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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547
한자 李天基
이칭/별칭 재원(載元),허주(虛舟)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은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연안(延安)
대표관직 인천도호부 부사|충청 감사
출생 시기/일시 1607년연표보기 - 이천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5년 - 이천기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65년 7월 26일연표보기 - 이천기 인천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65년 8월 17일 - 이천기 인천 부사 파직
몰년 시기/일시 1670년연표보기 - 이천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23년연표보기 - 이천기 묘갈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670년 7월 - 이천기 충청 감사에 증직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묘소|단소 이천기 묘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산매동

[정의]

조선 후기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했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자는 재원(載元), 호는 허주(虛舟)이다. 아버지는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이시정(李時程), 어머니는 진사 이형장(李亨長)의 딸 수안 이씨(遂安李氏)이다. 부인은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지낸 홍이일(洪履一)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활동 사항]

이천기(李天基)[1607~1670]는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며 예학(禮學) 사상가인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서 일찍부터 학문을 닦아 1633년(인조 11)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5년 알성시(謁聖試)[임금이 문묘에 참배한 뒤 실시하던 비정규적인 과거 시험] 병과(丙科) 4위로 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하였다. 1639년(인조 17) 예문관 대교(藝文館待敎), 다음해에는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에 제수되었다.

이천기는 정언으로 재직하던 중 1641년 광해군(光海君)의 초상 때 대사간(大司諫) 이덕수(李德洙)와 함께 예조(禮曹)에 올린 계사(啓辭)[논죄(論罪)에 관하여 임금에게 올리던 글]에 ‘백관이 변복하고 모여서 곡한다.’라는 등의 말로 물의를 빚자, “광해군연산군(燕山君)의 경우와는 다르고 인조(仁祖)가 특별히 은혜를 베푼 것이므로 신하가 감히 말할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천기는 나중에 이 말이 망령스러운 것임을 스스로 반성하여 삭탈관직(削奪官職)[죄를 지은 자의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벼슬아치의 명부에서 그 이름을 지우던 일]을 자청하였는데, 대사간 이명한(李明漢)의 상소도 있어 관직을 그만두었다.

이천기효종(孝宗) 연간에는 승문원 교리(承文院校理), 사간원 헌납(獻納), 홍문관 수찬(弘文館修撰), 이조 정랑(吏曹正郞), 홍문관 응교(應敎),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승정원 승지(承政院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이천기는 1664년(헌종 5) 호조 참의(戶曹參議), 우승지(右承旨)를 역임하고, 1665년 7월 26일 인천도호부로 부임하여 같은 해 8월 17일까지 약 1개월간 부사를 역임하다가 파직 당하였다. 이천기는 1667년(헌종 8) 예조 참의(參議), 다음해 공조(工曹) 참의 등에 제수되고, 1670년 철원 부사(鐵原府使)로 재임하다가 사망했다.

이천기는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살림이 가난하여 몸소 생업 활동에 종사하여 어머니를 섬겼고, 벼슬살이를 할 때는 한 가지 물건도 사사로이 취하지 않았다. 평생 재물을 멀리하여 서울에 집 한 채가 없었다고 한다.

[묘소]

이천기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산매동에 있다. 이천기의 묘소에는 봉분과 상석․향로석은 물론 묘갈, 문인석, 망주석 등이 함께 조성되어 있고, 인근에 2008년 건립된 신도비가 있다. 묘갈은 1823년(순조 23) 이천기의 후손들이 건립한 것으로 비신은 높이가 132㎝, 너비 57㎝, 두께 18㎝이며, 비문은 5대손인 이한명(李漢明)이 짓고 이시명(李蓍明)이 글씨를 썼다. 현재 이천기 묘갈의 탁본은 경기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탁본의 연대는 1980년대로 추정된다.

[상훈과 추모]

이천기는 1670년 7월 예조의 장계에 의해 종2품 충청 감사로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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