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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475
한자 徐直修
이칭/별칭 경지(敬之),십우헌(十友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은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서화가
성별
본관 대구(大邱)
대표관직 인천도호부사
출생 시기/일시 1735년연표보기 - 서직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65년 - 서직수 진사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98년 12월 18일연표보기 - 서직수 인천 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99년 1월 7일 - 서직수 인천 부사 사직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6년 12월 29일 - 「서직수 초상」이 보물 제1487호로 지정
거주|이주지 거주 - 한성부 남부 명례방 명례동
거주|이주지 거주 - 한성부 남부 회현방 송현계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에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서화가.

[가계]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경지(敬之), 호는 십우헌(十友軒)이다. 아버지는 밀양 도호부사(密陽都護府使)를 역임한 서명인(徐命仁)이고, 어머니는 오위도총부 부총관(五衛都摠府副摠管)을 역임한 신사경(申思冏)의 딸인 평산 신씨이다. 선공감 부정(繕工監副正)을 역임한 조영극(趙榮克)의 딸 양주 조씨(楊洲趙氏)와 결혼하였다.

[활동 사항]

서직수(徐直修)[1735~?]는 오직 서화를 즐기며 일생을 보냈다고 하는데, 서직수의 단편적인 관력(官歷)이 이를 방증한다. 1765년(영조 41)에 진사시에 합격했고, 정조(正祖) 대에 북부 도사(北部都事), 공조 좌랑, 홍산 현감, 공주 판관 등을 잠시 역임했다. 1787년 12월 18일에 인천 도호부사로 부임했으나, 모친상을 만나 19일 만인 1788년 1월 7일에 사직하였다. 수원에 용주사를 세울 때 공사 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정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1771년에 한성부 남부 명례방 명례동에, 1789년에 한성부 남부 회현방 송현계에 거주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서직수 초상(徐直修肖像)」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2006년 12월 29일에 보물 제1487호로 지정되었다. 서직수가 62세였던 1796년에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인 이명기(李命基)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金弘道)가 몸체를 그린 합작품이다. 이 초상은 동파관(東坡冠)에 도포를 입고 흑색 광다회(廣多繪)[매듭을 엮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닥의 색색의 실로 만든 끈목]를 두르고, 버선발로 서 있는 좌안(左顔) 팔분면(八分面)의 전신 입상이다. 매우 뛰어난 형태 묘사와 투시법, 명암법을 구사하면서도 높은 품격을 보여 주어 정조 때 초상화의 백미로 꼽히는 걸작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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