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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문학동 도랑형 유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418
한자 仁川文鶴洞-遺構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김상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사 유적
양식 도랑형 유구[構狀遺構]
크기(깊이 60~90㎝
길이 56m
폭) 3~5m
소유자 인천광역시
관리자 인천광역시 시설 관리 공단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0년 5월 15일~2000년 7월 15일연표보기 - 인천 문학동 도랑형 유구 인하 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현 소재지 문학동 도랑형 유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 산 5-1
출토 유물 소장처 인하 대학교 박물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인하로 100[용현동 253]지도보기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산 산괴(山塊)의 동쪽 끝 비탈면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 유적.

[위치]

인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문학 경기장역에서 하차하면 인천 문학 경기장[인천 월드컵 경기장]이 나오는데 주경기장이 바로 ‘도랑 모양’[구상(溝狀)]의 유구가 있던 터이다. 유적의 위치는 행정 구역상 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 산5-1번지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인천광역시의 미추홀구와 연수구의 경계를 이루는 문학산의 동쪽 끝 비탈면에 있다. 이 지역은 신석기 시대에서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이 확인되고 있기에 선사 시대부터 근세까지 조선의 중심 지역일 가능성이 큰 곳으로 알려져 왔다.

출토 지역은 2002년 월드컵 경기가 개최된 인천 문학 경기장 지역이다. 이 지역은 1999년 8월 인하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실시된 문학산 일대 지표 조사 결과 백제 시대의 것으로 판단되는 두드림 무늬 토기가 다수 발견되어 관련 유적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된 곳이다.

우선 경기장 건설로 형질 변경이 수반되는 약 700평에 대한 시굴 조사를 시행한 결과 청동기 시대 도랑형 유구 한 기와 근대 민묘 여러 기가 확인되어 전면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하였다. 인하 대학교 박물관과 기전 문화재 연구원이 2000년 5월 15일부터 같은 해 7월 15일까지 발굴 조사를 하였다. 발굴 조사를 진행한 결과, 도랑형 유구 한 기, 타원형 수혈 유구(橢圓形竪穴遺構) 한 기, 근대 민묘 열한 기가 확인되었다.

도랑형 유구에서는 민무늬 토기 조각과 함께 간석기, 석기 반제품(半製品)이 주로 확인되었다. 토기는 저부(底部)만 남아 있는 것들이 몇 점 확인되었고, 간석기는 돌살촉, 돌도끼, 반달꼴 돌칼, 고석[무덤 앞의 상석을 괴는 북 모양 돌], 기타 갈판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구석기 시대 차돌[석영(石英)]로 만든 뗀석기가 확인되어 구석기 시대 유적의 부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씨앗과 목탄도 일부 검출되었다.

[형태]

도랑은 구릉 가운데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서 남서에서 북동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도랑의 평면 형태는 약간 굴곡진 부분도 있지만, 거의 ‘|’자로 조성되어 있다. 도랑이 확인되는 제일 윗부분은 폭이 좁게 형성되어 내려오다가, 가운데 부분은 폭이 넓게 두 갈래로 형성되어 있다. 도랑의 시작 지점으로 보이는 구릉의 정상부는 조사 지역의 제한으로 확인하지 못하였고, 끝 부분은 완만한 경사로 자연 퇴적이 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규모는 길이 56m, 폭은 3~5m이며, 깊이는 60~90㎝, 경사각도는 약 12°이며, 해발 54.5m에서 시작하여 44.7m까지 조성되어 있다.

도랑의 축조 상태는 구릉의 자연 계곡부를 단면 ‘V’자형이나 ‘U’자형으로 완만하게 굴착하여 조성하였다. 도랑형 유구의 바닥에는 자연석이 군데군데 깔려 있는데, 이 중에는 타격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는 것도 있다.

[현황]

현재 도랑형 유구가 조사된 지역에는 인천 문학 경기장의 주경기장이 건설되었고, 출토 유물들은 인하 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지역에서 백제 초기 두드림 무늬 토기 조각들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미추홀의 존재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기대 속에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두드림 무늬의 백제 토기 조각이 확인되고 있어, 삼국 시대 전기 소국(小國)의 중심지였을 개연성을 확인해 준 조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학산 산괴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인천 지역의 중심부였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고*** 仁川文鶴洞-遺構 → 仁川文鶴洞溝狀形遺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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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인천미추홀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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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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