(申敏一)이고, 아버지는 신상(申恦), 어머니는 성산 이씨(星山李氏)이다. 자제로 신임(申銋)이 있다. 신명규는 1662년(현종 3)에 증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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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탐라 초기]의 무덤. 제주도 고인돌 6형식 중에 지하형인 제2형식에 속한다. 제2형식은 남방식(南方式) 고인돌 유형에 속하나, 전형적인 남방식에 비해 지석(支石) 대부분을 제대로 다듬지 않은 할석(割石)을 사용하였다. 또한 지석의 숫자는 3~10매로 그 예가 다양하다. 이러한 형식은 제주도 고인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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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해안에 있는 적선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쌓은 성. 제주 환해장성은1270년(고려 원종 11년) 고려 조정이 삼별초가 진도에서 탐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영암부사 김수와 장군 고여림을 보내 축성하였다. 그후 조선시대에 와서 3성9진 25봉수 38연대로 방어 시설을 정비하면서 다시 축성되었다. 환해장성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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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간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쓰던 시기. 2011년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신석기 유적의 수는 70개소에 이른다. 제주특별자치도 본섬을 포함한 부속 도서에 이르기까지 제주도 전역에서 확인되는 추세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중산간 지역과 해안 저지대를 중심으로 조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그동안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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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양리에 있는 조개더미. 신양리 조개더미는 세 군데가 있는데, 1지구 조개더미는 섭지코지로 들어가는 입구쪽인 신양리해수욕장 동편의 사구층에 있고, 2지구는 1지구 남쪽에 인접해 있다. 3지구는 신양리해수욕장 서편에 자리잡고 있다. 신양리에는 조선 시대 방어유적인 협자연대[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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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에 소재하는 초기 철기 시대[耽羅 初期]의 대표적인 무덤. 제주도 고인돌 6형식 중에 지하형인 제1형식에 속한다. 제1형식은 지석(支石) 없이 상석(上石) 지표에 막 바로 닿는 개석식(蓋石式) 혹은 무지석식(無支石式) 고인돌이다. 이러한 형식은 제주도 고인돌 형식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된다. 신천마장 내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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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 옹기 가마. 제주 사람들은 가마[窯]를 ‘굴(窟)’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가마에서 생산된 그릇의 빛깔에 따라 ‘노랑굴’과 ‘검은굴’로 구분한다. 신평리 도요지는 속칭 ‘앞동산’이란 곳에 있어 ‘앞동산노랑굴’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가마는 대략 18°의 자연 경사면을 이용하여 축조되었다. 아궁이부터 뒷구멍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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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와 서귀포시 지역에 1430년부터 세종의 지시로 세워진 10개의 국영 목마장. 십소장은 1430년대부터 지역주민들을 동원한 축성 정책과 목마장 예정지 내의 기존 거주민들을 장외로 옮기는 이주정책, 그리고 국가소유인 국마와 주민소유의 사마를 공동으로 방목시키는 정책을 통해 형성되었다. 당시 목장규모는 1개 목장의 주위가 45리~60리였으며, 제주목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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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563번지 일대에 위치한 초기철기에서 원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안성리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서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563번지 일원에 해당한다. 안성리 유물산포지는 국도 12호선을 중심으로 양쪽에 분포하고 있다. 이 일대는 토양조건이 양호한 양질의 미사질양토(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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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역사.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제주도에는 소위 탐라국(耽羅國)이라는 국가의 발생이 있었다. 탐라국은 독자적인 언어·사상·문화를 지니며 주변 지역과 끊임없이 교역을 하였고, 고구려·백제·신라뿐만 아니라 일본·당에도 사신을 파견하여 교역을 행하였던 것을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 구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으로는 천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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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전 근대 시기에 봉[횃불]과 수[연기]로써 급보를 전하던 통신 방법에 이용된 대. 연대(煙臺)는 변경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이나 또는 변경의 다른 기지, 그리고 해당 지방의 주민에게 알려서 위급할 때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설치한 전통 시대의 통신 방법에 이용된 유적이다. 조선 시대의 읍지류에 따르면, 제주도 내에는 25개소의 봉수대와 3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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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호동에 위치한 서귀진에 소속된 연대. 연동연대는 동쪽으로 보목 연대, 서쪽으로 변수 연대와 교신했으며, 서귀진에 소속된 연대로 삼매양 봉수와의 직선거리는 2.1km, 변수 연대와는 2.9km이다. 해안에서 100m 정도 떨어진 ‘망밭’이라 불리우는 해발 52.6m의 높은 언덕 위에 있다.동쪽으로 삼매봉 앞 해안, 서쪽으로 속칭 ‘썩은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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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효동에 있는 조선시대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관아건물 터. 영천관은 지방관이나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정의현과 대정현을 왕래하거나 국영목장의 목마를 점검 할 때 숙소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영천관의 위치에 대해서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 정의현 누정(樓亭)조에 “영천관은 영천천(靈泉川) 서쪽 언덕에 있어 영천사(靈泉寺)와 동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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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 일대에 있는 초기철기시대 마을 유적. 예래동 유적은 초기철기시대에 마을이 조성되었던 유적으로 당시의 집터와 다양한 시설이 확인되었다. 예래동 마을유적은 제주 서북부지역인 삼양동과 용담동 일대에 유행하던 송국리형 취락이 서남부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조성된 유적에 해당한다. 출토유물을 보면 대체로 삼양동 유적과 시기를 같이하거나 다소 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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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상예동·하예동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예래현(猊來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예래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서귀포시 상예동 1239번지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현재 상예1동·하예1동 마을 중심인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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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 에 있는 정의현의 첫 읍성 터. 옛 정의현성은 정의현이 설치될 당시 정의현의 첫 읍성이다. 즉, 정의현의 읍치가 성읍리로 옮겨 가기 이전, 정의현으로 일컬어지던 곳이다. 옛 정의현성의 위치는 현 고성리사무소 서북쪽 일대인 고성리 1153, 1219, 1315번지 일대이다. 옛 정의현성의 축성 시기는 확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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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에 위치한 수산진에 소속된 연대. 오소포연대는 남쪽으로 합자 연재, 북쪽으로 종달 연대와 교신하였으나 19세기 중반경에는 종달 연대 대신에 금로포 연대와 연락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대와 연대의 연결이 어려울 경우 성산 봉수가 그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종달 연대와의 직선거리는 9.2km, 성산 봉수와의 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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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도 대정현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중초(仲初), 호는 휴곡(休谷). 아버지는 오정규(吳挺奎)이고 할아버지는 오정(吳靖)이며, 증조부는 우참찬을 지낸 오억령(吳億齡), 외조부는 이여황(李如璜)이다. 오시복(吳始復)[1637~1716]은 1662년(현종 3)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이어 수찬(修撰)·정언(正言)·지평(持平)·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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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정의현 출신의 문신. 본관은 군위(軍威). 자는 흥숙(興叔), 호는 조헌(兆軒)이다. 아버지는 오현(吳晛), 할아버지는 오덕립(吳德立), 증조부(曾祖父)는 오수간(吳守幹)이고, 외조부는 1666년(현종 7)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을 지낸 고홍진(高弘進)이다. 형제로는 오정신(吳廷臣)·오정인(吳廷寅)이 있다. 오정빈(吳廷賓)은 숙종대 문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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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 있는 탐라 시대 동굴 유적. 온평리 동굴 유적은 용암동굴의 천정부가 무너진 입구에 형성된 동굴유적으로 혼인지의 동북편에 자리하고 있다. 굴의 입구는 남쪽으로 트여 있고 진입부분은 입구에서 굴의 내부로 경사를 이루어 내려간다. 유적이 형성된 곳은 입구를 들어서면 세 방향으로 가지굴이 나누어지는데, 그 오른쪽과 가운데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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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 있는 유물산포지 3곳. 성산읍 온평리 유물 산포지 1,2지구는 435-1번지 일대로 일주도로변에 위치하며, 3지구는 혼인지 부근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방어유적인 온평환해장성이 있다. 유물산포지 1, 2지구는 해안과 가까우며, 신석기 시대 압인문·침선문·점렬문토기가 확인되었다. 일주도로 확장 시 발굴조사에서 교란되어 문화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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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해안에 적선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쌓은 성. 온평 환해장성은 온평리 하동 해변가에서 신산리 마을 경계에 이르기까지 약 2.5km의 성벽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해안도로가 건설되면서 상당 부분이 유실되고 말았다. 축조는 인근의 천석(川石)·괴석(塊石)·할석(割石) 등으로 지반을 다진 후 상단부에 4~7겹의 천석을 엇갈림 공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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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호근동에 있는 조선 시대 과원 터. 1653년(효종 4) 이원진(李元鎭)이 편찬한 『탐라지(耽羅志)』 과원조(果園條)에 정의현 지역에 정자, 독학, 별과원, 우전, 금물, 향목, 원통, 성산 8개소가 등장한다. 이 자료에 의하면 식재된 감귤류는 당유(唐柚) 2그루, 산귤(酸橘) 4그루, 유자(柚子) 119그루 외에도 새로 심은 각종 과수 20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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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형벌 제도인 유형(流刑)을 집행받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유배된 죄인. 제주 유배는 고려 시대에 시작되었지만 조선에 이르러 오형(五刑) 제도가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섬이라는 고립성과 폐쇄성, 그리고 한양과 가장 먼 지역 중 하나라는 지리적인 특징은 추방과 격리라는 유형의 본질에 가장 잘 부합되는 지역으로 1392년(태조 1)부터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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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군현의 관아를 중심으로 외곽을 둘러쌓은 성. 읍(邑)이란 본래 성으로 둘러싸인 백성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의미하나, 일반 백성들의 거주지까지 모든 성을 쌓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읍치(邑治)인 지방관의 소재지를 중심으로 주로 성곽을 쌓아올렸고, 성곽 내부에는 지방민을 다스리는 데 필요한 관아 시설 및 관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거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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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있는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金萬鎰)의 묘. 김만일[1550년~1632년]은 조선 중기의 목장주이며 말사육가이고 공신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중림(重臨)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부터 인조대[1623~1649]에 이르기까지, 조선에서는 잇단 전쟁과 명나라의 잦은 요구 등으로 말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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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에 있는 유물산포지. 의귀리 유물산포지는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799번지 일대로 의귀리 마을 남동쪽에 있으며, 의귀천 서쪽에 인접해 있다. 의귀리 유물산포지에는 대부분 감귤 과수원이 조성되어 있고 유물로는 조흔문토기와 마제석기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신석기 시대로 판단되는 유적이다. 아울러 도기편과 기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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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제주도 대정현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고부(古阜), 호는 백산(白山). 시조 이경조(李敬祖)의 19세손, 중시조 이정(李精)의 2세손이다. 이세번(李世蕃)[1482~1526]은 조광조(趙光祖)와 함께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현량과에 의해 천거되었다.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투옥되자, 의금부도사로 있던 이세번은 동문인 조광조를 비롯한 어진 선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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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목사로 재임하였던 이익태(李益泰)가 기록한 기행문. 이익태[1633~1704]는 1694년(숙종 20) 7월부터 1696년(숙종 22) 9월까지 제주목사로 재임하였다. 『지영록(知瀛錄)』은 이익태가 제주목사를 제수받고 부임하기까지의 과정, 재임 기간 중의 업무와 제주 관련 역사, 그리고 임기를 마치고 떠나기까지의 행적을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문집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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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현종대에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감산리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수안이며 자는 현보(顯甫)이다. 1614년(광해군 6)에 출생하였다. 수안 이씨 시조 태사공의 26대손이자, 중시조 수안군의 14대손이며, 옥연파 파조 길화공(吉和公)의 8대손이다. 이지달(李枝達)은 현종 초인 1660년대 서인과 남인의 당쟁에 휘말려 대정현 감산촌[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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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에 있는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일과리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서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2659번지 일원[1지구], 2660번지 일원[2지구], 1165-3번지 일원[3지구]으로 모두 세 군데에서 확인된다. 유물산포지는 대부분 해안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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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1021번지와 1293-1번지에 있는 초기철기~원삼국시대 무덤유적. 일과리 지석묘는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주변 마을을 조성했던 당시 주민들이 축조한 무덤유적으로, 서귀포시 서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과리 1021번지[1호 고인돌]와 1293-1번지[2호 고인돌]에 각각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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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의현감이 정사를 보던 관아 건물. 일관헌이라는 편액의 뜻은 해를 가장 먼저 바라볼 수 있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척자(尺子)』의 “중국에서 신성시하는 태산 정상에 봉우리가 셋이 있는데 그 중 동쪽의 것을 ‘일관’이라 하여 닭이 울 때 일출을 본다[태산상유삼봉 동일일관 계명시견일출(泰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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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도 대정현 창천리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풍천, 자는 숙빈(叔賓). 아버지는 임섬(任暹)이며, 어머니는 송필훈(宋必勳)의 딸이다. 임관주(任觀周)는 1756년(영조 32) 정시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767년(영조 43) 정언으로 재임 중 언론의 중요성, 『어제유곤록(御製裕昆錄)』의 불합리한 서술, 재상의 잦은 교체, 제술(製述) 시험 때 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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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 대정현 감산리에 유배된 문신.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성능(聖能), 호는 서재(西齋). 아버지는 집의(執義) 임형(任泂)이며 할아버지는 임홍망(任弘望)이고 증조부는 임환(任喚), 외조부는 이의저(李義著)이다. 할아버지인 임홍망은 1680년(숙종 6년) 제주 목사를 지냈고 부인은 1689년(숙종 15) 인현왕후의 폐출을 반대한 이유로 제주목에 유배된 김진구의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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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배객 임징하의 유허비. 임징하(任徵夏)[1687~1730]는 본관이 풍천이며, 자는 성능(聖能), 호는 서재(西齋)이다. 호조판서 김진구(金鎭龜)의 둘째 사위였다. 사헌부 장령으로 상소(上疏)를 올려 탕평책을 반대하고 소론(小論)의 제거를 주장하다가 1726년(영조 2) 2월 24일 평안도 순안(順安)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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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남원읍 위미리에 위치한 서귀진에 소속된 봉수. 해안쪽으로 낮고 평평한 지대여서 적을 감시하기가 용이한 곳에 위치한 자배봉수는 남서쪽의 호촌봉수, 북동쪽의 토산봉수와 교신했다. 직선거리로는 호촌봉수와 6.7㎞이고, 토산봉수와 9.3㎞이다. 자배봉수는 『세종실록지리지』에서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1500년 전후에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문헌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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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도 대정현에 유배된 무신. 본관은 인동(仁同). 아버지는 사역원 부공사 장경이며, 역관 장현(張炫)의 종질이다. 숙종의 비이고 경종의 어머니인 장희빈의 오빠이다. 장희재(張希載)[?~1701년]는 장희빈의 오빠로 장희빈이 숙종의 총애를 독차지하자 금군 별장이 되었다가 1692년(숙종 18) 총융사로 승진하였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甲戌換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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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위치한 대정현에 소속된 봉수. 저별봉수는 북서쪽의 모슬봉수, 북동쪽의 호산봉수와 교신하였다. 그 배열방식은 ‘ㄱ’ 각도로 배치되어 있고, 호산봉수와의 직선거리는 6.8km, 모슬봉수와의 직선거리는 5.7km이다. 저별봉수는 송악산에 있는데, 송악산의 명칭에 따라 저리별봉수, 송악봉수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송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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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황사영 백서 사건을 일으킨 황사영의 부인으로 제주 대정현에 온 유배인. 황사영 백서사건은 1801년(순조 1) 신유박해로 청나라 신부 주문모 등 많은 천주교도가 처형되거나 귀양을 가자, 주문모에게 세례를 받은 황사영이 탄압의 실태와 그 대책을 적은 편지를 두 자[약 60cm] 가량 되는 명주천에 1만 3천 311자나 되는 한자로 적어 북경에 있던 프랑스 주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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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는 정방폭포 암벽에 새겨진 글자. 정방폭포 마애명은 서귀포시 정방동 정방폭포 암벽에 새겨져 있다. 정방폭포는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로 이러한 폭포수의 장관을 보기 위해 연중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관광명소이다. 또한 영주 10경 중 제4경에 해당하는 정방하폭(正房夏瀑)으로 유명하며, 진(秦)나라의 서불(徐市)이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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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유배객 정온의 유허비(遺墟碑). 정온(鄭蘊)[1569~1641]은 본관이 초계이며 호는 동계(桐溪)·고고자(鼓鼓子)이다. 태자 시강원의 필선(弼善)으로 있으면서 영창대군을 죽인 정항(鄭沆)을 그 책임을 물어 사형에 처하고 더불어 영창의 작위를 복원해야 함을 주장하고, 인목대비 폐모론을 주장한 정조윤(鄭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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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구 남제주군) 동부 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옛 행정 구역. 1273년(원종 14년) 원의 직할령이 되었던 탐라가 고려에 환속되어 1년이 지난 1295년(충렬왕 21년)에 제주의 행정단위는 제주목으로 개편되었다. 이와 더불어 1300년(충렬왕 26년)에 이루어진 탐라의 행정단위 개편 즉, 탐라 지역의 행정단위가 분화․확대 개편된 사실은 당시 탐라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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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년(성종 14) 정의현감 이섬(李暹)이 추자도에서 표류를 당해 명나라 양저우·베이징을 거쳐 귀국한 사건. 제주 정의현감 이섬과 정의 훈도 김효반 등 47명은 1483년(성종 14) 2월 봄에 표류하여 해상에서 밤낮 열흘을 떠다니다가 중원 양주 지방에 이르렀다. 이때 살아남은 이섬과 김효반 등 33명은 북경에 도착하였고, 이를 천추사(千秋使)[조선에서 중국 황태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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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1리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곽. 1416년(태종 16년) 5월 6일에 제주도 안무사 오식(吳湜)과 전 판관 장합(張合) 등이 제주를 삼읍으로 나눌 것을 건의하여 정의현을 두었다. 정의현이 설치될 당시의 정의현성은 지금의 위치가 아닌, 성산읍 고성리에 위치하였다. 사실 정의현성의 위치는 애초부터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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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있는 강우백(姜遇伯)·이재수(李在秀)·오대현(吳大鉉) 등 세 의사(義士)를 기념하여 세운 비. 제주대정 삼의사비(濟州大靜三義士碑)는 중앙정부에서 파견한 봉세관(捧稅官)의 부패와 일부 천주교도들의 행패에 맞서 1901년(신축년:광무 5) 5월 제주도민들이 봉기한 사건인 ‘이재수난’의 세 장두(狀頭)인 강우백·이재수·오대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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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와 안덕면 사계리 해안 일대의 사람 발자국과 동물 발자국 화석 산지. 2001년에 발견된 제주 사람 발자국과 동물 발자국 화석 산지에서는 사람 발자국과 새 발자국 화석, 코끼리, 소와 사슴, 육식 동물의 발자국 화석, 어류와 다양한 무척추 동물의 생활 흔적 화석 등 총 100여 점 이상이 발견되었다. 최근 기후 변화와 해안 시설물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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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일(金萬鎰)은 경주 김씨 입도조(入島祖)인 김검룡(金儉龍)의 7세손으로,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출신이다. 김만일은 조선 선조 시기 전국 최대의 목장 지대였던 제주도에서 임진왜란 발발 당시 가장 많은 말을 소유하고 기르던 부자였다. 그는 목장 경영에 성공하여 많은 말을 소유하였고, 임진왜란 이후 계속되는 전란으로 중앙정부가 말 부족에 시달릴 때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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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의 역사. 1. 대정현(大靜縣) 대정현은 1416년(태종 16)부터 1910년까지 서귀포시 중심부 서쪽인 옛 중문면과 안덕면·대정읍 일대에 있었던 옛 행정 구획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대정현의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정의현(旌義縣)과의 경계까지 57리이고, 남쪽으로 바다까지 10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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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대정현]에서 조선 시대에 마을 단위로 작성한 호적 자료. 호적중초(戶籍中草)는 매 3년마다 마을 단위로 작성한 것으로, 마을 주민에 대한 호구 조사이다. 현재 남아 있는 호적중초는 시기적으로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해당한다. 서귀포시는 호적중초의 보고라 할 정도로 많은 호적중초가 전해지고 있다. 즉, 조선 시대 대정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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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돌덧널무덤.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러 제주도 유력집단의 묘제로 돌덧널무덤[方形石槨墓]이 등장한다. 이러한 방형분(方形墳)은 모두 능선상에 입지하며 부부묘역이거나 집단묘역을 이룬다. 먼저 지형을 평평하게 깎은 뒤 판석을 사용하여 장방형으로 석곽을 돌려 축조하고 정가운데 북향으로 목관을 안치하는 외석곽(外石槨) 내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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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에 있는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중문동 유물산포지는 초기철기부터 원삼국시대까지 사람들이 생활했던 마을이 위치하던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석기 등이 흩어져 있다. 유물산포지에서는 대체로 초기철기에서 원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적갈색경질토기가 다수 확인된다. 중문동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남부 지역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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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진(鎭)의 외곽을 둘러서 축조한 성곽. 진(鎭)은 삼국 시대 말부터 조선 시대까지 설치되었는데, 조선 시대에 들어오면서 순수한 의미의 군사적 거점 지역의 성격을 띠게 되면서 북방 변경 지역뿐만 아니라 남방의 해안 지역에도 진이 많이 설치되었고, 이 진을 둘러서 성곽이 축조되게 되었다. 제주도에도 제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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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창고천 일대에 위치한 초기 철기~원삼국시대 무덤유적. 창고천 고인돌은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주변 마을을 조성했던 당시 주민들이 축조한 무덤유적으로, 서귀포시 서남부 지역에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창고천 일대에 해당한다. 창고천 고인돌은 창고천 상류의 구릉 정상부 하단에 서로 인접한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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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창고천 절벽에 새겨진 글자. 창고천 임관주 마애명은 창천리의 일주도로 변에 있는 창천교로 내려가 계곡을 따라 약 300m 정도를 내려가면 서쪽 암벽 아랫부분에 새겨져 있다. 1767년(영조 43)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에 유배 왔던 임관주(任觀周)[1732~?]가 유배에서 풀린 다음날 시를 써서 새겼다고 한다. 가로 약 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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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일대에 있는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창천리 유물산포지는 초기철기에서 원삼국시대 사람들이 생활했던 마을이 있던 곳으로 당시에 사용하였던 토기가 확인된 바 있다. 유물산포지에서는 대체로 초기철기에서 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적갈색경질토기가 수습된다. 창천리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서남부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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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967-1번지에 위치한 초기철기~원삼국시대 무덤유적. 창천리 1호 고인돌은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주변 마을을 조성했던 당시 주민들이 축조한 무덤유적이다. 이러한 고인돌은 대부분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묘역 시설·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통 무덤으로 쓰이며, 간혹 공동 무덤을 상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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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제주민란[신축민란] 당시 대정군수을 지낸 문신. 1901년 제주민란은 ‘신축민란‘ 또는 ‘이재수의 난‘이라고도 하며 최근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민란이 발생했던 1901년 당시 제주 도민들은 일본 어민의 어장침탈과 서울서 내려온 관리들의 횡포, 왕실 세금을 걷기 위해 내려온 봉세관의 무리한 세금부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여기에 전통신앙을 중시하는 제주도민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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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에 위치한 정의현에 소속된 연대. 천미연대는 동쪽으로는 말등포 연대와 응소(應召)하였고, 서쪽으로는 소마로 연대와 응소하다가 이후 벌포 연대와 직접 교신하였다. 말등포 연대와의 직선거리는 6.9㎞이고 소마로 연대와는 5.3㎞이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천미연대의 유래는 표선면 하천리와 성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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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2년(명종 7) 왜구가 천미포(川尾浦) 쪽으로 접근해 와서 난동을 부린 사건. 1552년(명종 7) 5월에 포르투갈인을 포함한 200여명의 왜적이 중국 상인 등과 함께 8척의 배에 나눠 타고 정의현(旌義縣)[지금의 표선면] 천미포에 흘러 들어와 사람들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2일간이나 전투가 계속되었던 사건으로, 200여 명의 왜구 중 70여 명은 직접 상륙하여 약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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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색달동에 있는 천제연 암벽에 새겨진 글자. 천제연 마애명은 서귀포시 색달동 천제연 1단 폭포 서쪽 암벽에 새겨져 있다. 1767년(영조 43)에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에 유배 왔던 임관주(任觀周)[1732~?]가 유배에서 풀려 돌아가기 전 제주의 명승지를 유람할 적에 천제연에 들려 천제연의 풍광과 1단 폭포 못가에서 행해지던 활쏘기의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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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철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한국의 남부 지역에 철기가 도입된 시기는 대략 기원전 3세기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청동기 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철기시대에 접어들면 송국리형 마을이 북부 지역에서 남부 지역으로 확산된다. 서귀포 지역의 철기시대 유적으로는 안덕면 화순리의 화순리 유물 산포지 1지구·예래동·대평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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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지역에서 청동기를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제주도에서는 청동기시대에 속하는 전형적인 청동 제품이 발견된 바 없다. 다만, 한반도 청동기시대 전기와 후기의 민무늬 토기를 대표하는 상모리 유적의 구멍무늬 토기[孔列土器] 문화와 송국리식 문화가 제주에서도 성행한다. 따라서 제주도의 청동기 문화는 구멍무늬 토기 문화를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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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 남아있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유배 생활과 관련된 흔적. 조선 시대의 대정현(大靜縣)은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과 안덕면, 한경면 일대로서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유배지로 인식되고 있다. 1495년(연산군 2) 환관 김순손(金舜孫)이 연산군의 난폭함을 지적하였다가 충군형을 받고 유배된 이래 조선 왕조 동안 총 60여 명이 유배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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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3~10세기 무렵에 해당되는 역사 시대. 탐라시대는 제주도에 특정 지배 계층이 등장하여 지배 계층이 정치 체계화되는 단계의 역사와 문화를 형성하는 시대 용어에 해당한다. 고고학적으로는 대규모 노동력이 동원되는 상위 계층의 무덤 축조를 기준으로 설정할 수 있다. 탐라국은 삼국 시대에 들어와서는 백제·고구려·신라와 각각 교역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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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년 제주도의 자연지리와 인문지리를 서문(序文)으로 써서 제작한 제주도 지도와 서문. 3단 형식으로 된 이 지도는 상단과 하단에 서문을, 중간에는 지도를 배치하였다. 하단 말미에 “강희 기축 정월 이등 개간(康熙己丑正月李等開刊)”라고 되어 있어, 강희 기축년인 1709년 정월에 이(李) 아무개 등에 의해 처음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이 아무개는 1707년(숙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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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에 있는 유물산포지. 태흥리는 해안마을로 의귀천, 신흥천의 하천을 끼고 있다. 태흥1리 유물산포지 1지구는 태흥리 1888번지 일대, 태흥1리 유물산포지 2지구는 태흥리 1757번지 일대이고, 태흥2리 유물산포지 1지구는 태흥리 1075번지 일대, 태흥2리 유물산포지 2지구는 태흥리 1737번지 일대이며, 태흥3리 유물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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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 해안에 적선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바닷가를 돌아가며 돌담으로 쌓았던 성. 제주 환해장성은1270년(고려 원종 11년) 고려 조정이 삼별초가 진도에서 탐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영암부사 김수와 장군 고여림을 보내 축성하였다. 그후 조선시대에 와서 3성9진 25봉수 38연대로 방어 시설을 정비하면서 다시 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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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출토된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신석기 시대 이래로 대표적인 산물인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낸 용기(容器)이다. 토기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 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 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게 된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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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에 위치한 정의현에 소속된 봉수. 토산봉수는 동쪽으로는 달산봉수와 서쪽으로는 자배봉수와 응소하였으며, 직선거리로는 자배봉수와 9.3km이고 달산봉수와 6.1km이다. 소속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봉수대가 서쪽 봉우리에 있는 이유는 산 정상에 위치했을 경우 자배봉이 앞에 있는 오름에 가로 막혀 서로 교신이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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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1리와 토산2리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토산현(兎山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토산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표선면 토산리 1475-1번지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 일대에서는 14~15세기 분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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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대대로 살고 있던 씨족 집단의 성씨.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는 제주의 토성(土姓)이 고(高)·양(梁)·부(夫)라고 하였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와서는 토성이라는 명칭이 없어지고 본주(本州)의 성씨에 고(高)·양(梁)·부(夫) 이외에 고씨의 사위인 문(文)씨가 추가되었다. 이로 인해 고(高)·양(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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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에 있는 조선 시대 돌덧널무덤[方形石槨墓]. 고려 말~조선 초기에 이르러 제주도 유력집단의 묘제로 돌덧널무덤[方形石槨墓]이 등장한다. 이러한 방형분(方形墳)은 모두 능선상에 입지하며 부부묘역이거나 집단묘역을 이룬다. 먼저 지형을 평평하게 깎은 뒤 판석을 사용하여 장방형으로 석곽(石槨)을 돌려 축조하고 정중앙에 북향으로 목관을 안치하는 외석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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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 일대에 있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 유물산포지 토평동 유물산포지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사람들이 생활했던 마을이 위치하던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석기 등이 흩어져 있다. 유물 산포지에서는 대체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적갈색 경질토기가 다수 확인된다. 토평동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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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례리에 있는 초기철기~ 원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하례리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동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례리에 해당한다. 하례리 유물산포지는 765번지 일원[1지구], 350-1번지 일원[2지구], 283번지 일원[3지구]으로 모두 세군데에서 확인된다. 2012년 현재 하례리 유물산포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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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 제주 서귀포 지역에 네덜란드 사람 하멜 일행이 표착한 사건. 핸드릭 하멜(Hamel, Hendrick)은 1630년에 네덜란드의 호르쿰에서 태어났다. 그는 1650년 11월 6일에 보겔주트뤼즈호를 타고 네덜란드를 떠나 바타비아로 향했다. 바타비아에서 그는 VOC 선박의 포수이자 서기로 일하였고, 1653년 7월에 상선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바타비아를 떠나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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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지 일대에 있는 신석기~청동기 시대 생활 유적. 하모리 유적은 신석기 시대 후기~청동기 시대에 생활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석기 등이 흩어져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신석기 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이중구연토기와 함께 청동기 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공렬문토기 (孔列文土器)[청동기 시대 민무늬토기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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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 있는 초기철기 시대[耽羅初期]의 대표적인 무덤. 제주도 고인돌 6형식 중에 지하형인 제2형식에 속한다. 제2형식은 남방식 유형에 속하나, 전형적인 남방식에 비해 지석 대부분을 제대로 다듬지 않은 할석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제주도 고인돌 형식 중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해당된다.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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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예동 일대에 있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 유물산포지. 하예동 유물산포지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사람들이 생활했던 마을이 위치하던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석기 등이 흩어져 있다. 유물 산포지에서는 대체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적갈색 경질토기가 다수 확인된다. 하예동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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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초기철기~원삼국 시대의 유물산포지 하원동 유물산포지는 초기철기~원삼국 시대에 사람들이 생활했던 마을이 위치하던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석기 등이 흩어져 있으며, 특히 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적갈색경질토기가 다수 확인된다. 하원동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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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고려 말~조선 초 돌덧널무덤[方形石槨墓] 떼. 이원조의 『탐라지초본』, 『대정군읍지』와 김약익의 『심재집』 등 문헌 기록과 지역의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탐라 왕자의 무덤이라 한다. 그러나 무덤은 3기이며, 형태로 보아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제주도 지역에서 만들어진 돌덧널무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제주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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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효동 일대에 있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 유물산포지 하효동 유물산포지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사람들이 생활했던 마을이 위치하던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석기 등이 흩어져 있다. 유물 산포지에서는 대체로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적갈색 경질토기가 다수 확인된다. 하효동 유물산포지는 서귀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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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 있는 신석기 시대 유적. 한남리 유적의 위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1063-1 일대이며, 지리적으로는 해발 150m의 중산간지대, 해안에서 5.3km 정도 떨어진 내륙에 자리하고 있다. 한남리 유적은 서중천의 서편 완경사면을 따라 남북으로 점점이 자리하고 있다. 한남리 유적은 2006년 제주대학교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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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에 위치한, 조선 시대 국영목마장인 9소장의 상하 경계선에 축조된 돌담시설. 잣성은 국영목마장의 상하 경계선에 해당되며 『제주계록』[1846-1884]에는 장원(墻垣)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위치에 따라 하잣성·중잣성·상잣성 그리고 간장(間牆)으로 구분된다. 한남리에는 하잣성과 상잣성 그리고 중잣성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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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 제주도에 유배 온 문신으로 청주 한씨의 제주 입도조. 한천(韓蕆)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문신으로 1392년 조선왕조가 개창될 때 단양군(丹陽君) 우성범(禹成範)과 이성계를 제거하려고 모의하다 발각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후에 제주에 정착하여 청주 한씨의 제주 입도조가 되었다. 본관은 청주(淸州). 호(號)는 서재(恕齋). 아버지는 도첨의사(都僉議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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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고성리에 있는 수산진에 소속된 연대. 협자연대는 북쪽으로 오조포 연대, 서쪽으로는 말등포 연대와 교신하였고, 성산 봉수와의 직선거리는 약 3.2㎞, 말등포 연대와의 직선거리는 5.2㎞이다. 소속 별장 6명, 연군[직군] 12명이 배치되어 3인[별장 1인, 연군 2인] 1조로 한 달에 5일씩 망을 보았다. 주위 해안과 비교하여 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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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월라봉 정상에 위치한 대정현에 소속된 봉수. 월라봉 정상에 위치한 호산봉수는 남서쪽의 저별(貯別;松岳) 봉수, 동쪽의 구산(龜山;居玉岳) 봉수와 서로 교신했으며, 구산봉수와의 직선거리는 10.7km, 저별 봉수와의 직선거리는 6.8km이다. 소속 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으며, 굴산 봉수(堀山烽燧) 또는 이두 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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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하례리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호아현(狐兒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호아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남원읍 하례리 238번지 일대 속칭 ‘대궐터’로 추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일대에서는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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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하예리에 위치한 서귀진에 소속된 봉수. 남원읍 하예리 해안에 접한 해발 68m의 예촌봉[일명 호촌봉] 정상부에 위치한 호촌봉수는 북동쪽으로 자배봉수, 서쪽으로 삼매양봉수와 교신했다. 삼매양봉수와의 직선거리는 8㎞이고, 자배봉수와의 직선거리는 6.7㎞이다. 소속별장 6명, 봉군 12명이 배치되었다. 지리적 위치는 동경 126°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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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온평리에 위치해 있는 삼성 신화의 주인공 삼 신인과 벽랑국 세 공주가 혼인했다고 전하는 장소. 혼인지는 온평리 마을의 일주 도로변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약 1,650㎡의 큰 연못과 남동쪽으로 약 50여m 떨어진 곳의 작은 동굴로 구성된다. 이곳은 탐라[현재의 제주]의 개벽 신화에 등장하는 삼 신인이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와 결혼한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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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포시 서홍동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약 116년 동안 존속했던 속현. 홍로현(洪爐縣)은 1300년(충렬왕 26)부터 1416년(태종 16)까지 약 116년 동안 서귀포 지역에 존재했던 속현이다. 홍로현의 현사(縣司) 위치는 현재 서귀포시 서홍동 150번지 일대 속칭 ‘대궐터’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속칭 ‘대궐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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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일대에 있는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 마을 유적. 화순리 유적은 초기 철기~원삼국 시대에 사람들이 생활했던 곳으로 당시의 마을과 관련된 유적이 확인되었다. 화순리 마을 유적은 제주 서북부 지역인 삼양동과 용담동 일대에 유행하던 송국리형 취락이 서남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조성된 유적에 해당한다. 출토 유물을 보면 대체로 삼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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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일대에 있는 초기 철기 시대 조개더미. 화순리 조개더미[화순리 패총]은 초기 철기 시대의 쓰레기더미가 위치하던 곳으로 당시에 사용되었던 토기와 함께 패류 등이 흩어져 있다. 조개더미에서는 적갈색 경질토기가 다수 확인된다. 화순리 조개더미는 서귀포시 남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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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전체 해안에 적선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바닷가를 돌아가며 돌담으로 쌓았던 성. 환해장성은 일명 ‘고장성(古長城)’·‘장성(長城)’이라고도 하며 해안을 전체적으로 둘러친 3백리 장성이다. 김상헌의 『남사록(南槎錄)』에는 “바닷가 일대에는 돌로 성을 쌓았는데, 잇따라 이어지며 끊어지지 아니한다. 섬을 돌아가며 다 그러하다. 이것은 탐라 때 쌓은 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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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제주도 서귀포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성징(聖徵). 아버지는 황건(黃鍵), 할아버지는 황세구(黃世耉), 생조(生祖)는 황신구(黃藎耉)이며, 외조부(外祖父)는 이문행(李文行)이다. 1744년(영조 20) 갑자정시(甲子庭試)에 급제한 아들인 황합(黃柙)이 있다. 황구하(黃龜河)[1672~1724]는 1705년(숙종 31) 을묘 알성시(乙酉謁聖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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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에 어사 황구하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비. 황구하 선정비(黃龜河 善政碑)는 조선시대 1716년(숙종 42)에 제주도에 입도하여 제주의 기민을 구휼한 어사 황구하의 선정을 칭송하여 1724년(경종 4)에 세운 비석이다. 전면에 음각된 문장 외에 따로 명문(銘文)을 새겨 놓지 않았다. 1713년(숙종 39)과 1715년 흉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