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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414
한자 鶴林寺址
이칭/별칭 학림사지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김영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절터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9년 5월연표보기 - 학림사 터 인천시립 박물관에서 조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1317년연표보기 - 학림사 중수
소재지 학림사터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
출토 유물 소장처 인천광역시립 박물관 -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량로 160번길 26[연수구 옥련동 525]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었던 고려 시대 사찰 터.

[개설]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었던 학림사라는 절의 터이다. 1945년 5월 조사로 발견된 기와 조각의 명문을 통해 1317년(충숙왕 4)에 중수되었던 사찰로 보고 있다.

[변천]

학림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 『인천부 읍지(仁川府邑誌)』 등에 기록이 나와 있지 않아 그 변천 과정은 알 수 없다.

[위치]

학림사는 대략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학익 1동 학익 초등학교 운동장과 그 뒷산 일부에 걸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인천 공립 고등 여학교[지금의 인천 여자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노무라[野村]가 지금의 학익 초등학교 인근에서 주춧돌 일부와 고려 시대 자기 조각과 기와 조각 등을 일부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1949년 5월에 인천시립 박물관 관장이었던 이경성(李慶成) 일행이 학림사 터를 조사였지만 학림사 터의 남측 일부가 학익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변하여 뒷면 일부만을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 당시에 보리가 무성하여 주춧돌은 확인할 수 없었고 문양이 있는 기와와 물고기 모양 기와의 조각, 고려자기 조각 등 다수를 수집하였다고 한다. 특히 ‘연우 4년 3월 중수(延祐四年三月重修)’라는 명문(銘文)[금석(金石)이나 기명(器皿) 따위에 새겨 놓은 글]이 있는 기와 조각을 발견하여 학림사가 1317년에 중수된 사찰로서 고려 시대 사찰임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현황]

지금은 학림사 터의 자취를 확인할 수 없다. 한편 학림사 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현재 인천광역시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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