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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396
한자 仁川鄕校-碑石群
이칭/별칭 인천 부사 선정비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349-2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배성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적|비석
양식 송덕비
관련인물 이희조|황운조|구완식
재질 석재
크기 98~176㎝|27~64㎝|15.5~28㎝
소유자 인천광역시
관리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
건립 시기/일시 조선 시대 - 인천 향교 앞 비석군에 있는 비석들 제작
현 소재지 인천 향교 앞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349-2지도보기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조선 시대 인천 부사 및 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인물들의 선정비군.

[개설]

선정비(善政碑)는 일명 송덕비(頌德碑), 유애비(遺愛碑)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관직에 있는 사람이 백성들에게 은혜와 교화를 끼쳤을 때 이를 기념하고 칭송하는 의미에서 세우는 비석을 말한다. 송덕비는 주로 관아 근처에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이나 고개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마을 곳곳에 산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천이 도시화되면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한 곳에 모아 놓았기 때문에 이렇듯 인천 향교 앞 비석군을 이루게 된 것이다.

[현황]

인천광역시에는 조선 시대 행정 구역에 따라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과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인천광역시 강화군 갑곶리·교동면 읍내리 등에 선정비군이 위치한다.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위치한 인천 향교 홍살문 좌측에 위치한 석비군은 조선 인조 때 인천 부사를 지냈던 이후천(李後天) 등 17인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1876년에 세워진 경기도 관찰사 민태호(閔台鎬)를 제외한 16개의 선정비는 모두 인천 부사의 것이며, 그 중 정조 때 인천 부사를 역임했던 황운조(黃運祚)의 경우 두 개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어 비석은 18개이나 인물은 모두 17인이다. 이 석비들은 인천도호부 곳곳에 산재하고 있던 것들로 1930년대에 인천도호부 관아였던 지금의 문학 초등학교 앞에 5기의 선정비만이 있었으나 1949년 10개의 선정비를 이곳으로 모아왔다. 그 뒤로도 3개의 선정비를 더하여 1970년대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한편 황운조의 선정비는 삼호현 초입 커다란 바위에 암각된 것이 하나 더 있어 모두 3개가 남아 있다. 이 암각 선정비는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학동 문학 터널 상단에 있었으나, 공사로 인해 인근 청학사 입구로 이전한 상태이다.

인천 향교 앞 비석군 현황을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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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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