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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446
한자 金蓍國
이칭/별칭 경징(景徵),동촌(東村)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오현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청풍(淸風)
대표관직 전라도 선유어사|인천도호부 도호부사|도승지|대사성|홍문관 제학|판의금부사
출생 시기/일시 1577년연표보기 - 김시국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13년 - 김시국 증광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15년 - 김시국 주서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18년 - 김시국 병조 좌랑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1년 - 김시국 전라도 선유어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24년연표보기 - 김시국 인천 도호부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25년 - 김시국 우부승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0년 - 김시국 도승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0년 - 김시국 대사성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6년 - 김시국 홍문관 제학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9년 - 김시국 판의금부사 임명
몰년 시기/일시 1655년연표보기 - 김시국 사망
부임|활동지 인천도호부 청사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매소홀로 553[문학동 343-2]지도보기

[정의]

조선 후기에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문신.

[가계]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경징(景徵)이고 호는 동촌(東村)이다. 아버지는 김급(金汲)이며, 할아버지는 김사원(金士元), 증조할아버지는 김여명(金汝明)이다. 어머니는 임보신(任輔臣)의 딸이다. 김낙(金洛)에게 입양되었다. 호조판서 김신국(金藎國)의 아우이다.

[활동 사항]

김시국(金蓍國)[1577~1655]은 1613년(광해군 5)에 증광시에 급제하고, 이듬해 홍문관에 들어갔다. 1615년(광해군 7)에는 주서(注書)가 되었다. 1618년(광해군 10)에 병조 좌랑이 되었다. 이후 직강(直講), 수찬(修撰), 부교리(副校理), 이조(吏曹) 좌랑(佐郞), 정언(正言) 등의 관직을 지냈다. 1621년(광해군 13)에는 전라도 선유어사(宣諭御史)가 되었으나 근무가 태만하고 직무에 실책이 많다는 대간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624년(인조 2) 인천도호부에 도호부사로 부임하여, 2개월간 재직하였다. 1625년(인조 3)에는 우부승지(右副承旨)에 제수되었고, 이듬해 우승지·참찬관에 올랐다. 1630년(인조 8)에 도승지로 승진하였으며, 1632년(인조 10)에는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40년(인조 18)에 대사성(大司成)이 되었고 이어 대사간을 지냈다. 1646년(인조 24)에는 홍문관 제학(提學)에, 1648년(인조 26)에는 도승지에 제수되었다. 1649년(효종 즉위년)에 판의금부사를 지낸 뒤 벼슬에서 물러났다. 형인 김신국의 후광으로 정계에 진출하였으나 큰 공적을 남기지는 못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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