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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700263
이칭/별칭 여의실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
집필자 이영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특기 사항 시기/일시 1450년경 - 김종(金宗)이 여우실로 이거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6년연표보기 - 여우실 경주 김씨 종가와 사당 자리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 종합 민원실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4년 9월연표보기 - 여우실 경주 김씨 종가터 표지석 건립

[정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에 있었던 경주 김씨의 집성촌.

[개설]

여우실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동의 옛 이름으로, 조선의 개국 공신인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3세손인 김종(金宗)의 후손이 18대에 걸쳐 500년 동안 살아 온 경주 김씨의 집성촌이다.

2012년 현재 여우실의 자리에는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청과 청소년 회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2004년 9월에 경주 김씨 문중 종친과 미추홀구 학산 문화원이 주축이 되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종합 민원실 앞 화단에 ‘여우실 경주 김씨 종가터’라고 적힌 표지석을 세웠다.

[형성 및 변천]

경주 김씨 집성촌인 여우실의 역사는 조선의 개국 공신인 김균의 3세손인 김종이 1450년경 한양에서 이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조선 후기를 거쳐 오늘날까지 많은 인재를 배출한 명가의 터전으로 18대가 한 자리를 지켜왔다. 여우실에는 오랫동안 경주 김씨 문중의 선영이 있었다.

일제 말이었던 1940년, 일본인의 거주지가 도심에서부터 점점 확장해오면서 현재의 숭의 로터리 일대까지 밀려왔다. 주변에 도로가 뚫리고 경주 김씨 선영과 마을이 두 동강 나자 선영을 경기도 시흥시 미산동으로 이장했다. 1996년에 경주 김씨 종가와 사당마저 헐리게 되었고 그 자리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종합 민원실이 들어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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