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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문신 임훈이 무주의 덕유산 향적봉을 등반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글. 임훈(林薰)[1500~1584]의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중성(仲成), 호는 갈천(葛川)·고사옹(故査翁)·자이당(自怡堂)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출신으로, 아버지는 진사 임득번(林得蕃)이다. 경명 수행자(經明修行者) 6인에 천거되어 이항(李恒)·한수(韓脩) 등과 같이 사정전(思政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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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허목이 무주의 덕유산을 기행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글.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1682] 뿐만 아니라 19세기에 활동했던 회덕의 송병선(宋秉璿)[1836~1905]도 「덕유산기(德裕山記)」를 남겼는데, 송병선은 「덕유산기」의 마지막에 '덕유산은 온산이 순전히 흙으로 되어 있으며 바위가 적어 별로 기이하고 뛰어난 경치가 없다. 다만 후장(厚莊)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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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현이 무주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발급한 문서. 조선은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유일하게 보존되었던 전주 사고본을 토대로 1606년(선조 39)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4본을 새로 만들어, 서울 춘추관을 비롯해 강화도 마니산, 평안북도 영변군 묘향산,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경상북도 봉화군 태백산에 분장하였다. 조선 전기 4대 사고(史庫)가 모두 평지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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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출신 신유복의 영웅적 일대기를 그린 작자 미상의 고전 소설. 「신유복전(申遺腹傳)」은 조선 고전 문학 선집 19번째 책으로, 김교식의 주해, 리창유의 윤색을 거쳐 1987년에 평양에서 출간된 것을 2000년 서울 연문사에서 재간행하였다. 신유복(申遺腹)은 전라도 무주 남면 고비촌의 진사 신영의 아들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유리걸식(流離乞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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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윤증이 무주의 덕유산을 기행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글. 덕유산은 남쪽의 명산으로 오래전부터 이름나 있었던 듯하다. 1652년이면 윤증(尹拯)의 나이 24세가 된 때이다. 글 첫부분에 '내 평생 몸이 약해'라고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티끌 세상 싫어하고 오직 물과 돌밖에 몰랐다'라고 한 것처럼, 실제로 윤증은 36세에 학문이 뛰어나 내시교관(內侍敎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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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를 관통하는 국도 제37호선의 서쪽 편에 부당 초등학교가 있다. 가당리 고인돌은 부당 초등학교의 북서쪽 50m 지점에 위치하는데, 야산의 남동쪽 비탈에 해당한다. 이곳은 동쪽을 향하여 배산임수를 이루는 장소로 완만한 경사면을 형성하고 있다. 가당리 고인돌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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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 가당리 수로봉 봉수(柯堂里水路峰烽燧)는 지삼치 산성(芝三峙山城)과 함께 지삼치, 노고재 등의 고갯길을 감시,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삼국 시대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금남 정맥 성치 지맥상에 위치한 수로봉(水路峰)[505.7m]은 전라북도 무주군과 충청남도 금산군의 경계를 이루며, 동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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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가당리 유물산포지(柯堂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의 행정 경계를 이루고 있으면서 국도 제37호선과 대전 통영 간 고속 도로가 통과하는 지삼치 남쪽 기슭 하단부에 위치한다. 모두 2개소의 유물 산포지로 나뉘는데, 가당리 유물산포지1은 지삼 소류지 남쪽 비교적 넓은 구릉지에 자리하며, 가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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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가옥리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국도 제19호선을 따라 장수군·진안군 방향으로 가다 보면 가옥 교차로가 나온다. 가옥 교차로에서 금산군 방향의 무금로를 따라 약 500m 정도 진행하다가 좌측의 주동길로 진입하여 약 800m 정도 이동하면 주동 마을에 도착한다. 가옥리 유물산포지(佳玉里遺物散布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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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晋州). 호는 대악(大岳)이다.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으로 정종 때 상의 문하찬성사(商議門下贊成事)를 지낸 공목공(恭穆公) 강시(姜蓍)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강방수(姜芳秀)이다. 강남대(姜南大)[1887~1950]는 진산군 부남면[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유평(柳坪)에서 출생하였다. 농가에서 태어난 강남대는 어려서 한학을 배워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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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에 있던 조선 후기 정자 터. 강수정(講樹亭)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 수락(水落) 마을 입구 쪽에 있었다. 마을의 입구 도로 왼쪽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자취가 남아 있지 않다. 조선 말 강지형(姜芝馨)이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지어 강학소(講學所)로 사용하였다. 활을 쏘는 ‘사정(射亭)’이라고도 하였으며, 이후 ‘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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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덕찬(德燦), 호는 우당(愚堂). 통계(通溪) 강회중(姜淮仲)의 후손이다. 강지형(姜芝馨)은 단성(丹城)[경상남도 산청군] 출신으로, 덕유산(德裕山)으로 거처를 옮긴 뒤 지금의 무주군 안성면에 머물면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을 사사하고 학문을 연마하였다. 동학(東學)이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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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우리나라의 고대사는 초기 국가 시대와 삼국 시대, 남북국 시대로 세분화된다. 현재의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적천현(赤川縣)과 두시이현(豆尸伊縣), 신라의 무산현(茂山縣)이 있었으며, 후기 신라 경덕왕(景德王) 대에 무산현은 무풍현(茂豊縣)으로, 적천현은 단천현(丹川縣)으로, 두시이현은 이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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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918부터 서기 1392년까지 존속하였던 고려시대 무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시대 무주 지역은 아직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대체로 무풍현(茂豊縣)과 주계현(朱溪縣) 두 고을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오늘날의 무주군 안성면 지역 등 일부 지역은 현재 충청남도 금산군에 해당하는 부리현(富利縣)과 진례현(進禮縣)의 일부였다. 부리현은 현재의 충청남도 제원군 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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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의 문화재로 지정된 고문서와 무주 지역 관련 고문서의 현황. 고문서(古文書)는 특정한 주체가 어떠한 용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대상에게 전달한 글과 도장, 수결(手決)이 담긴 것을 총칭하는 것으로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되지만 국왕 문서(國王文書), 관부(官府)의 공문서(公文書), 왕실 등의 준공 문서(準公文書)와 개인·사찰·서원·결사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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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의 고대 무덤. 고분(古墳)은 지하 또는 지상에 매장 시설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흙을 높이 쌓아 올려 만든 무덤을 통칭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고분이란 과거 사회에서 매장 의례 행위가 물질적인 증거로 남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분의 개념은 과거의 모든 무덤들을 총칭하는 의미인 분묘(墳墓)와의 구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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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 분포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중 하나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인 지석을 비롯하여 시신이 안치되는 무덤방, 돌을 쌓거나 깔아서 무덤 영역을 나타내는 묘역 등을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되는 대부분의 고인돌은 무덤뿐만 아니라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의 표석,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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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고창리 고창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고창리 고분군(高昌里古墳群)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고창리 고창 마을의 북쪽을 감싸는 지류에 자리한다. 이 지류의 남쪽 비탈은 완만하여 고분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고분군이 자리한 지역은 노루 고개를 넘어온 남북 방향의 교통로가 고창천(高昌川)을 따라가다 금강(錦江) 본류를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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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 봉산리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공정리 고분군(公正里古墳群)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 봉산리 마을에서 농로를 따라 동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한다. 만봉(萬峯)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한 갈래의 지류가 봉산리 마을의 서쪽과 남동쪽을 감싸고 있다. 고분군은 봉산리 마을의 동쪽과 남쪽을 감싸는 지류에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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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 내당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공정리 내당 고분군(公正里內堂古墳群)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 내당 마을에서 농로를 따라 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구릉에 자리한다. 이 구릉은 만봉(萬峯)[699.7m]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지류의 끝자락에 해당한다. 2006년에 전북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무주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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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 외당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 외당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외당 소류지가 위치한다. 공정리 외당 고분군(公正里外堂古墳群)은 외당 소류지의 북쪽을 감싸는 구릉에 자리한다. 2006년에 전북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무주 관광 레저 기업 도시 개발 사업 부지 내 문화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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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 일대에는 삼국 시대~조선 시대에 해당하는 12개소의 유물산포지가 자리하고 있다.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는 안성면의 동쪽 지역에 자리한다. 안성면 소재지에서 국도 제37호선을 따라 남동쪽[칠연 의총(七淵義塚)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내당 마을과 봉산 마을, 사탄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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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 주고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공진리 고분군(貢進里古墳群)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 주고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민지봉[549.7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지류의 남쪽 비탈부에 자리한다. 남쪽으로는 계북천이 북서류하고 있으며, 주변에 충적지가 발달되어 유적이 자리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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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공진리 고인돌1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무주 안성 CC 서남쪽 끝 공진리 주고 마을 북서쪽에 위치한다. 무주군 안성면 무주 안성 CC 앞에 공진리가 있고 그 사이로는 남북으로 국도 제19호선이 지나간다. 국도 제19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2㎞ 가면 지방도 제635호선과 분기되는 삼거리가 있고, 지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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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공진리 고인돌2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의 무주 안성 CC 서남쪽 끝 공진리 주고 마을 주고 경로당 인근에 위치한다. 무주군 안성면 무주 안성 CC 앞에 공진리가 있고, 그 사이로는 남북으로 국도 제19호선이 지나간다. 국도 제19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2㎞ 가면 지방도 제635호선과 분기되는 삼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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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공진리 유물산포지(貢進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진리 주고 마을 일대에 분포한다. 공진리 유물산포지1은 주고 마을의 북쪽 구릉 하단부에 자리하며, 공진리 유물산포지2는 주고 마을의 남동쪽으로 펼쳐진 큰 뜰이라 불리는 평야의 서쪽에 해당한다. 2007년에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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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하조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1㎞ 정도 떨어진 지점에 새치골이 위치하는데, 새치골 입구의 좌측에 있는 구릉에 괴목리 고분(槐木里古墳)이 자리한다. 2007년에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가 실시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무주군』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 시 확인되었다.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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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유물산포지는 발굴 조사의 결과에 따른 명칭은 아니며, 사전 조사인 지표 조사에서 뚜렷한 유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땅 위의 일정한 장소에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하의 어떤 유구가 파괴되면서 유구 안에 있던 유물이 밖으로 노출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되며, 문화재 지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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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1643년(인조 21)에 이조 판서 이식(李植)이 왕명으로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를 순찰하고 병자호란 이후 적상산 사고의 관리와 적상산성(赤裳山城) 방비의 허술함을 보고하였다. 이에 인조(仁祖)는 적상산 사고의 수호 사찰로서 호국사(護國寺)를 창건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괴목리 호국사 터에 현존하는 적상산성 호국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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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열녀. 구길생(具吉生)의 처 양씨는 집이 너무도 가난하여 남편이 죽었을 때 거적으로 남편을 싸서 장사를 지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한 가난 속에서도 병든 남편과 시부모와 시동생들을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보살폈다.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침저녁으로 남편의 제사상에 전(奠)을 올리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으며, 그때마다 가슴을 치고 슬피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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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구천초등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위치한 구천초등학교는 1934년에 설천 보통학교 부설 심곡 간이 소학교로 개교하였다. 현재 구천초등학교 본관 2층 동쪽 전시장에 고고·역사·미술·전적·민속 등에 관련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모두 80여 점의 유물들이 있는데, 이 중 무주군의 역사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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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에 있는 석기 시대·삼국 시대·고려 시대의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동북쪽에 굴암리가 위치하고 있는데, 굴암리로 무주군과 금산군을 이어 주는 국도 제37호선과 대전 통영 간 고속 도로가 통과한다. 금강(錦江)이 줄곧 동북쪽으로 흐르면서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 구간에서 거의 'U' 자형으로 휘감아 도는데, 이 일대에 3개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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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에 있는 봉수.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소재지의 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가 조항산(鳥項山)[799.3m]이다. 조항산의 동쪽과 서쪽에는 금강(錦江)의 지류인 삼류천과 안장천 등이 흐르고 있으며, 물줄기를 따라 남북 방향의 수륙 교통로가 잘 형성되어 있다. 이 교통로를 따라 전라북도 장수군에서부터 충청남도 금산군까지 한 갈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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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오포(午圃). 문정공(文正公) 권부(權溥)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권사도(權思道)이다. 권철로(權喆魯)는 백남(柏南) 하현(河鉉), 석치(石痴) 이해교(李海敎), 운파(雲坡) 하재만(河在晩), 권철규(權喆奎), 권대형(權大衝) 등과 함께 교유하면서 학문을 닦았다. 후인들이 계(契)를 만들어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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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안기 마을 회관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농로를 따라 500여 m 가면 구릉이 나오는데, 구릉 남쪽 비탈에 금평리 고인돌 떼1이 위치한다. 2006년에 전북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무주 관광 레저 기업 도시 개발 사업 부지 내 문화 유적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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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금평리 고인돌 떼2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안기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200m 지점에 있는 구릉에 위치한다. 안기 마을 회관에서 동남쪽 방향에 동서로 뻗은 긴 구릉이 자리하는데, 이곳에 금평리 안기 고분군(琴坪里安基古墳群)과 금평리 유물 산포지(琴坪里遺物散布地)2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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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금평리 고인돌 떼3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두문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300m 지점에 있는 구릉에 자리한다.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사전 교차로 근방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덕유산로를 따라 1㎞쯤 가면 두문 마을 초입이 나온다. 같은 길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가면 덕유산 별장 민박을 지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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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금평리 고인돌 떼4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두문 마을 천하 목장 일원에 위치한다.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사전 교차로 근방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덕유산로를 따라 1㎞쯤 가면 두문 마을 초입이 나온다. 같은 길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가면 덕유산 별장 민박을 지나게 되고 북동쪽으로 갈라지는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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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금평리 고인돌 떼5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두문 마을에서 서남쪽으로 400m 지점에 위치한다.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사전 교차로 근방에서 동쪽으로 나 있는 덕유산로를 따라 1㎞쯤 가면 두문 마을 초입이 나온다. 두문 마을 초입에서 남쪽 방향으로 사전천(沙田川)이 보이는데, 동쪽에서 서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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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금평리 고인돌 떼6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궁대 마을 북편 느릅 시골 초입에 있는 논 가운데에 위치한다.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사전 교차로에서 국도 제19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500m 정도 가면 느릅 시골이라는 곡간 평지가 나타난다. 대부분 논으로 경작되는 곳인데 이 곡간 평지 초입부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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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사전 교차로에서 국도 제19호선을 따라 남쪽으로 500m 정도 가면 ‘느릅 시골’이라는 곡간 평지가 나타난다. 느릅 시골 초입부에서 농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560m 지점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데, 바로 남쪽 편에 자리하는 논에 금평리 고인돌 떼7이 위치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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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궁대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금평리 궁대 고분군(琴坪里弓垈古墳群)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궁대 마을 북쪽에 자리한 구릉에 소재한다. 안성 분지에 위치하며, 주변에는 넓은 들판과 구릉이 발달하였다. 남쪽으로 구량천(九良川)이 북서류하고 있다. 고분군과 주변은 유적이 자리하기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 고분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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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금평리 두문 고분(琴坪里斗文古墳)1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두문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구릉에 자리한다. 이 구릉은 북서쪽으로 뻗어 있으며, 남쪽 비탈부에 고분군이 자리한다. 고분 남쪽으로는 사전천이 흐르고 주변에 구릉과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어 유적이 자리하기에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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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금평리 두문 고분(琴坪里斗文古墳)2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두문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남서 방향으로 완만하게 뻗은 구릉에 고분군이 자리한다. 주변은 사전천(沙田川)이 흐르고 구릉과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어 유적이 자리하기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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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금평리 안기 고분군(琴坪里安基古墳群)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안기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남서쪽으로 뻗은 구릉의 남쪽 비탈부에 고분군이 자리하며, 남쪽으로 사전천(沙田川)이 흐르고 주변에 구릉과 충적지가 형성되어 유적이 자리하기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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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금평리 유물산포지[무풍면](金坪里遺物散布地[茂豊面])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에 위치한다. 무풍면 주민 자치 센터에서 거창군 방면으로 향하는 국도 제30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현내 삼거리가 나오는데, 현내 삼거리 인근의 북서쪽 구릉에 금평리 유물산포지1이 자리한다. 덕평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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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의 도촌 마을과 안기 마을, 두문 마을 인근에 금평리 유물산포지[안성면](琴坪里遺物散布地[安城面]) 6개소가 자리하고 있다. 무주군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에서 안성로와 덕유산로를 타고 동쪽으로 가다 보면 금평리가 나온다. 금평리 유물산포지1은 안기 마을의 북쪽에,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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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무주 지방 문화재 지표 조사 보고서』[1988]와 『문화 유적 분포 지도-무주군』[2007], 『한국 사지 총람』[2010] 등에는 금평리 흑룡사 터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 있는 덕산재에서 동북쪽으로 300m가량 떨어진 흑룡산(黑龍山)의 동쪽 기슭에 위치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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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있는 청동기~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는 7개소의 유물산포지가 분포하고 있는데, 기곡 마을 앞을 흐르는 남대천(南大川) 주변에 6개소가 분포하고 있고 문암 마을에 1개소가 자리한다. 기곡리 유물산포지(基谷里遺物散布地)1~기곡리 유물산포지3은 남대천 너머로 기곡 마을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해발 3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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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전해지는 문자로 기록해 놓은 문집 및 고문서 등 기록물. 전라북도 무주군에 전해지는 문집류는 주로 무주 출신 문인이나 무주에 세거하는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어 온 기록이다. 고문서(古文書)는 특정한 주체가 어떠한 용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대상에게 전달한 글과 도장, 수결(手決)이 담긴 것을 총칭하는 것으로,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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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당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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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길산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길산리는 남대천(南大川)을 경계로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고 있는데, 남대천 주변에 4개소의 길산리 유물산포지(吉山里遺物散布地)가 분포하고 있다. 길산리 유물 산포지1은 하길산 마을의 서쪽에 있는 조선들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산리 유물산포지2는 하길산 마을에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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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희생된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13세손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중추부사(嘉善大夫中樞府事)를 지낸 김재선(金在善)이다. 부인은 장수 황씨(長水黃氏)이다. 김국희(金國禧)[1773~?]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서 태어났으며, 정조[재위 1776~1800] 때 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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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무주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금녕(金寧). 자는 영재(永載), 호는 은천(隱川). 부인은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김달규(金達圭)[1841~1936]는 1841년(헌종 7)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굴천 마을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온순하고 맑아 친척들이나 이웃을 대할 때 항상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서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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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효자이자 자선가.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재(聖哉), 호는 덕암(德庵). 할아버지는 증통정대부 호조 참의(贈通政大夫戶曹參議)인 일제(一濟) 김국윤(金國允)이며, 아버지는 가선대부 호조 참판 겸 의금부 지사(嘉善大夫戶曹參判義禁府知事)에 추증(追贈)된 김창신(金昌信)이다. 김병두(金炳斗)[1843~1923]는 1843년(헌종 9) 전라북도 무주군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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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무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례(進禮)[금산(錦山)]. 장인은 낭장을 지낸 왕연(王涓)이다. 김신(金侁)은 진례현(進禮縣)[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서 출생하였다. 원(元)에서 요양행성 참정(遼陽行省參政)을 지냈다. 1305년(충렬왕 31) 원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고려에 공을 세웠다고 하여 출신지인 진례현을 금주(錦州)로 승격시켰다. 일찍이 어머니가 왜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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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도산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은경(殷卿), 호는 심재(心齋). 증조할아버지는 형조도관 좌랑(刑曹都官佐郞)을 지낸 김열(金閱)이며, 할아버지는 가선대부 병조 참판(嘉善大夫兵曹參判)에 증직(贈職)된 김달손(金達孫)이다. 아버지는 강화 도호부사(江華 都護府使)를 지낸 김수(金洙)이고, 외할아버지는 권항(權恒)이다. 부인은 성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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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연심당(淵心堂).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계현(金啓鉉)이다. 동생은 연서 김영구(金永龜)이다. 김영규(金永圭)는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향리에 은거하면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고종(高宗) 대에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후진을 양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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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사재(思齋).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후손이다. 김영조(金永祚)의 정확한 생몰 연대는 알 수 없지만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찍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우당(愚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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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이자 의병장. 김준민(金俊民)[?~1593]의 본관은 상산(商山)으로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서 출생하였다.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1583년(선조 16)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제신(李濟臣)과 함께 군관으로 출전하여 호족(胡族)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 뒤 거제 현령(巨濟縣令)을 지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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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내도로를 따라 내도리 방향으로 가다 보면 후도교를 지나 후도 마을이 나온다. 내도리 유물산포지(內島里遺物散布地)1은 후도 마을 회관 남서쪽 일대에 위치하며, 이곳에서 약 100m 정도 거리에 위치한 후도 할머니 경로당의 남동쪽에 내도리 유물산포지2가 자리한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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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에 있는 소규모 석성. 노고성(老姑城)에 대한 문헌 기록은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출전하게 된 아들의 무운(武運)을 빌기 위하여 마을의 늙은 어머니들이 치마로 돌을 날라 쌓았다고 하여 '노고성'이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노고성은 6·25 전쟁으로 인한 참상에서 얼룩진 시련의 도장이 되기도 하였다. 북한군의 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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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에서 고려 초까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현재의 무주 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각기 영유하던 지역이다. 즉 적천현(赤川縣)[주계현(朱溪縣), 단천현(丹川縣)]은 마한에서 백제로 이어진 지역이고, 무산현(茂山縣)[무풍현(茂豊縣)]은 진한에서 신라로 이어진 지역이다. 적천현 지역은 본래 마한의 영역이었으나,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 때에 이 지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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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려 시대~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남대천(南大川) 남쪽으로 무주 대교를 건너면 당산 삼거리가 나오는데, 당산 삼거리에서 남서쪽으로 약 300m 거리에 조성된 무주 전통 공예 테마파크 조성 부지에 당산리 유물산포지(堂山里遺物散布地)5가 위치한다. 또 당산 삼거리에서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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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한풍루 옆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군. 당산리 한풍루 비석군은 한풍루(寒風樓) 옆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5기의 비를 말하며, 왼쪽부터 관찰사 김교근(金敎根)[1766~?], 관찰사 서기순(徐箕淳)[1791~1854], 행부사 김용근(金龍根)[1794~?], 부사 홍익철(洪益喆)[1723~?], 부사 김시용(金始容) 순으로 배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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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 설치한 말단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부곡(部曲)·처(處)·장(莊)과 함께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 구역으로, 고려의 독특한 군현제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소의 거주민들은 정부에 대하여 특수한 역역(力役)이나 공역(貢役)의 의무를 짊어졌다. 소는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은소(銀所)·동소(銅所)·철소(鐵所)·사소(絲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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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대불리 유물산포지(大佛里遺物散布地)1과 대불리 유물산포지3은 대불 저수지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불리 유물 산포지1은 내북 마을 회관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대불 저수지 남동쪽에서 내북 마을로 향하는 소로를 따라 300m가량 가다 보면 남쪽으로 내북천이 흐르고 있는데, 소로와 내북천 사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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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제635호선을 따라가면 유평교가 나오고, 유평교에서 진안군 용담면 소재지로 이어지는 지방도를 따라 1.5㎞쯤 가면 부남면 대소리 도소 마을에 도착한다. 도소 마을 남쪽 극락사 입구 밭에 대소리 백자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다. 금남 호남 정맥 신무산 동북쪽 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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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에 있는 구석기~고려 시대의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서쪽에 대소리 유물산포지(大所里遺物散布地) 2개소가 자리하고 있다. 금강(錦江)을 사이에 두고 대소리 유물산포지1이 서쪽에, 대소리 유물산포지2가 동쪽에 위치한다. 무주군 부남면과 진안군 용담면 경계에 위치한 지소산(智小山)[441.6m] 북쪽 기슭 중단부에 대소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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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대티 마을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대유리 고분군(大柳里古墳群)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대티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구릉의 남쪽 비탈부 구릉에 위치한다. 해발 400m 내외의 고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류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금강(錦江)이 흐르면서 주변에 충적지가 형성되어 유적이 자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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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개항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김해김씨 문중 소장 고문서. 대유리 김해김씨 문중 고문서(大柳里金海金氏門中古文書)에는 3년마다 관에 제출할 목적으로 호적을 정리한 호구 단자(戶口單子), 오늘날의 주민 등록과 같은 것으로 개인의 요청에 따라 호적 사항을 발급한 증서인 준호구(準戶口) , 개인이 사회 경제 생활을 위해 주고 받았던 매매 문서인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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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밀양박씨 문중 소장 고문서. 호구 단자(戶口單子)는 개인이 관에 제출하는 호적 단자를 말한다. 호구의 성적(成籍)은 조선 시대에 3년마다 돌아오는 식년(式年)에, 즉 간지가 자·묘·오·유(子卯午酉)로 끝나는 해에 호주가 집안의 호구를 적어서 관에 제출한다. 호적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존속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 시대의 장적은 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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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과 충청남도 금산군 경계에 갈미봉이 있는데, 갈미봉 산봉우리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끝자락에 대유리 백자 가마터가 자리한다. 무주군 부남면 소재지에서 대소교를 건너 지방도 제635호선을 따라가면 목사리재를 넘어 금산군 남일면 신정리 방면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전라북도와 충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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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 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대유리 한치 마을 동남쪽 금강(錦江)과 인접된 충적지에 대유리 유물산포지(大柳里遺物散布地)가 자리하고 있다. 금남 호남 정맥 신무산 뜬봉샘에서 발원하는 금강은 줄곧 북쪽으로 흐르다가 진안군 용담댐에 잠시 머문 후 다시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대유리 유물산포지 부근을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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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차산 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통일 신라 시대 고분군. 대차리 고분군(大車里古墳群)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의 차산 마을 앞을 지나는 도로[차산로]변에 위치한 차산 식당의 뒷편 구릉에 자리한다. 이 구릉은 차산 마을의 남동쪽을 감싸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금강(錦江)의 상류인 남대천(南大川)이 북서류하면서 주변에 충적지가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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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려 시대~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동에서 서로 흐르는 남대천(南大川) 북쪽의 적천로를 따라가면 우측의 대차로와 연결되는데, 대차로를 따라 약 4.8㎞ 정도 가면 좌측의 서면교에 도착한다. 서면교를 건너 남서쪽에 있는 야트막한 산비탈에 대차리 유물산포지(大車里遺物散布地)1이 위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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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덕산리 유물산포지(德山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의 동쪽에 자리한 덕산리 일대의 상산 마을과 수락 마을, 덕곡 마을 주변의 구릉과 경작지에 위치한다. 덕산리 유물산포지1은 상산 마을의 남동쪽 경작지에 자리하며, 덕산리 유물산포지2와 덕산리 유물산포지3은 상산 마을에서 동쪽으로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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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에 있는 봉수. 백두 대간 덕유산(德裕山) 최고봉인 향적봉(香積峯)[1,614m]의 남쪽과 북쪽에는 백두 대간을 넘는 주요 고갯길인 동엽령과 검령이 있는데, 덕산리 향적봉 봉수(德山里香積峯烽燧)는 이 고갯길들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전라북도 무주군의 동쪽 자연 경계를 이루는 백두 대간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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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덕지리 유물산포지(德地里遺物散布地)1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덕지리 방곡안실 노인 회관 남쪽의 경작지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거칠봉(居七峯)[1,177.6m]에서 동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하단부에 해당한다. 덕지리 유물산포지2는 부흥 마을에서 서북쪽으로 약 350m 떨어진 경작지와 구릉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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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무주 출신이거나 무주 지역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항일 운동가. 일제의 국권 침탈이 이어질 때에는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국권을 잃게 된 후에는 독립을 위한 우리 민족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무주 지역에선 전일봉(全日奉)이 1919년 4월 1일 무주 장날 만세 운동을 일으켰고, 학생들은 동맹 휴학을 주도하거나 비밀 결사를 조직하였다. 무주군은 영호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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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정자 터. 돈세정(遯世亭)은 조선 시대 함창 현감(咸昌縣監) 도원(桃源) 박인정(朴仁挺)이 처음 지었고, 이후 유연이 ‘돈세정’이라 이름 붙여 다시 지었던 정자이다. 유연은 박인정의 후손인 의재(毅齋) 박이겸(朴以謙), 비암(秘巖) 박이항(朴以恒) 등과 더불어 돈세정에서 강론(講論)하며 시를 짓고 읊었는데, 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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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두길리 유물산포지(斗吉里遺物散布地)는 마을 앞을 흐르는 원당천(元塘川)과 벌한천 주변에 12개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대부분 능선에서 흘러내린 지류의 말단부에 입지하고 있다. 원당천과 벌한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구산 마을을 중심으로 원당천의 북쪽에 4개소[두길리 유물산포지1~두길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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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 있는 조선 시대 통정대부 김경수의 묘. 두길리 통정대부 김해김씨 묘(斗吉里通政大夫金海金氏墓)는 무주군 설천면 소재지에서 구천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국도 37호선 도로의 우측에 위치한다. 김경수(金景洙)의 묘와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은 개석, 비신, 대좌 등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 비석은 예전의 대좌 위에 근래에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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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과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일대에 설치한 행정 구역. 현재의 무주 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각기 영유하던 지역이다. 즉 적천현[주계현, 단천현]은 마한에서 백제로 이어진 지역이고, 무산현[무풍현]은 진한에서 신라로 이어진 지역이다. 이외로 지금의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과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일대에 두시이현(豆尸伊縣)이 있었다. 두시이현 지역은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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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에 있는 개항기 정자. 만벽정(晩碧亭)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 덕곡 마을에 있다. 마을 앞을 지나는 덕산로의 남쪽 변에 자리하는데, 동쪽의 덕산제에서 흘러내리는 구룡천이 흐르는 북안(北岸)에 자리한다. 1892년(고종 29)에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서문(序文)을 쓰고,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이 규약(規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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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개항기 별궁 터. 명례궁(明禮宮)은 조선 후기 궁내 대신 민병석(閔丙奭)이 건립한 행궁으로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한 별궁이다. 민병석은 무풍 지역을 무릉도원(武陵桃源)의 땅이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인 난세(亂世)의 피난지로 여기고 이곳에 99칸의 건물을 지었다. 당시 건립비는 무주부(茂朱府)의 공물(貢物)을 대납한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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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에 있던 신라 시대의 산성. 무산성(茂山城)은 삼국 시대 신라 무산현(茂山縣)의 읍성(邑城)으로 축조되었다. 신라의 서쪽 변방으로 백제의 적천현[현 무주군 무주읍 지역]과 인접하며 국경을 이루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는 “진덕왕 1년(647) 겨울 10월에 백제의 군사가 무산(茂山)·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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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과 설천면 일부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현재의 무주 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각기 영유하던 지역이다. 즉 적천현(赤川縣)[주계현(朱溪縣)]은 마한에서 백제로 이어진 지역이고, 무산현(茂山縣)[무풍현(茂豊縣)]은 진한에서 신라로 이어진 지역이다. 무산현 지역은 본래 감문국(甘文國)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에서 점령한 뒤에 무산현으로 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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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과 남인의 급진 세력이 경종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련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일으킨 사건. 1724년 경종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영조가 노론(老論)의 지지를 받으면서 즉위하였다. 노론의 집권으로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少論)과 남인(南人)의 급진 세력은 영조와 노론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세제(世弟) 책봉의 부당성, 경종의 사인(死因)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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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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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제철유적. 무주 구천계곡 제철유적(茂朱九千溪谷製鐵遺蹟)은 2017년에 『디지털 무주 문화 대전』을 위해 기획된 무주군 제철유적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가 발견되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신규 유적이다. 2017년 1월 16일부터 같은 해 1월 31일까지 군산 대학교 교수 곽장근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여름철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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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에 있는 제철유적. 무주 금평천 제철유적(茂朱金坪川製鐵遺蹟)은 2017년에 『디지털 무주 문화 대전』을 위해 기획된 무주군 제철유적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가 처음으로 드러난 신규 유적이다. 2017년 1월 16일부터 같은 해 1월 31일까지 군산 대학교 교수 곽장근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백두 대간(白頭大幹) 덕산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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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에 있는 제철유적. 무주 남대천 제철유적(茂朱南大川製鐵遺蹟)은 2017년에 『디지털 무주 문화 대전』을 위해 기획된 무주군 제철유적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가 발견되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신규 유적이다. 2017년 1월 16일부터 같은 해 1월 31일까지 군산 대학교 교수 곽장근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전라북도 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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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에 있는 제철유적. 무주 내북천 제철유적(茂朱內北川製鐵遺蹟)은 2017년에 『디지털 무주 문화 대전』을 위해 기획된 무주군 제철유적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가 발견되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신규 유적이다. 2017년 1월 16일부터 같은 해 1월 31일까지 군산 대학교 교수 곽장근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내북천(內北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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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에 있는 제철유적. 무주 대동천 제철유적(茂朱大洞川製鐵遺蹟)은 2017년에 『디지털 무주 문화 대전』을 위해 기획된 무주군 제철유적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가 발견되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신규 유적이다. 2017년 1월 16일부터 같은 해 1월 31일까지 군산 대학교 교수 곽장근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백두 대간(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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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에 있는 제철유적. 무주 덕산계곡 제철유적(茂朱德山溪谷製鐵遺蹟)은 2017년에 『디지털 무주 문화 대전』을 위해 기획된 무주군 제철유적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가 발견되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신규 유적이다. 2017년 1월 16일부터 같은 해 1월 31일까지 군산 대학교 교수 곽장근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덕유산(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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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에 있는 제철유적. 무주 도마천 제철유적(茂朱道馬川製鐵遺蹟)은 2017년에 『디지털 무주 문화 대전』을 위해 기획된 무주군 제철유적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가 발견되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신규 유적이다. 2017년 1월 16일부터 같은 해 1월 31일까지 군산 대학교 교수 곽장근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백두 대간(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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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제철유적. 무주 명천계곡 제철유적(茂朱明川溪谷製鐵遺蹟)은 2017년에 『디지털 무주 문화 대전』을 위해 기획된 무주군 제철유적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가 발견되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신규 유적이다. 2017년 1월 16일부터 같은 해 1월 31일까지 군산 대학교 교수 곽장근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백두 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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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 있는 제철유적. 무주 벌한천 제철유적(茂朱伐寒川製鐵遺蹟)은 2017년에 『디지털 무주 문화 대전』을 위해 기획된 무주군 제철유적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가 발견되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신규 유적이다. 2017년 1월 16일부터 같은 해 1월 31일까지 군산 대학교 교수 곽장근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전라북도 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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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에 있는 제철유적. 무주 용추계곡 제철유적(茂朱龍湫溪谷製鐵遺蹟)은 2017년에 『디지털 무주 문화 대전』을 위해 기획된 무주군 제철유적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가 발견되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신규 유적이다. 2017년 1월 16일부터 같은 해 1월 31일까지 군산 대학교 교수 곽장근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백두 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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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에 있는 제철유적. 무주 원당천 제철유적(茂朱元塘川製鐵遺蹟)은 2017년에 『디지털 무주 문화 대전』을 위해 기획된 무주군 제철유적 지표 조사에서 그 존재가 발견되어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된 신규 유적이다. 2017년 1월 16일부터 같은 해 1월 31일까지 군산 대학교 교수 곽장근이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백두 대간(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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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백제 시대 산성. 무주 적상산성(茂朱赤裳山城)의 중요성은 임진왜란으로 인해 방어 시설인 산성의 중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부각되었다. 전라도 동부 내륙 지역의 주요 방어 시설로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광해군(光海君) 당시 후금(後金)이 강성해짐에 따라 국방 시설의 점검과 정비, 그리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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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지남 공원 안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한풍루(寒風樓)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 1193-2번지[한풍루로 326-5]에 있다. 남대천(南大川)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지남 공원 내에 있다. 무주부 관아에서 세워 관리하던 곳으로 명사와 묵객들이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정확한 건립 시기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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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의 신호적. 조선 시대에는 3년마다 호적을 작성하여 대장에 편성하였는데, 이를 ‘구식 호적’이라 칭한다. 이에 비해 1896년 제도의 개혁 이후에 작성된 호적을 ‘신식 호적’이라 칭한다. 신식 호적은 호구 기재 사항을 붉은색으로 인쇄한 호적표를 관에서 각 호에 2부씩 지급하면 백성들은 이를 기재하여 지방관에 제출하였다. 제출된 호적표 중 1부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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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적상산(赤裳山)에 사고(史庫)가 건립되면서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의 실록과 선원보 등 왕실 기록을 관리하기 위해 무주현(茂朱縣)을 무주도호부(茂朱都護府)로 승격하였다. 『태종실록(太宗實錄)』 권28, 태종 14년 12월 25일에 “전라도 무풍현·주계현 두 현을 아울러서 무주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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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무주부 관아 건물 터. 1414년(태종 14)에 지방 행정 구역을 8도제(八道制)로 개편할 때 무풍현(茂豊縣)과 주계현(朱溪縣)을 통폐합하여 무주현(茂朱縣)으로 개칭하였는데, 이때 관아 건물들이 자리하였던 곳이 무주부 관아 터이다. 이후 적상산성(赤裳山城)에 사고(史庫)가 설치되어 실록이 보관되었고, 무주현이 무주 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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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신라의 유적과 유물. 고려 인종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전라북도 지역에도 신라 땅이 등장한다. 무주군 무풍면과 남원시 운봉읍 일대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때 남원시 운봉읍은 ‘철의 왕국’이자 ‘운봉 가야’로 이미 소개된 운봉 고원을 가리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시대 3대 예언서로 꼽히는 『정감록(鄭鑑錄)』에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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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무주향교 내에 모여 있는 비석군. 관찰사 김흥근(金興根)[1796~1870]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기경(起卿), 호는 유관(游觀)이다. 순조 때 급제하여 검열·대교(待敎) 겸 보덕(兼輔德)·이조 참의 등을 거쳐 전라도 관찰사에 제수되었다. 헌종 때 안동 김씨의 권세를 믿고 방자하게 행동하였다 하여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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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와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조선 건국 이후 행정 구역이 통폐합되는 과정에서 1414년(태종 14)에 무풍현(茂豊縣)과 주계현(朱溪縣)을 통합하여 무주현(茂朱縣)을 설치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4 잡지 제3 지리 1편에 “무풍현은 본래 무산현이었다. 경덕왕 때에 명칭을 고쳐 지금에 이른다[茂豊縣 本茂山縣 景德王改名 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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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문평 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 무산현의 읍성 터. 무풍고성(茂豊古城)은 신라 무산현(茂山縣)의 읍성(邑城)으로, 현재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문평[거문들] 마을 일대에 자리하고 있던 것으로 전한다. 지금의 무풍면은 삼국 시대에 신라 무산현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무산현은 지금의 무주군 무주읍 일원에 자리하였던 백제의 적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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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무풍초등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삼국 시대 유물.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소재지에 위치한 무풍초등학교는 1923년에 무풍 공립 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현재 무풍초등학교 본관 전시장에 고고·미술·민속 등 1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유물의 소장 방법이 파악된 12점의 삼국 시대 토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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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설천면 일부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현재의 무주 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각기 영유하던 지역이다. 즉 적천현(赤川縣)[주계현(朱溪縣)]은 마한에서 백제로 이어진 지역이고, 무산현(茂山縣)[무풍현(茂豊縣)]은 진한에서 신라로 이어진 지역이다. 무산현 지역은 본래 감문국(甘文國)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에서 점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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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서 형체가 없이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전승되고 있는 문화유산. 무형 유산(無形遺産)은 연극·음악·무용·공예 기술 및 놀이 등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전승되는 무형의 소산으로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있는 것을 가리킨다. 무주 지역의 무형 유산은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 부남 디딜방아 액막이 놀이와 무풍면 현내리 무풍 현내리 기절 놀이, 안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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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 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주민 자치 센터를 지나 원평 삼거리에서 설천면 미천리 방면으로 삼도봉로를 따라 4.5㎞ 이동하면 하미 마을이 나온다. 미천리 유물산포지(美川里遺物散布地)는 하미 마을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하미 마을의 동쪽에 있는 고봉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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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박권(朴權)[1747~1822]은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운곡(雲谷)으로, 1747년(영조 23)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태어났다. 40세 때인 1786년(정조 10)에 소과(小科)에 합격한 후, 성균관에 입학하여 대과 급제를 위한 공부에 전념하였다. 박권은 성품이 매우 온화하고 효심이 깊은 인물이었다. 어려서부터 형제간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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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으로 이거한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이환(而煥), 호는 관일당(貫一堂)·정관재(靜觀齋).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지사(知事) 박중엽(朴重燁)이다. 어머니는 강위경(姜渭擎)의 딸인 진주 강씨(晋州姜氏)이다. 박문건(朴文健)[1770~1805]은 경상남도 진주(晉州)에서 출생하였다. 1805년(순조 5) 지금의 전라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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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여삼(汝三), 호는 운촌(雲村). 형은 성균 진사(成均進士) 박권(朴權)이다. 박삼(朴森)[1761~1832]은 1761년(영조 37)에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태어났으며, 형 박권과 함께 무주를 대표하는 효자였다. 어려서부터 형제간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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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정려각이 세워진 유학자이자 효자. 박이겸(朴以謙)[1553~1613]은 선조(宣祖) 대의 학자로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겼으며, 임진왜란의 와중에 상을 당하자 여묘를 살면서도 나랏일을 걱정하였다. 뒤에 유일(遺逸)로 정릉 참봉(貞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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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근보(近甫), 호는 설계(雪溪). 임진왜란 때 선조(先祖) 가운데 한 사람이 난을 피하여 삼도봉(三道峰)에 들어왔다가 지금의 무주군 설천면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증직된 박태만(朴泰萬)이며, 아버지는 박세건(朴世建)이다. 어머니는 남원 양씨(南原梁氏)이며, 부인은 김육(金堉)의 딸인 광산 김씨(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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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도산 서원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천경(天經), 호는 임회당(臨淮堂).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여말 선초 성리학의 대의명분을 지켜 조선조에서 벼슬을 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고려 말의 학자들] 박힐(朴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초산 군수를 지낸 박인(朴麟)이다. 박힐이 충청남도 금산에 들어와 은거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금산군 남일면에서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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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에 있는 봉수. 방이리 구리골산 봉수는 적상천(赤裳川)을 따라 형성된 교통로를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북쪽의 굴암리 조항산 봉수(屈岩里鳥項山烽燧)와 남쪽의 진도리 봉화산 봉수(眞道里烽火山烽燧)와 연결된다. 구리골산[657.9m]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의 서쪽에 우뚝 솟아 있다. 산의 서쪽에는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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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에서 지방도 제3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600m 정도 가면 방이리 고방 마을이 나오는데, 고방 마을 서쪽에 방이리 백자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다. 2007년에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문화 연구소가 실시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무주군』 제작을 위한 지표 조사에서 가마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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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에 있는 고려 시대 유물 산포지. 유물산포지는 발굴 조사의 결과에 따른 명칭은 아니며, 사전 조사인 지표 조사에서 뚜렷한 유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땅 위의 일정한 장소에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하의 어떤 유구가 파괴되면서 유구 안에 있던 유물이 밖으로 노출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되며, 문화재 지표 조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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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 백련사(白蓮寺)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통일 신라 시대 신문왕(神文王)[681~692] 때 백련 선사가 은둔하던 곳에 하얀 연꽃이 솟아 나와 절을 짓고 ‘백련사’라고 하였다는 설과, 830년(흥덕왕 5)에 무량 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구전으로 전한다. 백련사지(白蓮寺址)가 있는 구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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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백운암(白雲庵)과 관련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규모와 운영 시기 등은 알 수 없다. 다만 구전을 통해 조선 시대에 절이 있었다는 내용만이 전한다. 『문화 유적 분포 지도-무주군』[무주군·원광 대학교 마한 백제 문화 연구소, 2007]에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 4번지 일원으로 표기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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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해 소식을 전하던 삼국 시대~조선 시대의 통신 수단. 봉수(烽燧)란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를 중앙에 알리던 통신 수단으로 18세기 말 전신 전화가 보급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의 봉수는 삼국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헌에 구체적인 자료가 등장하는 것은 고려 시대 이후이다. 현재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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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과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일대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현재의 무주 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각기 영유하던 지역이다. 즉 적천현[주계현, 단천현]은 마한에서 백제로 이어진 지역이고, 무산현[무풍현]은 진한에서 신라로 이어진 지역이다. 이외로 지금의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과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일대에 있던 두시이현(豆尸伊縣)이 있었다. 두시이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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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 산포지. 유물산포지는 발굴 조사의 결과에 따른 명칭은 아니며, 사전 조사인 지표 조사에서 뚜렷한 유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땅 위의 일정한 장소에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하의 어떤 유구가 파괴되면서 유구 안에 있던 유물이 밖으로 노출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되며, 문화재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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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분의정(分宜亭)은 조선 인조(仁祖) 때의 명신(名臣) 청구(淸滾) 임담(林墰)이 지은 정자이다. 임담은 파직된 이듬해에 참지(參知) 및 승지(承旨)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지내다가 여름에 판결사(判決事)에 임명되어 조정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분의정에서 머물렀다. 임담은 나주(羅州) 회진(會津) 사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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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25대 472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보존해 온 적상산 사고와 무주의 역사. 조선(朝鮮)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부터 철종(哲宗)에 이르기까지 왕의 사후(死後)에 연월일(年月日)의 편년체(編年體)로 25대 472년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그 방대한 분량은 물론 내용에서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역사서로 평가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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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터. 비암정(秘巖亭)은 비암(秘巖) 박이항(朴以恒)이 지은 정자이다. 박이항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선비로 추앙받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는 등 활약을 펼치기도 하였다. 박이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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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산리에 있는 고려~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유물산포지는 발굴 조사의 결과에 따른 명칭은 아니며, 사전 조사인 지표 조사에서 뚜렷한 유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땅 위의 일정한 장소에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하의 어떤 유구가 파괴되면서 유구 안에 있던 유물이 밖으로 노출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되며, 문화재 지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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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사유정(四柳亭)은 유산(柳山) 유도(柳燾)가 만년에 퇴휴처로 지은 정자이다. 유도의 자는 경보(景普)이며, 용담현(龍潭縣) 출신으로 생원 유최영(柳最榮)의 아들이다.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를 지냈다. 시문에도 능하였는데 시문집으로는 『유산집(柳山集)』이 있다. 유도의 문집 『정수합별지(呈繡閤別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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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사전리 유물산포지(沙田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의 동쪽에 인접한 사전리의 사전 마을과 상천 마을, 사교 마을 일대 구릉과 경작지에 분포한다. 사전리 유물산포지1은 상천 마을과 사교 마을 사이의 구릉 지대에 넓게 분포하며, 사전리 유물산포지2는 상천 마을의 서쪽에 자리한 경작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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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사천리 고인돌 떼는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 마을에 위치한다.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적상 우체국에서 북쪽으로 1㎞ 지점에 적상산성(赤裳山城)으로 올라가는 서창로가 있다. 이 길을 따라 750m 가면 북쪽으로 향하는 길이 나오고, 길을 따라 200m 정도 더 가면 야산 비탈면을 개간하여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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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사천리 고인돌 떼1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성내 마을에 자리한다. 성내 마을은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를 대표하는 큰 마을로 적상 파출소와 적상면 주민 자치 센터, 적상 농협 등이 집중되어 있다. 성내 마을에서 적상산로[구 국도 제30호선]를 따라 북쪽으로 400여 m 가면 신대 마을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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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사천리 고인돌 떼2는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 마을 앞에 위치한다.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적상 우체국에서 북쪽으로 1㎞ 지점에 적상산성(赤裳山城)으로 올라가는 서창로가 나온다. 서창로를 따라 900m 가면 적상산 황토 펜션이 보이는데, 펜션 뒤편 인근에 고인돌이 자리한다. 2006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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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사천리 고인돌 떼3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길왕 마을에 위치한다.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적상 우체국에서 북쪽으로 1.8㎞ 지점에 길왕 마을이 있다. 길왕 마을에 가는 도중에 신대 마을 앞의 사천리 고인돌 떼1을 지나게 된다. 길왕 마을로 진입하는 초입과 마을 안에 고인돌이 위치하는데,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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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 있는 고려 시대 도기 가마터. 1606년(선조 39)에 설치된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가 있던 적상산(赤裳山)[1,038m] 서쪽 기슭 하단부에 사천리 도기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는 적상산 정상부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두 갈래의 산줄기가 서창 마을을 병풍처럼 휘감아 자연 분지형 지형을 이룬다. 사천리 도기 가마터는 서창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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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 있는 조선 시대 백자 가마터. 사천리 백자 가마터는 적상산(赤裳山)[1,038m] 서쪽 기슭 중단부로,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서창 마을 서남쪽 구릉지에 위치한다. 2003년에 무주군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전북 문화재 연구원 주관으로 무주 신대 아름 마을 가꾸기 사업과 관련하여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고, 시굴 조사에서 유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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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 있는 청동기~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유물산포지는 발굴 조사의 결과에 따른 명칭은 아니며, 사전 조사인 지표 조사에서 뚜렷한 유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땅 위의 일정한 장소에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하의 어떤 유구가 파괴되면서 유구 안에 있던 유물이 밖으로 노출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되며, 문화재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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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의병장 장지현의 묘. 장지현(張智賢)[1536~1593]은 본관이 구례(求禮),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괴(三槐)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서 병마절도사 장필무(張弼武)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590년(선조 23) 지략(智略)으로 천거 받아 전라도 병마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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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유물산포지는 발굴 조사의 결과에 따른 명칭은 아니며, 사전 조사인 지표 조사에서 뚜렷한 유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땅 위의 일정한 장소에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하의 어떤 유구가 파괴되면서 유구 안에 있던 유물이 밖으로 노출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되며, 문화재 지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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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항일 전적지. 문태서(文泰瑞)는 전라북도 무주군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대표적인 의병장이다. 1880년(고종 17)에 경상도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동학 운동에 관심을 갖고 가담하려 하였으나 어머니의 만류로 포기하였고, 25세가 되던 해에 금강산(金剛山)으로 들어가서 1년간 수련하였다. 1906년(고종 43) 9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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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는 원당천(元塘川)을 따라 그 주변에 7개소의 유물산포지가 분포하고 있다. 구천 초등학교를 기준으로 원당천의 동쪽에 3개소[삼공리 유물산포지(三公里遺物散布地)1~삼공리 유물 산포지3]가 있고, 서쪽에는 4개소[삼공리 유물산포지4~삼공리 유물산포지7]가 천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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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에 있는 고려~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유물산포지는 발굴 조사의 결과에 따른 명칭은 아니며, 사전 조사인 지표 조사에서 뚜렷한 유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땅 위의 일정한 장소에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하의 어떤 유구가 파괴되면서 유구 안에 있던 유물이 밖으로 노출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되며, 문화재 지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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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행정 구역. 조선 초기 지방의 행정 구역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을 통합하여 무주현(茂朱縣)을 설치하고 면리제(面里制)를 정비하여 국가 통치를 강화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898년(고종 35)에 편찬된 『적성지(赤城誌)』에는 상곡면(裳谷面)에 초리(初里)·북창(北倉)·포내(浦內)·중리(中里)·괴목정(槐木亭)·치목(致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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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달성(達城). 귀계(龜溪) 서침(徐沈)의 후손이다. 서침은 고려 말의 충신이었던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전라도 처치사(全羅道處置使)를 지낸 인물로, 조선 세종 조에는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와 전의소감(典醫少監)을 지냈다. 전라도 무주 출신인 서인주(徐仁周)는 효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부모를 섬기는 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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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천경(天景), 호는 회계(晦溪). 아들은 죽재(竹齋) 서인주(徐仁周)이다. 서천발(徐天發)[?~?]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에서 태어났다. 효행이 뛰어났으며 예학(禮學)에 밝아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였다. 사후에 가선대부 한성부 좌윤(嘉善大夫漢城府左尹)에 추증되었다. 1777년(정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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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지역으로 이거한 유학자. 본관은 달성(達成). 자는 계광(啓光), 호는 취정(翠亭). 달성군(達城君) 서영(徐潁)의 9세손이며, 삼남 균전제처사(三南均田制處使) 귀계(龜溪) 서침(徐沈)의 7세손이다. 대구에서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으로 이주하였으며, 그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였다. 서효재(徐孝載)는 성품이 순하고 말이 적으며, 효심이 극진하고, 문장과 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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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돌을 이용하여 칼, 도끼 따위의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석기시대는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도구를 제작함에 있어 금속이 아닌 돌을 활용하였던 시대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석기시대에는 뗀 석기[타제 석기(打製石器)]와 간 석기[마제 석기(磨製石器)]가 존재하였는데 뗀 석기는 구석기시대에, 간 석기는 신석기시대 부터 사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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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의 시대. 선사(先史)는 역사(歷史)와 구분되는 시간적 영역으로서 문자 기록이 없던 시대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일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선사 시대는 문자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고고학적인 연구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고고학적 발굴 조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확보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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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조선 시대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흙이나 돌로 축조된 관방 시설. 성곽(城郭)이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합하여 이르는 명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지칭하고 있다. 즉, 성곽은 군사적·행정적인 집단의 활동 공간을 흙이나 돌 등으로 연결한 구조물로서, 일반적으로 성벽이라 불리운다. 고대 국가 초기에는 목책(木柵), 도랑과 같은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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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성현석성(城峴石城)은 "임진왜란 때 합천인 정인홍이 창의병을 이끌고 무풍을 방어하기 위하여 이곳 저전봉에 성을 쌓고 의병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였다"는 구전을 비롯하여, 도적 떼의 소굴이었다는 설과 곡식을 지키기 위해 쌓았다는 등의 전설들이 전해져 온다. 그러나 성현석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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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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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무주 지역을 지나는 주요 수상 교통로에 설치된 나루. 교통 시설과 수단이 발달되지 않은 전통 시대에는 배를 이용하여 강을 건넜고, 강을 건너는 양쪽 지점에는 나루터가 생겼다. 나루는 그 규모에 따라 도(渡)와 진(津)으로 구분된다. 진도(津渡)의 설치는 고려 시대부터 제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조선 시대에도 그대로 운영되었다. 나루는 일반 백성들의 교통 시설로서 중요시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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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소천리 고인돌 떼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를 휘돌아 가는 남대천(南大川)의 충적 대지에 자리하는 고인돌이다. 무주군 향토 문화유산 제3호인 사천리 고인돌 떼1과 입지 등 유사한 양상을 보이지만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분명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근 쌍방울 아파트가 자리한 지점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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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현대의 돌무더기. 돌무더기는 거석 기념물의 일환으로 선사 시대의 산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돌무더기는 대부분 조선 시대~근대의 민간 신앙과 결부되어 있다. 냇돌이나 산돌을 이용하여 둥근 형태로 쌓아 올린 후 정상부에 길쭉한 신줏돌을 세워서 완성한다. 이렇게 세워진 돌무더기에는 각 지방마다의 민간 신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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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신석기~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미대천(美大川)과 원당천(元塘川)이 남대천(南大川)으로 합류하는 일원에 소천리 유물산포지(所川里遺物散布地) 8개소가 자리하고 있다. 설천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북쪽과 서쪽, 남쪽으로 구분된다. 북쪽의 남대천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설천들, 즉 반딧불이 환경 영농 조합 일원에 소천리 유물산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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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고분군은 본디 나제통문(羅濟通門)을 거쳐 이남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에 삼국 시대 백제군과 싸우다가 숨진 병사들의 무덤이라 전하는 무연고 묘들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1978년 행정 당국의 관광지 주변 정비 계획에 따라 주변에 산재한 무연고 묘를 발굴하여 유해를 수습하여 한 장소에 안치하고 묘역을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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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던 교통·통신 시설. 소천역(所川驛)은 『고려사(高麗史)』[권135, 우왕 10년 8월]에서 “왜구가······ 전라도(全羅道) 안성소(安城所)와 소천역도 노략질하였다”는 내용으로 기록에 처음 등장하였다. 그러나 같은 기록[권82 병(兵)2 참역(站驛)]에 의하면 고려의 525개 역의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보아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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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송계원(宋桂元)[1731~1792]은 1731년(영조 7)에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굴암리에서 태어났으며, 무주를 대표하는 효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섬겨, 주변 사람으로부터 진정한 효자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특히 아버지가 노환(老患)으로 병중에 있을 때에 온갖 정성을 다해 아버지를 보살핀 일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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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은거하다 순국한 유학자. 송병선(宋秉璿)[1836~1905]은 회덕(懷德) 출신으로 여러 차례 관직에 기용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여러 차례 정부에 시무책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1885년(고종 22) 무주로 낙향하여 서벽정(棲碧亭)을 짓고 은둔하면서 영남·호남의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도학을 강론하는 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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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기곡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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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문 기관. 1846년(헌종 12)에 부사로 부임한 최원은 고을 선비들과 상의하여 1849년(헌종 15)에 관아의 북쪽에 터를 잡아 시술재(時術齋)를 창건하였다. 재사(齋舍)를 건립하기 위해 돈 600여 냥과 약간의 관비를 모으고 3만 치전(治田)에서 세수곡(勢收穀) 20곡(斛)과 2만 치전에서 8,000전을 양사(養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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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화원승. 신민(信敏)은 숙종 때 활동한 화원승(畫員僧)이다. 젊어서는 무뢰배(無賴輩)로 일반 대중과 어울리지 못하였다. 하루는 절 안의 승려들이 그림 공부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배우고 싶어 배우기를 청하였으나 화승이 업신여기고 거절하였다. 그러자 혼자 방 안에 들어앉아 밤낮으로 1년 동안 쉬지 않고 여러 불상을 그리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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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심곡리 유물산포지(深谷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인 무주 구천동 계곡(茂朱九千洞溪谷) 중앙에 위치하는데, 심곡 마을 앞에서 구천 초등학교 방면으로 나 있는 국도 제37호선 주변에 자리한다. 국도 제37호선 동쪽으로는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 부근에서 발원하여 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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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 있는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피란과 보신에 적합한 장소. 십승지지(十勝之地)는 풍수지리설에서 지칭하는 피란(避亂)과 보신(保身)에 적합한 열 곳을 의미하는 것으로 십승지(十勝地)라고도 한다. 주로 『정감록(鄭鑑錄)』·『징비록(懲毖錄)』·『유산록(遊山錄)』·『운기귀책(運奇龜責)』·『삼한 산림 비기(三韓山林秘記)』·『남사고 비결(南師古秘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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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 설치한 말단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부곡(部曲)·처(處)·장(莊)과 함께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 구역으로, 고려의 독특한 군현제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소의 거주민들은 정부에 대하여 특수한 역역(力役)이나 공역(貢役)의 의무를 짊어졌다. 소는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은소(銀所)·동소(銅所)·철소(鐵所)·사소(絲所)·주소(紬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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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에서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진안군 안천면 소재지 방면으로 4㎞쯤 가면 여원교가 나온다. 여원교에서 북쪽으로 갈라진 농로를 따라 1㎞가량 올라가면 여원리 가마터1이 자리하고 있다.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 서쪽에 우뚝 솟은 구리골산[657.0m]의 남쪽 골짜기로, 달리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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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구리산골 남쪽에 위치한 사기점골은 여원리 가마터 부근에서 두 갈래의 골짜기로 나뉘는데, 여원리 가마터1이 동쪽 골짜기에, 여원리 가마터2가 서쪽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2개소의 가마터는 서로 인접되어 있으며, 가마의 운영 시기도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7년에 전북 문화재 연구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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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가리에 있는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에서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진안군 안천면 소재지 방면으로 2.8㎞쯤 가면 삼가교가 나온다. 삼가교는 무주군 적상면 서쪽 버드산[510m]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해 줄곧 동쪽으로 흐르는 삼가천을 국도 제30호선이 통과하는 곳으로 그 서쪽에 여원리 가마터3이 자리하고 있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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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 무주군은 비록 산간 지대이지만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삶을 영위하였음이 나타난다. 구석기 유적은 발견된 바 없지만, 남대천(南大川) 수해 복구 현장에서 신석기 시대 토기가 발견된 바 있고, 설천면 기곡리 일대에서 간 돌도끼[마제 석부], 간 돌살촉[마제 석촉]이 수습되었으며, 적상면 사천리 일대에 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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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조선 시대 전라북도 무주 지역의 교통로에 설치된 교통·통신·숙박 시설. 전통 시대에 역원(驛院)은 원활한 교통과 통신, 여행자를 위한 휴식과 숙식, 이동 수단의 교체와 수리, 정비를 위한 시설로 활용되었다. 그 가운데 역(驛)은 전령(傳令), 사신 영송(使臣迎送)과 같은 공적 업무를 위해 파견되는 관리들의 여행을 위해 관에서 운영하던 기관이었다. 역을 이용하는 관리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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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연안이씨 문중 소장 고문서. 연안이씨 이유길 가전 고문서(延安李氏李有吉家傳古文書)는 조선 후기의 의사(義士) 이유길(李有吉)을 비롯한 그의 가문 5대에 걸쳐 내린 3종 25점의 고문서로, 교지(敎旨) 등 관문서와 조선 후기 개인들이 일상적인 사회 경제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문서를 주고받기 위해 작성하였다. 1989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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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무주의 열녀는 『무주 군지(茂朱郡誌)』 ‘무주의 열녀’ 항목에 모두 53명이 나온다. 무주 지역 열녀들을 살펴보면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남편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친 헌신적인 여성들을 만나볼 수 있다. 먼저 병든 남편을 위하여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남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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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에 있는 사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조선 시대 비. 사유정(四柳亭)은 유산(柳山) 유도(柳燾)[1807~1894]가 시를 읊던 정자로,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趙斗淳)이 기문(記文)을 짓고, 이조 판서를 지낸 위사(韋史) 신석희(申錫禧)가 서문(序文)을 지었다. 지금은 훼철되고 터에 기념비만 남았다. 영모대(永慕臺)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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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오산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단천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 보면 오산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산 삼거리에서 성주군·무주군 설천면 방향의 무설로를 따라 약 1㎞ 정도 가다 보면 우측으로 구 전주 제사 공업 무주 공장이 있다. 공장의 남서쪽 일대에 오산리 유물산포지(吾山里遺物散布地)5가 위치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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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오희문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무주 일대 상황을 적은 일기. 오희문(吳希文)[1539~1613]의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호는 비연(斐然)이다. 장성 현감을 지낸 오경민(吳景閔)과 남인(南寅)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인 연안 이씨(延安李氏)와의 사이에 인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오윤겸(吳允謙)이 있다. 『쇄미록』에 의하면 아버지 오경민이 처가살이를 하면서 어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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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무주 지방에 침입한 일본인 해적 집단과 그들의 침략 행위. 고려 시대 왜구는 고종(高宗) 때부터 고려 멸망까지 빈번하게 침략해 왔는데, 왜구가 집중적으로 출현했던 시기는 충정왕(忠定王) 이후 공양왕(恭讓王) 4년까지 약 40년간이며, 그중에서도 우왕(禑王) 재위 14년간에 가장 극심하였다. 기록상으로 볼 때, 고려 시대 전국적으로 529회 정도 왜구의 침입이 있었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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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 용포리 노고산 봉수(龍浦里老姑山烽燧)는 노고산(老姑山)[550.7m]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는 금강의 지류인 남대천(南大川)과 적상천(赤裳川), 삼류천 등이 합류하는 곳으로, 예로부터 수륙 교통의 요지로서 곳곳에 봉수와 산성이 분포되어 있다. 전라북도 장수군을 시작으로 무주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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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용포리에 있는 석기 시대·삼국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국도 제37호선을 따라 금산군 방향으로 가다 보면 용포교를 건너서 용포리 내요대 마을이 나온다. 내요대 마을에서 좀 더 가면 잠두 1교를 건너 잠두 마을이 보인다. 용포리 유물산포지(龍浦里遺物散布地)1은 내요대 마을 북쪽 210m~252.1m의 산등성이에 위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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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절터. 1698년(숙종 24)에 건립된 원통사 중창비(圓通寺重創碑)에 따르면, 원통사(圓通寺)가 신라 때 창건된 사찰로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한 창건 시기와 사역, 가람 배치 등은 알 수 없다. 비문에는 조선 숙종(肅宗) 때 승려 탄언과 도영, 혜옥, 일학 등이 법당과 종각을 중창하고 동종을 주조하는 등의 대불사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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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행정 구역. 조선 초기 지방의 행정 구역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을 통합하여 무주현(茂朱縣)을 설치하고 면리제(面里制)를 정비하여 국가 통치를 강화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898년(고종 35)에 편찬된 『적성지(赤城誌)』에는 유가면에 길왕(吉旺)·내사(內斜)·외사(外斜)·상가(上加)·중가(中加)·하가(下加)·이동(梨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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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화중(和中)이다. 유경제(柳景堤)[1802~1856]는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친부모의 품을 떠나 작은아버지의 양자(養子)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양가(養家)의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나 친가(親家)의 부모를 모시는 데 있어서나 언제나 지극정성을 다하였다. 특히 양아버지가 노환(老患)으로 위급한 지경에 이르자, 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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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초명은 유병옥(柳炳鈺), 자는 경보(景普), 호는 유산(柳山). 정숙공(貞肅公) 유정현(柳廷顯)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유한태(柳漢泰)가 순창에서 현 무주군 적상면 삼유리로 이주하였다. 아버지는 증호조 참판 후재(后齋) 유최영(柳最榮)이다. 1848(헌종 14) 생원시에 합격한 유휴(柳烋)가 동생이다. 유도(柳燾)[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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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에 있던 숙식을 제공하는 편의 시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교통 요지나 험한 영로(嶺路) 등에 설치되는 역의 보조 시설이었다. 대체로 역과 같은 장소에 원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고 칭하였다. 30리에 하나씩 설치되었으나, 지형에 따라서 평지에서는 멀고 산악 지대에서는 가까웠다. 이러한 원 제도는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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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서 확인되는 선사 시대~역사 시대 인류의 문화 흔적들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관련된 유물들이 일정 범위에 산포하여 확인되는 장소. 유물산포지(遺物散布地)는 무덤이나 가마터, 집터와 같은 특정한 유구의 흔적이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지표상에서 확인되는 유물의 분포 양상를 통해 어떠한 유구 또는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되는 장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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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명국(鳴國)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다. 유봉증(柳鳳增)[1830~1856]은 1830년(순조 30)에 태어나, 1848년(현종 14)에 소과(小科)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1856년(철종 7)에 향년(享年) 27세로 사망하였다. 유봉증은 그의 동생인 유홍증(柳鴻增)과 함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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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길중(吉中), 호는 화은(華隱). 뒤에 유형(柳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유인성(柳寅誠)[?~?]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감영(監營)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스승의 사후에는 산장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마에 전념하였으며 때때로 향교인 명륜당(明倫堂) 양사재에서 후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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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유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큰 문화유산과 이에 준하는 고고 자료. 문화유산[Cultureal Heritage]이란 조상들이 남긴 산물로서 당시인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으며, 한 나라와 민족의 구체적 표상으로 정체성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근래에는 제3차 산업의 꽃이라는 관광 산업과 연계되어 점차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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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익녀(翼汝)이다. 아버지는 돈녕부 동지사(敦寧府 同知事)를 지낸 유도(柳燾)이고, 큰형은 유봉증(柳鳳增), 작은형은 유학증(柳鶴增)이다. 유홍증(柳鴻增)[1850~1879]은 1850년(철종 1)에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형들을 존경하여, 형들을 대할 때 언제나 부모를 대하듯 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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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은산리 유물산포지(銀山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 일대를 흐르는 남대천(南大川) 주변의 충적 대지 및 산줄기 하단부에 위치한다. 은산리 유물 산포지1은 무주군 무풍면 은산리에 자리한 속동 마을에 동남쪽으로 인접한 경작지와 계곡부에 위치하는데, 지형 훼손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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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개항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김해김씨 문중 소장 고문서. 1711~1882년에 발급된 읍내리 김해 김씨 문중 고문서(邑內里金海金氏門中古文書)는 입안(立案) 2점, 교지(敎旨) 2점, 첩(帖) 10점, 전령(傳令) 33점, 완문(完文) 1점, 준호구(準戶口) 21점 등 6종 69건이다. 모두 낱장으로 각 고문서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1711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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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죽항로를 따라 북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산리~당산리 간을 연결하는 도로가 나오는데, 이 도로에서 동쪽으로 수리재 아래 개간지 일대에 읍내리 유물산포지(邑內里遺物散布地)1이 위치한다. 무주 초등학교 북쪽의 뒷들 일대에는 읍내리 유물산포지2가 자리하고 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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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봉수. 향로봉(香爐峰)[420m]은 전라북도 무주군의 진산으로 봉수대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산의 정상부에는 기우단(祈雨壇)이 있었다고 전한다. 지명을 제외하고는 봉수와 관련된 문헌 기록이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다만 구전에 따르면, "조선 시대 순천 돌산도에서 서울 남산을 이어 주던 봉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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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이자 충신.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진(君珍), 호(號)는 두촌(斗村). 형은 이만번(李晩蕃)이다. 이만경(李晩景)[1691~1776]은 1691년(숙종 17)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태어났다. 이만경은 성품이 올바르고 학문도 뛰어나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뿐만 아니라 청렴하여 사사로운 물욕이 없었다. 그래서 집안은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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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은거한 유학자. 본관은 완산(完山). 자는 의소(儀韶), 호는 설천(雪川).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충문공(忠文公) 소재(疏齋) 이이명(李蓬命)이고, 아버지는 일암(一庵) 이기지(李器之)이다. 이봉상(李鳳祥)은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任士禍)로 할아버지 이이명이 사사(陽死)되자 무주 설천(雪川)으로 몰래 들어와 은거하였다. 총명함이 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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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무신. 이손(李蓀)은 본관은 경주(慶州), 정순공(靖順公) 이성중(李誠中)의 후손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 서면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訓練院奉事)를 역임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의주에서 적과 싸우다가 순절(殉節)하였는데, 그가 타던 말이 혼자 집으로 돌아와 슬피 울며 주인의 정충(精忠)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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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주계 지역을 봉지로 받은 종친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연(伯淵), 호는 성광(醒狂)·묵재(默齋)·태평진일(太平眞逸). 증조할아버지는 효령 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이고, 아버지는 평성군(枰城君) 이위(李偉)이다. 어머니는 부사 채신보(蔡申保)의 딸 인천 채씨(仁川蔡氏)이다. 이심원(李深源)[1454~1504]은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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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몽필(夢弼), 호는 경산(耕山). 동림(東林) 이이순(李以恂)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향사(香沙) 이규탁(李圭鐸)은 학행(學行)이 있었으며, 아버지 운촌(雲村) 이종익(李鍾翊)은 효행(孝行)으로 이름이 났다. 어머니는 정극순(丁克舜)의 딸 창원 정씨(昌原丁氏)이고, 부인은 박희양(朴熙陽)의 딸 반남 박씨(潘南朴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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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관련한 고문서가 전해 내려오는 조선 후기 무신. 이유길(李有吉)[?~1619]은 전라남도 해남 사람이었지만 뒤에 경기도 파주로 이사하였으며, 그가 전사한 뒤 가족이 파주에서 초혼장(招魂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유길의 종손이 무주군 일안면, 곧 현재의 안성면(安城面)에 살았기 때문에 무주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1989년 1월 연안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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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고, 어머니는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다. 이유태(李惟泰)[1607~1684]는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금산은 본래 전라도 지역에 속하였으나 1963년 충청남도에 편입되었다. 김집(金集)의 천거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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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지역에 사당이 있는 고려수절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안지(安之), 호는 송우(松愚). 아버지는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 경원군(慶原君) 이반계(李攀桂)이다. 이반계는 고려 말 예부 상서(禮部尙書)를 지냈는데 조선 건국 후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1933년 세운 이반계의 신도비가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정암리에 있다. 손자는 이천익(李天翊)이다. 자는 거원(擧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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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열녀. 이이옥(李以沃)의 처 의성 정씨[1863~?]는 1863년(고종 1) 정재남(丁在南)의 딸로 태어났다. 천성(天性)이 단정(端正)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행동거지에 있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전혀 없었다. 이이옥과 혼인한 후에는 아녀자로서의 도리를 반드시 지켰다. 그런데 의성정씨가 이이옥과 혼인했을 때 시부모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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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부. 이철구(李喆龜)의 처 옥산 장씨는 이철구와 결혼한 후 홀로 된 시할아버지와 역시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여기에 또 남편마저 병에 걸려 몸이 편치 못하였다. 게다가 남편의 병은 해가 갈수록 깊어만 갔다. 그렇지만 시할아버지가 남편의 병에 대해 묻거든 언제나 "차도가 있다. 곧 나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시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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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별장을 짓고 시가를 즐겼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회진(會律)].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구(淸滾). 아버지는 관찰사를 역임한 임서(林㥠)이다. 임담(林覃)[1596~1652]은 1635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다. 병자호란 때 사헌부 지평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총융사의 종사관이 되어 남격대(南格臺)를 수비하였고, 화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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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조선을 침략한 일본에 의해 무주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일본은 경상도 동래부의 부산진 공격을 시작으로 조선에 대한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그 후 7년 동안 조선은 일본과 전쟁을 하였으며,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동아시아 삼국이 참전하는 전쟁으로 이어졌는데, 이 전쟁을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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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김해김씨 문중 소장 고문서.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는 옛적부터 장터가 있어 진안(鎭安), 장수(長水), 함양(咸陽) 등지의 장꾼들이 문물을 교역하던 곳이다. 본래 금산군에 속했는데 1674년 무주 도호부 승격 때 무주에 편입되어 이안면에 속했으며, 1914년 안성면 소재지가 되었다. 그 당시 장기리에는 산미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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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장기리 유물산포지(場基里遺物散布地) 6개소는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 사방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다.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 북서쪽에 자리한 안성 농공 단지 맞은편 뜰이 장기리 유물 산포지1에 해당되고, 안성 고등학교 북동쪽에 자리한 구릉 하단부가 장기리 유물 산포지4에 해당된다. 장기리 유물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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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장덕리 장평 마을에 있는 철 생산 유적. 장덕리 야철지(長德里冶鐵址)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장덕리에 위치한 장평 마을에서 동북쪽으로 200m가량 떨어진 배아골로 불리는 골짜기 내부에 입지한다. 배아골은 장평 마을을 동북쪽에서 감싸고 있는 산줄기 사이에 형성된 골짜기로 총길이가 1.1㎞로 깊고 험준하다. 2007년에 원광 대학교 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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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장덕리에 있는 고려 시대 유물 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장덕리 수한 마을 앞에 남대천(南大川)을 건너는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민가로 들어가는 소로로 이어진다. 장덕리 유물산포지(長德里遺物散布地)는 소로 주변의 안골에 위치한다. 능선의 말단부에 자리하며, 능선의 중단부와 정상부에는 장덕리 반딧불이와 먹이 서식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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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장백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서 단천로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 보면 오산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산 삼거리에서 성주군·설천면 방향의 무설로를 따라 약 4.3㎞ 정도 가면 우측 야산의 큰 패골, 작은 패골로 들어가는 도로가 보인다. 이 도로를 따라 약 400m 정도 가면 도로 우측 야산에 장백리 유물산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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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 김해김씨 문중 소장 고문서.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는 부남면의 최남단에 위치한 지역으로, 옛적에는 지삼치(芝三峙)를 넘어 가정자(柯亭子)에서부터 평당(平堂), 대티(大峙), 대소(大所), 도소(島所), 대곡(大谷)에 이르기까지 부남방(富南坊) 전 지역의 행정을 관장한 곳이었다. ‘큰 골짜기’라는 뜻으로 ‘한실’, ‘대곡(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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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가마터.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 교동 마을에서 지방도 제635호선을 따라 부남면 소재지 방면으로 1.5㎞쯤 가면 식암 마을이 나오는데, 식암 마을 남쪽 구릉지에 장안리 백자 가마터가 위치한다. 무주군 부남면과 진안군 안천면 경계에 위치한 쌍교봉[633m] 동쪽 기슭 말단부에 해당하며, 고창천이 북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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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남면 가장 남쪽에 장안리가 위치하고 있는데, 무주군과 진안군을 이어 주는 국도 제30호선이 장안리를 통과한다. 5개소의 장안리 유물 산포지(長安里遺物散布地)는 무주군 부남면 장안리 중심부에 위치한 교통 마을을 중심으로 위쪽에 2개소, 아래쪽에 3개소가 분포되어 있다. 장안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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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의숙(宜叔), 호는 오류정(五柳亭), 이명은 장응현(張應賢). 아버지는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장필무(張弼武)이고, 동생은 장지현(張智賢)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순절하였다. 장의현(張義賢)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서 출생하였다. 1573년(선조 6) 비변사(備邊司)에서 무장으로 천거하여 관직에 나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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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명숙(明叔), 호는 삼괴(三槐)·백야(柏冶). 아버지는 청백리로 알려진 백야(栢冶) 장필무(張弼武)[1510~1574]로, 장지현은 둘째 아들이다. 장지현(張知賢)[1536~1592]은 어린 시절 아버지 밑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다. 당쟁이 심하여 관직에 나아갈 뜻을 접고 고향인 무주 지역에서 문무에 힘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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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죽계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무신. 본관은 구례(求禮). 자는 무부(武夫), 호는 백야(栢冶). 할아버지는 군수 장사종(張嗣宗)이며, 아버지는 장근(張謹)이다. 어머니는 심씨(沈氏)로 1510년(중종 5) 태어났다. 충청북도 영동군 출신으로 아들은 장의현(張義賢), 장지현(張知賢)이다. 장의현이 무주 지역에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장지현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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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고지. 사고(史庫)란 고려 말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실록 등을 비롯하여 나라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였던 곳이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내사고인 춘추관(春秋館)을 비롯하여 충주 지역과 전주 지역, 성주 지역 등 네 곳의 사고가 운영되었는데,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주 지역을 제외한 모든 사고가 소실되었다. 이에 1603년(선조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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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호국사의 창건 내력을 기록한 비. 적상산성 호국사비(赤裳山城護國寺碑)는 적상산성 안에 설치되었던 적상산 사고(赤裳山史庫)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선원록(璿源錄)』을 지키던 수호 사찰(守護寺刹) 호국사(護國寺)의 창건 역사를 기록하여 세운 비이다. 비에는 1643년(인조 21) 이식(李植)이 왕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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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과 적상면 일대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현재의 무주 지역은 백제와 신라가 각기 영유하던 지역이다. 즉 적천현(赤川縣)[주계현(朱溪縣)]은 마한에서 백제로 이어진 지역이고, 무산현(茂山縣)[무풍현(茂豊縣)]은 진한에서 신라로 이어진 지역이다. 적천현 지역은 본래 마한의 영역이었으나,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 때에 이 지역을 차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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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북도 무주 지역 역사. 조선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1414년(태종 14)에 전국을 8도제로 바꾸는 행정 구역 개편을 실시하였다. 주계(朱溪)와 무풍(茂豊)이 통합되어 무풍의 '무(茂)'와 주계의 '주(朱)'를 따서 '무주(茂朱)'라는 새로운 지명이 만들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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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성터. 주계고성(朱溪古城) 터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는 '성안'이라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삼국 시대 백제의 동쪽 변방에 위치한 적천현(赤川縣)의 읍성(邑城)이었다. 무주 지역의 동쪽인 무풍에 있던 신라의 무산현(茂山縣)[성(城)]과 대치하여 국경 지대의 보루(堡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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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일대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太祖)는 940년(태조 23) 전국의 군현(郡縣) 명칭을 개정하였다. 당시 군현 명칭의 개정이란 이전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새로운 명칭으로 고치기도 하여 고려식의 지방 군현으로 정비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방 군현 조직은 지속적인 변동을 거쳐 1018년(현종 9) 완성을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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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죽천리 고분군(竹川里古墳群)1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평장리 마을에서 남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매방제산(梅芳齊山)[765.6m]에서 동쪽으로 뻗은 지류의 끝자락에 자리한다. 주변은 명천(明川)이 흐르고 구릉과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어 유적이 자리하기에 좋은 입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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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죽천리 고분군(竹川里古墳群)2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무수동 마을에서 남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구릉에 위치한다. 주변은 북쪽으로 명천(明川)이 흐르고 있으며, 충적지와 구릉이 형성되어 유적이 자리하기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2003년에 군산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장수군과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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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죽천리 고분군(竹川里古墳群)3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 신무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만봉(萬峯)[515.9m]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구릉의 남쪽과 남동쪽에 고분군이 자리한다. 2003년에 군산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장수군과 주변 지역의 고분에 대한 지표 조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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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봉수. 죽천리 만봉 봉수(竹川里萬峯烽燧)가 위치한 만봉(萬峯)[1,046.5m]은 전라북도 무주군의 서쪽을 감싸고 있는 백두 대간(白頭大幹)의 고봉 중 하나이다. 만봉의 북쪽에는 예로부터 영남과 호남을 이어 주던 주요 고갯길인 동엽령이 있는데, 동엽령을 사이에 두고 죽천리 만봉 봉수와 덕산리 향적봉 봉수(德山里香積峯烽燧)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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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 매방제산(梅芳齊山)[776.1m]의 동쪽과 서쪽에는 금강의 지류를 따라 형성된 수륙 교통로가 발달되어 있으며, 이 교통로를 따라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장수군까지 한 갈래의 봉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죽천리 매방제산 봉수(竹川里梅芳齊山烽燧)는 이 봉수로상에 위치하는데, 남쪽으로는 장수군 매봉 봉수와, 북쪽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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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죽천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죽천리 유물산포지(竹川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의 남쪽에 인접한 죽천리의 갈마 마을과 평장 마을 일대에 위치한다. 안성면 주민 자치 센터에서 안성로를 따라 남서쪽으로 1.9㎞ 정도 가다 보면 평장 마을이 나온다. 죽천리 유물산포지2~죽천리 유물산포지4는 평장 마을의 북쪽과 남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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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김녕김씨 문중 소장 고문서. 무주의 김녕김씨는 1782년 무신(戊申)의 난(亂)을 즈음하여 진안에서 무주군 적상면으로 이거(移居)하였는가 하면, 무풍의 김녕김씨는 함양에서 무풍으로 이거한 이후 대대로 세거(世居)하고 있다. 증산리 김녕김씨 문중 고문서(曾山里金寧金氏門中古文書)는 1897년을 전후해서 석항리 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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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증산리 유물산포지(曾山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의 석향 마을과 원증산 마을에 분포한다. 증산리 유물산포지1~증산리 유물산포지3은 모두 남대천(南大川) 동쪽에 위치한 충적 대지와 인근의 산줄기 하단부에 자리한다. 증산리 유물산포지1은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에 있는 석향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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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지성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지성리 유물산포지(池城里遺物散布地)는 남대천(南大川) 동쪽에 위치한 산줄기 및 계곡 하단부에 분포한다. 분양 서원(汾陽書院) 인근에 지성리 유물 산포지1과 지성리 유물산포지2가 위치하고 있으며, 지성리 유물산포지1에서 동남쪽으로 1.4㎞ 떨어진 오동 마을 인근에 지성리 유물산포지3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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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진도리 고분군(眞道里古墳群)1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진원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봉화산(烽火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지류의 끝자락에 고분군이 자리한다. 남쪽으로는 구량천(九良川)이 흐르며, 충적지가 형성되어 고분이 자리하기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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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군. 진도리 고분군(眞道里古墳群)2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 효자촌 마을 북동쪽에 위치한 오양골에 자리한다. 고분군은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25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남-서 방향으로 뻗은 지류의 비탈부에 자리한다. 실제 주소는 무주군 안성면 사전리 산28-1번지이다. 2007년에 원광 대학교 마한·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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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안성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국가 지원 지방도 제49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1.3㎞ 가면 무주 안성 농공 단지가 나오는데, 무주 안성 농공 단지에서 다시 380m 가면 구량천(九良川)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150m쯤 가면 두 갈래 길로 나뉘는데 이곳에서 9시 방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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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있는 삼국 시대 봉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소재지의 동북쪽에 높게 솟아 있는 봉우리가 봉화산(烽火山)[884m]이다. 봉화산은 무주군 안성면과 적상면의 경계를 이루며, 그 남쪽에 도치, 서쪽에 오두치 등의 고갯길이 한눈에 조망된다. 도치와 오두치는 현대화된 도로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무주군 안성면 일원에서 진안군과 충청남도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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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진도리 유물산포지(眞道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의 서쪽에 자리한 진도리의 진원 마을과 벌모 마을, 상오동 마을, 하오동 마을, 오천 마을, 진원 마을 일대에 자리한다. 진도리 유물산포지1~진도리 유물산포지4는 구량천(九良川)을 따라 천변에 분포하고 있다. 진도리 유물산포지1은 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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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대차리에 있는 조선 전기 정자 터. 집승정(集勝亭)은 조선 시대 학자인 삼암(三巖) 박이겸(朴以謙)[1553~1613]의 아버지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힘을 합해 지은 정자이다. 박이겸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후(德厚), 호는 의재(毅齋)·삼암이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沃川) 지역에서 태어나 무주 지역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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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철기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청동기 시대가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와 청동기를 표지로 하는 시대라면, 철기시대는 철기를 표지로 하는 시대이다.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시대는 세계적으로 공인된 고고학적 편년 체계로서 덴마크의 톰센(C. J. Thomsen)이 제안한 3시대법(三時代法)에 근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청동기의 발전과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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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원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철목리 유물산포지(哲木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무풍 삼거리와 무풍 사거리를 흐르는 남대천(南大川) 주변 경작지와 산줄기 하단부에 분포한다. 철목리 유물산포지1은 무풍 사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서북쪽으로 약 1.2㎞가량 이동한 지점의 주변 경작지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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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고 민무늬 토기를 사용하던 시대. 우리나라의 청동기시대는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無文土器)] 문화와 청동기 문화로 대표되는 시대로서 토기와 청동기에 대한 문화적·시대적 비중이 매우 높다. 청동기시대는 조기,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민무늬 토기에 대한 연구 성과가 반영되어 있다. 이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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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설천 초등학교와 설천 중·고등학교가 있는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로부터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 정도 가다 보면 설천들이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는 무장골이 자리한다. 최근 무장골에 태권도원이 조성되었는데, 태권도원 중앙에 가설된 십(十)자 도로 교차점의 동편에 2기의 고인돌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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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 무주 반디랜드에서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600m 정도 가면 진평 마을 입구가 나온다. 진평 마을을 가로질러 가면 민가가 나오는데, 민가 끝자락 인근에 청량리 고인돌 떼2가 위치한다. 이곳은 곡간의 비탈면에 해당한다. 청량리 고인돌 떼2에 대한 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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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 무주 반디랜드에서 마을 농로를 따라 서남쪽으로 650m 정도 들어가면 원청량 마을 또는 원청 마을이 나온다. 마을 회관에서 골짜기 쪽으로 100m쯤 더 들어가면 청량리 고인돌 떼3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상대적으로 좁은 곡간 평지에 해당한다. 청량리 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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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떼.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와 소천리 사이에 소재하는 남대천(南大川) 변 온팽이들 한가운데에 청량리 고인돌 떼4가 조성되어 있다. 동서로 가로지르는 국도 제30호선을 중심으로 바로 남쪽에는 온팽 마을 회관이, 북쪽에는 비닐하우스와 논으로 경작되는 온팽이들이 있는데, 마을 회관에서 북쪽으로 9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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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에 있는 청동기~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에는 9개소의 유물산포지가 남대천(南大川) 주변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남대천은 설천면을 지나 금강(錦江) 상류로 합류되는 금강 수계권에 속한다. 청량리 유물산포지(淸凉里遺物散布地)는 무주 반디랜드에서 무주군 설천면 소재지로 가는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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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청량사(淸凉寺)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운영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여지도서(輿地圖書)』와 『무주부 읍지(茂朱府邑誌)』, 『적성지(赤城誌)』 등의 기록에는 18세기~19세기경에 운영된 것으로 전한다.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청량리 진평 마을에서 남쪽의 백운산(白雲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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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는 처음에는 지금의 상산(上山)인 산미촌(山味村)에서 살았는데, 이 터에 서재(書齋)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초려정(草廬亭)’이라 하였다. 초려정에서 매일 학자들과 학문을 연구하며 수련하였다고 한다. 이유태는 스승 김집(金集)의 천거로 1634년(인조 12)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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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호는 채포(蔡圃). 죽헌(竹軒) 최활(崔活)의 6세손이다. 최봉래(崔鳳來)는 어려서부터 몸집이 좋은 거인(巨人)이었다. “살아서 세상에 유익함이 없고, 죽어서 후세에 남김이 없으면 누가 대장부라 하랴.” 하면서 경사(經史)를 두루 탐구하고 무예를 열심히 닦았다. 1728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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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화가. 가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이가환(李家煥)[1742~1801]은 본관을 경주라고 하였다. 한편, 조병유(趙秉瑜)의 『적성지』, 장지연(張志淵)[1864~1921]의 『진휘속고(震彙續考)』·『일사유사(逸士遺事)』, 오세창(吳世昌)[1864~1953]의 『근역서화징』 등에는 무주 최씨로 나온다. 그런데 무주 최씨는 주계 최씨로도 불렸으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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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아명은 승대(承垈), 호는 송포(松圃). 아버지는 효행과 학문으로 이름이 높고, 무주 죽림사(竹林祠)에 위패가 봉안된 최활(崔活)이다. 최익붕(崔翼鵬)[1810~1872]은 1810년(순조 10)에 태어났다. 풍채도 좋고 재주도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무엇보다도 효심이 깊었다. 최익붕은 아버지가 병환으로 누워 있자, 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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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죽림사에 제향된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원(淸源),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최영보(崔永甫)이다. 최활(崔活)[?~?]은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여묘살이를 하였다. 성품이 청렴하고 검소하였다. 평생 정주학(程朱學)을 연마하는 데 전념하였는데, 특히 『소학(小學)』의 실천을 역설하면서 많은 후학을 양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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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포내리에 있는 삼국~고려 시대 유물산포지. 유물산포지는 발굴 조사의 결과에 따른 명칭은 아니며, 사전 조사인 지표 조사에서 뚜렷한 유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땅 위의 일정한 장소에 유물이 흩어져 있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하의 어떤 유구가 파괴되면서 유구 안에 있던 유물이 밖으로 노출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되며, 문화재 지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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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무주군에 설치한 행정 구역. 조선 초기 지방의 행정 구역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백제와 신라의 접경 지역을 통합하여 무주현(茂朱縣)을 설치하고 면리제(面里制)를 정비하여 국가 통치를 강화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898년(고종 35)에 편찬된 『적성지(赤城誌)』에는 풍서면에 설천(雪川)·나니(羅泥)·불대(佛垈)·북동(北洞)·이남(伊南)·덕곡(德谷)·미천(美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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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풍호정(風乎亭)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철목 마을 입구에 있는 철목교를 지나 마을로 약 100m 들어오면 오른쪽의 느티나무 숲에 있었다고 한다. 오래 전에 마을의 선비들이 모여 미풍양속(美風良俗)을 지키기 위해 향약(鄕約)을 만들고 이를 제대로 행하기 위해 지었던 정자로, 마을 사람들은 이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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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유생이자 의인.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천휴(天休). 아버지는 양사재를 세우고 교화를 펼친 하재황이며, 아들은 무주 향교 대성전(茂朱鄕校大成殿)을 보수하고 후학을 양성한 하태호이다. 하대호(河大鎬)[1819~1870]는 지금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편 현내리에서 출생하였다. 1866년(고종 3) 8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하여 일으킨 병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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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무주 백산 서원 타진사에 배향된 문신. 하연(河演)[1376~1453]은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상왕(上王)이던 태종(太宗)과 세종 사이를 오가며 중개자 역할을 하여 그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외직과 내직을 번갈아 지내면서 영상(領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관직 생활을 하였다. 때로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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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무주 출신의 유학자이자 자선가. 본관은 진주. 자는 자범(子範), 호는 운파(雲波). 조선 초에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 하연(河演)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하진규(河鎭圭)이다. 하재만(河在萬)[1832~1909]은 1832년(순조 32)에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서 태어났다. 기상이 높고 엄숙하였으며, 강직하고 씩씩하면서도 재능과 도량이 있었다. 부모에게 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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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서(景瑞), 호는 서악(瑞岳).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부인은 이경국(李慶國)의 딸이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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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문서(文瑞), 호는 수용(睡慵).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하징도(河徵道)는 하위국의 첫째 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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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군범(君範), 호는 백고(栢皐).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하재황(河在璜)이고, 아버지는 하대호(河大鎬)이다. 하재황은 백록동 서원(白鹿洞書院) 규약과 남전 향약(藍田鄕約)을 강구하여 고을을 교화하였고, 사창(社倉) 운영 책임을 맡아 흉년이 들자 농민들을 위해 환곡(還穀) 대신 쭉정이를 받아들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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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휘서(輝瑞), 호는 모정(茅亭).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형제로 하징도(河徵道), 하정도(河呈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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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처사.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서(明瑞), 호는 취은(醉隱).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문효공(文孝公) 하연(河演)의 10세손이다. 아버지 사양재(四養齋) 하위국(河衛國)이 임진왜란 때 무주 백운산(白雲山)으로 들어와 난을 피한 후 무풍면 현내리에 정착하였다.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일(金鎰)의 딸이다. 형제로 하징도(河徵道), 하정도(河呈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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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향산사 소장 불서. 향산사(香山寺)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 있는 작은 사찰로, 3·1 운동 당시 민족 대표 중 한 명인 용성(龍城) 대사가 창건하였으며, 1936년 선파(禪波)에 의해 중건되었다. 경내에 대웅전, 나한전, 산신각 등을 갖추고 있다. 향산사에는 여러 곳에서 전래된 비교적 많은 수의 불교 전적이 소장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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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있는 삼국~조선 시대 유물산포지. 현내리 유물산포지(縣內里遺物散布地)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무풍면 주민 자치 센터 인근을 흐르는 남대천(南大川) 주변의 경작지와 산줄기 하단부에 위치한다. 현내리 유물산포지1은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 자리한 북리 마을 회관에서 동북쪽으로 170m 떨어진 계곡부와 산줄기에 위치하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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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흥양이씨 문중 소장 고문서. 흥양이씨는 연산군(燕山君) 재위 시절 낙남하였던 이맹훤(李孟暄)과 그 후손들로, 이맹훤의 본관은 흥양(興陽)이고, 자는 중호(仲浩)이다. 아버지는 봉상 판사(奉常判事)를 지낸 이계삼(李繼參)이며, 할아버지는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이균(李均)이다. 성종 때 해적(海賊)이 회령에 침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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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환수정(喚睡亭)은 1707년(숙종 33)에 무주 부사(茂朱府使) 조구상(趙龜祥)이 지은 관아의 누정이다. 1872년(고종 9)에 부사 정익영(鄭翼永)이 남루(南樓) 2칸을 증축하면서 문의 이름을 ‘천일(天日)’이라 하였다고 한다. 환수정은 무주군 무주읍의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사라졌으나, 규장각(奎章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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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무주 출신의 효부. 황재성(黃在成)의 처 강릉유씨[1855~1932]는 1855년(철종 6)에 전라북도 무주군에서 태어났다. 17세 때에 황재성과 혼례를 올렸으며, 당시 시댁에는 90세를 넘긴 시부모가 있어, 시부모를 언제나 친부모처럼 지극정성을 다하여 섬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황재성의 처 강릉유씨야말로 진정한 효부(孝婦)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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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예술가. 황종혁(黃鐘赫)[1813~1865]은 전라북도 무주군 부내면[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창원(昌原). 호는 신석(臣錫)이다. 벼슬은 감찰(監察)까지 올랐으며, 무주 출신의 예술인으로 조정의 현관(顯官)들과 벗하였다. 또한 황종혁은 글과 그림, 그리고 가야금과 거문고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기교로 명성이 높아 조정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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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남부와 설천면 남부 일대에 설치한 말단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부곡(部曲)·처(處)·장(莊)과 함께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 구역으로, 고려의 독특한 군현제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소의 거주민들은 정부에 대하여 특수한 역역(力役)이나 공역(貢役)의 의무를 짊어졌다. 소는 생산물의 종류에 따라 금소(金所)·은소(銀所)·동소(銅所)·철소(鐵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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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무주 출신이거나 무주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한자 문화권에서 효(孝)는 자식이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뜻한다. 잘 공경하고 받들고, 모시고, 봉양하는 것을 가리킨다. 공자(孔子)는 효에 대해 “어김이 없는 것[無違]”으로, “예(禮)로써 섬기는 것”[『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이라고 하였다. 부모를 대함에 예에 어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