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일본의 하나부사 공사 및 일행을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있던 인천부 청사로 도망치게 만든 사건. 임오군란은 1882년(고종 19) 7월 23일에 구식 군대가 별기군(別技軍)과의 차별 대우, 급료 연체와 불량미 지급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병난으로 청나라와 일본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일본 공사와 그 일행은 난을 피해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
개항기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가 속해 있었던 인천도호부의 부사를 역임한 무신. 정지용(鄭志鎔)[?~1882]의 가계와 출생 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1880년(고종 17)부터 1882년(고종 19)까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에 설치되었던 인천도호부에서 부사를 역임하였다. 정지용은 1873년(고종 10)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부임하여 1875년(고종 12) 울산부에서 발생한 난...
개항기 때 인천을 개항 지역으로 선정한 일본의 정치가 겸 외교관.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1842~1917]는 일본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오카야마[岡山)] 현에서 출생하였다. 1867년 해외 유학을 떠나 프랑스·영국·미국을 거쳐 1868년 귀국하였다. 1871년 9월 조선 대리 공사로 부임하였고, 1880년 변리 공사가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하나부사...
1882년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 일본 공사가 현재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문학동에 위치한 인천도호부 관아에 머물다가 병사들에게 습격당한 사건. 1882년 7월 19일 훈련도감(訓練都監) 군인들이 난을 일으켜 궁궐을 점령하고 일본공사관을 포위·공격한 사건을 임오군란이라고 한다. 임오군란의 직접적인 원인은 13개월이나 밀렸던 급료로 받은 쌀이 정량이 아닌데다가 대개는 물에 잠겨...