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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395
한자 頌德碑
이칭/별칭 선정비,공덕비,유애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집필자 배성수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는, 백성들이 관직에 있던 자의 은혜와 덕을 기려 세운 비(碑).

[개설]

일명 선정비(善政碑)·유애비(遺愛碑)·공덕비(功德碑)라고도 한다. 지방 수령 등의 관직에 있으면서 백성들에게 큰 은혜를 끼쳤을 때 백성들이 비를 세워 그 덕을 기리는 것이다. 해당 사실을 심사하여 왕의 칙령으로 허가를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세울 수 있었다. 송덕비는 주로 관아 근처에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목과 고개에 설치되기 때문에 마을 곳곳에 산재하고 있었다. 인천 향교 앞 비석군은 인천이 도시화되면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송덕비 등을 한곳에 모아 놓은 것이다.

[현황]

인천광역시에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과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인천광역시 강화군 갑곶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등에 선정비 군이 있다. 이중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 인천 향교 홍살문 좌측에는 조선 인조(仁祖) 때 인천도호부사를 지냈던 이후천(李後天) 등을 기리는 17인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역대 인천도호부사 및 경기도 관찰사의 공덕을 칭송하는 문자를 새긴 것으로서, 1876년에 세워진 경기도 관찰사 민태호(閔台鎬)의 선정비를 제외한 16개의 선정비는 모두 인천도호부사의 것이며, 그중 정조(正祖) 때 인천도호부사를 역임했던 황운조(黃運祚)의 경우 두 개의 선정비가 세워져 있어 비석은 18개이나 인물은 모두 17인이다.

이 석비들은 인천도호부 곳곳에 산재하고 있던 것들이다. 1930년대에 인천도호부 관아였던 문학 초등학교 앞에 5기의 선정비만이 있었으나 1949년 10개의 선정비를 이곳으로 모아왔다. 그 뒤로도 3개의 선정비를 더하여 1970년대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황운조의 선정비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사모지 고개 초입의 커다란 바위에 암각된 것이 하나 더 있어 모두 인천광역시에 3개가 남아 있다. 이 암각 선정비는 인천광역시 연수구 청학동 문학 터널 상단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공사로 인해 인근 청학사 입구로 이전한 상태이다.

한편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수봉 근린공원에는 1996년 6월 세워진 김정렬(金正烈)[1907~1974]의 송덕비가 있다. 김정렬은 경기도 시흥 출신으로 서울 지방 법원 인천 지원장을 거쳐 1954년 시의회 간접 선거에서 제2대 민선 시장에 선출된 후, 1961년까지 7년간 인천시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1995년 김정렬을 기리기 위하여 송덕비 건립 추진 위원회가 결성되어, 이듬해 송덕비를 제막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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