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510
한자 柳喉聲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오정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관(醫官)
성별
대표경력 인천 도호부사|내의원 전의|고양 군수|보국숭록대부
활동 시기/일시 1644년 2월연표보기 - 유후성 인천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46년 - 유후성 전의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57년 - 유후성 고양 군수 역임
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활동지 고양군 - 경기도 고양시
묘소 유후성 묘소 -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국사리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의관(醫官).

[활동 사항]

유후성(柳喉聲)은 침(鍼)으로 유명한 유의(儒醫)[의사이면서 유교의 교리에 통달한 사람]로 1642년(인조 20) 7월부터 12월까지 부평 부사(富平府使), 1644년(인조 22) 2월부터 4월까지 인천도호부 부사로 재직하였다. 유후성은 1646년(인조 24)부터 3년간 왕실의 전의(典醫)를 역임하였고, 1657년(효종 8) 고양 군수(高陽郡守)로 재직하면서도 수시로 대궐에 드나들며 침을 놓았다. 1658년 효종이 쾌유하자 그 공로로 숭록대부(崇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유후성은 1659년 효종의 승하하자, 당시 임금의 병을 돌보던 수의(首醫)로 그 책임을 물어 유배에 처해졌다. 그러나 현종 즉위 후에 다시 복직되어 어의로서 내의원에 봉직하였다. 유후성은 1662년(현종 3) 대비의 병을 완쾌시켜 정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 가자(加資)되었다. 이는 조선 시대 의관 중 생존자로서는 전례가 없는 높은 품계에 제수된 것이다.

유후성은 1667년(현종 8) 왕과 대비가 온양 온천에 행차할 때 수행 의원으로 동행하였다. 인조·효종·현종의 3대에 걸쳐 의관을 역임하였으며, 왕실과 멀지 않은 경기도의 외관직을 역임하며 왕실을 치료할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묘소]

유후성의 묘소는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국사리에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