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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 덕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1745
한자 告祀德談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집필자 남동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요|무가
기능구분 무가
가창자/시연자 한춘수
채록 시기/일시 1996년 - 「고사 덕담」 채록
채록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가창권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및 인천 일원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및 인천 일원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및 인천 일원에서 풍물놀이나 굿 등에서 기원의 의미로 부르는 민요.

[개설]

「고사 덕담(告祀 德談)」은 정월 대보름지신밟기[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행해져 온 민속놀이의 하나로 마을 사람들이 농악대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돌며 땅을 다스리는 신령을 달래어 연중 무사를 빌고, 집주인은 음식이나 곡식, 돈으로 이들을 대접한다] 또는 돌돌이[마을 사방에 장승을 깎아 세워 놓은 다음 오방신장을 쓴 깃대를 들고 사방의 장승을 돌며 마을을 잘 지켜줄 것을 축원하는 것으로 마을굿의 성격을 반영하는 굿거리]로 각 가정의 안택(安宅)[집안에 탈이 없도록 무당이나 맹인(盲人)을 불러 가신(家神)들을 위로하는 일]을 비는 풍물놀이와 굿 등에서 불리는 민요로, 행해지는 의식과 창자에 따라서 가락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사설(辭說)도 조금씩 다르다.

[채록/수집 상황]

이선주의 『한국의 민요』 인천 지역 편에 1996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채록한 것을 포함한 3편의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구성 및 형식]

「고사 덕담」은 의식(儀式)과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사설과 가락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천에서 채록된 세 가지의 「고사 덕담」만 해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채록된 한춘수의 노래는 회심곡(回心曲)을 부를 때와 마찬가지로 상쇠를 두드리면서 부르는 반면,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는 북을 두드리면서 부르며, 인천광역시 중구에서는 장고에 맞추어 부르는 것이 채록되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고사 덕담」은 대체로 꽹과리 반주에 맞추어 부른다. 일정한 장단은 없으나 자진모리에 가깝고 가락은 경제(京制)[서울 지방에 유포되어 있는 시조의 창조(唱調)]에 가깝다.

[내용]

이선주의 『한국의 민요』에 실린 세 편의 노랫말 중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서 채록한 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해동은 대한국이요 처는 동남인데/인천시 아무동에서 이렇게 문전축원 고사덕담을 드리옵니다/상계우주 하날(늘)되고 지계 쫓아 땅이 생겼으니 삼강오륜이 으뜸이라/국태민안 명륜자요 시화연풍 돌아든다/이씨 한양이 등극 시에 삼각산이 귀봉하야/삼각산 뚝 떨어져 어정주춤 나린 줄기/봉학이 생겼으니 봉의 등에다 터를 닦고/학을 눌러 대궐을 짓고 대궐 밖에 육조로다/우학산은 각 도읍되고 왕십산은 청룡되고 동구재 마루는 백호가 되니/이씨 한양이 등극하여 오백년 누려갈 때/한양에두 이댁전에 집안 식구가 계신 데루 동서사방 출입을 하시면/성황살이 외태하니 성황살을 풀어보자/오다 가다가 성황살 돌무더기도 성황살/고개 고개가 성황살 영창목에두 성황살/양자목에두 성황살 외대백이두 성황살 쌍대백이두 성황살/산으로 가면 산신살 들로 가며는 들령살 도시로 가면 교통살/죽은 나무엔 동태살 혼인대사엔 주당살 아기 나며는(면은)/삼신살 삼신 끝에 부정살/도둑이 들며는 손재살 불이 나며는 화재살 동네방네 불안살/터왕터전을 접어드니 밖안마당에 접어드니 벼락살/대문삼간 접어드니 대문삼간에 수문장살/지붕마루에 용충살 마루대청을 접어드니 마루대청엔 성주살/건너방에는 문중살 안방 삼간 접어드니/아룻묵(랫묵)엔 제석살이요 이벽 저벽엔 벽화살 내외지간엔 공방살/횟대 끝에는 낙마살 어떤 낙마가 걸렸나/대주전 영감마마 입으시다 걸어둔 바지저고리 두루마기/도원명에도 부인마마 나들이치마는 열두 폭 집안치마는 여덟 폭/두 폭 세 폭은 행주치마 벽벽이도 걸어놓고/실밥에두 묻어들고 가위밥에두 따라든 잡귀잡신/휘몰아다 어주월강 소멸하고/일년을 사시자하니 일년도액이 두렵구나/일년도액을 풀어낼 제/정월 칠월이면 이팔월 이팔월이면 삼구월/삼구월이면 사시월 오동지 육섣달/일 년 허구두 열두 달 한 달 허구두 서른 날/하루 허구두 열두시 시시때때루 드는 액은/정월이라 드는 액은 정월이라 대보름날 액맥이 연으루 막아내구/이월 달에 드는 액은 이월이라 한식날 한식차례로 막아내구/삼월 달에 드는 액은 삼월이라 삼짇날 제비세끼루 막아내구/사월 달에 드는 액은 사월이라 초파일날 부처님전 관등놀이루 막아내구/오월 달에 드는 액은 오월이라 단오날 그네 줄에다 막아내고/유월 달에 드는 액은 유월이라 유두일날 비강천등으루 막아내고/칠월 달에 드는 액은 칠월이라 칠석날 견우직녀가 막아내구/팔월 달에 드는 액은 팔월이라 한가윗날 가베 송편으루 막아내구/구월 달에 드는 액은 구월이라 구일날 비만머리루 막아내구/시월 달에 드는 액은 시월이라 상달인데 고사반에다 막아내구/동짓달에 드는 액은 동짓달이라 동짓날 동지팥죽에 막아내고/섣달에 드는 액은 섣달이라 그믐날 흰떡가래 설떡 가래떡으로 막아내구/일 년 열두 달 드는 액은 의주월강으로 소멸하니/일 년 신수는 대길하리라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고사 덕담」은 대체로 정월 보름에 지신밟기 또는 돌돌이로 각 가정의 안택을 비는 풍물놀이와 굿 등에서 불린다. 이렇듯 정월에 주로 불리는 이유는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에 덕담을 들어야 그 해가 평안하다는 속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고사 덕담」은 한 해를 평안하게 보내려는 액막이 행사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현황]

정월 대보름 등 명절 때 마을 행사가 성행하던 시절만 해도 각 마을에는 「고사 덕담」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씩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시화로 인해 마을 행사가 거의 없어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서는 현재 「고사 덕담」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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