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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559
한자 鄭來祥
이칭/별칭 내지(來之),대숙(大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은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동래(東萊)
대표관직 인천도호부 부사|승지
출생 시기/일시 1643년연표보기 - 정래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79년 - 정래상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06년 9월 20일연표보기 - 정래상 인천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09년 7월 - 정래상 인천 부사 이임
몰년 시기/일시 1717년연표보기 - 정래상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10년 1월연표보기 - 정래상 청백 애민 선정비 건립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선정비 정래상 청백 애민 선정비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89[문학동 349-2] 인천 향교

[정의]

조선 후기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했던 문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이며, 자는 내지(來之)대숙(大叔)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역임한 정수(鄭脩)이고, 어머니는 김계(金啓)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역임한 유심(柳淰)의 딸 전주 유씨(全州柳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윤징문(尹徵文)의 딸 파평 윤씨(坡平尹氏)이다.

[활동 사항]

정래상(鄭來祥)[1643~1717]은 1675년(숙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679년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이어서 주서(主書), 의정부 사록(議政府司錄),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병조 좌랑(兵曹佐郞),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 홍문관 교리(弘文館敎理),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 등을 역임하였다. 정래상은 1690년(숙종 16) 장령으로 재임하면서 남인(南人) 정권 때 이미 처벌받은 민정중(閔鼎重)을 다시 처벌할 것을 주장하는 논계(論啓)에 반대 입장을 내세웠다. 이후 정래상은 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 철원 지방에 날뛰는 도적을 체포하는 토포사(討捕使) 등을 거쳐 1706년 인천도호부로 부임하여 1709년 7월까지 약 35개월간 부사를 역임하였다. 정래상은 1710년 승지를 거쳐 1712년 형조 참의(刑曹參議)를 지냈는데, 정시(庭試) 고관(考官)에 선출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가 파직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정래상이 인천도호부 부사에서 이임한 지 6개월 후인 1710년(숙종 36) 1월 정래상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청백 애민 선정비(淸白愛民善政碑)가 건립되었다. 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89[문학동 349-2] 인천 향교 앞 비석군에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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